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 호러] 피로 물드는 크리스마스 - 블랙 크리스마스
블랙 크리스마스 1974
피로 물드는 크리스마스
기숙사에 울려 퍼지는 전화벨 소리, 그리고 이어지는 섬뜩한 목소리. 전화는 반복적으로 걸려오며 불안감을 조성합니다. 1974년에 제작된 밥 클라크 감독의 <블랙 크리스마스>는 평화롭고 따뜻해야 할 크리스마스이브를 피로 물들이는 살인마의 광기를 그려낸 영화입니다. 그리고 이 영화는 슬래셔 장르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후대 영화에 직간접적으로 큰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이야기는 방학을 맞아 대부분의 학생들이 떠난 기숙사에 몇몇 여학생들이 괴상한 전화를 받고 한 명씩 살해당하며 시작됩니다. 경찰은 실종된 여학생의 아버지와 함께 수사에 착수하지만, 살인마의 정체를 밝혀내기까지 시간이 걸립니다. 한편, 기숙사에 남은 제스는 점점 더 위험한 상황에 빠져듭니다. 살인마가 기숙사 안에 숨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싸우게 됩니다.
먼저 캐스팅이 화려합니다. 레전드로 남은 로맨스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1968)에서 눈부신 아름다움으로 관객을 사로잡은 올리비아 핫세가 영화의 주인공입니다. 살인마의 마수를 피해 끝까지 살아남는 슬래셔 장르의 파이널 걸 캐릭터의 전형을 연기하고 있죠. 그리고 익숙한 얼굴의 배우가 또 있습니다. 리차드 도너의 <슈퍼맨>에서 여주인공 로이스 레인 역을 맡은 마고 키더, 또 <용쟁호투>에서 이소룡과 함께 액션 연기를 펼쳤던 존 색슨입니다. 이들의 연기를 보는 것도 영화의 큰 즐거움입니다.
영화의 모티브는 실제 연쇄 살인범 ‘웨인 보덴’ 사건과 당시 널리 퍼져 있던 도시 괴담 '베이비시터와 2층의 남자'에서 착안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한 10대 소녀가 베이비시터로 일하던 중 겪은 섬뜩한 경험을 다룹니다. 아이들을 2층에 재운 후 1층에서 휴식을 취하던 소녀는 수상한 전화를 반복해서 받죠. 결국 경찰에 신고하고 나서야 그 전화가 실은 2층에서 걸려왔다는 충격적인 진실을 알게 됩니다. <블랙 크리스마스>는 이 도시 괴담의 기본 뼈대를 차용해, 연쇄살인극의 긴장감 넘치는 이야기로 길게 재구성했습니다.
슬래셔 영화의 시작
<블랙 크리스마스>는 슬래셔 영화의 진정한 선구자로, 존 카펜터의 <할로윈>보다 4년 앞서 장르의 핵심적 요소들을 확립했습니다. 고립된 기숙사, 축제일의 끔찍한 살인, 젊은 여성 피해자들, 당시 기준에서 수위 높은 살인 장면들, 살인마와 최종 대결을 벌이는 파이널 걸의 등장, 그리고 사건 종결 후에도 지속되는 불안감 등이 그것입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살인마의 1인칭 시점 촬영입니다. 카메라가 살인마의 시선이 되어 피해자를 쫓는 장면들은 관객들에게 불편함과 동시에 강렬한 긴장감을 선사합니다. 마치 관객 자신이 살인 행위에 가담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켜, 심리적 공포를 한층 강화하죠. 이 1인칭 시점은 후대 슬래셔 영화에서 빈번하게 사용되며, 호러 영화 전반에 걸쳐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시간 순서상 <저주받은 카메라>이 먼저이고, <블랙 크리스마스>, 그리고 <할로윈>에 이르러 이 촬영 기법은 완성됩니다.
사실 슬래셔 장르의 시초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들이 있습니다. 히치콕의 <싸이코>가 종종 슬래셔 장르의 시초로 언급되고, 토브 후퍼의 <텍사스 전기톱 대학살>, 마리오 바바의 <블러드 베이>도 빼놓을 수 없고요. 하지만 장르의 전형적 요소들을 고려하면 <블랙 크리스마스>를 그 진정한 출발점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의견입니다. 존 카펜터의 <할로윈>은 이를 더욱 발전시키고 정립하며 완성시킨 것이죠.
