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를 기울이면 (1995) 걸작 걸작 애니메이션. 스포일러 있음.
"귀를 기울이면"은 지브리 스튜디오 애니메이션들 중에서 아주 이채롭다.
애니메이션 시작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바쁘게 돌아다니는 도쿄의 거리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 속애 끼어
움직이는 주인공이 작게 보여진다. 주인공은 특별할 것 없는 도쿄의 수많은 사람들 중 하나라는 것이다.
다음으로 그 소녀가 크게 클로즈업되고 이후 장면들은 소녀를 주인공으로 해서 소녀를 따라간다.
벌써 애니메이션 시작부터 애미네이션의 기본 요소 - 주인공이라는 개념을 부정한다. 저 도쿄거리를 다니는 수많은 사람들 각각이 이 애니메이션 주인공인 소녀 시즈쿠만큼 흥미롭고 중요하고 개성적인 사람들이라고
이 애니메이션은 제시한다. (애니메이션이 끝나면서 주인공은 거리를 지나가는 많은 사람들 중 하나로 다시 보여진다.)
시즈쿠는 중학교 3학년 학생이다. 문학에 관심이 많지만, 책을 엄청 많이 읽고 글을 많이 써보고 그러면서 즐긴다는 것이다. 진지하게 문학을 자기 인생의 커리어로 삼는다거나, 창작 공부를 한다든가, 내가 정말 문학에 재능이 있는지 같은 본격적인 고민은 아직 없다. 멀하자면 문학소녀다.
이 시즈쿠에게 여름방학 동안 발생하는 사건들이 이 에니메이션의 내용이다.
이 시기 (성장기), 중학교 문학소녀 시즈쿠에게 하루 하루는 엄청난 변화나 성장이 발생할 수 있는 순간이다.
하물여 여름방학이야! 시즈쿠에게 그녀의 일생을 바꿀 많은 사건들이 발생한다. 우리가 보면 그냥 평범한
사건들로 보일 수도 있다. 그것은 우리가 닳고 닳아빠진 때문이다. 시즈쿠의 눈으로 보면, 아름답고 황홀하고
동화적이고 마법적이고 로맨틱한 사건들이다, 그녀의 자아가 상해지고 성숙해지면서, 그녀는 이런 사건들의 주인공이 되고 이 사건들로부터 자신의 삶에 대해 깨닫고 배운다.
"소녀의 성장기" 같은 식으로 재미없게 요약하지 말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소녀의 꿈 이야기"같은 식으로 요약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 애니메이션은 너무나 많은 매력적이고 동화적이고 흥미진진한 에피소드들로 가득차 있다.
지금 보면 수수해 보이지만, 손으로 일일이 수채화적으로 그려진 그림이 아주 감동적인 느낌을 준다.
내가 아주 좋아하는 장면은, 애니메이션 처음 시즈쿠가 집을 나와서 학교로 가는 긴 시퀀스다.
중학교 소녀의 눈에 비친 세상을 아주 잘 보여준다. 세상이 온통 아름답고 행복하고 동경에 차 있다. 아마 이런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이는 이 사이트에는 없을 것이다. 이 놀라운 애니메이션은 시즈쿠의 시점에서 이 아름답고 동경에 찬 세상을 그려내는 데 성공하고 있다. 아무리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속에 나오는 세상이더라도, 그것을 볼 능력이 없는 우리들로서야 어쩔 도리가 없다. 따분하고 모순에 찬 시끄러운 세상을 살아가는 수밖에.
시즈쿠는 친한 친구 유코와 함께 노래를 준비하고 있다. 존 레논의 테이크 미 홈 컨트리 로드라는 노래에
시즈쿠는 자기 시를 가사로 붙인다. 시즈쿠는 "오솔길 걸어가면 작은 집이 있고......"같은 식으로 애매하게 시를 쓴다. 삶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고 생각해 볼 기회도 없었으니 그냥 막연하고 이쁜 단어들만 냐열했던 것이다.
