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호프의 총기 난사 <페일 블루 아이 본 후기>
그동안 애니를 너무 많이 봤습니다
맨날 애니캐릭터만 보고 사람이 나오는 걸 보질 않다보니 거울 속에 비치는 제가 어느 순간부터인가 파오후가 될 것 같이 보이기 시작해서 충격을 먹을 뻔했어요(심지어 최근 살이 좀 찌기 시작해서...)
기분도 우울하고 날씨도 꾸물하니 뭔가 우울한 색감의 무거운 영화가 보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퇴근길에 넷플릭스를 켜서 <페일 블루 아이>를 켰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한번에 보진 못했어요
퇴근길이 끝나면 영화가 중반이었는데 집에 가서는 씻고 누울 생각밖에 없어서 이어서 보진 못했거든요
그래서 끊어가면서 결국 결말까지 감상을 완료한 뒤에 전 한가지 생각에 몰두했습니다
"왜 이어서 안 봤지...?"
때는 1830년대
육군사관학교에서 의문의 살인사건이 발생합니다
어떤 살인범이 생도 한 명을 무참히 살해한 뒤 시체를 참혹하게 훼손한 것이죠
이 사건의 수사를 위해 근처에 거주하는 퇴직한 형사 아우구스투스 랜도르 형사가 오게 됩니다
사건을 수사하는 도중 랜도르 형사는 한 술집에서 우연히 만난 생도에게 수사의 방향성에 대한 범상치 않은 조언을 듣게 되고 그 생도에게 관심을 갖게 됩니다
자신을 E.A 포라고 소개하는 생도는 육사에서 지내고 있으나 문학적 견해가 풍부한 젊은이였고 곧이어 랜도르의 수사에 같이 하게 됩니다
먼저 연기력에 대해서 논하고 싶습니다
예상치 못한 수준급의 연기력을 보고 놀란 가슴 쓸어내린 작품이거든요
크리스챤 베일이야 항상 피곤하면서 마음속 깊은 곳에 아물지 못하는 상처가 있는 중년의 형사를 누구보다 잘 연기할 것이라 모두가 예상했을 겁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정말 빛을 본 배우는 바로 에드가 앨런 포를 연기한 해리 멜링이었습니다
그 옛날 해리포터 시리즈의 더들리로 유명한 해리 멜링이지만 이제 슬슬 해리포터의 꼬리표를 떼어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해리 멜링이 이 영화에서 보여준 감정 연기는 눈앞에 함께 연기하고 있는 업계의 대선배님 크리스챤 베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뒤쳐지지 않고 오히려 자신만의 빛을 발휘한 연기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수사극의 형태를 띄고 있으나 자세히 보면 결이 살짝 다릅니다
수사를 하면서 동시에 인간관계에 대한 비밀, 랜도르의 상처, 포의 사랑 등 여러가지 이야기가 전개되거든요
물론 그렇다고 추리물로서의 결이 부족하다는 건 아닙니다
찢어진 쪽지의 일부만 가지고 편지의 내용과 목적을 추리하는 장면도 굉장히 흥미로웠거든요
하지만 추리물로 볼 수는 없는 내용입니다
이 영화는 범인이 누구인지 집요하게 추적하는 영화의 가면을 쓴채로 인간 드라마를 펼칩니다
뜬금없이 나오는 선배의 여동생에게 데이트 신청을 하며 플러팅 하는 포의 장면이 나온 것과 데이트를 하면서 동시에 현장에서 수사하는 랜도르의 모습이 교차편집되는 걸 보면 이게 뭔가 싶기도 합니다
그런데 앞서 말했듯이 이 영화는 추리극의 가면을 쓰고 인간드라마를 펼칩니다
추리극은 인간드라마를 더 돋보이게 만드는 장치로 쓰이고 결말에서 드러나는 진실을 보게 되면 결국 그 모든 것들이 다시 보이게 됩니다
체호프의 총이라는 이론이 있습니다
1막에서 총이 묘사되었다면 2막이든 3막이든 언젠간 그 총이 내용에 영향을 미쳐야한다는 이론입니다
간단하게 말해서 "무의미한 장면과 묘사는 있어선 안 된다"는 이론이죠
이 영화는 그야말로 체호프의 총을 난사해댑니다
관객은 처음엔 이게 왜 나오는지 이해하기 힘들고 그냥 등장인물들을 졸졸 따라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주구장창 따라가다 결말부에서 폭탄을 터트립니다
폭발을 본 관객은 그동안 영화에서 보았던 그 모든 것들을 이해하게 됩니다
내용에 대해서 말하고 싶으나 추리물의 특성상 단어 하나에도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서 말하기가 힘드네요
간만에 재밌게 본 수사물이고 결말에서 터트리는 감정은 대단하지만 그 과정으로 가는 길이 루즈한 면이 없다면 거짓말이기도 한 영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후반부에서 터지는 그 감정을 못 본다면 너무나 아쉬울 영화
제 점수는 10점 만점에 7.5점입니다
작성자 한줄평
"모두의 가슴엔 이야기가 있으나 어떤 이야기는 사랑이지만 어떤 이야기는 비극이다."
스누P
추천인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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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도 보려고 찜만 해뒀는데 조만간 챙겨 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