하지만 이런 대단한 의미를 떠나서 <블랙 크리스마스>를 뒤늦게 보는 것은 여러모로 손해입니다. 무엇보다 굉장히 느린 전개가 가장 큰 걸림돌입니다. 현대의 관객들은 빠른 전개와 현란한 편집, 화끈한 난도질에 익숙하죠. 이들에겐 상대적으로 느리고 느린 호흡의 전개 때문에 꽤 지루할 영화가 될 수도 있습니다. 장르의 시초라고 해도 뒤늦게 볼 때는 손해인 것이죠. 이미 적게는 수십 편, 많게는 수백 편의 비슷한 설정의 영화들을 접했을 테니,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 많이 눈에 띌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블랙 크리스마스>의 공포는 여전히 생생하게 살아 숨 쉬며 존재합니다. 밤의 어둠, 빈 방, 잡동사니 물건과 먼지로 덮인 다락방, 그리고 정체불명의 불길한 전화. 집안에 숨어 있는 살인마까지.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주변 어딘가에 숨어있을지도 모르죠.
<블랙 크리스마스>는 크리스마스의 환상을 부숴버립니다. 가장 행복해야 할 순간이 오히려 가장 위험할 수 있다는 잔인한 진실을 영화는 차갑게 속삭입니다. 영화는 이 섬뜩한 아이러니를 불길한 시선으로 담아냈고 그 결과물은 성공적입니다. 오늘날 클래식 호러 영화로서 꾸준히 회자되고 사랑 받는 이유인 것이죠.
덧붙임...
1. <블랙 크리스마스>는 개봉 당시 그럭저럭 흥행했지만, 영화 자체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영화는 컬트 팬층을 형성하게 되고, 호러의 고전으로 재평가 됩니다.
2. 이 영화는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크리스마스 시즌에 발생한 실제 살인 사건에 영감을 받았다고 합니다. 캐나다 연쇄살인범 웨인 보덴과 관련이 있는데, 그는 1969년 10월부터 1970년 1월 사이 몬트리올에서 세 명의 여성을 살해했으며, 그의 네 번째 희생자로 알려진 이는 1971년 5월 앨버타 주 캘거리에서 살해되었습니다. 웨인 보덴은 희생자의 가슴을 물어뜯는 버릇 때문에 ‘뱀파이어 강간범’으로 불리게 됩니다.
3.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파이널 걸 ‘제스’ 캐릭터를 당시 페미니스트들이 굉장히 좋아해서 찬사를 보냈다고 하는군요. 그 이유는 극중 제스가 임신 중인 학생인데, 남자친구와 결혼을 서둘기 위해서 자신의 학업과 꿈을 포기하는 인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4. 감독과 각본가는 파이널 걸 ‘제스’를 죽일지 살릴지에 대해 고민하다 두 개의 대안 결말을 작성합니다. 하나는 그녀가 죽고, 다른 하나는 살아남는 것이었는데 결국 두 결말은 촬영되지 않습니다. 그들은 제스의 운명을 모호하게 남겨두기로 결정했으며, 스튜디오의 간섭에도 불구하고 이 결말을 고수합니다.
5. 올리비아 핫세는 1986년 <록산느> 제작진들과 만났는데, 그 자리에 참석한 스티브 마틴이 그녀에게 “오 마이 갓! 올리비아, 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중 한 편에 출연했어”라고 말합니다. 그녀는 당연히 <로미오와 줄리엣>이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뜻밖에도 스티브 마틴이 언급한 영화는 <블랙 크리스마스>로, 그는 무려 27번을 보았다고 하는군요.
6. 롭 좀비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로 꼽는데, 자신의 연출작 <할로윈 2>에서 ‘마고 키더’를 캐스팅해 똑같은 이름의 배역을 맡기며 <블랙 크리스마스>에 대한 애정 어린 헌사를 남기게 됩니다.
7. 리메이크가 두 번이나 이루어졌는데, 둘 다 완성도의 문제가 있습니다. 2006년 작이 그나마 나은데, 블룸하우스가 만든 두 번째 영화는 완성도가 최악입니다.
다크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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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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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님 번쩍 미모 시절의 ㅎㅎ
전 클마스에 가장 자주 본 영화가 세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