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활동중인 일본인 조감독이 말하는 한국 영화 촬영현장...
[아가씨] [아이 엠 어 히어로]에서 조감독으로 참여한 후지모토 신스케 씨가... 마이니치 신문에서 운영하는 영화 정보 사이트에 한국 영화 촬영 현장에 관한 칼럼을 게재 했더라고요.
https://hitocinema.mainichi.jp/article/2pma5ss5u9
이중에서 촬영현장을 취재한 글만 발췌해서 번역해봤습니다. 저도 번역하면서 정말 이러나? 싶을 정도네요.
우선 노동시간에 대해서는요. 예전에는 촬영시간 상한선이 없고 24시간을 넘는 것도 보통이며 가혹한 노동환경이었지만 현재는 하루 노동시간은 12시간으로 정해져 있습니다. 식사시간은 제외되므로 식사 2시간(점심과 저녁식사) + 촬영 12시간 = 14시간. 집합시간부터 14시간 후까지 촬영을 마쳐야 합니다.
12시간을 초과할 경우 스태프들의 동의 하에 촬영을 계속할 수 있지만 제작사는 이에 대해 추가 개런티를 지불해야 합니다. 참고로 제가 하루 12시간 노동을 처음 겪은 건 2015년 촬영한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였습니다.
한주당 노동시간도 52시간까지로 정해져 있습니다. 따라서 일주일에 촬영할 수 있는 날짜는 4.5~5일입니다. 한편, 촬영 이외의 노동, 예를 들면 촬영 후의 세트 해체 작업, 다음날 촬영 준비, 촬영이 없는 날의 준비 작업등에 관해서는 부서마다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암묵적인 양해로서 눈을 감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대규모 스튜디오 촬영으로 조명 해체 작업에 시간이 걸릴 경우 별도 스태프를 고용해 근로시간을 지키기도 합니다.
촬영중에는 “주휴일”이라고 하는 휴일이 존재합니다.스케줄은 촬영 중 여러 번 변경되지만 매주 같은 요일을 휴일로 하는 시스템입니다. 이것이 있으면 직원은 사전에 계획을 세우기 쉬워집니다. 예를 들어 주휴일이 평일이라면 병원 등의 예약을 할 수 있습니다. 만약 배우의 일정이나 촬영 장소 조건 등에 따라 주휴일을 다른 요일로 변경하는 경우 최소 1주일 전에 스태프의 허가를 받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개선 덕분에 촬영이 없는 날이 늘어나 개인적인 시간 확보가 가능해졌습니다. 지난해 촬영 중 20대 스태프에게 "어제는 뭐하고 지냈어?"라고 물었더니 "서핑!!"이라는 답이 돌아와 충격을 받았습니다. 반가운 충격이었습니다. 예전에는 촬영 기간 동안 일 이외에는 생각하는걸 상상조차 못했는데 이제는 조금이나마 여가 시간을 확보하면서 촬영에 임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런 변화는 영화업계 노동조합이 스태프들의 임금 인상과 보험 가입 등을 계속 요구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10여 년 전 최저임금이 엄수되거나 시급을 계산해 개런티를 내는 방법이 등장하는 등 시행착오를 거듭했습니다.
크게 달라진 것은 2015년입니다. 영화사는 '표준근로계약서'를 체결하도록 의무화 했습니다. ‘아가씨’에서 박찬욱 감독은 솔선수범했을겁니다. 이 계약서에는 근로시간이 하루 12시간을 넘으면 추가 개런티를 지급한다는 항목도 있었지만 당시에는 아직 주 52시간 근로 엄수가 아니었습니다. 이후 전국적으로 주 52시간 노동을 지키자는 근로방식 개혁이 이뤄졌습니다.종업원 수백 명 규모의 대기업부터 실시되어 19년경에는 영화업계도 완전히 적용되게 되었습니다.
근로시간에 비례해서 개런티도 감소하나요? 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직원의 개런티는 반대로 상승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과거 영화 스태프들의 개런티는 상당한 저임금으로 TV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문제가 제기될 정도였습니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현장의 젊은 직원 중 결혼한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결혼하려면 영화를 그만둘 각오가 필요하다는 말도 자주 나왔던 걸로 기억합니다.
당시는 개런티를 받지 못해도 영화 일을 하고 싶다! 라고 하는 젊은이는 많이 있었기 때문에, 개런티가 적기는커녕 공짜밥은 먹을 수 있지만 거의 노개런티로 몇 개월 일한다고 하는 것도 보통이었습니다.
저도 경험이 있습니다. 영화를 꿈꾸며 한국에 온 1년차(2003년)에 한 영화사에서 6개월이나 일했지만 결국 개런티는 한 푼도 받지 못했어요. 준비에도 촬영에도 충분한 시간을 들여 퀄리티 높은 영상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은 인건비가 극단적으로 저렴했기 때문이라고 개인적으로는 생각합니다.
