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 [내가 처음으로 사랑한 소녀] 그때 그 시절, 말할 수 없는 사랑
남녀공학으로 중학교까지 다니다가, 난생 처음 보내게 된 여고시절은 새로운 세계였습니다.
내향적 성향이고, 아웃사이더 기질이 다분했지만 겉보기엔 모험생인 척 조용히 그림자처럼 다녔던 그때 그 시절.
지금 와 회상해 보면, 고작 3년이었을 뿐인데, 좀처럼 적응하기가 힘들었습니다.
입지 않던 교복 때문였는지, 없었던 여러 가지 교칙과 하지 말아야 하는 것들이 늘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고등학교 시절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결코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기를 꼽으라면 그 시절을 뽑고 싶습니다.
그래도 그리운 건, 친구들과 함께 갔었던 떡볶이 가게, 미묘하게 오고 갔던 대화들.
성적이 떨어지고, 현재 내가 이런 상황인데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서 이야기했을 때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몰랐던 때.
바로 옆 상업고등학교 배구부 선수를 보면서 다른 친구들이 환호했던 기억이 납니다.
왜 친구들이 환호하는지 영문을 몰랐던 그 시절, 혹시 성 정체성으로 고민하고 있을 친구가 있을 거란 상상 따윈 할 수 없었던 시대.
그때 그 시절을 회상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내가 처음으로 사랑한 소녀>.
※영화를 보지 않은 분들에게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주의 부탁드립니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건 당연한 감정이야.
하지만 넌 아직 어려.
내가 처음으로 사랑한 소녀
한여름 쏟아지는 폭우처럼 빠져들었던 첫사랑의 기억
현재 결혼식을 앞둔 실비아의 부탁으로 들러리를 서게 된 윙.
드레스를 좋아하지 않지만, 실비아를 위해서 입어야 한다고 결심하는 윙이 회상하는 과거 시절 두 사람의 이야기로 시작하는 영화는 2001년도의 홍콩으로 돌아갑니다.
응답하라 시리즈처럼 현재 30대를 앞둔 M 세대의 여고시절의 기억 속 윙은 홍콩의 학교 시스템으로 12년간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여학생들 사이에 있었습니다.
늘 반장은 도맡아 하는 모범생이고, 아버지가 일본 관광 가이드를 하시기에 아마도 중류층 이상의 부족함 없이 사랑받고 지내는 평범한 학생이었습니다.
친한 친구는 소수만 깊게 사귀는 스타일이어서, 단짝 친구인 실비아와 늘 함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털어놓던 사이였습니다.
사이좋은 두 사람 사이가 미묘하게 변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 사건의 발단은 윙이 짝사랑하는 미술 선생님에게 혼자만 쓰는 고백 쪽지를 실비아가 전달해버린 것이었습니다.
선생님에겐 다른 친구들에게 받은 쪽지들이 가득했고, 혼자만의 짝사랑을 본의 아니게 전달해서 확실하게 차여버린 윙은 실비아에게 서운함을 전달합니다.
왜 쪽지를 전달해버렸냐고 따지니, 너를 좋아해서 그런 거라고 고백을 하는 실비아를 갑자기 의식하게 돼버린 윙.
농담처럼 장난스럽게 넘기는 실비아를 보면서, 윙은 고백에 대해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지나갑니다.
아무 말 하진 않았지만, 어쩐지 예전보다 더 가까워지는 실비아와 윙.
때론 수업을 빼먹기도 하면서 둘만의 시간을 보내면서 점점 가까워지는 둘은 우정 이상의 감정을 느끼게 되면서, 서로의 감정을 확인합니다.
하지만, 천주교 계열의 학교 안에서 다른 친구들이 서로 친밀해지다가 교장선생님에게 걸려서 처벌받는 모습을 보면서 불안해하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교장선생님의 눈에 두 사람의 모습이 띄게 되고, 둘은 각각 부모님에게 주의를 받게 되고, 두 사람은 원치 않는 이별을 하게 됩니다.
