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C Elseworlds) 조커: 폴리 아 되 후기(스포O)
결론부터 말하자면 감독이 무슨 의도로 만들었는진 알겠지만 그 결과가 실망스러운 작품입니다.
아서 플렉은 전편에서 조커로 각성하여 고담에 혼돈을 가져왔습니다. 이로부터 2년이 지난 작중 시점에서 조커는 고담의 하층민들로부터 사회로부터 억압받고 외면받는 자신들의 분노를 표출해주고 입장을 대변해주는 구원자이자 순교자, 일종의 상징으로 떠받들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조커에 대한 재판이 이루어지는 법원 주위는 물론 내부에서까지 조커의 추종자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조커에 대해 열렬한 기대를 품죠. 자신들의 억압받고 외면받는 삶을 대변해 줄 것을. 또한번 고담에 혁명의 불씨를 가져올 것을. 그리고 그 혁명의 불씨는 전과 다르게 꺼지지 않을 것을.
그리고 이는 영화를 보는 관객들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관객들 또한 아서가 완전한 조커로 각성하여 전편과 같은 혹은 그 이상의 카타르시즘을 선사해 줄 것을 기대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주목할 점은 조커의 추종자들과 관객 모두 조커를 열망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서가 자신은 조커가 아니며 더이상 조커는 여기 없다 말하자 할리퀸을 포함한 조커의 추종자들은 냉정하게 법원밖으로 나갑니다. 아서를 태운 조커의 추종자들 역시 아서를 조커라고 부르며 자신들의 희망이라고 떠받듭니다. 법원 폭발 직후 아서와 마주친 법원 밖의 사람들과 아서가 자신의 집이었던 곳으로 돌아가는 길목에서 아서와 마주친 사람들 또한 아서를 보고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습니다.
이는 작중 아서의 변호사의 입을 통해 언급됐듯 조커의 추종자들이 추종한 것은 아서 플렉이 아닌 조커이기 때문이며 이는 관객들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광기와 혼돈의 화신인 조커가 아닌 아서 플렉의 모습을 보이자 실망감을 느끼죠. 그리고 이러한 실망감은 토드 필립스 감독이 의도적으로 유도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조커의 추종자들과 관객은 아서에게 조커라는 가면을 씌우고 그에 대한 기대를 품었습니다. 하지만 아서가 이를 거부하고 진정한 자신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는, 사회로부터 외면받고 상처받은 하층민 아서 플렉으로서 정체성을 확립하자 냉정한 반응과 실망감을 표출했죠. 한사람의 인간이었을 뿐이었던 아서에게 조커라는 환상을 강요했던 겁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본다면 왜 토드 필립스 감독이 조커: 폴리 아 되를 만들었는지 이해는 되지만 그 방식이 실망스러웠습니다. 이는 크게 두가지로 나뉩니다.
할리퀸은 원작에서 조커의 정신과 의사로서 치료를 위해 상담을 하다가 오히려 조커의 광기에 물들여져 미쳐버린 인물입니다. 하지만 조커: 폴리 아 되의 할리퀸은 아서 플렉과 마찬가지로 환자이며 아서 플렉이 조커로 각성하게끔 자신에 대해 거짓말을 하고 병원에 불을 질러버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과정에서 할리퀸이 광인이라기보다는 관심종자에 가깝게 비쳐지며 이러한 할리퀸과 사랑에 빠지는 아서 또한 작품 내내 수동적인 모습을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할리퀸을 아서를 조커로 각성시키는 기폭제라기보다는 아서와 정서적으로 교감하는 동반자로서 등장시켰으면 어땠을까 합니다.
아서와 마찬가지인 정신병 환자이자 조커에 대한 환상을 품었던 할리퀸이 조커로서의 모습을 잃어가던 아서와 서로 대화를 하고 정서적인 교감을 나누며 조커에 대한 환상이 아서에 대한 사랑과 이해로 바뀌게 되고 영화의 클라이막스에는 아서라는 인간의 유일한 동반자로 자리매김함과 동시에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한다는 전개를 펼쳤다면 폴리 아 되(공유 정신병)이라는 부제와 어울렸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다른 하나는 사실 아서 플렉은 해당 세계관의 조커가 아닌 그저 조커의 탄생에 영향을 준 인물이었다는 결말입니다. 해당 설정 자체는 흥미로운 설정이지만 문제는 이러한 설정을 밝힌 방식이 급작스러웠다는 것입니다. 이미 망가질대로 망가진 아서 플렉이 해당 세계관의 진짜 조커로부터 살해당함으로서 밝혀진 사실은 반전이라기보다는 비참하고 허망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물론 이러한 전개도 토드 필립스 감독이 의도한 바일수도 있지만 더 나은 전개가 있지 않았을까 싶네요. 예를들면 결말부에 아서 플렉이 경찰에 잡히지 않고 총에 맞아가며 계속해서 도망치다가 어두운 뒷골목에서 멘탈이 터진채로 비참한 모습으로 걷게 되고 얼굴이 비춰지지 않는 해당 세계관의 진짜 조커와 만나 말몇마디와 자신의 인생을 함축한 슬픈 농담을 던진 끝에 살해당하는 전개를 들 수 있습니다.
DC 세계관과 느슨하게 연결은 돼 있지만, 너무 현실적으로 비참하게 만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