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이와 유리가면
정년이와 유리가면에 대해 말하자면,
유리가면은, 천재 기타지마 마야와 모든것을 다 갖춘 미녀배우 아유미가 연극계 최고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이야기입니다. 유리가면의 캐릭터들은 엄청난 몰입도를 자랑합니다.
1) 유리가면의 주인공 기타지야 마야는
중국집 더부살이 종업원의 딸로,
세상에 가진 것 없고 친척도 없고 못생기고 공부 못하고
하지만 유일하게 잘 하는 것이 연극.
(말하자면, 정년이가 친척 없고 배운 것 없고 가진 것 없고 못 생기고 그래서 무시 받으며 사는데,
유일하게 잘 하는 것이 판소리임을 깨닫고 목숨을 걸고 처절하게 매달리는 상황입니다.
이것마저 없으면 자기는 그냥 깨진 병조각처럼 사회를 굴러다닐 거거든요.
무서운 집중력이 여기에서 나옵니다. 독자들이 응원 안할래야 안 할 수 없게 만듭니다.)
기타지마 마야가 천재는 맞는데, 그 바탕에는 이런 처절함을 베이스로 깔고 갑니다.
자기 상처를 후벼파서 연극을 하는 사람입니다.
아무리 엄청난 노력가 아유미라도 이렇게까지는 하지 못합니다.
2) 그녀와 대결하는 또다른 주인공이 아유미입니다.
모든것을 다 갖춘 아유미는,
미녀에다가, 아버지는 유명감독이고 어머니는 유명여배우.
어릴 적부터 연극을 공부한다고 런던도 가고,
아버지 어머니를 따라 공연장과 영화판도 다니고.
사람들의 부러움과 존경을 한몸에 받는 배우입니다.
연기는 완벽 그 자체. 사람들의 감동과 박수를 받는 것은 당연하게 여겨지는 배우입니다.
하지만, 아이적에 이미 트라우마가 될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쁘고 연기 천재라는 칭찬만 듣고 살아서 자기도 그런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어느날 오디션을 보러 갔는데,
자기는 상대도 안 될 이쁜 애를 만납니다. 자기 스스로도 저애한테는 도저히 안 돼 하고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요.
그런데, 사람들이 그 아이 주변에만 모이다가, 아유미가 누구 딸인가 듣는 순간, 아유미 곁으로 모여들어
칭찬을 늘어놓습니다. 아유미는 그순간 자신을 잃습니다. 자기 확신이 무너져 버립니다.
지금까지 들은 칭찬은, 부모님에 대한 찬양이지, 자기에게 주어지는 칭찬이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자라면서 한번 더 얻어맞습니다.
자기 재능이 사실은 평범합니다. 남들은 완벽한 연기천재라고 하지만, 자기는 잘 알거든요. 그냥 평범한 사람입니다.
노력을 해야 경쟁자들만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엄청나게 노력을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기는 아무것도 아니거든요.
노력이 성공을 가져와서 아유미는 완벽한 연기천재라고 존경을 받을 정도로 성공합니다.
역시 노력하면 안 될 것 없어 하고 뿌듯해하는 아유미 앞에 기타지마 마야가 나타납니다.
듣도 보도 못하던 천재가 나타나니까, 아유미는 자기 노력이 사실은
평범한 사람들을 상대로만 위력을 발휘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확신, 자신감 모두 무너져 버립니다.
이게 결정타입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철옹성같은 간격이 기타지마 마야와 아유미 사이에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애가 있을 수 있지?"하고 경악합니다.
아유미는 좌절하여 포기하려다가 깨닫습니다. 포기하면 그냥 성공확률 제로거든요? 포기하지 않고
하던 대로 노력하면 성공확률이 낮기는 하지만, 제로는 아닙니다. 천재라고 해서 모든것을 다 잘 하겠어요?
조그만한 구멍 틈이 있을 지 모릅니다.
또 하나, 아유미에게 파탄수준의 충격을 안기는 것이, 기타지마 마야가 부러운 나머지, 아주 잠시 동안, 기타지마 마야를 해하려고 마음먹은 것입니다. 이것은 뭐, 연기재능이 못하다 수준이 아니라, 그냥 비윤리적이고 사악한 찌질이 수준 - 아유미는 큰 충격을 받습니다. 여왕같은 화려하고 당당한 여배우에서, 이런 찌질이로 단숨에 몰락 - 자존심 강한 아유미는 죽고 싶을 정도로 비참합니다.
그래서, 기타지마 마야를 노력으로 이기고 싶어합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을 되찾는 길입니다.
부자에다가 모든것을 갖춘 아유미가 사실은 언더독이자 근성가이입니다.
그래서, 독자들은 아유미도 응원합니다. 그녀는 우리같은 보통사람이니까요.
보통사람이 노력하고 또 노력해서, 천재를 이기고 보통사람의 가치를 증명하겠다는데 응원을 안 하게 될까요?
독자들이 공감할 근거를 아주 확고하게 만들어놓고 이야기를 시작하게 되기 때문에, 독자들이 엄청 몰입하게 됩니다. 이게 중요하죠. 독자들이 기타지마 마야에게도 아유미에게도 엄청 공감하면서 이야기를 읽습니다.
기타지마 마야의 처절함은 정말 독자들이 만화에서 눈을 뗄 수 없도록 만듭니다.
3) 기타지마 마야를 키다리아저씨처럼 뒤에서 후원하는 남자가 마스미입니다.
냉혹한 사업기계입니다. 사람들은 그를 무슨 사이코패스식으로 생각합니다. 자기도 자기가 사이코패스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기타지마 마야의 공연을 보고 깨닫습니다. 자기는 그냥,
아주 불행한 환경에서 고독하게 살아갈 것을 강요당했던 사람이었다는 것을요.
그냥 자기는 고독했던 것입니다.
자기를 활활 불태우는 기타지마 마야의 공연을 보면서 깨닫습니다. 내게는 나도 모르는 갈망이 있었구나.
저 열정이 내가 갈망했던 것이구나. 기타지마 마야가 굉장히 부럽고 눈부셔 보입니다.
그 뒤로 마스미는, 기타지마 마야 앞에서는 사업가의 가면을 쓰면서,
이 핑계 저 핑계 대고 기타지마 마야의 공연을 따라다닙니다. 삶의 보람이 기타지마 마야를
도와서 그녀가 꿈을 펼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기타지마 마야를 사랑하게 됩니다.
이 만화에서 애절한 러브스토리 담당입니다. 마스미의 사연도 눈물 없이는 볼 수 없어서, 어릴 적 어머니가
자기 눈앞에서 불에 타 죽는 것을 보아야만 했던 사람입니다.
마스미의 캐릭터 구축에다만 책 한 권 가까이 쏟아붓는데, 그럴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었습니다.
4) 기타지마 마야를 연극의 세계로 인도하는 대단한 카리스마의 연기선생 쯔기가게 찌쿠샤는 한 세대 전
기타지마 마야입니다. 이 사람의 인생도 엄청 처절하고 파란만장합니다. 어떻게 보면, 기타지마 마야보다도 더
처절합니다.
정년이 캐릭터들이 위 캐릭터들과 어떻게 연관되는지 살펴보면 재미있습니다.
유리가면하면 눈동자 사라진 눈 생각나요.^^
정년이가 유리가면 영향을 꽤 받은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