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록 (2025) 80년대 문화의 향연. 스포일러 없음.
공작왕이라는 만화에서 엄청 따 온 소설이 퇴마록이다.
공작왕에 나오는 에피소드들 중, 신부와 밀교 승려, 영매사 등이 팀을 이루어 마귀를 퇴치하러 가는
에피소드가 있다. 그런 스토리 있지 않은가? 프로페셔널들을 하나 하나 모아서 팀을 꾸려서
이들이 굉장히 어려운 프로젝트를 성공시키기 위해 힘을 합하는 구성의 스토리 말이다.
공작왕의 이 에피소드는 마귀퇴치의 천재들을 여러 종교에서 추려서 팀을 만드는 구성이었다.
퇴마록은 이 에피소드를 확장시켜서 소설화한 것이다.
아수라의 힘을 가지고 태어난 소녀 아수라, 밀교 역사상 최고의 힘을 가지고 태어난 소년
모두 공작왕의 주요인물들이다.
이들은 퇴마록에서도 주요인물들이 된다.
불교의 종파인 밀교에 대해서는 "거 이름은 들어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수준이었는데,
공작왕에 밀교가 나온 이후로 만화에 단골로 등장하는 소재가 된다.
이 소설 퇴마록도 이들 중 하나다.
이것을 탓할 생각 없다.
퇴마록 자체가 이우혁이 소설을 쓰려고 한 것 아니었다. 일본문화 개방 이후 사람들은 일본만화나 애니메이션에서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이것은 인터넷 활성화와 연결되어 큰 사회적 파급을 낳았다. 인터넷 게시판에 너도 나도 글을 올렸다. 문학적 욕심이라든가 독창성이나 그런것은 주관심사가 아니었다. 즐거워서 쓴 글들이었다.
이 중 인기를 얻은 것들은, 작성자가 계속 글을 올리기도 하였는데,
퇴마록은 이 비공식 연재글이 너무나 인기를 얻은 나머지 책으로까지 발전한 것이었다. 저자 이우혁은
작가와는 거리가 먼 대기업 회사원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퇴마록은 이우혁이 갖고 있던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 무협지, 홍콩무협영화 등에서 두루두루 갖고 와서 짬뽕해서 만든 것이다. 애초에 글의 목적이 이것이었으니까. 80년대 대중문화의 축약 내지 향연같은 것이었다.
퇴마록 애니메이션을 보니까, 참 여기저기 구석구석에서 갖다가 썼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공작왕의 마귀에다가 신부에다가 밀교 천재소년, 공작왕, 중국 무협지 무당파 고수, 한국식 기와집, 엑소시즘 막 섞어놓은 것이 웃음이 난다. 신비소녀 승희는 그냥 공작왕의 아수라를 갖다가 쓴 것 같다. 태권브이가 마징가제트를 갖다 쓴 수준이다.
80년대에는 이것을 읽으면서 낄낄거렸을 것이다. 모두 눈에 익은 것들이었으니까. 가령 애니메이션 퇴마록에 나오는 중국 무협지 무당파 고수를 보면서, 무협지 영웅문이나 무협영화 촉산 등을 떠올렸을 것이다. 그것들에서 카피해 온 것이 분명했으니까. 군사정권에 의해 폐쇄되었던 문화의 경직성이 갑자기 사라지고 외래문화들이 걷잡을 수 없이 쏟아져들어왔을 때, 사람들이 느꼈던 충격과 흥분과 즐거움 - 이것은 분명 당시 시대정신이었고, 퇴마록은 이를 잘 포착하였다.
지금 와서 퇴마록은 어떻게 보일까? 위의 맥락이 다 잊혀지거나 사라졌다.
퇴마록 이후 우리나라 문화도 훨씬 더 복잡해지고 발전되었다.
가령 만화나 애니메이션이나 퇴마록이 유행했을 당시보다 주제나 구성이 훨씬 더 복잡해졌다.
그리고, 문화적 세련성의 정도가 월등히 높아졌다. 80년대에는 우리나라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타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거기에다가 퇴마록에서 이우혁이 접할 수 있었던 정보는 지금보다 훨씬 더 제한되어 있었다. 당시로서는 대중문화의 구석구석을 잘 녹여넣었다고 평가받았지만, 제한된 소스의 정보를 개인이 소화해서 작품에 녹여넣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지금 보면, 이 애니메이션이 어딘가 좁고 빽빽하고 어색해 보일 수도 있다.
이 애니메이션을 지금 보니 더 분명해진다. 퇴마록은 퇴마록의 맥락이나 레퍼런스를 모두 아는 동시대인들이
즐길 수 있는 애니메이션이다. 후대사람들에게 충격과 재미를 줄 수 있는 애니메이션이 아니다.
이 애니메이션의 스타일도 80년대 엽기적이고 잔인하고 환상적인 일본애니메이션 스타일이다. 요수도시, 마계도시 신주쿠, 우로츠키동자, 공작왕 애니메이션 등. 아마 과거 일본애니메이션을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이 애니메이션의 스타일이 뭔가 날 것 그대로고 기분나쁘게 잔인하고 엽기적이어서 특이하다고 느낄 지도 모르겠다. 이것이 80년대 일본 애니메이션 스타일이다. 요수도시나 공작왕 애니메이션을 한번이라도 보면 알 것이다.
나는 이 애니메이션을 보며, 너무나 친숙한 나머지 애니메이션 전체가 클리셰처럼 느껴지는 경험을 하였다.
퇴마록 자체가 애니메이션화하기 좋은 소재였는지 의아해진다.
우리는 퇴마록을 즐겼다.
하지만 그 이후 애니메이션이나 대중문화는 엄청나게 발전했다.
