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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분다 (2015) 미야자키 하야오의 마지막 애니메이션. 스포일러 있음.

BillEvans
276 3 4

"바람이 분다"는 여러분이 아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마지막 애니메이션이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최근 "그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애니메이션을 만들었지만,

이것은 이미 우리가 잘 아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이 아니다.

심지어는 원화를 그린사람도 미야자키 하야오가 아니다.  

 

바람이 분다를 보면서, 미야자키 하야오가 이 애니메이션에서 자기 예술세계를 확실히 마무리짓고

관객들에게 굿바이 인사를 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시 보니까, 확실히 전에 느끼지 못했던 감동이 느껴진다. 대가만이 할 수 있는 작별인사다.

바람이 분다에서 미야자키 하야오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풀어 놓는다. 픽션을 나레이션하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사적인 방식으로 고백이 이루어지는 사소설같은 느낌을 준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비행기에 관심이 많은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었다.

반전, 전쟁에 대한 냉소적인 태도를 보이면서도 동시에 비행기에 관심을 많이 보이는 이중적인 태도를 가졌는데,

이 애니메이션 주인공 지로도 마찬가지다. 그는 2차세계대전 때 일본군이 사용했던 제로센을 만든 사람이다. 

그는 군국주의 때문에 고통 받는 일본 민중을 위해 분노하기도 하고, 일본정부의 행태에 "법과 제도가 있는 근대국가가 이럴 수 있단 말이냐?"하고 분노한다. "전쟁은 광기다"하고 비난하기도 하고, 자기가 만든 제로센들은 하나도 돌아오지 못하겠지 하고 일본의 패배를 예견하기도 한다. 한 마디로, 여기 있는 우리보다 더 양심적이었으면 양심적이었지 덜하지는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전범이다. 그가 일본군국주의 정부를 위해 만든 제로센은 일본군국주의의 야욕을 위해 중요하게 쓰인 도구였다. 이 지로의 전기를 마지막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 미여자키 하야오의 아버지가 2차세계대전 동안 군수공장을 운영했었다고 하던데, 그 이유 때문일까?

 

지로는 어릴 적부터 비행기에 관심이 많았다. 관심 많은 정도가 아니라, 그것에 매혹되어서 꿈까지 꾼다.

"내가 만들고 싶은 것은 사람들을 즐겁게 하기 위한 혁신적인 비행기야. 하지만, 지금 내게 비행기를 만들라고 돈을 주는 것은 군국주의 정부밖에 없어. 나보고, 비행기 만들기를 포기할래 아니면 군국주의정부에게서라도 돈을 받아 비행기를 만들래 하고 묻는다면, 나는 비행기를 만들기를 선택하겠어. 나는 전쟁이 끝나길 바래. 전쟁이 끝나면 내가 진정으로 만들고 싶은 비행기를 만들 거야."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자기가 매혹된 꿈을 추구하는 것이 전쟁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해치는 결과가 되더라도, 그는 자기 꿈을 추구하기를 선택한다. 

 

여기에서 이 애니메이션의 가장 큰 모순이 생기게 된다. 이 애니메이션은 역사적 사실이 아닌, 지로의 꿈과 그 꿈을 추구하기 위해 전력질주하는 삶을 그리는 것이 목적이다. 제로센, 사람들이 죽어가는 전쟁이 모두 지로의 꿈과 연결되어서는 아름다운 것이다. 황홀한 것이다. 지로가 마침내 제로센을 만들고 그의 꿈을 이뤘을 때, 하늘을 가득 메운 제로센들이 아름다운 궤적을 그으며 하늘을 날아가는 것을 보여준다. "정말 아름답군." "하지만 저들은 아무도 돌아오지 못하겠지" 이것이, 미야자키 하야오가 제로센을 묘사하는 방식이다. 잔인, 전쟁, 타인의 고통같은 것들은 여기 끼어들지 못한다. 지로가 이것을 무시해서가 아니다. 그는 애니메이션 내내 군국주의를 비난하고 일본정부를 비난하고 전쟁을 광기라고 욕한다. 하지만, 자기 꿈이 가장 중요하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만든 최후의 애니메이션은, 굉장히 도발적이고 논란의 여지가 많고 깊이가 있는 것이다. 

그는 지로를 미화하지 않는다. 지로가 "내 꿈이 가장 중요해"하고 말할 때, 미야자키 하야오는 그것을 편들지도 비난하지도 않는다. 그냥 지로를 발가벗겨 화면 안에 내동댕이친다. 그를 욕하든 편들든 관객들의 자유다. 

 