이후로도 다시 만나게 되었지만, 둘의 상황은 예전 같지 않음을 느끼게 됩니다.
두 사람의 관계는 어떻게 변해갈까요?
여름비를 맞으면서 무럭무럭 자라나는 두 사람의 감정
영화는 순정만화 속 장면처럼 청초하고 푸릇푸릇 한 아름다운 영상으로 가득합니다.
오영산 감독의 실제 경험담을 다룬 이야기이고 14년간 홍콩의 전통적인 여학교에 재학해서 디테일을 살리려고 노력했다는 말처럼 아름답지만, 아픈 성장통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작품을 윙의 입장과 실비아 입장에서 각각 비교하면서 감상하면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첫 장면이 가지는 느낌과 의미는 작품을 감상하면서 달라지게 됩니다.
영화상에서 반복되는 장면은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오며, 예전엔 모르고 지나갔던 감정들이 마지막으로 가면서 밝혀집니다.
자신의 뜻대로 모든 걸 할 수 없는 어린 시절 한때 지나가는 감정쯤으로 생각하는 부모님들의 모습, 강압적으로 헤어지게 하는 학교.
사랑하지만, 상대방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몰라 장난처럼 지나가며 몰래 숨겨야 하는 감정.
너무나 다른 두 사람의 환경, 늘 함께 하고 싶고 사랑에 올인하고 싶지만, 언젠가 다른 길을 가야 하는 걸 잘 알기에 쉽게 잡아둘 수 없고 표현할 수 없습니다.
다가가야 할지, 말지 조심스럽게 망설이는 스킨십과 시선들.
그렇게 억누르던 감정은 전교생이 보는 앞에서 비 오는 날 격렬하게 키스를 하면서 폭발합니다.
두 사람의 모습은 아름다웠지만, 이후 두 사람에게 가해진 감정적 폭력, 윙과 실비아가 겪었던 마음의 상처는 컸기에 가슴 아팠습니다.
똑똑하고 매사 확실했고, 꿈도 확실했던 실비아는 영화감독을 꿈꿨습니다.
영화가 너무 좋아서 결말까지 안 보고 집에 가서 혼자 생각해 보고 싶다는 실비아.
윙은 실비아와 헤어진 뒤 실비아의 꿈을 자신의 목표로 삼습니다.
시간이 흐른 뒤 2003년 우연히 마주치게 된 두 사람이 각자 겪게 된 연애담과 상처, 그 속에서 생긴 트라우마도 성장통이라기엔 너무 아팠습니다.
실비아와 헤어졌던 시기는 흑백으로 그려집니다.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의 시기와 2001년도 영화 초반에 등장했던 장국영이 2003년 자살하는 뉴스로 우울함을 표현합니다.
마치 거짓말처럼 마주쳤던 2003년도 두 사람에게는 또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요.
마지막까지 자신의 이야기를 회상하면서, 감독은 질문을 던집니다.
영화는 바로 저 질문에서 시작한 이야기였습니다.
(영화 원제목인 喜歡妳是妳 이 함축되어 있는 질문과 주제)
그때, 너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을까?
고등학교 때 우리가 나눈 감정은 사랑이었어?
내가 처음으로 사랑한 소녀
대만 영화지만, 비슷한 시기를 다룬 작품인 <남색 대문>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넷플릭스와 왓챠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스포가득한 제 리뷰 https://extmovie.com/movietalk/67625360 )
여름을 지나면서 겪게 되는 3명의 소년, 소녀들의 예민하고 모든 게 불확실한 시기 겪게 되는 성장통을 그린 청춘영화였습니다.
"여름이었다"라는 문장이 그야말로 잘 어울리는 작품은 소녀와 소년의 미묘한 감정과 여백의 미를 잘 살린 일본 애니메이션 감성의 작품이었습니다. 이 작품을 처음 접한 순간 <남색 대문>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감상하면서 떠올랐던 작품은 <너의 결혼식>을 리메이크한 <여름날 우리>였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보게 된 <나의 서른에게>, <프린스에드워드 역에서: 내 오랜 남자친구에게>도 떠올랐는데, 이 작품들과의 공통점은 홍콩 영화라는 점, M 세대를 다루고 있다는 점일 것입니다.
