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글 주의] <브로커> 후기 – 무해한 사람들이 서로가 서로의 집이 될 때 (약스포)
요즈음 그야말로 영화가 쏟아지는, 행복한 영화의 계절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익무에 계신 많은 분들과 함께 잠을 참아가며 ‘칸 영화제’를 실시간 라이브로 시청했었죠, 그래서 그런지 <브로커>가 더욱 궁금해졌습니다. “과연, 어떤 영화인데... 반응이 핫 하지?” 한국 자본과 한국 배우, 우리의 풍경 거기에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님이라니! 상상이 가지 않는 이질적인(?) 조합을 하루라도 빨리 스크린에서 보고 싶었습니다.
마침 익무에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님과의 단독관 GV를 열어주셔서 행복하고도 밀도 있는 관람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 단독관 관람에서는 평소와 다른 특징이 있었는데요, 바로 배우님들 무대 인사 전에 흐르던 고요한 적막과 긴장감이었습니다. 아무도 소리를 내지 않던, 그 긴장감을 찢고 마주한 영화 속으로 깊게, 깊게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함께 관람해주신 익무인 모두 고맙습니다.
<브로커>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님 필모그래피 중 가장 빼어난 작품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무언가 다른 독특한 톤이 느껴지고, 감독님께서 사회 속으로 한발 더 걸어가신 느낌을 진하게 받았습니다. 특히나 <브로커>는 보고나서 글들이 와-다-다 쏟아지는 영화는 아니었습니다. 느낌이 생각으로 연결되는데 까지 꽤나 시간이 걸렸고, 이번 리뷰를 작성하는 데에 까지도 생각을 가다듬을 여백이 필요했습니다. 이제야 조금 정리되어 공유 드립니다.
주제의식 측면에서는 기존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님 같으면서도 풍기는 분위기는 묘하게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저는 이러한 이유를 이동성과 거리감으로 설명하려합니다.
첫째, 로드무비적인 ‘이동성’을 기반으로 한 이야기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님의 전작들은 어떤 마을을 배경으로, 혹은 고향과 같이 한 지역을 풍광 삼아 펼쳐집니다. 그러나 이번 <브로커>는 소위 ‘봉고 차’라고 불리우는 대형 다인승 차량을 집으로 삼아 꾸준히, 계속 이동합니다. 이러한 로드무비적인 특성은 관객으로 하여금 어딘가 붕 떠있는 느낌마저 갖게 합니다. 기본적으로 ‘이동성’을 기반으로 한 이야기는 두 발을 땅에 딛고 사는 우리들에게 큰 공감을 형성하기 어려운 구조입니다. 일종의 에피소드와 우연성으로 승부를 봐야하기 때문이죠. 에피소드가 착 붙지 못하면 관객은 좀처럼 집중하기 어렵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기존의 감독님 스타일과는 묘하게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한편으론 작년에 개봉한 이시야 유야감독님의 <당신은 믿지 않겠지만>도 생각났습니다. 이 영화 역시 우리나라 배우와 풍경이 등장하는 로드무비였습니다. 다만, 일본인들이 한국에 방문하며 펼쳐지는 이야기라서 <브로커>와는 비슷하면서도 결은 다르다고 생각했습니다.
둘째, [한국 배경 – 한국 배우 – 비 한국인 감독님 - 한국 관객] 사이의 ‘거리감’
한국 관객들은 <브로커>를 둘러싸고 특이한 이중의 위치성을 갖게 됩니다. 우리나라 배경에서 한국 배우들이 발화하는 과정은 1차적으로 너무나도 편안하게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브로커>는 일본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님만의 고유한 시선으로 정제된 영화입니다. 일본의 시선이 들어가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우리의 지역과 배우들을 대할 때 비한국인인, 제3자적 시각이 개입됨을 알 수 있습니다. 때문에 극장에서 관람하는 관람객은 이 두 가지 특성 사이에서 모호한 위치성을 갖게 됩니다. 한국 배경이지만 뭔가 다른, 독특함을 느낄 수 있는 위치성을 지니는 것이죠. 그래서 외국의 유수 관객들과 한국 관객들은 많이 다른 감상을 지닐 수 밖에는 없을 겁니다. ‘거리감’과 ‘낯설게 보기’라는 특별한 감상이 가능하게 하니까요. 제가 느낀 묘한 독특함은 한국인만이 느낄 수 있는 고유성과 비 한국인 감독님의 시선사이의 낙차 사이에서만 오롯이 형성되는 그 ‘무엇’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더 나아가 극중에서 주인공 부류와 이를 뒤쫓는 경찰 그룹이 일정한 거리감을 형성하며 서사가 계속 진척됩니다. 가끔은 거리감을 허물고 다가가기도 하고, 거리를 좁히고 유지하면서 계속 나아갑니다. 이러한 캐릭터 간의 거리감까지 관객들은 이중의 거리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한국 배경과 배우 – 비 한국인 감독님 - 한국 관객] 사이의 ‘거리감’ 덕분에 생경한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독특한 분위기 외에도 <브로커>는 일정한 성취를 거둡니다.
