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히 부끄러운 인생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후기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소설의 문장입니다
동시에 이 작품을 본 뒤 생각나는 문장이었습니다
처음 이 작품이 극장에 개봉되었을때 저는 주변 지인들에게 말도 안 하고 무작정 극장에 찾아가 관람했습니다
미안해 미야자키 하야오 팬이라서 첫사랑이 하울이었던 친구야
그런데 너 남친도 있는 애가 나랑 단 둘이 보러가는 것도 뭔가 그림이 이상하잖니
이 작품은 지브리 작품 중에서 특히나 난해하다는 평가를 받는 작품입니다
난해하다?
글쎄요... 그건 그들이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난해한 건 다 알려줬는데도 이해하기 힘든 것들입니다
이 작품은 엄밀히 말하면 불친절한 작품입니다
이세계에 들어갔지만 누구하나 설명해주는 이가 없고 자기들끼리만 고개 끄덕이고 있으니 이건 불친절한 작품이 맞습니다
딱 하나 난해한 부분이 있다면 마히토의 아버지가 와이프의 여동생이랑 재혼하는 전개뿐이겠죠
이런 세상에 정말 대쪽같은 취향을 가진 상남자
(할아방탱이, 코가 큰점, 일본... 케인인님이군요...)
그러나 어떤면으로 보자면 굉장히 친절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일단 작화가 굉장히 매끄러워서 보기 편하다는 것도 있지만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 작품을 본인의 자전적인 작품이라고 공표했습니다
그래서인지 감독 미야자키가 아닌 "인간 미야자키 하야오"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아는 사람에겐 이 작품은 달리 보이죠
이 작품의 배경은 2차 대전이고 주인공은 어린소년 마히토입니다
그리고 미야자키 하야오 역시 2차대전 당시 어린 소년이었던 남자입니다
마히토의 아버지는 군수공장을 운영하는 재력가이며 이를 통해 전쟁중에도 남부럽지 않은 재산을 보유한 남자입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님의 아버지 역시 2차대전 당시 군수업체를 통해 전쟁중에도 부유할 수 있었던 사람입니다
이를 뒷받침하여 이 작품은 미야자키 하야오라는 사람을 대입해서 봐야한다는 것이죠
그런데 희한하게 이 작품은 마히토를 그리 선한 존재로 그리지 않습니다
목적을 가지고 자해를 하거나, 새엄마를 지나칠 정도로 배척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일들을 그저 물 흘러가듯, 그것이 옳아서가 아닌 그저 눈앞에 일어났기에 행동하는 기색이 강합니다
그리고 결말에 와서 마히토는 그간의 행동 속에 있었던 악의에 대해서 고백하기도 합니다
이는 '반성'이 아닌 '성찰'에 가깝습니다
분명 마히토는 떳떳하지 못한 행동을 했습니다
눈앞에 뭔 일이 벌어지는지 제대로 이해하기 힘든 세계에 왔으면서 "여기가 어디요?" 같은 간단한 질문마저 안 하는 악행을 저지르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관객은 마히토가 악인이라고 평가하지 않습니다
그저 마히토가 어떤 인간인지 알아갈 뿐이죠
동시에 마히토의 아버지 또한 2차대전으로 수많은 생명들을 희생시킬 전쟁무기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마히토의 아버지가 가족을 먹여살리고 싶다는 가족을 향한 사랑에 비롯된 행동입니다
관객은 그가 가족을 싫어하는 사람이라거나 악인이라 평가하지 않습니다
그냥 그런 인간상일뿐입니다
이 작품은 철저하게 주인공의 시점으로 진행되지만 '체험'이 아닌 '관람'을 주 목표로 합니다
간단하게 말해서 미야자키 하야오 본인이 나 이런 사람이라고 보여주는 겁니다
그것도 어마어마한 예산을 가지고요
그냥 스탠딩 코미디언 옆에 서서 연설하기만 했어도 되는 일이었지만 미야자키 하야오가 가장 잘하는 건 바로 애니메이션이었습니다
그는 그가 가장 잘하는 방식으로 자기만의 스타일대로 자기의 이야기를 선사했습니다
영화의 결말은 싱겁게도 느껴집니다
그저 그의 이야기를 바라볼뿐이라면 그 다음은 뭐지?
그 다음은 우리들의 차례겠죠
우리가 스스로의 인생을 다시 복기하는 것이 어쩌면 이 작품의 완성이 아닐까 싶습니다
세계적 거장이라 칭송받는 미야자키 하야오에게도 부끄러운 생애가 존재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정답은 없습니다
오늘만 대충 수습하며 살아도 됩니다
다만 그랬다가 보라색 우산을 쓴 누군가에게 납치당할 수 있으니 TV와 친해질 준비하세요
하여튼 알아서 잘 사시기 바랍니다
제 점수는 10점 만점에 8점입니다
작성자 한줄평
"인생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적당히 부끄럽게."
사춘기 소년이 자신도 설명하기 힘든 복잡한 감정을 그대로 투영한 것 같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