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키17> 단평

개봉 전 기대가 컸지만 리뷰들을 보며 기대치를 낮출 수밖에 없었습니다. 관람까지 열흘이나 걸린 것도 이 탓이었습니다.
하지만 극장을 나오니 실망감이 더 큽니다. 봉준호 감독 작품들 중 가장 실망스럽습니다.
재밌게 보셨다면 참 다행이지만, 개인적으로 보면서 고개를 계속 갸우뚱하게 하는 작품이었습니다.
<기생충>은 정말 완벽하게 짜여진 오케스트라 공연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각본, 편집, 음악, 프로덕션 디자인, 연기 등 모든 영화적 요소가 완벽하게 맞아 떨어지고 조화를 이루며 1막, 2막동안 착실히 쌓아 올려서 3막에서 빵 터뜨리는 쾌감이 엄청났던 작품이었습니다.
이번 <미키17>은 그 정확히 반대였다고 생각합니다. 정재일 작곡가의 음악은 왠지 모르게 따로 놀고, 비주얼 적으로도 기억에 남는 부분이라곤 청문회가 이뤄지던 공간을 제외하면 전무합니다. 가장 큰 문제는 편집인 것 같습니다. 뭔가 삭제해서는 안될 장면이 여럿 삭제된듯한 느낌이 매우 강합니다. 1막과 2막이 3막을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토막나서 끊겨있습니다.
한 마디로 3막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너무나 갑작스럽고 어색합니다. 각 캐릭터들이 내리는 결정들에 있어서 인과관계란 찾아 볼 수도 없고 캐릭터 간 케미스트리도 매우 약합니다. 심지어 미키17과 미키18 간의 케미도 뭔가 생기다 만 듯한 느낌입니다.
그나마 긍정적인건 각 캐릭터들 개개인은 매력적으로 다가옵니다. 아마 배우들의 탁월한 연기력도 있겠지만 그래도 봉준호 감독 특유의 확실한 캐릭터 빌딩은 여전합니다. 캐릭터들이 융합이 안되서 그렇지 개개인으로 보면 충분히 매력적입니다. 그래서 더 아쉬움이 크게 남습니다.
사실 작품 전체가 그렇습니다. 휴먼 프린팅이라는 컨셉과 2054년의 모습, 과장된 악역들과 선역과 악역이 불분명한 나름 매력적인 캐릭터들은 존재하지만 그에 비해 벌어지는 사건들의 전개 방식은 전혀 흥미롭지 않습니다. 사실 흥미를 떠나서 굉장히 삐그덕거립니다. 과연 여기서 어떻게 흘러갈까 하는 기대감과 흥분감이 아닌, 도대체 극이 어디로 가고 있는건가 싶은 의문과 혼란이 더 큽니다.
개봉 연기 사유로 워너와 봉준호 감독 사이의 의견차로 편집 과정이 원활하지 않다는 루머가 나왔었고, 최근 인터뷰에서 봉준호 감독이 직접 부인하긴 했습니다만 영화를 보면 마냥 헛소문은 아니었구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감독에게 편집에 대한 전권이 있더라도 제작사에서 특정 부분을 푸시할 수는 있는 것이니깐요. 그게 런닝 타임이든 특정 테마적 요소이든 뭔진 모르겠습니다만.
그게 아니라면 봉준호 사단과 워너 제작진의 문화적 차이로 인한 어쩔 수 없는 톤의 불일치가 원인이었을 수도 있겠습니다. 한마디로 <설국열차>와 <옥자>에서 느꼈던 묘한 불협화음이 더 강조된 듯한 느낌입니다. 다음 할리우드 작품은 워너 말고 다른 스튜디오와 손을 잡는 것도 어떨까 싶네요.
결론적으로 포텐셜은 굉장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더 심하게 발휘가 안된, 봉준호 감독의 필모에 아픈 손가락 같은 작품이 될 것 같습니다. 이전작들에 비하면 날카로움이 훨씬 덜합니다. 주제의식들이 필요 이상으로 뚜렷하고 레이어가 부족해 잘 와닿지가 않습니다. 연출 방식들도 봉준호 특유의 색채는 드러나지만 크게 감각적이진 않습니다. 해외의 일부 호평들도 아마 봉준호 감독의 색채를 많이 접해보지 못해 아직까진 새롭게 다가와서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 좋은 소스 머티리얼과 명배우들로 과연 이게 최선이었을까 싶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네요.
(여담으로 이 "카이"라는 캐릭터도 굉장한 미스캐스팅같습니다. 캐릭터 자체도 비중에 비해 극에 기여하는 바가 딱히 없습니다. 테마적으로 성소수자를 대표하는 것 외에는 말이죠)
아쉬웠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