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t whispers (1930) 기발하고 참신하다. 신랄하고 유머러스하다. 스포일러 있음.
The bat 이란 영화는 박쥐모양 옷을 입고 다니는 신출귀몰한 도둑을 보여줌으로써
SF 수퍼히어로 액션 호러무비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 4년 뒤에 만들어진 Bat whispers 는 the bat 의 속편이 아니라 리메이크다. 장면 장면 대사 대사를 카피한
리메이크 영화다. 유일한 차이점은, 이 영화 Bat whispers는 유성영화다.
영화로서는 전작인 The bat 이 더 낫다. 이 영화 Bat whispers는 좀 실망스럽다. 전작을 감싸던 그 아우라가 사라졌고, 영화의 전개가 아주 산문적이고 설명적이다. 도둑 박쥐의 카리스마는 아예 사라졌다. 등장배우들의 연기도 극히 평범하다.
하지만, 이 영화 Bat whispers는 아주 놀라운 영상들을 갖고 있다. 오늘날 영화에 그 영상들이 등장했어도 관객들은 참신하고 훌륭한 영상이라고 감탄했을 것이다.
일단 영화 시작부터 아주 인상적이다.
우선 마천루 빌딩 꼭대기를 카메라가 옆에서 찍는다. 그러다가, 카메라가 아래를 비춘다. 카메라가 빌딩 꼭대기에서 아찔하도록 머언 저 아래를 본다. 그러더니, 카메라가 빠른 속도로 아래로 떨어지며 찍는다. 관객들은 마치 전속력으로 아래로 추락하는 것처럼 느낀다. 그러더니, 카메라가 바닥 바로 앞에서 멈춘다. 그리고,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을 카메라가 안정적으로 옆에서 찍는다. 거리를 평온하게 지나가는 사람들 - 이 장면으로부터 영화가 전개된다.
이것이 원샷은 아니다. 하지만, 아주 영리하고 교묘하게 편집해서 마치 원샷으로 찍은 듯한 느낌을 준다. 굉장히 긴장감과 에너지가 넘치는 장면이다. 시작부터 한방 먹은 듯한 느낌이 든다.
박쥐옷을 입은 도둑 박쥐는 은행을 털려다가 이미 누군가 은행돈을 훔치는 장면을 목격한다. 이 장면도 아주 참신한 촬영으로 이루어진다. 전작에서는 박쥐가 지붕을 걸어가서 창을 통해 누군다 은행돈을 훔치는 것을 발견하는 식으로 촬영되었다. Bat whispers에서는 이와 반대로 촬영된다. 우선 도둑이 돈을 훔치는 장면을 가까이에서 찍는다. 카메라가 서서히 멀어진다. 관객들은 카메라가 실제로는 천장에 있는 유리창 바깥에서 이 장면을 찍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이것은 유리창 바깥에서 박쥐가 이 도둑을 바라보는 시각이다.
박쥐의 옷은 우리가 아는 배트맨의 옷과 아주 많이 닮아있다. 팀 버튼의 배트맨 영화 한장면에 나올 법한 이미지다.
거대한 박쥐의 그림자가 도로를 덮는다. 팀 버튼의 배트맨에서 보았던 장면같기도 하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도둑은 훔친 돈을 가지고 어느 저택으로 도망가고, 박쥐는 그를 쫓아 대저택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멍청한 장면이 여기 추가된다. 위저보드를 가지고 누가 여기 들어왔냐 하고 점을 치자, b a t 라는 글자가 나온다. 두 여자는 "박쥐?"하면서 놀란다. 하등 필요가 없는 좀 코믹한 장면이다. 이 장면이 한 10초 정도 삽입된 다음 그냥 끝난다. 이후 줄거리 전개와 전혀 상관없다. 이런 식으로 오늘날 틴에이저 호러무비에서 위저보드를 많이 이용하기는 하지만. 좀 뜬금없이 느껴진다. 위저보드가 호러영화에 언제부터 소재로 사용되었는지 모르겠으나, 최소한 1930년 이전임이 분명하다.
이런 인상적인 장면이 이어진다. 하늘에서 천둥번개가 치는 장면을 보여주다가, 카메라가 저택을 향해 달려나간다. 저택이 점점 더 가까와진다. 그러더니, 카메라가 마침내 저택 안으로 들어온다. 카메라가 복도를 달린다. 어느 문 앞으로 간다. 문이 점점 더 가까와진다. 그 문안에는 두 여자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것을 원샷처럼 교묘하게 찍었다. 마치 이블데드 II에서 숲으로부터 카메라가 달려서 집안까지 들어와서 주인공을 쫓아오는 장면을 카메라 시점에서 보여주는 그 장면 같다. 오늘날 볼 수 있는 편집과 촬영을 통한 긴장과 공포의 창출이다. 이것을 아주 잘 해냈다는 것이 놀랍다. 아주 현대적이다.
