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며느리 (1965) 최은희의 걸작
코메디영화는 무조건 웃기는 것이 미덕이다. 세부까지 구석구석 웃길 수 있으면 더욱 좋다. 하지만 이것이 쉽지 않다.
가령 짤막한 코메디 스킷을 여러개 늘어놓아서 웃기게 만들었다면 그것은 영화로서 성공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심형래 식 오버액션으로 억지 웃음을 이끌어냈다면 이것도 웃기지 않다. 쓴 웃음을 지었을 뿐이니까. 영화적 구성을 단단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각 장면들을 조율하면서, 동시에 각 장면들을 활기차고 매력적이고 웃기게 만드는 것은 무척 어렵다. 등장인물들은 개성적이고 입체적이며 생동해야 한다. 웃기기 위한 목적으로 캐리커쳐같은 공허한 인물들을 내세우는 것은 관객들의 눈에 쉽게 간파된다. 이 영화 민며느리가 걸작인 이유가 여기 있다. 이 요건들을 다 만족시킨다.
스타일 상으로 보면, 남편인 신상옥 감독의 걸작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와 비슷한 점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몰락 양반의 딸인 점순은 집안의 빚 때문에 어느 (벼락부자?) 집에 민며느리로 온다. 남편(?)은 동네방네 웃통 벗고 다니며 배꼽자랑하는 어린이. 이건 뭐 남편이 아니라 어린 동생 키우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남편 머리를 빗겨주다가
최은희: 좀 가만 있어, (군밤을 준다.)
남편: 아야. 이게 하늘같은 서방님을 막 군밤을 줘?
최은희: 남자 구실을 해야 서방이지. 무슨 서방 행세를 하려 해? (다시 군밤.)
남편: 내가 어리다구 막 무시하구. 엄마한테 일러서 맨날 나 무시한다고 할 거야.
최은희: 그래, 나 집에서 쫓겨나는 꼴 보고 싶으면 일러.
남편: 색시, 내가 잘못했단 말이야. 나 안 이를 거야.
이게 이 부부(?)의 일상이다.
악착같이 고리대금을 해서 재산을 일군 독종 황정순이 시어머니다. 밖에서나 악착같이 굴면 좋은데 집안에서 가족들에게도 악착같이 군다. 특히 며느리에게 더하다.
"들인 돈이 얼만데" + "내 귀여운 아들을 빼앗아갔어" 하는 마음에.
마음이 넓고 며느리를 위해주는 시아버지 김희갑은 아내에게 쥐어사는 통에 며느리한테 큰 도움을 주지는 못한다.
좀 천방지축이지만 생각은 똑바로 박힌 머슴 삼룡이 역에 불세출의 코메디언 서영춘이다.
이정도 개성있는 인물들을 창조했으면 그 다음은 영화가 저절로 굴러간다.
대배우들은 코메디 연기도 잘한다. 김희갑이나 서영춘은 역대급 코메디언들이지만, 황정순의 능청스럽고 웃기는 타이밍을 칼같이 맞추는 연기도 이들 못지 않다. 최은희의 능청스런 민며느리 연기도 김희갑, 서영춘 못지 않고.
이 영화의 내용은 사건보다 일상이다. 이 개성적인 캐릭터들을 함께 모아놓으니까, 그냥 일상만 보여줘도 웃긴다.
최은희가 심신이 피폐해지니까, 어린 남편은 그래도 마음이 쓰여서 아내 편을 들며 어머니 황정순과 싸운다. 역효과다. 황정순은 더 분한 마음에 며느리
최은희를 더 괴롭힌다. 황정순과 김희갑의 표정 연기, 목소리 연기가 굉장히 웃긴다. 전설적인 코메디언 서영춘을 압도할 정도다.
최은희는 마음고생을 하다가 결국 병에 걸려 친정으로 쫓겨간다. 그러자 꼬마신랑은 꾀를 내어 중병이 걸린 척 연기한다.
황정순은 아들이 잘못될까 봐 하늘이 노래져서, 최은희를 찾아가 손이 발이 되도록 빌며 돌아와달라고 애걸한다. 황정순은 겉으로는 악독하지만 속으로는 뒷끝이 없고 착하다. 또 무드에 굉장히 약하다. 시아버지가 이를 알고, 겉으로는 고개 숙이는 척 하지만, 능수능란하게 황정순을 요리한다. 시아버지 승이다. 해피엔딩이다.
이 코메디의 성공은, 개성적인 인물의 창조, 생동하는 인물들, 황정순 등 대가급 배우들의 절묘한 코메디 연기와
탄탄한 각본 등에 있다. 대가급 배우들도 배우들이거니와, 감독 최은희의 역량도 대단하다. 남편인 신상옥 감독의 영향도 받은 것 같고.
신상옥 감독이 이 영화는 걸작이다 하고 단언했던 이유가 있다.
우리나라 영화사 상 여류감독이 만든 걸작들 중에서는 탑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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