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 혹성탈출4: 계승인가 편승인가
혹성탈출4가 개봉했다는 소식에 서둘러 영화관을 찾았습니다. 아쉬운 점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만족스러웠습니다. 부제인 '새로운 시대'에 걸맞게 새 시리즈의 마중물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고, 무엇보다 감독이 '시저 3부작'의 메시지와 분위기를 깊이 이해하고 만든 것 같아 개인적으로 높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몇 가지 인상적인 점을 정리했습니다.
1. 시저의 계승은 누가?
이번 작품의 가장 큰 궁금증은 단연 누가 주인공인가 하는 점입니다. 이 질문 뒤에는 "영화 역사상 가장 완벽한 리더 캐릭터 중 하나인 시저를 누가 대체할 것인가" 라는 팬들의 까탈스런 시선이 존재합니다. 저도 그랬고요. 이 부분에서 감독의 선택이 인상적입니다.
주인공은 노아라는 젊은 유인원입니다. 독수리 부족 촌장의 아들로, 신체 능력과 용기, 정의감을 두루 갖췄지만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아직 충분히 성장하지 못한 캐릭터입니다. 그가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리더로 거듭나는 것이 이번 영화의 스토리입니다. 미성숙한 존재가 리더가 되는 이야기는 전형적인 영웅서사의 시작과 같습니다.
눈 여겨 볼 부분은 노아와 시저의 관계입니다. 노아는 시저를 모릅니다. 독수리 부족은 외부 교류가 단절된 깊은 숲속에서 수십년간 살아왔습니다. 노아는 물론이고 마을의 나이 많은 장로들조차 시저의 존재를 모르죠. 이건 비단 독수리 부족만의 특수한 상황이 아닙니다. 시저의 전설은 잘게 쪼개지고 왜곡돼 단편적으로만 후대에 전달되고 있다는 게 이번 작품의 주요한 설정입니다. 노아는 마을을 나와 다양한 유인원을 만나며 비로소 시저의 이름을 듣게 됩니다.
이처럼 시저의 후계자를 시저와 무관한 존재로 설정한 것은 시저의 장엄한 그늘에서 벗어나기 위한 의도적인 선택으로 해석됩니다. 다시 말해 노아가 '제2의 시저'가 아닌 '제1의 노아'가 되기를 바란달까요. 만약 이번 작품의 주인공이 시저의 직계 후손이었다면 어땠을까요. 젖먹이 시절부터 부모에게 '시저의 전설'을 듣고 자란 아이. 시저의 정신적 유산을 완벽히 쫓는 리더가 되었을 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잘못된 건 아니겠지만요. 7년 만에 나오는 후속작임에도 무언가 새로운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어려웠을 겁니다. 시저는 그만큼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캐릭터입니다.
시저와 무관하게 성장한 노아는 이런 제한에서 자유롭습니다. 영화 말미에 이르러 노아는 어엿한 부족의 리더로 성장합니다. 그를 리더로 만든 용기, 정의감, 사려깊음 등의 성질은 시저로부터 비롯되지 않았습니다. 부모와 친구의 가르침, 다양한 경험이 노아의 정신을 형성했습니다. 따라서 노아는 언젠가 시저의 정신적 유산을 계승하는 존재가 되겠지만, 여기에 자신만의 가치관을 반영할 여지가 있습니다. 그것이 아마도 '새로운 시대'가 필요로 하는 리더십이겠죠. 감독은 노아를 통해 시저 3부작과 다른 영웅서사를 풀어나갈 수 있게 됐습니다.
2. 시저와 노아의 대비
시저와 노아는 공통된 운명을 지녔습니다. 유인원 무리를 하나로 통합하고 이끌어 나갈 영웅이라 점입니다. 그럼에도 이 둘은 몇 가지 결정적인 부분에서 대비를 이룹니다. 이 차이가 노아를 고유한 캐릭터로 만들고, 그의 영웅서사에 개성을 부여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① 고독한 리더 vs 동료가 있는 리더
시저는 고독했습니다. 여기서 고독하다는 건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정신적으로 의지할 수 있는 존재가 없다는 걸 의미합니다. 물론 시저에게는 가족과 동료가 있었죠. 하지만 가족은 보호해야 할 대상이었으며, 동료는 친구라기 보단 왕에게 충성을 바치는 신하에 가까웠습니다. 그나마 모리스만이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대상이었죠. 시저는 탄생부터 죽음까지 모든 것을 홀로 짊어지고 해결해 나가야 하는 운명이었습니다. 시저는 실제로 허점이 거의 없는 완벽한 캐릭터로 그려집니다.
