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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구스코 부도리의 전기>에 대한 어느 평론글

중복걸리려나
329 4 4

 

"그럼 문제에 답하시오. 공장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에는 어떤 종류의 색이 있는가."

 

부도리는 자기도 모르게 큰 소리로 대답했습니다.


"검은색, 갈색, 노란색, 회색, 흰색, 무색. 그리고 이것들의 혼합입니다."

 

 미야자와 겐지의 <구스코 부도리의 전기>의 한 구절이다. 독학으로 공부한 부도리가 학교에서 쿠보 박사의 구두시험을 받는 장면이다. 간단한 질문으로 시작하는 부도리의 일련의 답변은 매우 정중하며, 그가 과학자의 관찰력을 가지고 있음을 잘 표현하고 있다. 이 과학적 관찰력의 존재야말로 <구스코 부도리의 전기>가 동화이면서 동시에 과학소설로 성립되는 지점이다.

 

 하지만, 영화 <구스코 부도리의 전기(부도리의 꿈)>는 이 구두시험 대화를 생략했다. 관찰을 바탕으로 한 과학적 감각의 결여야말로 영화 <구스코 부도리의 전기>를 특징짓는 중요한 점이다.

 

 영화 <구스코 부도리 전기>의 줄거리는 기본적으로 원작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기근으로 평생 외톨이가 된 부도리가 화산국에서 일하게 되고, 다시 기근이 닥치자 중대한 결심을 굳힌다는 큰 틀은 똑같다. 크게 다른 점은 부도리가 이계를 환시하고, 그 속에서 코토리가 데려간 여동생 네리를 찾는 장면이 삽입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로써 영화는 원작이 가진 공상과학 소설의 맛에서 벗어나 환상성을 전면에 내세운 판타지로 성립하게 되었다.

 

IMG_6402.webp.jpg

 

 영화 <구스코 부도리의 전기>는 왜 꼭 판타지여야만 하는가? <구스코 부도리의 전기>와 의외의 공통점을 가진 영화가 있다. <기동전사 건담: 역습의 샤아>이다.

 

 <역습의 샤아>는 말할 것도 없이 <기동전사 건담> 시리즈 중 하나로, 우주세기 0093년을 배경으로 한 아무로와 샤아의 최후의 결전을 그린 영화다.

 

 샤아는 부패한 지구연방의 지배에 종지부를 찍고 인류를 각성시키기 위해 소행성 액시즈를 지구로 떨어뜨리는 작전을 결심한다. 이를 막으려는 아무로는 ν건담으로 액시즈를 밀어내려 한다. 그때 갑자기 ν건담이 무지갯빛 빛에 휩싸이고, 그 빛이 액시즈를 감싸면서 낙하가 멈춘다.

 

 신비한 빛에 의해 갑자기 피하게 된 재앙. 그것은 '기적'이라고밖에 이름 붙일 수 없다. 그리고 '기적'을 눈앞에 둔 인간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기에 그저 할 말을 잃는다.

 

 <역습의 샤아>의 마지막에 그려진 '기적'과 <구스코 부도리의 전기>의 마지막에 그려진 '기적'은 매우 유사하다.

 

 

 <구스코 부도리의 전기>에서도 마지막에 카르보나드 화산이 하얗고 부드러운 빛에 휩싸인 후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다만 냉해로 인한 기근이라는 재앙을 피할 수 있었다고 조용히 이야기할 뿐이다.

 

 왜 이 두 작품이 닮은 것일까?

 

 그것은 두 작품 모두 등장인물의 죽음이라는 극적인 상황을 그대로 기적으로 연결시키는 것을 금욕적으로 피하고, ‘기적'을 그리면서도 '죽음의 미화를 피하는’ 곡예적 행태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기적'이란 인간 세상 밖에서 오는 것이므로 인간은 합리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세계의 긍정일 뿐이다.

 

 이 세상은 인간이 살아갈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인가? 현실 속에서 거기에 대한 답을 내놓기는 어렵다. 그래서 이야기는 종종 '기적'이라는 이해할 수 없는 형태로 이 세상을 긍정하려고 한다. 그 이야기를 접한 사람은 세상이 살아갈 만한 가치가 있다 생각한 채 살아갈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기적'이라는 형태의 세계 보증은 말로만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그것은 본래 인간 세계의 바깥에서 오는 '기적'을 인간 세계로 끌어들이는 것이나 다름없다.

 

 '기적'이 인간 세상에 내려오면 기적을 일으킨 인물은 영웅화되고, 그 죽음은 미화된다. 죽음의 미화는 곧 살아 있음에 대한 부정이다.

 

 '기적'이 설명 가능한 것으로 이야기되는 순간, 그것이 보여주는 가치관이 180도 뒤바뀌는 것이다. 그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 사실 두 작품 모두 상당히 신중하게 '기적'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 <구스코 부도리의 전기>의 경우, 기근으로 여동생 네리를 잃은 마음의 상처를 가진 존재로 부도리를 그려냄으로써 기근으로부터 사람들을 구하고자 하는 부도리의 마음을 철저하게 개인적인 생각으로 그려낸다. 사회적 맥락에 얽매이면 자칫 영웅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모두에게 얼간이라 불리고/칭찬받지 못하고/근심거리도 되지 않는 그런 사람이/나는 되고 싶네"라고 <비에도 지지 않고>에 기록한 미야자와 겐지의 마음을 배반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영화는 사회적 관점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원작이 가진 과학적 리얼리즘을 빼고, 대신 부도리의 내면 공간에 초점을 맞춘 환상성을 과감하게 도입할 필요가 생겼다. 그것이 이 영화가 판타지 영화로 만들어져야만 했던 이유다. 혹자는 이 영화의 리얼리즘의 부재를 걱정할 수도 있겠지만, 이 영화는 처음부터 그것을 버리고 완성된 것이다.

 

 

 오다 카즈마사의 주제가 <生まれ来る子供たちのために(태어날 아이들을 위해서)>만이 유일하게 웅변적으로 메시지를 전하고 있지만, 그 예외를 제외하더라도 이 영화가 몇 번이고 되짚어 보지 않을 수 없는 영화로 완성되었다는 점은 변함없다.

 

 

원문

https://www.p-tina.net/animenomon/456.html

 

이 글을 쓴 평론가인 후지츠 료타는 스기이 기사부로와의 대담을 통해 저서의 출판에 크게 기여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https://extmovie.com/movietalk/92786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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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 image 1등
역습의 샤아...뜬금 반갑네요.^^
최근에 제가 그 애니 관련으로 뭔가 한 게 있어서...
22:00
3시간 전
golgo
여기서 샤아가 언급될 줄은 몰라서 처음에 읽어보다가 어? 했네요
최근에 이거 관련해서 뭔가를 하셨군요ㄷㄷ
22:07
3시간 전
profile image 2등
부도리의 꿈은 못 봤는데, 한번 보고 싶네요
항상 좋은 글 감사합니다:)
23:54
1시간 전
카란
원작의 큰 틀을 따라가면서 감독 본인의 해석에 따라 각색했다는 점에서는 은하철도의 밤이랑 비슷하더라고요. 꽤 괜찮은 애니라고 생각해요
00:11
1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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