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ixt (2011) 코폴라감독의 걸작 호러영화. 스포일러 있음.
코폴라감독은
자기 개인적인 영화들을 만들겠다고 선언했고,
이 영화도 그들 중 하나다.
발 킬머의 마지막 걸작 주연이라고 생각한다.
뱀파이어와 대량학살이 등장하는 호러영화다.
하지만, 이것은 겉모습뿐이다.
실제 이 영화는, 8과 1/2처럼 예술가의 예술창작에 대한 영화다.
발 킬머는 공포소설가인데, 그가 어떻게 소설 한 권을 창작해내는가 하는 그 과정을 본격적으로 그린 영화다.
난이도가 최고에 속하는 소재와 주제라는 생각이다.
사건이 있는 것도 아니고, 머릿속에서 이루어지는 영감->경험 ->전개->클라이맥스-> 소설 완성의 과정을 어떻게
영화로 만든단 말인가?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감독은 이 시도에서 단단히 성공하고 있다.
이 영화가 코폴라감독 자신의 창작에 대한 고백이었다면, 이 영화를 주저없이 걸작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런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 공포소설작가가 뱀파이어소설을 쓰는 과정을 그린 것이다.
소재도 주제도 심오한 것 없는 소설을 창작하는 과정이다. 그래서, 이 영화도 잘 만들기는 했으나.
좀 가볍고 경쾌하다. 소품이다.
발 킬머는 마녀가 등장하는 공포소설의 대가다.
그는 이제 지쳤다. 공포소설의 대가라는 명칭도 싫다. 그는 월트 휘트먼의 풀잎이라는 시집을 애지중지할
정도로 순문학에 애착이 크다. 이제 나만을 위한 진지한 예술작품을 창작하고 싶다.
그는 사인회를 열며 책을 팔러 이 동네 저 동네를 다니다가, 서점조차 없는 아주 작은 마을에 도착한다.
철물점 한 켠에 책 파는 곳이 있다. 그는 아무도 자길 알아주지 않는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흥미로운 것을 발견한다.
마을 중앙 7개의 시계가 붙어 있는 7면 시계탑. 시계가 제각기 다른 시간을 보여준다. 누군가 그 시계탑에 악마가 산다고 말해준다.
발 킬머가 존경하는 에드가 앨런 포우가 묵었다는 폐허가 된 호텔.
자기가 기르던 고아들 수십명을 한꺼번에 죽이고 자살했다는 어느 목사.
마을 바깥 호숫가에 그룹을 이루고 사는 정체 모를 홈리스 젊은이들.
마을 보안관이 보여주는, 심장에 말뚝이 박혀 죽은 어느 소녀의 시체. 마치 뱀파이어를 죽인 것처럼.
사소하다면 사소한 이야기다. 흥미롭다면 흥미롭기도 하다.
이것들이 발 킬머의 상상을 자극한다.
그는 뱀파이어소설을 쓰고자 결심한다.
이 영화는 8과 1/2처럼, 예술가의 창작과정을 영화로 만든 것이다.
그러니까, 발 킬머의 예술가 창작과정이 이 영화의 시간이고 공간이다. 시간과 공간이 마구 뒤섞인다.
발 킬머는 이런 흥미로운 소재들을 조합하여 어떻게 소설을 창조해내는가?
그는 우선 이 모든 이야기들을 관통하는 한 명의 소녀를 창조해낸다.
영화는 이것을 이렇게 표현한다. 발 킬머가 한밤중에 마을 바깥을 혼자 나선다. 누군가 곁에서 걸어간다.
그로테스크한 화장을 한 소녀 엘르 패닝이다. 이 소녀는 자기 이름을 브이(V)라고 한다.
뱀파이어의 첫글자 브이이기도 하고, 버지니아의 첫글자 브이이기도 하다.
브이는 발 킬머에게 당신 소설의 애독자라고 말한다.
현실인간이라기에는 너무 신비하게 생겼고 행동하고 말한다.
이 소녀는, 뱀파이어이기도 하고, 에드가 앨런 포우의 아내 버지니아이기도 하고, 목사에 의해 살해당한
아이들의 일원이기도 하다. 이 소녀를 통해 위의 모든 사건들이 신비하게 연결된다.
발 킬머는 이 소녀를 따라가면서, 에드가 앨런 포우를 만나기도 하고, 호숫가에 사는 홈리스 젊은 뱀파이어들을
만나기도 하고, 자기가 기르던 아이들을 죽인 목사의 유령을 만나기도 한다.