두 여자가 신문에 나오는 박쥐의 정체에 대해 토론하는 동안, 아무도 없는 계단을 공이 하나 튀어내려오며 쿵쿵 소리를 낸다. 그러면서 공포를 자아낸다. 이것도 이후 호러영화에 아주 많이 나오는 장면들이다. (하지만 이것도 줄거리와 별 상관없는 것 같다.)
하지만, 이런 화려하고 참신한 장면들과 장면들 사이에 전개되는 사건들은 지루하고 평범하다.
전작에서 설명이 좀 불충분했다고 생각했는지, 저택 여주인 조카딸이 남자친구를 불러들여 정원사로 위장시켜 돈의 행방을 쫓게 만드는 장면이 좀 더 친절하게 설명되었다. 영화의 개연성이나 논리적 전개를 더 충실히 하기는 하지만, 좀 중언부언하는 경향도 있다. "변사의 설명"같은 느낌을 준달까? 영화 완성도에 반드시 플러스는 아닌 장면이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박쥐의 카리스마가 형편없다. 마치 노틀담의 꼽추처럼 뒤뚱뒤뚱 걷는다. 동작이 우스꽝스러울 정도다. 박쥐는 누군가를 실신시킨 뒤 묶고 있다. 전작을 본 사람은, 이 묶이는 사람이 누군지 알 것이다. 나중에 영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반전에 대해, 이렇게 스포일러를 넣는 이유를 모르겠다. 불필요한 과도한 친절? 관객들이 줄거리를 못 쫓아올까 봐 이런 스포일을 하는 것일까?
박쥐는 그냥 흑두건을 쓴 남자다. 전작에 비해 카리스마가 확 줄어들었다.
이런 장면도 문제다. 박쥐는 형사를 때려서 기절시키고 자기가 형사로 변장하고 저택 안에 들어온다. 전작 The bat 에서는 이 형사가 노련한 탐정으로 그려져서 영화 마지막까지 누가 박쥐인지 모르게 영화가 전개되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형사가 악역으로 그려진다. 사람들은 이 사람이 사실은 박쥐가 아닐까 추리할 수 있게 된다. 왜 이런 연출을 했을까 아주 의아해진다.
촬영은 아주 참신하고 공포를 자아내는 데 성공하는데, 영화 자체는 좀 지루하고 평범하다. 스토리도 이만하면 훌륭한데, 왜 그럴까?
배우들의 연기가 큰 문제 같다. 너무 지루하고 평범한 연기를 한다. 산문적이고 중언부언하고 설명하는 투의 영화 스타일도 문제다. 재빠르게 휙휙 지나가는 스피드가 생명인 그런 영화인데...... (내가 스토리를 이미 알고 있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다.)
이 영화 엔딩도 아주 특이하다. 영화 마지막에 박쥐가 혼자 웃는데, 이 위로 무대막이 닫힌다. 그리고, 장소는 극장 안이 된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액자식 구성이었던 것이다. 결국 지금까지 영화의 내용은, 관객들이 보고있었던 스크린 안에서 보여진 영화였던 것이다. 어느 여자가 The end 라고 쓰여진 판자를 들고 무대 중앙으로 걸어나온다.
그런데, 이 장면도 아주 미묘하다. 박쥐는 분명 액자 속 영화 주인공이다. 그런데, 박쥐가 관객들에게 말을 걸기 시작한다. "너희들 지금 본 영화 속 박쥐의 정체가 뭔지 남에게 이야기하지 마라. 안 그러면 박쥐의 추격을 받을 것이다."
굳이 영화를 액자식 구성으로 만들고 등장인물이 관객에게 말을 걸도록 한다.
1930년 영화치고는 아주 기발하고 세련된 엔딩이었던 것 같다.
추천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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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제가 이야기한 장면들이 영화사상 중요한 발전들인가 봅니다. 처음 나오는 시계탑 장면은 유명한 장면이라고 하네요.
배트맨의 창조자 밥 케인이 자기 자서전에서 이 영화의 박쥐 캐릭터를 가지고 배트맨을 만들었다 하고 적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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