<남색 대문>이 소년, 소녀의 아픈 성장통으로 깔끔하게 마무리 지었다면, 이 영화는 서로 끌렸고, 사랑했던 두 소녀가 청소년기를 지나 성인이 된 후의 재회도 다뤘기에, <여름날 우리>와 <윤희에게>가 떠오르게 합니다.
<윤희에게>에서 대사로 표현된 두 사람의 과거 이야기를 다뤘던 느낌이랄까요?
영화보면서 떠올랐던 작품들
남색대문, 나의 서른에게, 프린스 에드워드역에서, 여름날 우리, 윤희에게 하나와 앨리스, 워터릴리스
영화보다 명확하게 와닿았던 메시지는 엔딩 크래딧에 나오는 인터뷰 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엄격했던 사회적 상황과 시선들 때문에 얼마나 많은 소녀들이 그 감정을 그저 한때 지나가는 착각이라고 생각하며 억눌러야 하고, 이별해야 했을까요.
말할 수 없고, 묻어둬야만 했던 소녀 시절의 감정들을 하나하나 이야기합니다.
소리 낼 수 없는 사랑을 했을 그때, 그 시절의 소녀들.
네 인생에서 난 조연이었다는 걸 깨달았어.
미래에는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
내 인생에 또 다른 실비아가 가장 친한 친구로 영원히 남을 거야.
내가 처음으로 사랑한 소녀
*영화와 상관없는 내용이지만 동명 작품(영문작마저 같음)인 2016년작 미국영화도 궁금해집니다.
(혹시 보신 분 있으면 소감 좀 이야기해주세요~)
마지막 궁금증.
이 영화 시사회에 왜 그렇게 사람이 없었는지 살짝 이해가 가지 않았네요.
그날 다른 시사회가 있어서인지여서 모르겠는데, 언론 시사회도 사람이 너무 없었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갸우뚱.
쥬쥬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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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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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그래도 익무에서 기회를 얻어서 홍콩 인디 영화를 봐서인지 그냥저냥 감상할만했었는데,
소재때문인가 잠시 생각해보기도...
말씀하신대로 각각 다른 매력이 있는데, 전 대만 로맨스 영화가 취향에 맞고.
홍콩 인디 영화가 괜찮은 거 같아요. 예전의 왕가위 영화같은 느낌은 없지만, 홍콩 영화도 나름의 분위기가 있습니다.
중국 로맨스는 흠...너무 설명과 감정이 넘쳐서 영상이 아무리 예뻐도 전 취향에 안 맞더라구요.
이 영화도 홍콩영화인거 보고 신청했어요. (맨날 중국 영화를 대만영화로 착각해서 신청했던 1인)
이 작품도 기대중입니다 ㅎㅎ
후기 보니 무난하게 나왔나보네요
감독분이 두분인데, 저는 일단 홍콩 인디영화를 봐서인가 큰 기대를 안했습니다.
너무 기대를 올리지 말고 보시길 바랍니다. 아무래도 신입이라 풋풋한 면이 있는 영상이라고 생각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전 두 소녀와 그 시절 그냥 떠나보내야 했던 감정들을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으로 감상했습니다.
영상미와 감정선에 치중하면서 감상하시길 바랍니다.
비슷한 느낌이었습니다
보면서 보고 나오면서 여름날우리와 남색대문이 떠오르면서 나왔거든요
색감은 여름날우리 학창 시절때의 느낌이나 교복입은 모습은 남색대문
대만영화느낌인데 홍콩영화라해서 😅
나소시는 재개봉때 지역에서 이른시간만 걸어준터라 못봐버려서 다시 재개봉하면 챙겨보겠습니다
비주류인 홍콩 영화고 그래서 적게 왔나 보네요. 후기 잘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