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 일본 기자 리뷰 "위험한 걸작"
일본의 시네마카페 사이트에 올라온 글인데 꽤 좋은 것 같아서 옮겨봤습니다.
옮기면서 매끄럽지 않은 부분이 좀 있는 것 같은데 양해 바라고요.^^
https://www.cinemacafe.net/article/2020/01/14/65355.html
(스포일러 있음) 영화를 그 이전/그 이후로 나누게 할, 위험한 걸작 <기생충>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것을 시작으로 여러 영화상들을 받고, 최근 발표된 미국 아카데미상에선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편집상, 미술상, 국제영화상이라는 6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그런 역사적 쾌거를 달성하게 된 이 작품의 훌륭함에 넉다운 당한 사람 가운데, 부유층 가족 아내 역의 미모에 반해서 상영이 끝난 직후에 ‘조여정’의 이름을 검색한 사람은 필자뿐만이 아닐 것이다.
“트로피 와이프”란?
반지하 가족에게 부유층 가족을 처음으로 소개한 장남의 친구 왈, “젊고 & 단순한” 아내를 연기한 조여정.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그 말이 의미하는 것이 “젊어서 꾸미지 않는다”라기보다 “미숙하고 어수룩하다”라는 것이 밝혀지게 되는데, 그런 아내를 차밍하게 연기한 조여정은 지금껏 영화보다는 드라마를 중심으로 활약해온 여배우다. (때문에 한류 드라마를 열심히 따라가지 않은 나로서는 이 작품으로 처음 알게 됐다.) 반지하 가족의 남편을 연기한 주연배우 송강호를 필두로 부유층 가족의 남편을 연기한 홍상수 영화의 단골 배우 이선균, 반지하 가족의 아내를 연기한 이창동 영화의 단골 배우 장혜진 등 아트하우스계 한국영화의 수작들을 통해 친숙한 배우들 사이에서, 조여정의 천연덕스럽게 보이는 “그늘 없음”과 “가벼움”은 이 작품에 오락영화로서의 좋은 바람을 불어넣어주고 있다.
‘고착화된 양극화 사회’라는, 작품이 제기하는 문제의식에 맞춰, 반지하 가족의 시점으로 이야기되는 부분이 많은 것이 이 작품 <기생충>이지만, 그 피해자인 부유층 가족 측에는 확실한 ‘죄’ 같은 것이 쉽게 눈에 띄지 않는 것이 이 작품의 비범한 점이다. 조여정이 연기하는 부유층 가족의 아내는 전형적인 ‘트로피 와이프’, 즉 돈 많은 남자가 자신의 부와 명예를 증명하기 위해 ‘트로피’처럼 과시하려고 삼은 아내다. 그 용어의 정의대로, 그녀는 가사를 가정부에게 모두 떠맡기고, 아이에게 신경을 쓰면서도 실제 교육은 가정교사에게 맡겨버린다. 그런 가족의 모습을 보고 석연치 않은 느낌이 들 관객도 있을 텐데, 그것은 그러한 계층 가정이라면 어느 나라에서나 볼 수 있는 현실이지, 적어도 ‘죄’는 아니다. 남편이 한국 재벌 집안의 2세가 아니라 IT 기업 경영자인 점도 유의해야 할 부분이이다.
부유층 부부는 현재의 생활환경에 익숙해져서 사회 전체의 구조에 대해서는 둔감하지만 개인으로서는 나름대로 꺼림칙함을 느끼면서 살아가는 모습도 보인다. 극중 송강호가 연기하는 주인공과의 대화에서 아내에 대한 사적인 감정에 대해 두 번이나 질문 받은 남편은, 그 때마다 평소의 부드러운 태도를 지우고 어두운 표정을 보인다. 아내 쪽은 더 순진하지만 아마도 영어 회화 레슨 중인지 일상적인 대화에서도 부자연스럽게 영어를 섞어 쓰는데, 남편의 ‘트로피’ 이상의 존재라는 자신감을 얻기 위한 노력을 부지런히 하고 있다. (흥미롭게도 함께 살아온 가정부에게도 그것이 전염돼 있다.) 부유층 가족이 집에 없을 때, 반지하 가족의 아내는 저택의 거실 소파에 드러누워서 이렇게 말한다. “이 돈이 다 나한테 있었어봐. 나는 더 착하지 착해” 이것은 부가 사람에게 주는 영향에 관해 정곡을 찌르는 말이다.
부유층의 생활과 심정의 디테일 묘사
돈은 있지만 사랑이 없는 차가운 가족. 가난하지만 사랑과 웃음으로 가득한 따뜻한 가족. 동서고금 부유층과 빈곤층을 그린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묘사된 이러한 단순 비교는, <기생충> 이후 모두 시대착오적인 것이 될 것이다. 부유한 자는 다정함도 순수함도 건강도 교육도 모두 손에 넣고, 가난한 자는 그 모든 것에 손을 뻗으려 하지만 좀처럼 닿지 않는다. 부유층 가족을 단순한 ‘악인’으로 삼지 않음으로써 <기생충>은 그런 현대사회에 만연돼 있는 세계 공통의 절망을 보다 잔혹하게 드러내 보인다.