저는 [소소한 웃음], [연기력], [사회적 의미]라는 세 가지 키워드로 풀어보려 합니다.
첫째, 소소한 웃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님의 작품은 어딘가 사랑스럽고 귀여운 구석이 있습니다. 그중 소소한 유머가 무척이나 매력적인데요. 이번 <브로커>는 가볍게 웃을 수 있는 지점이 꽤나 많습니다. 평소 작품들보다 더 자주 웃음을 선사합니다. 송강호 배우가 소위 말하는 깔깔이 역할을 하는데요. 가식적이지 않고 무해한 웃음을 선사합니다. 그냥 기분 좋아지는, 실없기도 한 웃음 말이죠. 이러한 소소한 웃음의 연속 속에서 이야기가 무리 없이 받아들여집니다. 감독님이 대단하다고 여겨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언어가 다름에도 디테일한 맛이 살아있는 소소한 웃음을 계속 제공하면서도 매끄럽게 극을 이어가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의도 덕분에 아이를 매매하는 브로커 일당들이 악인으로 보이지 않게 하고, 그들 개개인의 사연에 주목하는 방향으로 확 이끌고 갑니다. 덕분에 객석에서 다 같이 웃을 수 있었네요. 이 때 상상을 하면 기분이 저절로 좋아집니다.
둘째, 주·조연을 넘어 단역들의 연기까지 모두 훌륭한 연기력과 캐스팅
배두나 배우의 감정연기, 송강호 배우의 먹먹한 연기, 강동원 배우의 상처 입고 자란 어른아이 연기 등 다채로운 연기를 보실 수 있습니다. 제가 영화를 볼 때 주목하는 부분은 조연과 단역입니다. 어떤 영화는 단역이 일반인에 가까운 연기를 선보여 영화의 호흡이 깨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번 <브로커>는 송새벽, 류경수, 백현진, 오희준, 강길우, 김예은, 김새벽 배우 등 우리가 알만한 분들이 그야말로 총출동합니다. 연기력은 당연히 보장되고, 이분들이 등장 할 때 마다 객석에서는 탄성이 나와서 극장에서 영화 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연기력 탄탄한 배우들이 왜 이렇게 많이 출연했을까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님의 네임드도 있을 것이고, 함께 작업해보고 싶은 마음들도 작용했을 겁니다. 감독님과 제작사의 노력도 보이지 않게 있었겠죠. 이런 여러 요인들의 합으로 <브로커>는 전체적으로 연기에 구멍이 나지 않는 앙상블의 수준이 꽤나 높은 영화가 되었습니다. 동시에 다채로운 연기의 즐거움까지 관객들에게 주었으니, <브로커>가 관객들에게 기본적인 예우는 충분히 갖추었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배두나, 송강호 배우의 연기로 울컥 울컥했습니다. 두 배우의 필모그래피 중 가장 뛰어난 연기라고 할 수는 없을 겁니다. 그럼에도 담담한 연기로 영화가 데려갈 수 있는 깊은 곳으로 확- 데려가 준 것만 같아서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셋째. 사회적 의미로의 확장 그리고 질문
감독님 작품들은 가족을 중심으로 우리들에게 질문을 선사합니다. 이를테면, “가족 간의 적정거리는 어디까지인가?”,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에 대한 문제제기, 유사가족의 외연확장 및 가능성, 우리 고정관념의 근본적 새로 고침 등등 나와 가족 개개인과의 관계 맺기를 통해 늘 통찰을 보여주셨죠. 이번 작품에서는 영화의 의미가 사회로 쑤욱 확장됩니다. 마음이 허물어질 것 같은 사람들, 베이비 박스, 입양과 아동 매매, 보육원의 현실 등등이 교차하는 가운데 영화는 국면마다 굵직한 질문을 남깁니다. <브로커>는 마치 “우리는 성인이든 아니든, 모두 ‘아이’다”라는 대 전제를 설정하고 시작하는 영화처럼 느껴집니다. 캐릭터들의 의도여하를 떠나 때로는 철부지처럼 느껴지기도 하죠. 감독님께서는 이러한 의도를 통해 캐릭터의 역할과 짐을 지우고 그 사람 자체에 몰입하게 해주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상현과 동수, 소영과 우성 그리고 수진과 이 형사 등등 캐릭터들이 모두 무해하게 느껴집니다. 나쁜 의도를 가진 사람조차도 그 내면으로 들어가면 어른 아이가 존재하고,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으로 보자고 말하는 것만 같습니다. 과연 우리세계에 악인이 존재하는가. 이들이 나쁜지 착한지 굳이 구별할 필요가 있는가. 라는 질문 속에서 <브로커>는 하나의 방향성을 형성합니다. 개인들의 이야기에 더해 사회적 의미와 역할까지, 사회 속으로 한 발 더 나아간 감독님의 모습을 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모든 영화가 완벽할 수 없듯이 아쉬운 점이 존재하는데요, 이번 <브로커>는 호불호가 크게 갈리는 만큼 제가 느낀 아쉬운 점을 소개해보겠습니다.