개런티 변화의 한 사례를 소개하자면 제가 2004년 제작부로 처음 받은 개런티는 월 25만원(2만 5000엔 정도)이었죠. 그게 최근에는 메이저 영화 제작부에서 경험이 전혀 없는 신인이라도 준비 기간 중 월 200만원 정도, 촬영 중은 200만원대 중후반 정도라고 합니다.
제작부는 어느 부서보다 노동시간이 길어 하루 12시간, 주 52시간을 지키는 것은 불가능한 것도 고려해 설정된 것 같습니다. 영화 스태프들도 생활이 가능한 개런티를 확보할 수 있는 시대가 됐기 때문에 젊은 나이에 결혼하는 사람이 늘고 있는 것은 반가운 일입니다.
식사 시간도 아무리 바빠도 단축되는 일은 없고, 제대로 1시간씩 취할 수 있게되었습니다. 한국에서는 ‘로케벤(일본에서 야외 촬영시 나오는 도시락)’이 나오는 일이 드물고 가까운 식당에서 먹거나 케이터링이 준비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케이터링이라고 해서 조리한 것을 가져와 따뜻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처음부터 만들어 주기 때문에 갓 완성된 따끈따끈한 밥을 먹을 수 있습니다.
여유롭게 따뜻한 밥을 마음껏 먹을 수 있는 환경은 인간의 퍼포먼스 향상을 위해 기본적이고 가장 중요한 요소가 아닐까요. 또, 스탭간이나 출연진끼리 충분한 커뮤니케이션을 취하는 시간으로서도 중요한 역할을 완수하고 있습니다.
야식도 예전에는 급하게 먹고 촬영을 재개하는 게 당연했지만 이제는 1시간 확보해 지친 몸을 쉬는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야식만큼 빨리 먹고 빨리 촬영을 끝내고 돌아가고 싶기도 하지만 조명부 등 기자재 해체 작업이 있는 스태프들에게는 촬영 종료 신호가 오늘의 일 종료가 아닙니다. 야식의 1시간은 중요한 것입니다.
정신적으로 안심하고 참여할 수 있는 환경 조성도 적극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크랭크인 전에 모든 스태프 참여 하에 갑질이나 성희롱 등의 방지 강습회가 반드시 개최됩니다. 최근에는 코로나 영향으로 온라인 강습회가 일반적인 것 같습니다.
반면 하루 촬영 시간이 짧아지고 개런티도 올라 작품 제작비가 단숨에 상승한 것도 사실입니다. 예전에는 일반적인 한국영화 예산은 30억원이라고 했지만 지금은 70억~100억원 정도라고 합니다. 예산이 급격히 상승해 힘들다는 제작사 목소리는 자주 들리지만 제작비가 감소하지는 않았습니다.
100억원은 당연하고 200억원짜리 작품도 많습니다. 300억원이 넘는 예산의 작품도 계속 제작되고 있습니다.제작비를 제대로 들이는 것으로 시각적으로도 돋보이는 영상이 되어 성공으로로 이어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제작비를 더 들여 더 돋보이는 영화를 제작하는 흐름은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지친 상태로 버티는 게 당연했던 촬영 현장이 이제는 인간다운 생활을 유지하면서 촬영을 즐길 수 있는 환경이 되면서 스태프들의 미소가 부쩍 늘었습니다. 육체적인 면과 정신적인 면의 여유가 일의 효율과 유연한 아이디어로 이어져 퀄리티면에서도 좋은 영향을 주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 영화업계가 이렇게 바뀔 수 있었던 것은 한국이 충분한 설명 없이 갑자기 크게 결정타를 바꿀 수 있는 나라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보통이라면 직원의 개런티를 시급으로 세서 지불하라는 말을 갑자기 들어도 제작사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할 것이고, 12시간 노동을 지키는 데도 추가 개런티는 누가 내느냐 라는 말이 나올 것입니다. 하지만 갑자기 바뀌기 때문에 해법을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매번 대패닉이 되어 문구가 분출하지만 그래도 바뀔 수 있습니다. 재밌고 매력적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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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적으로는 욕을 먹는지 몰라도 표준근로계약서 정착시킨 사람 중 한 명이 《국제시장》의 윤제균 감독이죠.
봉준호 감독 역시 《기생충》 촬영당시 계약에 의거해서 찍었고요
누구라곤 안 하지만 페북에 모 제작자가 이런 거 다 지키면 독립영화들 다 죽는다고 볼멘소리 하시던데
천만 관객 찍은 영화 제작한 분이 그런 얘기 하시는 것도 우습고요 ㅎㅎ
우리나라 참 급작스럽죠ㅋ 근데 저 분 말씀 들어보니, 이 급작스러움이 사회를 변화시키는 원동력인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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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한국과 같은 급격한 변화는 힘들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