주도면밀한 화면 설계와 인물 배치, 정적인 연출과 동적인 연출의 조화, 몽타주의 탁월함, 종반의 기후변동적 파국의 묘사를 가능케 한 윤택한 제작비. <기생충>의 영화적 달성 앞에서 일본영화(특히 메이저 작품)의 현실을 한탄하는 것은 손쉬운 일이지만, 필자가 그 차이(번역자 주: 한국영화와 일본영화)를 가장 뼈저리게 느낀 것은, 지금껏 언급해온 부유층 사람들의 생활과 심정의 디테일 묘사에 관한 정확함이다. 그들의 차고에는 비즈니스용 벤츠 S클래스와 레저용 레인지로버 최신 모델이 나란히 주차돼 있다. 다수의 일본영화들에서처럼 회사 경영자가 아무렇지 않게 구형의 “대충 고급차스러운 것”을 타거나 하지 않는다, (원래 대부분의 부유층은 신차를 경비로 리스하기 때문에 구형차와는 인연이 없다). 그들의 주방 냉장고에는 한 병에 10달러씩 하는 노르웨이산 미네랄워터가 늘어서 있다. 이 영화가 한국사회에 대한 이국적인 관심에 의해서 세계에 퍼져나가는 게 아니라, ‘자신들의 이야기’로서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이유 중 하나는 작품의 토대가 이처럼 부유층의 ‘세계 공통 언어’로 자연스럽게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이 작품이 이후 사회에 끼칠 영향
클라이맥스의 ‘사건’이 발생한 후, 반지하 가족의 ‘뒷이야기’가 나오지만, 부유층 가족의 ‘뒷이야기’는 굳이 그리지 않은 점을 봐도, 이 작품의 이야기가 반지하 가족의 어깨너머를 통해 이야기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들의 생활과 심정이 사실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한편에서 부유층 가족의 생활과 심정도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 양측 사이에서 일시적으로 성립된 균형이 깨지고 ‘또 하나의 가족’과의 순간적인 연대가 생겨나는 계기가 된 것이 ‘냄새’라는 점도 탁월하다. 부유층과 빈곤층이 사회 구조적으로 분리된 현대에서, 그것은 그들의 물리적인 거리가 지나치게 가까워졌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이 영화가 마음에 남기는 상흔은 관객들 각자가 떠안을 문제이지만, 부유층 입장에서 이 작품을 봤을 경우(이 정도로 전 세계에서 히트하고 있는데, 당연히 관객들 중에도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의 의식이 북미와 남미, 동남아시아에 존재하는 게이티드 커뮤니티(Gated community 부자들만 사는 빗장 동네)처럼, 보다 심화된 사회 분단을 촉진시킬 방향으로 갈 가능성도 부정할 수 없다. 여러 훌륭한 영화들이 그러하듯이, <기생충>은 위험한 작품인 것이다.
글 우노 코레마사 (영화, 음악 전문 저널리스트)
golgo
추천인 39
댓글 55
댓글 쓰기정치,종교 관련 언급 절대 금지입니다
상대방의 의견에 반박, 비아냥, 조롱 금지입니다
영화는 개인의 취향이니, 상대방의 취향을 존중하세요
자세한 익무 규칙은 여길 클릭하세요
개인적으로 트로피와이프에 가깝다고 생각하는게 그런식의 도움을 줬다면 박사장한테 능지처참이라는 단어를 써가며 무서워하고 쩔쩔매지 않았을거고 박사장도 연교를 표현할때 집안일 못한다는 대사를 하지 않았을거라고 생각합니다
트로피 와이프는 성공한 남자가 과시하려고 맞이한 아내인데 전 아니라고 생각해요^^; 박사장 보면 나름자수성가형 같던데 일단 연교랑 대학생일때 만나서 일찍 결혼했단 게 봉감독 피셜이에요....그리고 연교는 절대 멍청한 인물이 아니고 공부도 잘했던 사람이라고 했어요. 이선균도 첨엔 딱딱하게 연기했는데 봉감독이 대학교때 일찍 만나 결혼한 부부 분위기 내달라고 주문받았다고 인터뷰에 다 피셜로 나옵니다. 집안일 못하는 건 애초에 곱게 자라서가 맞다고 봄.
극 중 연교의 집안에 대해 많은 묘사는 없지만 가난하거나 부유까지는 아니고 중산층 정도였다 남편잘만나서 상류층이 된 케이스라 보는 게 나을듯합니다. 대학시절연애이야기하면서 남편이 연교에게 기택의 냄새가 우리 연애할때 지하철타면 나던 냄새라고...뒤집어 말하면 너랑 연애할때나 지하철탔다..는 느낌이거든요.
공부는 그래도 잘했던거 같은데(다만 영어를 못하지만 영어가 술술나오는 캐릭터라고 인터뷰에 언급) 그냥 공부만 잘하고 나머지가 맹탕인...그런 캐릭터로 보는게....
감사합니다.
상당히 섬세하고 정확한 리뷰네요. 한국사람이었다면 기택 가족의 폰 브랜드나 맥주 브랜드의 의미까지 캐치했을 분인듯ㅎㅎ 잘 읽었습니다!
영화수준에 걸맞는 칼럼이네요 정말 잘봤습니다
빨리 기생충 다시 보고 싶어집니다 👍👍
기생충은 종래의 단순한 부자 / 가난의 계급 대립을 깨고 새로운 구도를 탄생시킨 것 같아요. 그냥 부자를 죄없는 사람으로 그려서가 아니라, 좀 더 구조적인 문제 - 계급 간 위치와 넘을 수 없는 선으로 표현했다고 봄니다
아 글쿤요. 답장 감사해요.
잘 읽었어요 감사합니다
그런식이라면 위험하지 않은 영화가 어디있나요?
트로피 와이프에 대한
통찰에 무릎을 탁 치네요
필력과 베이스가 아주 좋은 분이시네요.
저 분이 음악은 어떻게 평론하는지 궁금해집니다.
번역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