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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최후의 밤] 관람평(스포없음)

텐더로인 텐더로인
4014 6 9

movie_image.jpg

 

어제 보았습니다.

 

중간에 깜짝 놀란 지점이 있었습니다. 보실 분들은 혹여나 오해하여 상영관을 떠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저에게 이 작품은 올해의 발견이었습니다.

 

개봉은 했지만, 상영관이 드물고 보신 분이 아직 거의 없으니, 아래의 평은 스포일러를 최대한 배제했습니다(사실 이 영화는 스포일러라는 것이 거의 의미 없습니다)

 

 

-----------------------------------------------------------------

 

 

포스터는 침대를 축으로 삼아 회전하는 모양이다. 빙빙 도는 이야기. 오르고 내리는 이야기. 이 영화의 이야기다.

 

영화에서 초록의 색은 무의식으로 향하는 문으로서 작동하는 경우가 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당신은 알프레드 히치콕의 <현기증>에서 주인공과 우리의 정신을 휘감은 매들린, 혹은 주디의 옷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환영의 색으로서 초록은 이제 탕웨이가 입고 있다.

 

이 작품은 과장 좀 보태서 알파고가 둘 경우의 수 만큼이나 다양한 해석이 도출될 수 있다. 아니면 아예 <멀홀랜드 드라이브>처럼 풀이는 포기하고 침묵하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올해 만난 작품 중에 형식적으로 가장 야심찬 영화 중 하나가 될 것이다. 감독은 그저 기교를 자랑하려는 게 아니다. 꿈의 서로 다른 두 가지 버전을 실험하고 있는 중이다.

 

최후의 밤이라면 나도 목격하고 싶은 꿈들이 있다. 꿈의 본질에 인류는 아직 다가가지 못했지만, 영화라는 예술은 오래전부터 여러 가설을 도입해보았다. 우리가 꾸는 꿈은 하나의 테마만을 재생하진 않는다. 여러 추억과 못다 이룬 희망이 의식의 수면 아래에서 뒤엉켜 시나리오를 새롭게 만든다.

 

이 영화의 전반부가 얼핏 난해하게 느껴지는 건 이런 꿈의 속성을 투영해놨기 때문이다. 그러나 3D로 만든 후반부에선 전혀 다른 방식으로 시공간이 구축된다. 그것도 원테이크로.

 

얼핏 장르적으로 누아르와 유사탐정물의 외피를 두르는 듯 보였던 영화는, 홀연히 다른 차원으로 점핑한다. 이때 길에서 낙오하지 않으려면 나지막이 내뱉는 뤄홍우와 완치원(탕웨이)의 대사, 또한 변주되는 정물을 정밀하게 눈에 새기며 집중해야 한다.

 

<지구 최후의 밤>에서 플롯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건 허사다. 기체처럼 손에 움켜쥘 수 없다. 개연성에 대한 강박을 버리고 주인공 뤄홍우(황각)의 의식을 흐름을 좇아야 한다. 카메라는 밀리미터 단위로 느리게 트래킹하고 정교하게 멈춘다.

 

끝없이 침잠하는 이야기에는 쉬이 지워지지 않고 맴도는 서글픔이 서려있었다. 어떤 바람이 이런 꿈의 원동력이 되는가.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은 이 영화 전체에서 중요한 중심축이다.

 

뤄홍우가 누군가와 만나는 면회실의 창살은 벌집모양이다. 영화의 후반에 누군가와 뤄홍우의 사이엔 다시 벌집모양의 창살이 있다. 이른바 허니콤의 매트릭스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그가 듣고 싶던 얘기의 눈앞에 드리워져 있다. 그가 흘리는 눈물은 어둠속에 흐릿하다.

 

한 공간 안에 모조리 조립된 월드가 기다리고 있다. 뤄홍우는 어떤 탈것에 앉아 아주 서서히 내려간다. 더욱 깊은 무의식의 빙산 아래로 가라앉듯이.

 

순간과 영원이 뒤섞인 세상. 순간은 달콤하지만 명멸하고 영원은 서글프게 지속된다. 산사태와 화재가 도돌이표처럼 반복되는 건 한 인간의 황폐한 마음의 투사이기도 하다. 폐허 속에서 꿈꾸는 미학이 전해주는 감흥은 씁쓸하게 진하다.

 

이 영화의 영어제목은 <Long day's journey into night, 밤으로의 긴 여로>. 유진 오닐의 그 유명한 희곡 제목이다. 내용은 상관없지만 제목 그대로다. 시간은 꿈결같이 넘실거리고 밤으로 항하는 여로는 장대하다.

 

이 작품은 CGV에서 2019 뉴트로시네마 기획전의 일환으로 최근 개봉되었다. 뉴트로(NEWTRO)는 새로운 것(NEW)과 복고(RETRO)의 합성어다. <지구 최후의 밤>은 위대한 영화선배들의 유산을 주춧돌 삼아 자신만의 새로운 세상을 구축한 젊은 예술가의 도전의 산물이다. 더 없이 이 단어에 잘 어울리는 영화다.

 

감독인 비 간은 (영화를 연출할 당시)만으로 서른도 되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무섭다. 이 작품이 이제 겨우 그의 두 번째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가 앞으로 펼쳐나갈 시네마적 실험이 기대된다.

 

한 사내의 슬픔과 바람은 시공간을 꿈속에서 새롭게 건축한다. 모호하게, 그리고 신비롭게.

 

 

야심찬 밤으로의 여로. 어머니로 향하는 장대한 시간의 오디세이

 

★★★★

텐더로인 텐더로인
33 Lv. 172387/190000P

"All those moments will be lost in time, like tears in r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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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

소감 감사합니다. 영화 관람 후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16:54
19.07.28.
profile image
킹스맨2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여름밤에 보면 좋을 영화입니다.
17:04
19.07.28.
2등

오 관람후 다시 읽을게요 이동진 평론가도 후한점수를 주셨더군요

17:35
19.07.28.
profile image
소넷89
반 개 더 후하게 주셨더군요. 저는 3d 버전으로 본다면 당장 더 올릴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17:43
19.07.28.
profile image 3등

정말 소규모 개봉이던데 한 타임씩이라도 걸어주길 ㅠ 다들 평이 좋네요

17:41
19.07.28.
profile image
Kakuno
영화 보다가 딥슬립에 빠져든다면, 어쩌면 더 이상적으로 영화와 공명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정신적 4D체험. 저는 말똥말똥하게 봤지만.
17:45
19.07.28.
profile image

불호평이 졸리다던데 그렇게 심한가요? 궁금함 반과 함께 이런 게 궁금하네요 ㅎㅎ

19:07
19.07.28.
profile image
토레
전반부 흐름은 비선형적으로 전개되고 후반부 50분은 아예 컷이 없는 롱테이크입니다. 여기서 호불호가 갈릴 겁니다.
19:10
19.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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