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감 (2000) 우리나라 타임슬립 멜로드라마의 초기작. 스포일러 있음.
동감을 잘 만든 영화라고 할 수 있을까?
센티멘털하고 좀 유치하고 대사가 오글거린다.
타임슬립연애물이다.
아마츄어무선통신을 통해 20년의 시차를 두고 남녀가 통신하면서
애틋한 감정을 쌓아간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영화는 세련되기보다 아주 오글거리면서 센티멘털한 러브스토리를
펼친다.
일반인수준도 아니고, 여고생 아니면 여중생 용 러브스토리라고 할 수 있다.
타임슬립연애물이 그 전에 우리나라에 있었는지 모르겠는데,
이 영화는 처음 나왔을 때 감탄보다는 실소를 자아냈다.
"센티멘털" "얼렁뚱땅" "설렁설렁" 이런 단어가 어울리는 영화다.
이 영화가 이런 문제점들을 뚫고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영화가 가지는 깨끗함에 있다. 영화가 맑고 깨끗하다. 주연배우 유지태와 김하늘도 아주 깨끗하고 청순하게 나오고. 김하늘이 살고 있는 1970년대는 당시 사람들에게 노스탤지어의 시대다. 2000년에는 닿을 수 없는 먼 시간 저 바깥에
살고 있는 김하늘의 아름다움이 아련한 안타까움같은 것을 관객들에게 주었다.
지금은 타임슬립물이 너무 많아 클리셰가 될 정도다.
하지만, 당시에는, 저 무한히 흘러가는 시간 속 그 어딘가에 있는 청순하고 아름다운 소녀같은
소재는 흔치 않았다. 김하늘 개인적인 매력도 큰 역할을 했다.
그리고 등장인물들이 모두 미성숙하고 싱그러운 사람들이다. 센티멘털하고 세부적으로 어설픈 그런
이 영화의 스타일이 등장인물들과 잘 맞아떨어진다.
이 영화를 멜로드라마의 걸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멜로드라마가 주어야만 할 에틋하고 아련한 사랑의 감정같은 것을 선명하게 일으키는 것은 사실이다.
그 점에서 일단 성공적인 멜로드라마의 기준은 훌쩍 넘어선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것이 다다.
곱씹을 수 있는 감동적인 대사도 없고, 전개가 섬세 유려하지도 않다. 완성도 면에서도 좋은 점수는 못 주겠다.
사실 이 영화의 감동은 그 시대를 함께 살았던 사람에게만 느껴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 영화는 다른 의미로 내 기억에 남는다.
1970년대 김하늘이 다녔던 대학이 나오면서,
몇명 대학생들이 어깨동무하고 대충대충 운동가를 부르면서 운동장에서 뛰어다니는 장면이 나온다.
1980년대의 그 전투를 방불케 했던 학생운동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이 장면을 보며 기막혀서 실소를 했다.
최루탄이 날아다니고 돌멩이가 날아다니고 피 튀기고 수많은 사람들이 몸싸움을 하던
그 장면을 모두가 분명히 기억하는데, 대학생 몇명이 빈 운동장을 썰렁하게 뛰어다니는
장면을 내놓고서 이것이 학생운동이라고 우긴다.
이 감독의 얼렁뚱땅은 당시에는 좀 뻔뻔스러울 정도였다.
어찌 보면 1980년대의 강렬하고 집중력 있는 열정에 대한,
감독의 신랄한 비웃음, 조롱, 무시같은 것이 이 안에
들어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한가지는 분명했던 것이 있다.
이 영화가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1980년대가 이미 끝났다는 것이었다.
열정, 격노, 질주, 활활 불태움같은 1980년대의 정신이 소녀만화적인 깨끗함과 센티멘털함으로 대체가 된 것이다.
그리고, 널럴한 유희정신. 이 영화 주인공들은 시대의 맥락으로부터 제거된 판타지의 황홀한 영역 속에서 거닌다.
그리고, 이런 것들이 대중에게 먹힌다. 지금은 그런 시대가 되어버린 것이다.
아마 1980년대 정신은 이미 그 전에 끝났겠지만.
이 영화는 그것을 분명히 확인시켜 주었다.
접속, 8월의 크리스마스, 미술관 옆 동물원같은 세련된 멜로드라마들이 나오면서
1980년대 식 영화들은 "과거에 대한 회고담"같은 것이 되어버렸음을 확인시켰다.
이 영화 동감은, 그런 영화들과는 쟝르가 다른, 환타지 청소년 용 멜로드라마에서 그것을 확인시켜준 것이다.
그리도 또 하나,
이념이나 시대정신같은 것들이 영화 외부로부터 침투해서 영화를 지배하는 그런 것들을
이 영화는 배제한다. 영화 안에서 영화적 감동 영화적 재미를 만들어낸다.
(사실 반일같은 것을 영화 내에 집어넣는 요즘 영화들은, 1980년대 영화 스타일로 회귀하려는 것이다.
요즘 만들었어도, 2000년 동감보다도 더 오래된 영화들이다.)
그것이 이 영화의 한국영화사적 의미랄까. 이것은 작은 의미가 아니다.
** 이 영화의 타임슬립 멜로드라마가 무슨 혁신적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친숙하게 느껴졌다.
가령 1980년대 나온 somewhere in time 같은 영화가 바로 타임슬립 멜로드라마다.
이 영화는 대중에게 친숙한 타임슬립 멜로드라마에다가 아마츄어무선통신만 집어넣은 것이다.
"오, 아마츄어무선통신을 여기다 갖다 붙이다니 참신한데?"라는 반응보다는,
"웬 아마츄어무선통신? ㅋㅋㅋ"같은 반응이 더 많았던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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