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얼빈> 릴리 프랭키→<곡성> 쿠니무라 준, 한국 영화 속 日 배우들 [N초점]
현재 상영 중인 영화 '하얼빈'(감독 우민호)은 배우들이 잘 보이는 영화다. 주인공 안중근을 연기한 현빈부터 시작해 대한의군에 속한 독립군을 연기한 조우진과 박정민, 전여빈, 유재명, 이동욱 등은 각각 다른 개성으로 영화를 보는 재미를 더한다. 이처럼 '하얼빈'을 꽉 채운 특별한 캐스팅 라인업 중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의외의 이름을 하나 꼽아보자면, 일본의 유명 배우 릴리 프랭키다.
릴리 프랭키는 일본의 연기파 배우로 국내 관객들에게는 세계적인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여러 작품에 출연해 익숙하다. 특히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와 '어느 가족'(2017)에서의 역할들이 가장 유명한데, 두 작품에서 그는 모두 전형성을 벗어난 아버지 캐릭터를 연기했다. 그가 보여주는 특유의 자연스러운 연기는 잔잔하면서도 섬세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작품과 잘 어울렸다.
그랬던 릴리 프랭키가 우리나라 영화 '하얼빈'에서는 다소 전형적일 수 있는 캐릭터를 맡아 영화 개봉 전부터 화제가 됐다. '하얼빈'은 1909년, 하나의 목적을 위해 하얼빈으로 향하는 이들과 이를 쫓는 자들 사이의 숨 막히는 추적과 의심을 그린 작품이다. 이토 히로부미는 역사 속 인물이자, 영화에서는 실질적인 악당 모리 다쓰오(박훈 분)의 위에 있는 근원적인 안타고니스트다. 근현대사를 배경으로 한 영화들에서 일본인 캐릭터, 특히 군인이나 정치인 역할은 필연적으로 안타고니스트일 수밖에 없고, 그로 인해 역할들의 성격 또한 전형적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릴리 프랭키는 남다른 분위기로 비슷한 류의 작품에서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이토 히로부미 캐릭터를 완성했다. 침착하면서도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아 차분하고 귀족적인, 그러면서도 야욕을 감추지 않는 '늙은 여우' 이토 히로부미는 릴리 프랭키라는 명배우를 만나 재탄생했다.
한국 영화에서 릴리 프랭키만큼이나 인상적인 활약을 보여준 일본 배우가 있다면, 단연 영화 '곡성'(2016)의 쿠니무라 준이 첫손에 꼽힐 것이다. 쿠니무라 준은 영화에서 일광(황정민 분) 무명(천우희 분) 등과 함께 주인공 종구(곽도원 분)를 현혹하는 기괴한 외지인을 연기했다. 영화 속 외지인이 일본인이라는 설정은 낯섦에서 오는 공포를 극대화했고, 쿠니무라 준은 언어를 뛰어넘어 온몸으로 이를 표현하며 영화의 완성도에 크게 일조했다.
그 때문일까. 쿠니무라 준은 제37회 청룡영화상 시상식에서 남우조연상과 인기스타상 등을 받으며 국내에서도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또한 영화 '범죄도시3'에 출연하는가 하면 재일교포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 애플TV+(플러스) '파칭코2'에도 출연하는 등 K콘텐츠의 자장 안에서 여전히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영화 '박열'(2017)이나 '봉오동 전투'(2019) 같은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에서는 일본인 배우가 대거 출연하기도 했다. '박열'에는 일본 배우 야마노우치 타스쿠, 요코우치 히로키 등이 비중 있는 조연으로 눈길을 끌었으며, 단역으로도 여러 일본인 배우가 출연했다. 특히 야마노우치 타스쿠는 일본어 강사 출신 일본인으로 우리나라에서는 '박열' 외에도 '덕혜옹주'와 '대장 김창수' '허스토리' '마약왕' '나랏말싸미' 등 다수의 영화에서 일본인 역 조단역을 도맡았다.
'박열'의 일본인 배우들이 한국에서 주로 활동한 이들이었다면 '봉오동 전투'에는 일본에서도 인지도가 있는 두 명의 유명 배우가 모국에서 비난받을 위험을 무릅쓰고 일본군으로 출연해 화제가 됐다. 배우 키타무라 카즈키와 이케우치 히로유키가 그들이다. 키타무라 카즈키는 '용의자X의 헌신' '좋은 친구들' '기생수' 같은 영화에서 활약한 유명 배우이며, 이케우치 히로유키는 일본 드라마 'GTO'와 영화 '스페이스 배틀십 야마토' 등의 작품에 출연한 혼혈 배우다.
그 밖에도 '대호'(2015)에 출연한 오스기 렌은 일본의 유명 연기파 배우이며, '밀정'(2016)의 츠루미 신고 역시 오랜 기간 탄탄한 필모그래피를 쌓아온 중견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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