엘르 패닝 일생일대의 연기를 보여준다. 굉장히 아름답게 나왔는데,
발 킬머는 엘르 패닝을 따라가면서 뱀파이어도 만나고 에드가 앨런 포우도 만나고 죽은 자기딸도 만나고 그런다.
엘르 패닝이 뱀파이어인 줄 알았는데, 에드가 앨런 포우를 만났더니 엘르 패닝이 그의 아내 버지니아라고 그러고,
알고 보니 익사한 자기 딸이었고......이런 식으로 정체성이 계속 바뀐다.
나는 여기에 발 킬머 창조의 비밀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은 굉장히 매혹적인 설정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이것이다.
엘르 패닝을 쫓아가다가 발 킬머는 혼자 남겨진다.
그때 누군가 발 킬머를 부축해 일으킨다. 다른 아닌 에드가 앨런 포우다.
발 킬머는 놀란다. 그리고, 에드가 앨런 포우에게, 뱀파이어책을 쓸 수 있게 가르침을 달라고 부탁한다.
에드가 앨로런 포우는 그에게 가르침을 준다.
에드가 앨런 포우가 떠나려고 하자, 발 킬머는 펄쩍 뛴다.
"클라이맥스는 이제부터 써야하는데요? 클라이맥스를 어떻게 쓸 지 가르침을 주십시오."
그의 애걸에 에드가 앨런 포우는 "이제부터는 당신 심연을 열어젖혀야 한다. 그렇게 할 용기가 있는가?"
발 킬머는 그렇다고 대답한다.
에드가 앨런 포우가 계곡 밑 흐르는 물을 가리킨다. 그 물 위에 보트가 보이고 어떤 소녀가 수상스키를 타는 것이
보인다. 발 킬머는 울기 시작한다. 자기 딸이 죽는 장면이다.
"내가 따라갔더라면, 그녀는 죽지 않았을 수도 있었어요. 그런데, 그때 난 불륜녀와 함께 있느라고
혼자 보냈어요. 정말 내 자신이 부끄러워요. 난, 딸을 살릴 수도 있었어요. 정말 부끄러워요."
예술가란 참 비극적인 존재들이다. 자기 상처를 후벼파야 예술작품을 창작할 수 있다니.
또다른 내가 좋아하는 장면은 이것이다.
밤하늘 속으로 엘르 패닝이 승천한다.
발 킬머는 신비한 자기 뮤즈가 승천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 곁에 있던 에드가 앨런 포우는
자기 아내 버지니아가 승천하는 것으로 보인다.
둘 다 승천하는 엘르 패닝을 보고 애타게 그녀를 부른다. 그녀의 정체는 무엇일까? 발 킬머의 창작과정에서
엘르 패닝이 상징하는 것은 무엇일까? 코폴라감독은 거장답게 엘르 패닝을 엄청 매혹적으로
심오하게 표현한다.
발 킬머는 책을 마무리짓기 위해 경찰서로 몰래 잠입해서
말뚝에 심장이 찔려죽은 시체를 찾아간다. 말뚝을 빼자 시체는 되살아나 다가온다.
드라큘라 이를 가진 뱀파이어 엘르 패닝이다. 엘르 패닝은 발 킬머에게 달려들어 그의 목을 물어뜯는다.
바로 뒤 이어 발 킬머가 책을 마무리짓는 장면이 나온다.
그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띤다. 좋은 책 하나를 방금 썼다. 편집자와 책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편집자도 만족스러운 표정이다. 둘이 함께 껄껄 웃는다.
코폴라감독이 자유롭게 개인적인 스타일로 만든 영화들은 모두 나중에 전설이 될 것이다.
이 영화도 엄청 자유롭다. 자기 내적인 이야기를 지극히 사적인 방식으로 그려낸 것이 눈에 보인다.
엘르 패닝 캐릭터 속에서도, '신경써서 이런 캐릭터를 구축해야지' 하는 의도가 느껴지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술술, 감독의 지극히 개인적인 영감으로부터 풀려나온 이미지같아 보인다.
너무 잘 만든 영화다. 매혹적이기도 하고. 긴장 없는 사적이고 내면으로부터 술술 흘러나오는 것같은
이미지들. 너무나 좋아하는 영화다.
영화는 놀랍도록 신선하고 창의적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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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작품이군요. 소개해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