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스맨: 퍼스트 에이전트] 간략후기
'킹스맨' 시리즈의 세번째 편이자 프리퀄 격인 영화 <킹스맨: 퍼스트 에이전트>를 보았습니다.
팬데믹으로 인해 2년 가까이 개봉이 연기된 끝에 선보이게 된 영화는 시리즈의 기존 영화들과 결을 달리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킹스맨' 시리즈가 지닌 가치관의 근간을 또렷하게 되짚는 영화로서 의미 있었습니다.
1편의 매력을 극대화한 나머지 다소 넘치는 면이 없지 않았던 2편을 지나 돌아온 이번 편은,
도발은 일정 부분 줄이는 한편 품격은 지킴으로써 '킹스맨' 시리즈의 주제의식과 생명력을 연장시킵니다.
세계 곳곳에서 정복 전쟁이 한창이던 20세기 초, 영국의 귀족 가문 출신인 '올랜도 옥스포드' 공작(랄프 파인즈)은
아내를 총탄에 잃은 후 하나뿐인 아들 '콘래드'(해리스 딕킨슨)만은 전쟁의 위협으로부터 지키리라 약속합니다.
그러나 콘래드는 성장해 가면서 나라를 위해 이바지하고픈 마음을 적극적으로 피력하기 시작하고,
성년을 앞둔 시점에 전쟁이 발발하자 기꺼이 참전하겠다고 하면서 아버지의 애간장을 끓입니다.
그러나 조금만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누구라도 피해야 할 전쟁에 국가 지도자들이 무모하게 뛰어드는
현재 상황이 옥스포드는 여간 탐탁치 않고, 그는 그동안 숨겨왔던 비밀 모임으로 콘래드를 초대합니다.
그곳이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킹스맨'의 모태로서, 아들이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또 다른 방식이라 믿었던 것이죠.
옥스포드와 폴리(젬마 아터튼), 숄라(디몬 하운수)로 구성된 이 모임은 비밀리에 구축된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세계를 전쟁의 소용돌이로 몰아넣고 있는 악의 세력을 추적 중인데, 그 중심에 러시아 왕조를 쥐락펴락하여
영국을 함락시키려는 괴승려 '라스푸틴'(리스 이판)이 있음을 알아내고 그를 제거하는 미션에 돌입합니다.
앞선 두 편의 '킹스맨' 시리즈가 (현실이 겹쳐보이긴 하지만 어쨌든) 가상의 인물들과 사건을 배경으로 한 데 반해
이번 <킹스맨: 퍼스트 에이전트>는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실제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합니다.
영화는 역사적 배경에서 대체역사물처럼 성역없이 뛰놀기보다, 일부 가능성의 공백을 상상력으로 채우는 방식을 택합니다.
때문에 1, 2편이 보여준 만큼의 텐션을 기대한다면 생각보다 진중한 이번 편이 실망스러울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2편에서 다소 과했던 도발이 아쉬웠다면 진중함에 무게를 실어 품격을 되찾은 이번 편이 반가울 것입니다.
(물론 역시나 스타일리쉬한 액션 연출, 라스푸틴을 비롯한 실제 역사 속 인물을 빌런으로 내세운 데다
그들에 대한 발칙하고 재치 있는 묘사는 시리즈의 재기가 여전히 살아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사실 실제 역사적 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톤 앤 매너'의 변화가 어느 정도 있었을 뿐 달라졌다고 보기는 힘든 것이,
이번 편에서 '킹스맨' 시리즈가 적극적으로 추구해 온 가치를 다시금 재확인시킨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기 때문입니다.
'킹스맨' 시리즈를 돋보이게 한 핵심 요소 중 하나는 수트를 한껏 빼입은 신사들의 '개망나니 액션'이었습니다.
피와 살이 잔뜩 튀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그 과감한 액션은 스파이물의 클리셰를 비트는 정도로만 받아들였었는데,
<킹스맨: 퍼스트 에이전트>는 킹스맨이라는 조직의 기원을 다루는 이번 이야기에서 그 요소의 명분을 확실히 마련합니다.
