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네 시 - 간단 후기
아멜리 노통브의 동명 원작을 영상으로 옮겼습니다. 오후 네 시. 꽤 오래 전에 나왔던 소설로 아는데 최근에 다시 나왔나 모르겠네요. 아멜리 노통브의 소설은 대부분 경장편인데 인간성에 대한 고찰을 다루고 있어서 내면과 함께 아주 약간의 행동 경향으로 통렬한 해학이나 은은한 반성을 하게끔 합니다. 살인자의 건강법, 같은 책은 천재의 탄생 등으로 수식되었죠. 이 책 역시 인간이 가진 예절의 허상을 다루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 영화에서는 어떻게 변주되었으려나요.
안식년을 가지는 대학교수 정인과 현숙은 교외에 널찍한 전원주택을 구입합니다. 근처에 의사가 산다는 것 외에는 이웃이라고는 없는 한적한 곳입니다. 그곳에서 명상을 하며 유유자적한 삶을 꿈꾸는 두 사람, 그러나 정인에게는 한 가지 치명적인 장점이자 약점이 있습니다. 바로 지나치게 지식을 맹신하며 그로 인해 타인에게 친절합니다. 심지어 인간의 모든 문제를 지식과 배려, 친절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죠. 술을 마신 사람과 교통사고가 나도 신고조차 할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저 사람이 얼마나 힘들어 지겠느냐며!
그리고 이사한 집에서, 이웃이었던 의사는! 매일 오후 네 시만 되면 그들 부부를 방문합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어떤 환경이 되어도 무조건 방문합니다. 타인에 의해, 이제 정인은 맛보지 않아도 될 고통을 맛보기 시작합니다.
오후 네 시만 되면요!
이제 어떻게 될까요? 네 시면 나타났다 여섯 시면 사라지는 손님!!! 그에게도 정인은 맹신하는 지식으로 또 그가 가진 친절과 배려로 그를 돌려 보낼 수 있을까요, 아니 오지 않게 만들 수 있을까요!!!
영화는 8:2 정도, 좋음과 나쁨, 신선함과 부패함, 새로운 시도와 그렇지 못함을 상반하고 있었습니다. 조각을 나눈 장면의 대비에 비해 지나치게 전형적인 장면이 나오는가 하면 매우 때깔이 좋은 장면이 나오다 잠시 잠깐 초점이 맞지 않는 듯한 화면이 스쳐가는 식입니다. 말하자면. 이는 영화 전체의 플롯과 재미에서도 마찬가지인데요, 도무지 영화에 대해 방향을 가늠하지 못하던 객석이 점점 영화에 저며 들어 관객과 합일하는 지점 즈음에 도달합니다. 111분의 러닝타임 중 아마도 40분 정도가 지난 즈음이 아닐까 싶어요. 완전히 합일해, 웃고 즐기고 '오후 네 시'의 손님이 도착하기만 하면 함께 인상을 찌푸리며 맞이하지 않으려고 하죠.
아 이 영화는 블랙코미디구나!
네, 블랙코미디!
적어도 이 장르만으로 이 영화가 올곧게 갔더라면 이 영화는 올해 최고의 작품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을 겁니다. 원작을 살리려는 탓이었겠지만 적지않은 독백이 등장하며 프랑스 원작 특유의 서스펜스를 내포하기도 하는데요, 이게 특정 상황을 토대로 장르 변경을 합니다. 바로 사이코 스릴러로 말입니다.
블랙코미디에서 사이코 스릴러로 장르 변경을 하며 영화의 토대가 변하자, 영화 자체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좋은 영화에서 그렇지 못한 영화로. 아무렇지 않게, 아니 거슬리지 않게 작용하던 독백마저 거슬리기 시작할 정도가 됩니다. 그러며 제 속 깊은 곳에서 장탄식 하나가 터집니다.
아, 관객들에게서 좋았던 게 사라지겠다!!!
적어도 사이코 스릴러로 장르 변경 전까지, 올해 최고의 블랙코미디였습니다.
웃어야 하나, 하다가 점점 크게 동화해 웃어요. 이 얼마나 영화적입니까. 그런데 마지막에 다다라 씁쓰레한 감정만 가지고 나오게 되는, 그런 영화. 물론 이게 한편의 블랙코미디네요. 관객에게 던지는!!!
되짚어 오래 전 기억을 떠올려 보니 원작이 그랬던 듯합니다. 매우 호러적인 결말이었던 듯한. 아멜리 노통브 소설의 전형성이기도 하고요. 조금 더 영화적인 결말로 숙의했더라면 어떠했을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더랍니다.
감독인 송정우 님을 보니 마동석 배우님의 <함정>, <원더풀 고스트>, <동네 사람들> 외에 여러 영화를 제작, 기획하셨더라고요. 이 영화를 보자면 대체적으로 좋았고, 아주 약간 나빴다고 하면 되려나요. 원작을 보는 눈에 기획, 제작하는 능력까지 있으니 더없이 좋으시네요. 앞으로 좋은 감독님으로 자리매김해 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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