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 포터와 불사조 기사단> - 예상보다 아쉬운 영화 (스포)
감독: 데이비드 예이츠
개봉 연도: 2007년
러닝타임: 2시간 8분
관람 등급: 전체 관람가
급하다 급해
<불사조 기사단> 소설은 제가 원작 시리즈 중 가장 좋아하는 편 중 하나입니다. <불의 잔>에서 볼드모트가 부활한 후로 분위기가 급격히 어두워지고, 세계관이 방대하게 확장되며 해리의 고뇌와 감정들을 시리즈 중 가장 긴 분량에 걸쳐 자세하게 묘사하기 때문에 희로애락을 느끼며 즐겁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영화에 대해서도 기대를 많이 했는데, 제가 예상했던 것만큼 좋지는 않았습니다.
일단 너무 급합니다. 원작이 시리즈에서 가장 긴 만큼 다루어야 할 것들도 굉장히 많았습니다. 불사조 기사단 소개, 해리의 정신적 혼란과 엄브릿지와의 갈등, 첫사랑, 오클러먼시, 덤블도어의 군대, 해그리드와 동생 그롭, 해리와 볼드모트에 대한 예언 등등등... 이러한 많은 요소들을 제대로 담기 위해서는 긴 시간을 들여 더 세세하게 묘사를 하는 것이 맞았습니다.
그런데 영화는 이를 잘 수행하지 못했습니다. 영화 자체가 시리즈 중 러닝타임이 유독 짧은 편인데 그 짧은 시간 안에 모든 것을 담으려다 보니 산만해지고 빠진 것도 많아졌습니다. 이 때문에 영화에 (특히 인물들의 감정에) 제대로 몰입하는 것이 좀 힘들었습니다. 뭔가 흥미로운 것이 나오려다가 갑자기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니... 원작을 읽지 않은 관객들은 쏟아지는 정보에 영화가 너무 정신없다고 생각할 것이고, 원작을 읽은 사람들은 과도한 생략에 불만을 품게 될 수 밖에 없죠. 물론 그 많은 내용을 잘 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굳이 러닝타임을 2시간 가량으로 제한해야 했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연출에도 가끔 의문이 드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이는 감독 변경 때문일 수도 있고(처음은 아니지만), 아마 가장 큰 원인은 위에서 말한 과한 생략 문제 때문일 것 같습니다. 어떤 분위기로 연출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듯한 장면들이 있었습니다. 볼드모트가 좀 우스꽝스럽게 나오는 것도 아쉬웠고요.
물론 좋은 점도 있었습니다. 일단 후반부는 대부분 마음에 들었습니다. 본격적으로 스케일이 큰 마법 결투가 묘사되면서 볼거리는 상당했습니다. 특히 덤블도어와 볼드모트의 일대일 전투는 세계관 최강자들이 제대로 맞붙었을 때의 위력이 잘 표현되었습니다. 여기서 이어지는, 해리가 자신의 정신을 장악한 볼드모트를 물리치는 장면은 이 영화를 대표하는 명장면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소설과는 약간 차이가 있는 장면인데 영화판이 더 감성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나쁘지 않은 아이디어였던 것 같습니다.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리고 영화에서 가장 호평받는 부분 중 하나가 엄브릿지인데, 이 역시 매우 좋았습니다. 영화가 좀 더 길었더라면 배우의 연기를 더 많이 보고 즐길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은 있습니다.
못 만든 영화는 아니지만 이보다 더 잘 만들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드는 영화였습니다. 사실 영화 자체에 대한 불만보다는 원작 소설 팬으로서 느낀 개인적인 아쉬움이 더 많이 남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볼드모트가 부활한 <불의 잔>과 분위기가 많이 어두워진 <혼혈 왕자>를 잇는 역할은 충분히 잘 해냈습니다. 이전까지의 해리 포터 시리즈 영화들에 비해서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많았을 뿐이지, 충분히 재밌게 볼 수 있는 영화입니다.
★★★☆
감독이 이후부터 잘해서 다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