플롯도 복잡해지고, 주제도 사회 발전에 발맞춰 변화하고, 그림체는 훨씬 더 세련되어지고,
인터넷 유튜브 발전에 따라 개인이 접한 정보량도 엄청나게 증가하고 -
퇴마록이 오늘날에도 관객들에게 어필할 것이라 생각했던 그 자신감의 근거가 궁금해진다.
추천인 3
댓글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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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수라가 공작왕에 나오기도 했지만, 칼리, 시바와 더불어 힌두교 신화 속 존재이긴 합니다.
저는 힌두교 신화를 '성전, 공작왕' 등의 일본 만화책으로 먼저 접했네요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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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마록은 원래 소설이 아니었습니다. 원래 연재 게시글로 시작한 작품입니다. PC통신에 있는 글들이 진지한 문학적 의도를 가지고 시작된 글들이 있었을까요? 요즘으로 치면 대중문화의 감상문같은 성격의 글이었습니다. 함께 즐기고 낄낄거리는 글들이었지요.
퇴마록이 판타지픽션들 중 최초였다고 하는 말도 맞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판타지픽션이 없지는 않았는데, 가령 서유기, 홍길동전같은 것도 판타지픽션이죠. 춘향전도 보면, 춘향이 비몽사몽 간에 갖은 귀신들이 다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는 장면이 있습니다. 이것도 공포 판타지라고 볼 수도 있겠죠. 퇴마록은 일본풍 판타지픽션 중 최초였다고 해야겠죠. 일본풍 판타지픽션의 최초다 하는 정도는 오늘날 별로 어필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애니메이션 퇴마록의 셀링포인트가 이것이라면 사실상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어렵겠습니다.
마블의 히어로들은 많은 작가들이 달라붙어서 굉장히 많은 발전과 변형이 이루어져, 수퍼히어로 한명이 무슨 쟝르 하나처럼 되었습니다. 퇴마록의 주인공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우혁의 퇴마록에 등장한 이후 잊혀졌습니다. 변형 발전같은 것이 없었습니다. 이들을 수평비교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까요?
퇴마록을 칭찬하는 글에서조차도, 이 애니메이션이, 이우혁의 원작을 현대에 맞게 재창조했다는 말은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원작에 충실해서 80년대를 애니메이션에 갖고왔다 하는 말이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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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리고 장화홍련전도 아주 유명했습니다. 고전으로 유명했다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서 인기가 있었습니다. 영화 장화홍련도 "잊혀졌던 고전을 재창조한" 것이 아니라, 당시 유명했던 이야기를 재해석한 것이었습니다.
퇴마록은 일본문화 개방에 따라 들어온 만화나 애니메이션을 모방해 쓴 것이죠. 최초라는 말은 어불성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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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는건 좋은데 글이 너무 좋게 말해서 자만(사실을 교만)에 빠져있네요.
그럼 히어로물은 다 마블을 베낀거고 첩보물은 007을 베낀건가요..?
과거에 나온 장르물을 후대에 나오면 베낀 주제에 성공할꺼라고 생각한 것인가...가 되는건가요...??
글을 다 안 읽으셨군요. 베껴도 뭔가 자기가 창조하는 것을 넣어서 재창조하거나 시대에 맞게 변형하면 그 나름대로 가치가 있는 것이겠죠. 퇴마록은 그 목적이 재창조나 재해석 변형같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재창조해서 작품 하나 만들어보자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자연발생적으로 생긴 글에서 시작했습니다. 예술적 욕심을 갖고 탄생한 글도 아닙니다. 그것은 당시 시대정신을 포착한다는 가치가 있는 것이죠. "왜 이런 것이 성공했죠?"하는 말과는 포인트가 완전히 다른 말입니다만......
퇴마록이 상업적 성공한 것은 팩트이니 뭐 왈가왈부할 것도 없고, 관심도 없습니다. 내가 "왜 그것이 성공했습니까?"하고 분노할 필요도 없구요. "성공해서는 안되는 것이 성공했다"같은 식의 말도 한 적 없습니다.
문화도 수십년 동안 엄청 발전하고 정보량도 많아지고 예술작품들의 세련성도 엄청 높아져서, 오늘날에도 퇴마록이 무언가 건질 것이 있는가 하는 데에는 회의감이 듭니다. 거기 있는 내용들은 이미 더 높고 풍부한 수준으로 요즘 독자들이 다 알고 있지 않을까 하는 개인적인 생각이 있습니다.
뭘 분개하시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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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보이는 마귀, 퇴마, 엑소시즘, 전설 등의 백과사전같은 작품입니다. 여기저기서 갖고 와서 하나의 완벽한 작품으로 녹여냈습니다. 세계 각국의 종교, 역사적 사실, 역사적 인물들, 당시 사회실상 등 다 인용하였습니다.
그리고, 기존 만화들보다 훨씬 더 끔찍하게 잔인하게 묘사하였습니다.
오늘날 나오는 퇴마사의 전형은 공작왕에서 시작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설공찬전에 보니까 조선시대 소설에서도 공작왕같은 퇴마사가 나오더군요. 저는 설공찬전을 애니메이션화한 것이 보고 싶더군요. 중종시대 쓰여진 소설에서 반정 일으킨 자들은 지옥에 가야 한다 같은 문장이 나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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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수도시, 마계도시는 미국 호러물에 영향받은거,, 더씽이라던가 크로넨버그 영화나 스튜어트고든의 에이리언이라던가 등등, 일본 그런류 애니에 틈만나오면 머리터지는거 나오는것도 스캐너스 영향이죠.
공작왕이 그 시절에 대단했죠. 만화 보면서 어떻게 이런 현실의 역사를 빌려와서 기막힌 상상력의 스토리로 만들었을까 감탄한 적 여러번이었습니다. 요즘은 잊힌 것 같아서 아쉽기도 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