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시리즈 <베이비 레인디어>: "언젠간 너와 나 울2 둘뿐일 거야, 순로옥"
리처드 개드 감독이 겪은 실제 이야기를 본인이 직접 주인공으로 출연해 만든 시리즈 작품이다. 일반의 다른 실화 바탕 영화들 보다 현장의 느낌이 더욱 강했다. 과장 좀 보태 말하면, 감독의 연기를 보면 지금 벌어지는 일로 느껴질 정도다. 대부분의 시리즈 관람 후기가 스토킹 이야기로 소개된다. 하지만 서사와 시리즈가 품고 있는 이야기는 더 복잡하고 내밀하며 깊고 찜찜해 단순한 스토킹 소재의 시리즈로 남기엔 아쉬울 정도다.
*서사를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는 순간 큰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 일부만 언급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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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의 바에서 바텐더로 일하는 주인공 도니(리처드 개드)가 여성 손님에게(마) 베푸는 ‘어설픈 친절’로 인해 일어난 사건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도니는 코미디언으로 성공하기 위해 런던으로 건너온 아직은 성공하지 못한 아마추어 코미디언이다. 그는 런던에서 생활하며 여자친구도 사귀게 된다. 심지어 여자친구 어머니 집에 얹혀살게 된다. 하지만, 연이은 코미디 공연의 실패와 생활비 부담으로 코미디언 성공과는 점점 멀어지고 있다.
상상했던 그림과 다른 런던에서의 차가운 현실에 그는 알게 모르게 소심해지고 자신감도 떨어지고 자존감에 상처도 입는다. 연고 없는 대도시에서 살아가는 일이란 본래 어려운 일 아니던가. 런던의 월세만 생각해 보면 어휴, 절레절 할 수밖에. 좋지 않은 상황으로 인해 자의반 타의 반 여자친구와도 헤어진다. 사실, 헤어진 원인으로는 생각보다 무거운 사건을 겪으며 영향을 받은 이유가 크다. 이는 시리즈에 있어 중요한 내용이기에 여기서 따로 언급하진 않으려 한다.
아무튼 이제, 도니는 전 여자친구 어머니의 집에 얹혀사는 전남친이 되어버린다. 도니는 어느 날 펍에 손님으로 온 ‘마사’라는 여성을 보게 된다. 한눈에 띄는 거대한 체구에 아무 말 없이 바에 앉아서만 있는 마사는 도니가 말을 걸자 스스로를 변호사라고 소개하며 자신을 포장한다. 변호사라고 자신을 소개했지만 그녀는 콜라 한 잔 사 먹을 돈이 없다고 말한다. 이때, 도니는 자신의 내면에서 우연히 또는 알 수 없는 이유로 발생한 나름의 친절을 베풀며 마사에게 다이어트 코크를 대접한다.
그 후로 마사는 도니를 보러 바에 매일 출근 도장을 찍는다. 옷차림은 매번 다르지만, 매번 음료는 사지 않고 도니가 사주는 음료를 받고서 도니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만 하다가 간다. 시간이 흘러 도니에게 먼저 플러팅을 날리기도 한다. 도니는 단호한 거절을 하지 않은 채 그녀에게 음료도 제공하며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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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도니가 의도했든 아니든 둘 사이의 관계는 알게 모르게 점점 변한다. 도니는 자신이 베풀었던 어설픈 친절이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가져올지 상상이나 했을까. 도니는 시간이 흐르고 깨닫게 된다. 자신이 어떻게 행동했어야 했는지. 하지만, 이미 너무 늦어버렸다. 둘 사이의 관계 변화를 보다 보면 남자와 여자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반적인 탐색전이나 플러팅 또는 이에 대한 미묘한 거절 섞인 돌려 말하기가 생각나며 웃기기도 하고 코미디 장르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하지만, 2편부터는 도니의 어설픈 친절이 불러온 나비효과에 대한 내용이 펼쳐진다. 더불어 하필이면 왜 도니가 어설픈 친절을 베풀게 되었을지에 대한 사연도 알 수 있게 된다. 더 직관적으로 설명하자면, 베이비 레인디어는 크게 두 가지 서사로 엮여있는데. 하나는 도니와 마사 사이의 사건. 다른 하나는 마사 이전에 도니가 겪은 사건이다.
도니가 겪은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 한 명의 인간이 얼마나 복잡한지, 자존감과 자아가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생각해 보는 계기를 만들어 주는 작품이 베이비 레인디어 라고 생각한다. 실제 감독 스스로 겪은 일이라서 감상하는 사람들이 더 입체적으로 이입하고 서사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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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시리즈의 특징은 감독이 배우로 출연해 정말 디테일한 감정 연기를 보였다는 것. 특히, 이를 풀어내는 주인공의 내레이션과 표정연기가 일품이다. 다른 인물들의 연기도 그렇다. 이런저런 포인트를 다 무시하고 도니와 마사의 연기만 따라가도 시리즈가 내뿜는 상업적 재미는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시리즈에서 연출하는 문자메시지 내용과 이를 번역한 한글 번역에 박수를 쳐주고 싶다. 초월 번역이라고 하지 않던가. 직접 보면 딱 들어맞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것이다. 문자 연출이 크리피 했던 적이 있었던가.
오래간만에 등장한 보기 드문, 특이한 실화 소재의 수작이다. 7회차로 구성되어 있지만 회차별 재생 시간이 길지 않아 큰 무리하지 않고도 감상 가능하다. 동시에 매 회차 촘촘하게 짜여있고 웬만한 스릴러 영화는 발라버릴 긴장감을 선사한다. 회차를 거듭할수록 찜찜한 느낌이 들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력 추천하는 바이다.
내가 주인공이었다면 어떤 결정을 했을지 생각하며 보는 것도 나름의 포인트가 될 것이다. 앞으로 시리즈가 더 나오게 될지는 모르겠다. 만약, 시즌 2가 나온다면 마사의 과거 이야기가 어느 정도 비중을 차지하지 않을까. 더불어 도니와 마사 사이의 사건이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지 궁금증 해소도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럼, <베이비 레인디어>의 찜찜한 늪에 빠져보길 바라면서.
나중에 꼭 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