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의 <기생충> 오스카의 장벽을 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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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오스카 역사상 최초로 영어가 아닌 작품으로 ‘작품상’을 수상하며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그 과정에서 한국 영화가 국제적으로 인정받기까지의 변화, 그리고 할리우드의 오랜 장벽을 허문 전략과 도전이 있었다.
■ 오스카의 언어 장벽, 그리고 변화의 시작
1927년 창립된 아카데미(AMPAS)는 한때 ‘국제 영화 예술 과학 아카데미’라는 이름을 가졌지만, 대부분의 시상은 영어권(미국, 영국) 영화에 한정되어 있었다.
오랫동안 ‘외국어 영화상’(현재의 ‘국제 장편 영화상’) 카테고리를 제외하면, 비영어권 영화가 ‘작품상’ 후보에 오른 경우는 단 11편뿐이었다.
수상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없다는 인식이 강했다.
하지만, 2015년 아카데미는 ‘A2020’이라는 개혁을 발표하며 비영어권 영화인, 유색인종, 여성 영화인을 적극적으로 회원으로 영입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2015년에는 전체 회원 중 12%만 미국 외 국가 출신이었지만, 2019년 <기생충>이 개봉하던 해에는 회원의 25%가 해외 출신으로 늘어났다.
이러한 변화는 <기생충>의 성공을 가능하게 한 주요 배경이었다.
봉준호 감독 역시 이 변화의 일원이었다.
“2015년, 나를 포함해 한국의 제작자와 배우들이 처음으로 아카데미 회원이 됐다. 아카데미가 다양성을 확대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고, 지금 돌아보면 내가 아카데미의 첫 한국인 회원 중 한 명이 된 것도 그 노력의 일환이었던 것 같다”
또한, 넷플릭스와 같은 OTT 플랫폼의 확산이 비영어권 작품의 접근성을 높이면서, 미국 관객들도 자막이 있는 영화에 더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 <기생충>, 해외 배급과 칸 영화제에서 시작된 기적
2019년 5월, <기생충>은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며 전 세계 영화계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영화가 끝나자 8분간 기립 박수가 이어졌다. 마치 BTS 콘서트장 같은 에너지를 느꼈다” – 샤론 최 (봉준호 감독 통역사)
이러한 반응을 바탕으로, 북미 배급사 네온은 대담한 오스카 캠페인을 계획했다.
- 주요 전략
1. 북미 개봉 방식 변화
기존에는 ‘전국 개봉’ 방식이 일반적이었지만, <기생충>은 뉴욕의 단 한 개 상영관(IFC 센터)에서만 개봉하며 ‘대기열 효과’를 유발.
이틀 만에 모든 좌석이 매진되며, 입소문을 통해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
2. 미국 주요 영화제 전략적 참여
텔류라이드, 토론토, 뉴욕 영화제 등을 거치며 아카데미 회원들의 눈길을 사로잡음.
LA, 뉴욕뿐만 아니라 코리아타운과 같은 다양한 장소에서 특별 상영 진행.
3. 비영어권 영화라는 한계를 극복하는 메시지
봉준호 감독이 골든글로브에서 남긴 "자막이라는 1인치 장벽만 넘으면 훌륭한 영화의 세계가 열린다" 라는 발언이 화제가 되며, 비영어권 영화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형성.
■ 오스카 캠페인 ‘봉하이브(#Bonghive)’의 탄생
<기생충>의 오스카 캠페인은 봉준호 감독의 유머감각과 카리스마 덕분에 할리우드에서도 유례없는 현상을 만들었다.
- SNS에서는 ‘봉하이브(#Bonghive)’라는 팬덤이 형성되며 봉준호 감독의 인터뷰와 수상소감이 ‘밈(meme)’으로 확산.
- 미국 주요 배우들조차 "저 사람과 이야기하고 싶다!"며 봉 감독을 찾아다니는 현상 발생.
특히, 봉준호 감독과 통역사 샤론 최의 완벽한 호흡이 주목받았다.
“두 사람은 완벽한 코미디 듀오 같았다” – 네온 대표 톰 퀸
샤론 최는 통역을 맡았을 뿐만 아니라, 봉 감독의 특유의 위트와 감성을 영어로 완벽하게 전달하며 큰 역할을 했다.
■ 오스카의 밤, 역사적인 순간들
2020년 2월 9일,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기생충>은 역사적인 순간을 맞이했다.
1. 각본상 수상
- “이 상은 한국의 첫 오스카 트로피다!” – 봉준호
- 한국 영화 역사상 첫 오스카 트로피 획득.
2. 국제 장편 영화상 수상
- 기존 ‘외국어 영화상’에서 명칭이 바뀐 후 첫 수상작.
3. 감독상 수상
- “마틴 스콜세이지에게 배운 영화 제작 철학이 나를 여기까지 오게 했다.”
- 마틴 스콜세이지 감독에게 헌사를 바치며, 객석에서 기립 박수 유도.
4. 작품상 수상
- 비영어권 영화 최초로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
- 발표 직후, 전 관객이 기립박수를 보내며 환호.
- 봉준호 감독은 네 번째 트로피를 들고 "오늘 밤은 새벽까지 술을 마시겠다"며 웃음 유발.
■ <기생충>이 남긴 영향
<기생충> 이후, 오스카는 더 이상 영어권 영화만의 영역이 아니게 되었다.
- 일본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 한국계 미국 영화 <미나리>, 멕시코 영화 <에밀리아 페레즈> 등이 오스카 주요 부문 후보에 오르는 등 비영어권 영화의 입지가 대폭 확대됨.
- 봉준호 감독은 <미키 17>로 할리우드 진출을 본격화.
- 통역사 샤론 최 역시 <미키 17>의 번역과 제작 과정에 참여하며 영화계 활동을 이어감.
■ 봉준호, 그리고 오스카 트로피의 자리
현재, <기생충>이 받은 오스카 트로피는
- 국제 장편 영화상 트로피 → 제작사 바른손필름 사무실에 보관
- 각본상, 감독상, 작품상 트로피 → 봉준호 감독의 집 거실에 전시
“가끔 거실을 지나가다 보면 아직도 믿기지 않는 순간이 있다” – 봉준호
<기생충>은 단순한 ‘오스카 수상작’이 아니다.
비영어권 영화의 시대를 열고, 영화계의 새로운 기준을 세운 작품이다.
그리고 그 여정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미친 성공이었죠. 코로나 시국 이전에 가장 뽕차올랐던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