영국과 독일, 러시아 사이에서 형성되는 군사적, 정치적 긴장관계에 귀족이자 왕의 측근인 옥스포드 공작이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고 한 발짝 물러나 있는 것은 그가 소심해서가 아니라 이 정복욕의 허상을 이미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다스리고 사람들을 이끄는 특권을 동반한 현재의 이 권위는 당당한 노력이 아닌 타인들의 피로 얻어진 것이기에,
자신이 부르짖는 평화와 자유라는 가치가 진정 세계를 위한 것인지 되물어야 한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 어떤 정치적, 군사적 영향력으로부터도 자유로운 '킹스맨'이라는 조직의 탄생은 결국 알량한 영웅심리가 아니라,
정복욕으로 쌓아올린 특권에 대한 성찰과 책임감이 탄생시킨 것임을 옥스포드 공작의 행보를 통해 짐작하게 됩니다.
품격과 자유는 지키되, 가식은 떨지 않는 방식으로 그 성찰과 책임감이 발현되는 과정은,
역시 매튜 본 감독다운 과감하고 파격적인 전개를 거치면서 '킹스맨'의 근간에 다다르게 됩니다.
무게감 있는 중견 영국 배우에게 파워풀한 액션 연기를 맡기는 시리즈의 역량은 이번 편에서도 빛을 발합니다.
전편의 콜린 퍼스에 이어 이번 편에서는 옥스포드 공작을 연기한 랄프 파인즈가 그 바통을 이어받았는데,
'해리 포터' 시리즈 속 볼드모트가 그의 필모그래피 사상 가장 역동적인 액션 연기일거라 생각했건만 그게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킹스맨' 시리즈 속 첨단 장비들의 최초 버전 같은 무기들을 활용해 절도와 밀도를 갖춘 액션을 펼침은 물론
폭넓은 감정 연기까지 선보이면서 자신만의 색깔로 시리즈의 품격을 높여주는 역할을 톡톡히 했습니다.
옥스포드 공작의 아들인 콘래드를 연기한 신예 배우 해리스 딕킨슨 역시 빼어난 비주얼과 준수한 연기로 눈도장을 확실히 찍었고,
비밀 모임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폴리 역의 젬마 아터튼, 숄라 역의 디몬 하운수 또한 격조 있는 연기를 보여줍니다.
신스틸러를 꼽자면 라스푸틴을 연기한 리스 이판인데, 지나가면서 봐도 진정 제정신이 아니구나 싶은 인물을
몹시 소름끼치면서도 영화적으로는 대단히 매력적으로 연기하며 장면을 카리스마 있게 장악합니다.
이런 배우들의 활약이 더해져 만들어진 옥스포드와 콘래드, 라스푸틴의 결투는 영화 속 최고 명장면이기도 합니다.
'킹스맨'의 근거지인 새빌 로의 양복점은 물론 시리즈의 트레이드마크와도 같은 대사인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
'킹스맨' 조직의 암구호였던 '장식 없는 옥스포드'를 비튼 대사 등 전편의 여러 장면들을 떠올리게 하는 요소들이
스치고 지나간 끝에 인물들은 '킹스맨'의 창립 이념과도 같은 '우리 시대의 평화'를 외칩니다.
아마도 그들이 외치는 '우리 시대의 평화'란 국가에 대한 개인의 맹목적인 헌신이 아니라,
국가의 이름으로 자행된 숱한 폭력의 희생양 앞에 부끄러워 할 줄 아는 신념을 바탕으로 하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이렇듯 <킹스맨: 퍼스트 에이전트>는 '킹스맨'의 초심을 되새김으로써 미래를 모색하는 지점에 있는 영화입니다.
+ 2년 반쯤 전에 찾았던, 런던 도심에 위치한 바로 그 '킹스맨' 양복점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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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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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져요~헌츠맨 가보셨구나!!
감독이 정말 좋아하는 곳이라고 하더라구요.
아마도 사교계 인사인 어머니가 여기가서 첫 양복을 만들어 준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공...
감독이 실제로 조지왕6세쪽으로 이어지는 귀족인 줄은 처음 알았어요.
그래서 이번편이 더 진중해진건가 싶기도 하고 그렇더라구요.
오.. 직접 가보셨어요? 저기?
오오... 언젠가 또 런던가게되면 저도 함 찾아가 보고프네요!
킹스맨 역사자료 정보글 소개드려봅니다. ^^
골든 서클에서 느꼈던 말 못할 아쉬움들을
조금은 잘 해소에 가면서, 에그시의 서사의
마지막을 기다리는 지금, 다시 한번 기대를 품기에
좋은 작품이었던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