이 애니메이션을 통해서 시즈쿠는 계속 새로운 가사를 쓴다. 시즈쿠가 자기 삶과 꿈에 대해 생각하고 자아가 강해지고 하면서, 가사들은 점점 더 구체적이 되고 문학적으로 성공한 글이 되어 간다. 마지막에는 "나는 나의 고향에 가지 않을 거야. 나에게는 가지 않은 길이 있어."같은 식의 가사를 쓴다. 시즈쿠가 계속해서 개작하는 가사들은, 시즈쿠의 내면적 성숙을 보여주는 효과적인 장치다.
시즈쿠는 도서관에 있는 책들을 다 읽는다. 여름방학 때까지 학교에 찾아가서 책을 읽는다.
그런데, 시즈쿠보다 한발 앞서 이 모든 책들을 읽는 남학생이 있다. 세이지라는 남학생이다. 시즈쿠는 세이지가
어떤 사람일 지 궁금해진다. 러브 레터의 줄거리와 비슷하다. 그런데, 시즈쿠가 자기가 쓴 가사를 의자 위에 실수로 놓고 와서 찾으러 갔는데, 어떤 남학생이 의자에 앉아 시즈쿠의 시를 읽고 있다. 남학생은 허락 없이 시즈쿠의 시를 읽고 비웃고 사라진다. 당연히, 이 학생이 세이지이다. 그는 시즈쿠를 좋아해서 일부러 관심을 끌려고 시즈쿠를 조롱한 것이다. 아마 그는 시즈쿠 주위를 혼자 맴돌다가 벤치 위에 시즈쿠가 시를 남겨놓자 얼른 가서 읽었을 것이다.
세이지와 시즈쿠의 러브스토리(?)가 이 애니메이션의 한 축이다. 학교 공부를 잘 하지만, 세이지는 다 내팽개치고
이탈리아로 유학갈 계획이다. 바이올린 제작을 배우기 위해서다. 바이올리니스트도 아니고, 바이올린 제작자라니 특이하다. 시즈쿠는 자기도 영감을 받아서, 세이지처럼 문학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지금까지는 그냥 좋아서 했다.
하지만 이제 다르다. 시즈쿠는 그냥 짧은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긴 장편소설(동화?)를 써보기로 한다.
자기가 재능이 있을까? 좋은 소설을 쓸 수 있을까? 지금까지와는 달리 시즈쿠는 불안감을 느낀다.
시즈쿠가 이 애니메이션 안에서 쓰는 소설제목이 바로 유명한 "고양이의 보은"이다.
시즈쿠와 고양이가 허공을 날면서, 고양이가 "좋다. 이제 바람을 탔어. 이제 저 높은 탑 위를 단숨에 날아 건너자."하는 대사가 유명하다. 저 무한한 공간을 바람을 타고 자유롭게 날아가는 장면 - 시즈쿠가 바라보는 상상력 속의 세계다.
시즈쿠가 쓴 "고양이의 보은"을 읽은 노인은, 이것을 읽고 시즈쿠 안에 있는 문학적 상상력의 가능성을 발견한다.
시즈쿠와 세이지가 나중에 서로 사랑(?)하게 되는 이유는, 둘이 같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 지루하고 못난 세상에서 아름답고 동화적인 세계를 본다. 자기가 보는 그 아름다운 것을 위해 평생 이를 추구하며 살아갈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다. 펑범한 소녀 시즈쿠는 어느 여름방학 동안 여기 눈뜬다. 그리고, "고양이의 보은"이라는 소설을 완성한다. 그녀는 이제 더 이상 자기 꿈 변두리를 서성서리는 소녀가 아니다. 그녀는 이제 자기꿈 실현을 위해 한 발자국 꿈 안으로 들어선 것이다. 어엿한 소설가다.
이렇게만 이야기하면, 이 영화가 딱딱한 성장기처럼 보일 지 모르지만, 이 애니메이션은 그런 이야기는 눈꼽만큼도 하지 않는다. 이 애니메이션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환상적아고 동화적이다. 굉장히 풍성하고 아름다운 환타지이다. 현실을 벗어나 환타지라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 속에서 시즈쿠가 환상과 동화를 끄집어내기 때문에, 평범한 세계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세계가 되는 것이다. 이 애니메이션은. 시즈쿠의 시선에서 시즈쿠가 어떤 길을 어떻게 해서 걸어가게 되었는지만 보여준다. 멋없게 직설적으로 주제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여기에서 주제를 끄집어내든, 그냥 시즈쿠가 보는 세계를 즐기든, 그것은 관객 몫이다.