노아는 다릅니다. 아이들이 자유롭게 뛰노는 결속력 강한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엄한 아버지와 자상한 어머니가 있고, 어릴 때부터 모든 것을 함께 해온 단짝 친구들도 있습니다. 또 스승 비슷한 역할을 하는 존재도 등장합니다. 이번 영화에서 노아가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는 동료가 함께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같은 동료의 존재는 '노아 시리즈'의 이야기 방향성이 '시저 3부작'과 사뭇 다를 수 있음을 암시한다고 생각합니다. 노아는 시저와 달리 더 많이 보고 듣고 생각할 것이며 이에 따라 신념은 더욱 많이 흔들릴 것입니다.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는 동료의 도움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테고요. 소위 입체적인 영웅 캐릭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② 인간에 대한 인식
또 다른 차이점은 인간에 대한 인식입니다. 시저에게 인간은 애증의 존재입니다. 인간 손에서 나고 자란 시저는 인간의 상냥함과 포악함을 모두 경험했습니다. 유인원의 안녕을 위해서는 인간과의 전쟁도 불사했지만, 마음 한 켠에선 진심으로 평화의 길을 고민했습니다. 그가 인간을 바라보는 시선 속에는 언제나 조금의 동정과 그리움이 존재했습니다. 어느 유인원보다 인간을 더 깊이 이해한 존재가 시저였습니다. 때문에 시저가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항상 '최선의 것' '고통의 최소화'에 가까웠습니다. 타협이라는 선택지를 배제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반대로 노아에게 인간은 정체 모를 동물에 불과합니다. 지능이 떨어지고 폭력적이며 툭하면 식량을 훔쳐가는 약탈자입니다. 말하는 인간인 메이를 만나면서 과거 인간이 유인원을 포함해 지구를 지배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만, 그건 노아에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직 가족과 친구, 부족의 행복만이 소중할 뿐이죠. 노아는 영화 마지막에 메이의 처지에 공감을 했지만요. 이는 인류의 처지를 이해했다기 보다는 잠깐이나마 함께 시간을 보낸 메이에게 동정을 느낀 것이라고 보는 게 타당할 겁니다. 다시 말해 노아는 시저와 달리 인간과의 평화를 갈구할 내적인 동기가 부족합니다. 인간과의 갈등에서 최우선시 되는 것은 아마도 유인원의 행복일 겁니다. 타협이라는 선택지는 후순위일 가능성이 큽니다.
이처럼 전작에 비해 늘어난 동료의 비중과 주인공의 미성숙함, 인간에 대한 배타적인 인식 같은 특성은 노아를 보다 입체적인 영웅 캐릭터로 만들 것입니다. 이게 득이 될지 독이 될지는 지켜봐야 알겠지만요. 그래도 그가 풀어 나갈 이야기가 기대됩니다.
3. 유인원과 인간의 대비
이번 작품은 시저가 죽은 뒤 수 세대가 지난 시점을 다룹니다. 인류의 퇴화는 상당히 진행됐고 도시는 자연에 침식돼 울창한 정글의 일부가 됐습니다. 반면 유인원의 지능은 시저 때보다 더 발달해 모든 개체가 언어를 자유롭게 구사합니다. 기술의 발달 수준은 인류의 고대 시대와 비슷해 보입니다. 나무를 얼기설기 엮어 높은 목조 건물을 만들고 도르레나 지렛대를 활용한 도구를 제작할 정도는 되지만 그 이상의 기술력을 갖추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이번 작품의 가장 흥미로운 부분 중 하나는 인류 진화사의 중요한 터닝 포인트들을 동시에 다루고 있다는 점입니다. '우가우가' 거리며 사족 보행과 이족 보행을 병행하던 원시인부터 언어 능력을 갖추고 간단한 도구를 활용하여 문명의 꽃을 피우던 시절, 나아가 전파를 통해 우주와 교신하는 현대에 이르기까지 모든 단계의 '인간'이 영화에 한꺼번에 등장합니다. 이들의 묘한 대비가 인상적입니다.