아쉬운 점
첫째, 배우 이지은의 연기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님께서는 <나의 아저씨>에 출연한 이지은 배우의 연기를 인상적으로 보시고 캐스팅하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인지 이번 <브로커>에서의 이지은 배우의 연기는 <나의 아저씨>의 지안의 반복같이 느껴졌습니다. 첫 대사부터 영화 중반까지 지안으로 보였습니다. 감정이입이 어려웠습니다. 지안과 <브로커>의 소영은 얼핏 보면 생의 의지가 상실한, 희망이 보이지 않는 인물이지만 그 둘은 엄연히 다른 캐릭터라서 아쉬움이 남네요. 드라마 <호텔 델루나> 장만월처럼 소재가 특이한 장르의 역할이 아니라면, 연기력으로 끌고 가야하는데요. 배우 이지은의 앞으로의 행보를 위해서라도 연기력을 보강하면 좋겠더라구요. 그래도 거의 후반부에 영화가 확장을 하면서 담담한 연기로 전환되어 그나마 괜찮았습니다.
둘째, 사운드 믹싱의 문제
한국영화들 가운데 사운드가 뭉개져 캐릭터들의 발음이 들리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많은 분들께서 언급하신 바와 같이 올 초에 접한 <경관의 피> 또한 심각했었죠. 이번 <브로커>역시 대사들이 잘 들리지 않습니다. 과하게 큰 사운드에 믹싱의 오류인지 전체적으로 뭉개져서 들렸습니다. 영화가 대개 잔잔해서 고요함 속에서 차분히 읇조리는 연기들이 많았는데, 이 부분이 제대로 구현되었다면 일반관객들로 하여금 평가가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비가 오는 장면들이 더러 나오는데, 이 빗소리의 사실감을 더 부여했더라면, 일본에서 만든 히로카즈 감독님 작품들과 차별화가 되었을 것 같네요,
셋째, 개연성의 한계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로드무비는 각 에피소드가 착 붙어있어야 관객들의 몰입력을 이끌어 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브로커>는 상대적으로 일상감이 적어서 붕 떠있는 이야기처럼 느껴집니다. 각 에피소드의 결합으로 영화가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큰 줄기가 줄다리기를 하며 진전시킵니다. 때문에 에피소드들이 소소한 웃음을 유발하긴 하지만 큰 임팩트를 주지 못하고 흩어져버립니다. 중간 중간 생략과 진전으로 극이 나아갑니다. 특히 후반부에 “사실은 이랬습니다.”라는 방식은 한국관객들이 선호하지 않는 방식이라 많은 분들께서 개연성에 의문을 제기하신 것 같습니다. 급 마무리처럼 느껴지는 부분 역시 호불호가 갈리는데요. 저는 이 부분을 단순히 아쉽다고 치부하기 보다는 감독님입장에서 적극적으로 해석해보았습니다. 기존의 방식과는 다른 실험적 구성으로 이해할 수 있겠구요. 촬영과 편집 사이의 오차 때문일 수 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 촬영하다보니 모든 것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끝낸 촬영본을 편집하는 과정에서 아쉬움이 뭍어나서 이런 방식으로 구성하셨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이 들었네요.
일본영화 생태계를 벗어나 만들어진 이 작품의 의의는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감독님께서 영화적 틀과 한계를 넘어보는 새로운 시도를 하셨다고 느껴졌습니다. 창작자에게 있어 창작의 자유만큼 소중한 것이 없는데요. 일본의 제작환경을 생각하면 감독님 입장에서 늘 아쉬움이 참 많이 남았을 것 같습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님을 통해 한국영화의 가능성이 넓어진 것도 평가해볼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 제약을 넘어 자유롭게 창작하시는 감독님의 행보를 응원합니다.
우리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님의 작품에 기대하는 바가 무엇일까요? 감독님만의 호흡감과 시선으로 바라본 다정한 세계가 그간 썩 마음에 들었기 때문 아닐까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님께서는 참 기분 좋아지는 마법을 부리는 것만 같습니다. 느릿한 이야기가 어느 순간 마음속으로 쑤욱 들어오는 행복한 순간들을 선사해줍니다. 이런 관점에서 <브로커>는 참 이상한 영화입니다. 이질적으로 느껴지기도 하고, 어색하게도 다가옵니다. 가장 특이한 지점은 상현과 동수, 소영과 우성 그리고 수진과 이 형사 모두 무해하게 느껴진다는 점입니다.
저는 <브로커>의 이야기를 통해 ‘무해한 사람들이 서로가 서로의 집이 될 때’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상현과 동수 소영과 우성 그리고 해진이까지, 서로가 서로를 보듬으며 집이 되어주는 모습 자체가 하나의 질문이자 답으로 느껴집니다. 이 전체적인 과정들을 보면서 저는 질문을 던져봅니다. “나는 누군가에게 집이 되어주고 있나?” 이상 <브로커> 후기였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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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좋은 느낌이 남았다니 기분 좋네요😄
고맙습니다!!
되짚으시는 부분이 상당히 인상 깊네요......
한국의 모습을 담아내는 데....통상적인 한국 영화에서
보이는 그런 풍경으로 보이지 않던 그 이질감....
그 이질감에 대한 원인이 그곳에 있었나?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좋은 글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