세이지는 바라던 대로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났다가 잠시 돌아온다. 그리고, 세이지는 시즈쿠를 데리고 동네 뒤의 언덕으로 자전거를 타고 올라간다. 시즈쿠를 뒤에 태우고 끙끙거리며 간신히 올라간다. 세이지는
"너를 자전거에 싣고서 저 언덕 위까지 데려가기로 결심했었어"라고 한다. 시즈쿠는 자전거에서 내려 자전거의 뒤를 민다. "짐이 되는 것은 싫어" 정말 훌륭한 대사고 감동적인 장면이다. 저 높은 곳까지 아무리 힘들어도 널 데려가겠다는 세이지나, 짐이 되는 것은 싫다고 내려서 함께 밀어주는 시즈쿠나 감동적이다.
세이지는 언덕에 올라 시즈쿠에게 프로포즈(?)를 한다. 자기가 바이올린 제작자가 되어 귀국하면 결혼하자는 것이다.
시즈쿠가 이를 승락하고 둘은 즐겁게 언덕을 내려온다. 새벽이 와서 서서히 해가 떠오르기 시작한다. 세이지나
시즈쿠에게 아름다운 인생은 이제 시작이다. 바람을 타고 훨훨 허공을 날아 높은 탑을 단숨에 넘어가는
모험은 이제 이들에게 시작이다. 이들은 함께 한 방향으로 이 가슴 뛰는 모험을 할 것이다.
세이지와 시즈쿠에 대응되는 사람이 세이지의 할아버지다. 성공한 인형제작자인 그는 많은 것들을 이미 성취하고, 모든것을 가졌다. 예술성, 지식, 기술, 자기 가게 등. 오십년 전의 세이지와 시즈쿠다. 그는 세이지와 시즈쿠를 이끌어준다.
그는 세이지와 시즈쿠를 보면서 오십년 전의 그를 회상한다. 그는 서글픈 노스탤지어를 느낀다. 그도 유럽에 유학할 때 사랑하는 여자를 가졌었다. 하지만 2차세계대전 동안 여자와 헤어졌다가 돌아와보니 여자는 행방불명되었다. 말하자면 시즈쿠와 영원히 헤어져 평생 그리워하는 세이지다. 여자와 헤어지면서 고양이인형은 자기가 갖고 그 고양이의 여자친구인형은 자기 여자친구가 가졌었다. 곧 돌아와서 두 인형들을 하나가 되게 하자고 약속하고 헤어졌었다.
하지만, 어찌 알았으랴?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그는 여자친구와 영원히 헤어지고, 고양이인형은 여자고양이인형과 영원히 헤어졌다. 이 고양이인형을 주인공으로 시즈쿠가 "고양이의 보은"이라는 소설을 쓰는 것도 인연이다.
시즈쿠가 고양이인형을 소재로 소설을 쓰는 동안, 세이지의 할아버지는, 과거 사건들이 되살아나는 것을 느끼고 슬픔에 잠긴다. 이 노스텔지어 넘치는 장면도 가슴 뭉클한 명장면이다.
이 애니메이션은 굉장한 걸작이다.
추천인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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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딩 커플이 결혼 약속 하는 엔딩 때문에 불편해 하는 애기 엄마 친구가 있었어요...ㅎㅎㅎ
스튜디오 지브리의 차세대 감독으로 기대를 받았는데
지병으로 요절하는 바람에 아쉬움이 더욱 컸죠.
미야자키 하야오가 내가 죽였다고 자책을 엄청 했다고 하죠.
토토로든 하울이든 별 감흥 없었지먄
이작품과 추억은 방울방울 두작품만큼은 정말 좋더군요
굉장한 영화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