"인간이 일생에서 진정으로 창조적이고 무언가를 해낼 수 있는 기간은 아주 짧아. 길어야 십년 정도야. 모쪼록 이 축제의 기간을 마음껏 누리길 바라겠네." 청년 지로는 이 말을 듣는다. 맞는 말이다. 지로는 비행기를 만들겠다는 자기 꿈을 이루기 위해 이 십년 동안 정말 전력질주 최선을 다한다. 일본 군국주의 정부는 비행기를 만들고 싶어하지만 계속 실패한다. 일본정부에서는, 선진국 독일정부에 엘리트 엔지니어들을 파견해서 그 기술을 배워오도록 한다. 말하자면, 기술을 훔쳐다가 비행기를 재현하라는 것이다. 지로는 비행기 재현 수준에서 그치지 않고, 자기가 생각하는 궁극의 비행기를 만들려고 한다. 지로는 궁극의 탐미주의자 같다. 자기 인생의 가장 열정적이고 빛나는 십년을 이 궁극의 비행기를 만드는 데 쏟는다. 자기가 더 훌륭한 비행기를 만들수록, 일본정부는 이 비행기를 이용해서 더 많은 사람들을 학살할 것이다. 지로도 이것을 안다. 하지만, 그는 자기가 도달할 수 있는 절정에 도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마침내 그는 제로센을 만드는 데 성공한다. 그 아름다움에 엔지니어들은 감동한다. 군인들이 곧바로 그의 비행기를 가져간다. 그 비행기는 굉장히 많아진다. 그 많은 제로센들이 하늘을 가득 메우고 비행기구름을 남기며 멀리 떠나간다. 지로는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하고 괴로워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궁극의 아름다운 꿈이 실현된 것에 감동한다. 자기의찬란한 십년은 훌륭한 성과를 이루었다. "하지만, 저것들은 하나도 돌아오지 않겠지." "하늘은 잔인해. 전쟁은 광기야." 그는 씁쓸해하지만, 동시에 그 밑바닥에는 괴로움보다도 감동과 기쁨이 깔려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그가 가진 상상력과 예술성을 100% 활용해서 지로의 일생을 아주 훌륭하게 그려낸다. 원령공주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붉은 돼지의 예술성을 가지고 아름답게 그려진 전범의 일생이다. 그의 최고작들과 비교해서도 떨어지지 않는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지로의 치열한 인생에 멜로드라마를 넣는다. 지로의 인생에서 노호코라는 여자가 계속 만났다가 헤어졌다가 한다. 대학생이었을 때 운명적인 만남을 한 이후, 그들은 만났다가 헤어졌다가 계속한다. 

노호코는 폐렴에 걸려서 죽어가는 여자다. 지로는 노호코가 남은 삶이 얼마 되지 않는 것을 알고, 그녀와 결혼한다. 그들은 정말 치열하게 하루 하루를 사랑하며 산다. 노호코는 어느 순간 지로로부터 사라진다. 

이제부터는 피와 가래를 토하고 얼굴을 쭈그러들고 보랏빛으로 변해버릴 것이다. 그녀는 이런 모습을 지로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다. 아름다운 모습만 남겨주고 떠나고 싶다. 지로는 아내를 이해한다. 지로의 치열한 꿈을 좇는 일생에서 이런 사랑이야기는 이질적이다. 꿈을 좇는삶과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는 물과 기름처럼 어우러지지 않는 이질적인 요소로 애니메이션 내내 눈에 띈다. 

 

하지만 애니메이션 마지막에서 이 두 요소는 아주 감동적인 결말을 창출해낸다. 

지로는 꿈꾸었던 모든것을 이루었다. 그가 만들어낸 궁극의 꿈 제로센들은 하늘 너머 어디론가 떠나 버렸다.

친구들도 건물도 다 사라졌다. 그는 무한한 풀밭 위에 서 있다. 풀밭에는 아무것도 없다. 철저한 무의 세계다. 

치열한 십년의 축제가 끝나고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다. 그는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까?

그러자, 저 멀리에서 누군가 천천히 걸어온다. 가장 아름다웠을 적의 아내다. 그녀는 빙긋 웃으며 

"살아가세요"하고 속삭인다. 이 장면이 없었다면 이 애니메이션의 성공은 반감이 되었을 것 같다. 그만큼 

파워풀한 장면이다. 지로는 마지막 순간에 죽은 아내로부터 구원을 얻는다.

 

이것은 은퇴를 선언했을 당시, 미야자키 하야오가 그의 길고 훌륭했던 커리어를 회상하면서 만들어낸 장면일까? 그랬을 지도 모르겠다.

 

다시 보니, 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더 걸작이었다. 애니메이션 감독 안노 히데아키가 지로 역의 성우를 했는데,

너드스러우면서도 부드럽고 지성적인 목소리가 잘 어울린다. 프로페셔널한 성우들이 할 수 없는 무엇인가가 있다.

 

이 애니메이션만큼, 한 인간의 일생을 치열하게 쫓아가며 그린 애니메이션이나 영화가 있을까? 얼른 떠오르지 않는다. 심지어 리들리 스콧감독의 나폴레옹보다도 상상력이나 설득력 매력 감동 등에서 더 낫다. 주제 자체가 논란의 여지가 있기는 하겠지만, 주제의식을 선명하게 예술적으로 그려낸 정도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대하드라마로서 많은 등장인물들 사건 사회 전체를 그려내는 기술도 탁월하다. 캐릭터들은 개성적이고 잊을 수 없다. 이 애니메이션은 대가의 마지막 인사에 걸맞는 걸작이다.    

 

확실히 미야자키 하야오의 최후 애니메이션이 이것이리라. 이 이후 무엇을 붙이든 그저 사족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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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리엔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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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onat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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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
마침 오펜하이머 볼즈음 봐서 뒤끝이 씁쓸했던 기억이 납니다
22:53
1시간 전
BillEvans 작성자
우주의지
지로의 태도가 논란의 여지가 있기는 하죠.
22:57
1시간 전
BillEvans
어느쪽으로든 제 스탠스를 정하기 어려웠어요.

근데 다 떠나서 엔딩때문에 울고 있더라구요 제가ㅎㅎ
23:06
1시간 전
profile image 2등

공감합니다. 노예술가가 자기 삶의 모순을 직시하고 모든 것을 솔직하게 털어놓는 작품이었습니다.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으리라 생각합니다. 한편으로는 평생 군국주의와 전쟁에 반대해온 하야오 영감님쯤 되니까 할 수 있었던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23:14
1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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