인간과 유인원의 운명이 대립을 예고한다는 점도 다음 시리즈를 기대하게 만듭니다. 이번 작품의 가장 큰 반전이기도 한데, 사실 완전히 퇴화한 줄로만 알았던 인간은 소수가 살아 남은 상태입니다. 퇴화를 면한 이들은 바이러스를 피해 지하 벙커를 만들어 다시 한번 인류의 번영을 꿈꾸며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영화 말미에 이들이 위성 통신에 성공, 지구 어딘가에 자신들처럼 생존해 있는 인간과 교신에 성공하는 장면은 마치 인터스텔라의 명대사인 "우리는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를 연상케 합니다.
인간이 멸종의 끄트머리에서 발버둥 치는 가운데, 유인원은 이제 막 탄생할 찬란한 문명을 코앞에 두고 있습니다. 인간의 유산을 마주한 그들은 더욱 발전을 꿈꿀 것이며 그동안은 관심 없던 과학과 자연의 경이로움에 눈을 뜨게 됩니다. 이처럼 두 종이 처한 상황을 비장하고 은유적이며 웅장하게 그려낸 마지막 10여 분의 연출은 이 영화의 백미입니다.
또 한가지 마음에 드는 점은 영화가 인간과 유인원을 바라보는 방식입니다. 감독은 종간의 선악을 구분하지 않습니다. 노아가 주인공이라고 해서 유인원을 착한 편으로, 인간을 나쁜 편으로 설정하지 않았습니다. 편리한 대립 구도를 세우는 대신 인간과 유인원 저마다의 희망과 바람을 있는 그대로 보여줍니다. 이 같은 관점은 시저 3부작의 것과 동일합니다. 전작은 인간과 유인원 모두를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로 묘사합니다. 이들은 자연이라는 거대한 힘-바이러스, 산사태 등- 앞에서 한없이 나약하며, 이들의 생존은 '서로 싸워서 쟁취한 것'이 아니라 '운좋게 선택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는 실제 진화의 핵심 원리인 '자연선택'과 맞닿아 있습니다. 제가 시저 3부작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번 작품도 같은 가치관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감독이 전작을 충실하게 이해한 뒤 제작에 돌입했다는 걸 짐작할 수 있습니다.
4. 지루한 중반 전개, 하이틴 어드벤처 무비 같기도
다만 영화의 전개 과정은 조금 지루했습니다. 영화 초반과 끝을 제외하면 특별한 사건이 펼쳐지지 않습니다. 노아가 가족을 찾기 위해 이동하는 과정이 중반부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이는 현재 지구의 상황을 노아와 관객에게 이해시키는 역할을 하는데, 이 모든 설명이 대사로 구성됩니다. 때문에 2시간 반에 가까운 러닝 타임이 마지막 10여 분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영화의 스타일이 전작과 다르다는 점도 기존 팬에게는 아쉬움으로 남을 수 있습니다. 앞서 설명했듯 노아에게는 동료가 존재합니다. 아직 미성숙한 노아는 당연히 모든 걸 혼자서 해결할 수 없고요. 때문에 영화에서 노아와 단짝들이 함께 사태를 헤쳐나가는 장면이 많이 등장하는데, 감독의 유명 시리즈인 메이즈 러너가 연상되는 건 비단 저뿐만이 아니었을 겁니다. 시저가 보여줬던 현명함과 철저함, 한 수 앞을 내다보는 행동, 품위에 익숙한 관객에게 이는 너무 '가볍게' 느껴졌을 수도 있습니다. 제가 이 영화를 중반부까지는 '시저의 계승이 아닌 편승'이라고 감상했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시저라는 이름의 무게감으로 포장된 유인원 하이틴 어드벤처물 같달까요.
다행히 엔딩에 이르러 감상은 변했습니다. 감독이 방향성만큼은 제대로 설정했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이번 영화는 노아라는 캐릭터를 통해 시저 3부작과 다른 이야기를 풀어나갈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형편 좋은 선악 구도를 내세우는 대신 진중한 고뇌를 다루겠다는 메시지도 남겼습니다. 새 시리즈의 첫 작품으로서는 충분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다음 작품에서 더 큰 이야기를 더 큰 울림을 담아 전해줄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계승인가, 편승인가... 아직은 모르지만 방향키는 잘 잡았다.
추천인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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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분석 리뷰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