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의 삶> 설명 대신 자리잡은 해석 -여러 요소에 대해-
(스포가 있습니다)
최선의 삶은 어떤 메시지를 강조하는 영화가 아니다. 그저 스며드는 영화였다.
# 스노우볼
원작에서 스노우볼이란 제목으로 처음과 끝에 수미상관되는데 작품은 겉으로 표현하고 있지 않지만 사실 스노볼을 영상에 담아내었다. 도입부 일상적인 폭력이 서려있던 학교의 나레이션과 결말부 실제 눈내리는 모습을 정사각 화면비에 담아 스노우볼을 표현한다.
(소설 도입부 강이의 강아지 '강이'는 눈을 무서워한다. 동시에 어떻게 해야할지 모를 정도로 좋아한다. 가출을 통해 무서움이 도사린 공간에서 강소아 셋은 두려워하며 즐겁게 지낸다. 이 스노우볼은 이들이 처한 공간이나 현실을 나타낸다.)
# 부드러운 폭력과 거친 폭력
강이와 아람이 겪는 폭력에 대해서다. 아람은 가출 후 머리를 잘라버리거나 평소에 직접적인 구타를 일삼는 가정에서 산다. 매번 멍이 든채로 학교에 오는 아람이다.
그리고 가출 후 돌아온 강이에게 아버지는 꽃다발을 건넨다. 하지만 표정은 굳어있다. 시각적으로 보이는 폭력이 아니기에 다르지만 아람과 강이가 겪는 건 비슷하다.
그토록 공포가 서려있고 떠나고 싶은 집(읍내동)인데, 부모들은 각자의 압력을 통해 강이와 아람을 떠나지 못하게 한다. 이런 압박은 둘다 어떤 형태이든 폭력으로 아람과 강이에게 작용한다.
# 강이와 엄마
엄마는 신앙심이 깊은 불교 신자로 나온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기도를 한다. 그리고 하루 모텔에서 자고 온 자식을 찾기보다는 일단 기도를 하는 모습에서부터 신의 도움이 있길 바라는 수동적인 면모가 보인다.
그러나 강이도 다르지 않다. 자신보다 전능한 존재를 따라다니지 않나. 바로 소영이다. 엄마가 내내 신에게 붙어있는 걸 강이는 기도하는게 아니라 나를 찾았어야지란 말을 하지만 누군가에게 붙어있다는 게 사실 별반 다르지 않았다는 걸 '줄지 않는 국화 꽃을 따는' 엄마를 보며 깨달았을 것이다.
강이는 자신의 행동이 소용 없다는 것을 깨닫고 그렇게 칼을 잡게 되지 않았을까.
# 줄지 않는 국화꽃
강이의 엄마와 강이는 자주가는 절에 간다. 기도를 매번 올린다. 그 후 국화꽃을 딴다. 그런데 갑자기 엄마가 오열을 한다.
강이가 집으로 오게 하달라는 기도는 매번했어야했으며
강이의 성적이 매번 오르길 기도했다.
매번 기도해야한다.
끊없는 기도를 언제까지 해야할까. 언제가 되어야 기도가 줄어들까. 엄마는 그렇게 국화꽃도 매번 따야할 것이었다. 그래서 엄마는 오열한다.
이상했고, 무서웠고, 좋아했던이란 문구가 먹먹해진듯이 그 시절을 강소아처럼 지낸 우리를 울릴 작품으로 남을 것같다. 나에게는 특히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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