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자 (1965) 내가 생각하는 625전쟁 영화들 중 최고작
내가 생각하는 6-25 전쟁영화들 중 최고작은 바로 이 순교자다.
유현목 감독은 남긴 영화들 수로 보나 질로 보나 그 다룬 소재 및 주제들의 범위로 보나 다른 감독들을 까마득히 초월하는 거장 중의 거장이라는 생각이다.
황해도 사리원 출신 유현목 감독에게 6-25는 바로 자기 자신의 이야기였고, 6-25 관련 한국영화들 중 최고작은 다수가 그의 작품들이다.
장마, 카인의 후예, 불꽃, 순교자 등이 모두 그의 작품들이며, 다 걸작들이다. 이중 최고의 걸작이라고 할 수 있는 오발탄을 제외하고서라도 말이다.
이 영화 순교자는 아주 이채로운 작품이다. 잉마르 베리만 식 형이상학적, 철학적 영화다. 원작 김은국의 순교자를 영화화한 것인데, 김은국의 원작 자체가 도스토예프스키를 잇는 인간 문제와 형이상학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라고 찬사 받은 소설이다. 이 영화 순교자에 대해서도 같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이 영화를 보다가 보면, 고구마를 한 열개는 목 안에 처넣은 듯 답답한 느낌을 받게 된다. 등장인물들은 느릿느릿 말하고 느릿느릿 행동하고 사건의 전개라고 할만한 것이 별로 없다. 마치 엄청난 물의 무게를 견디며 느릿느릿 움직여다니는 심해어들처럼...... 그들을 괴롭히는 것은, 인간과 죄의 문제, 구원의 문제 그리고 신에 대한 질문이다. 거창하게 들릴 지 모르겠지만, 사실이 그렇다. 이 영화는 도스토예프스키적이다. 잉마르 베리만의 처녀의 샘적이다. 그것도 흉내가 아니라, 정통적이며 과녁을 제대로 맞혔다. 분노에 가득차 있는 에너지 넘치는 오발탄에 대응되는 것이, 이 침착하고 철학적이고 실존적인 순교자이다.
북한군이 점령하던 도시를 국군이 탈환한다. 북한군은 12명의 목사들을 강제로 끌고가서 그중 10명을 죽이고 2명만 놓아주었다. 한명은 미쳐버렸으니, 사실상 단 한명만 살아나온 셈이다. 그 목사가 김진규다. 사람들은, 김진규가 죽음이 두려워 배교했을 것이라 믿어버린다. 김진규는 신도들로부터 지탄 받고 국군으로부터는 부역자로 조사를 받게 된다. 김진규 변호인이 바로 정보장교 남궁원이다. 김진규는 이상하게도 입을 꾹 닫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남궁원은 김진규를 취조하고 김진규 주변 사람들을 탐문하고 다니면서, 그날 있었던 일의 진실을 파헤쳐 들어간다.
6-25 전쟁에 대해 직접적인 묘사는 나오지 않는다. 6-25 전쟁이 한창 벌어지고 있는 와중에 일어나는 법정 영화이니까.
하지만 폐허가 된 도시 묘사, 살벌하고 폐허가 된 도시 분위기, 상실감에 휩싸인 채 흐느적거리는 유령같은 사람들 등 전쟁의 참화를 이렇게 생생하게 묘사한 영화도 드물 것이다.
아마 관객들은, 김진규가 사실은 신앙을 끝까지 지키려했던 사람이고 죽은 12명 목사들이 배교자였다고 짐작할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관객들의 어설픈 짐작을 뛰어넘는다. 이 영화에는 커다란 반전이 두번 일어난다. 그 반전들은, 인간은 무엇이고 죄는 무엇이고 신은 무엇이냐 하는 커다란 질문들과 연결되어 있다.
김진규와 대척점에 있는 이가 바로 남궁원이다. 젊은 정보장교 남궁원은 폐허가 된 도시 속을 헤집고 다니며 김진규에 대해 탐문하고 다닌다.
어떻게 보면, 폐허가 된 인간성 상실의 현실 속에서 구원이란 무엇이냐 끈질기게 탐구하고 다니는 우리 모두를 상징하는 듯도 하다. 남들이 보면 별 것 아닌데, 이 문제를 그렇게까지 집착해서 파헤치고 다니는 사람이 바로 남궁원이다. 그는 그렇게 해야만 하는 내적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구원의 문제에 대해 침묵하고 있는 김진규와 이것에 대해 끈질긴 질문을 하는 남궁원 - 그들이 바로 이 영화를 구성하는 두 기둥들이다.
우리나라 영화사에도 이런 영화가 존재한다는 점에서 아주 중요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어마어마한 목표를 이런 집중력을 가지고 추구한 영화가 또 있었나? 오발탄 - 순교자, 둘만 가지고서도 유현목 감독은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레벨에 도달해있다 하는 생각이다.
김진규는 대가급 연기를 보여주었고, 남궁원은 이 영화가 아마 대표작이 되지 않을까? 순수하고 눈을 번뜩이면서 사명감에 불타는 청년 역할을 정말 설득력 있게 연기하였다. 액션영화에서 깡패로 나와 주먹을 휘두르던 배우 장동휘가 이 영화에서 정말 카리스마를 보인다. 그로서는, 자기가 깊이 있는 내면 연기를 펼쳐보일 능력이 있다는 것을 증명할 좋은 기회였을 듯하다. 장동휘의 대표작들 중 하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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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이런 영화까지 섭려할 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