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발리우드] 《세 얼간이》 맛살라톡 리뷰
패널소개
raSpberRy(호스트, 인도영화 블로그 Meri.Desi Net 운영자) // 검은 색 표기
Y모님 // 피케이, 바지라오 마스타니 편 참여
Pa모님 // 최초 참여
Pu모님 // 최초 참여
D모님 // 최초 참여
C모님 // 피케이편 모더레이터
세 얼간이는 인도영화의 표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인도에서나 우리나라에서나 공통적으로 엿볼 수 있는 교육의 현실이라는 측면에서 공감을 했던 것 같습니다. 이 영화가 우리나라에서 개봉되던 2011년 당시에도 우리나라 최고의 명문대인 KAIST 출신 학생들이 자살하는 일이 발생했죠. 여담이지만 KAIST에서 시사회도 했었고요.
이렇게 영화에서 벌어졌던 일이 실제로도 일어나니 사람들은 영화 속에 그려진 모습들이 인도만의 이야기는 아닌 것 같고 또한 우리도 저렇게 교육열도 높고 주입식 교육도 하는 모습을 보니 공감대를 느꼈던 건 아닌가 합니다. 그게 우리나라에만 국한 된 것이 아니라 일본과 같은 동아시아 권역에서도 어필을 하면서 영화는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개봉 당시에는 30분 편집이 되어 140분 버전으로 개봉이 되고 요청에 의해 청원을 통해 나중에야 일부 상영관에서 인도판인 170분 버전이 상영이 된 바 있습니다. 그 일부 상영관에서 2천여 명의 관객을 모으며 나름 선방을 했습니다.
그런데 당시에는 판본이 이상했는지 영화가 화면에 꽉 차게 영사되지 못하고 사각에 블랙바가 생기는 현상이 발생하더라고요.
C: 그건 영상을 인코딩 할 때 정보량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부분입니다. 아마 그 판본이 들어오지 않았을까 합니다.
그런데 이번에 수입하신 분들은 제대로 된 판본을 가져오셨던 것 같아요. 이번 추석 특선에 상영되는 버전은 모두 이 완전판으로 상영되었다고 합니다.
보편성과 특수성
영화가 개봉되기 1년 전 영화는 부천국제 판타스틱영화제에서 《못 말리는 세 친구》라는 제목으로 공개되어 상영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가 국내 들어왔을 때 성공할 것이라는 의견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많이 갈렸던 것 같습니다. 어떤 분은 우리나라에서도 적용될 수 있는 요소에 대해 공감하기도 했지만 다른 분은 ‘이 영화는 인도영화 레귤러야’하면서 이 영화가 우리나라 사람에게도 공감대를 얻을 요소들을 가지고는 있지만 결국은 인도영화가 국내에서 적용되지 못할 요소들을 가지고 있는 다른 인도영화들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영화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많이 봤고 또 이번 맛살라톡을 위해 영화를 다시 감상하면서 어느 정도는 이 영화를 비판하시던 분들이 왜 그런 이야기를 했는지도 이해가 가는 게, 인도영화의 경우는 감정표현이 매우 직설적이고 감정 기복의 고저차가 큽니다. 《세 얼간이》만 보더라도 주인공들이 시도 때도 없이 울잖아요. 란초도 울고 파르한도 울고 라주도 울고 심지어는 비루 학장까지도 울죠.
그리고 극적 구조도 굳이 그렇게 몰아갈 필요도 없어요. 왜 학장이 시험 문제를 학생들이 빼돌리는 날에 학장의 딸이 출산을 하고 왜 또 비가 오는데?
여기에서 인도의 맛살라 영화의 또 다른 정의(定意)가 나오는데 '춤과 노래가 나오는 영화'라는 뜻 말고 또 하나를 이야기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맛살라는 인도에선 ‘양념’쯤 되는 뜻이고 거의 모든 인도 음식에 들어갑니다. 이처럼 영화에도 그런 ‘양념’이 들어간다는 것이죠. 이를테면 인도영화에서 음악이 많이 사용되는 이유가 그런 것이죠. 춤 노래 역시 그런 양념이고요. 영화 속의 감정 기복 등등 그런 것들이 하나의 인도영화 안의 맛살라 양념처럼 작용하고 있는 것이죠. 그리고 이런 요소들이 어떤 관객에게는 안 맞을 수도 있는 것이고요.
이를테면 '나는 유럽의 사실주의 사조의 영화를 좋아한다'고 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영화는 상성에 맞지 않을 겁니다. 왜냐하면 그런 영화들은 표현의 절제를 미덕으로 삼는 감독들에 의해 만들어지거든요. 이와는 반대로 인도영화에선 왜 알고 싶지도 않은 주인공의 머릿속에 있는 사랑의 감정들을 봐야 하는데? 마치 스타워즈에서 한 솔로와 레아의 대사처럼 “사랑해요” / “알아요” 얼마나 담백해. 그런 까닭에 인도영화의 넘치는 감정 표현들이 익숙지 않은 분들에겐 인도영화가 부담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Pu: 문화의 차이라는 것은 그 나라의 국민성이나 문화가 그렇다 보니 그렇게 되는 것이고 그것을 거부감을 가지고 볼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Pa: 그럼 인도 사람들에겐 그게 당연한 건가요?
네. 이 영화 말고도 감정표현이 직설적인데 이를테면 우리나라에서도 성공했던 《블랙》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인도의 국민배우 아미타브 밧찬이 출연했던 영화중에 *《까비꾸시 까비 감》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이 영화를 보면 밧찬이 아들인 샤룩 칸에게 혼을 냅니다. 역정을 낼 때...
* 까비꾸시 까비 감(Kabhi Khushi Kabhie Gham...)은 2001년 작품으로 국내에 정식 수입이 되었으나 단 두어 차례의 시사회만 가지고 사라져버렸다. 지금은 ‘때로는 기쁨 때로는 슬픔’이라는 제목으로 리핑판 DVD로 출시되어 있다.
Pu: 귀싸대기를 때리죠
귀싸대기도 때리지만 역정을 낼 때 번개가 꽈광하고 치죠. 실제로는 번개를 칠 필요가 없죠. 그런데 인물만 그런 것도 아니고 주변 상황, 스코어, 효과음도 그런 식으로 들어가 있죠.
Pa: 사람들이 인도영화에 대한 편견을 가지잖아요. 제가 그랬던 경우인데, 인도영화라고 하면 ‘길고 노래 나오고 춤추고 사람들이 일어나! 안 돼!’ 했어요. 영상으로만 봐도 거부반응이 들었는데 군대에서 (인도영화를) 틀어주니까 보게 됐어요. 주위 선임들은 자고 있는데 저 혼자 우와 하면서 봤거든요. 그런데 제가 《세 얼간이》를 어디에서 봤나 생각을 해 봤더니 (주요 장면들이) 짤방으로 돌아다니는 거예요. 영화에서 파르한이 아버지에게 진심을 다해서 ‘사진사가 되고 싶어요’ 하는 장면이 인터넷에서 돌아다니고 시험지를 섞는 장면이라든지 하는 장면이 이 영화에서 나온 거였구나 하고 알게 되었고 영화를 봤을 때 전개는 뻔하지만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부분들이 있었구나. 그러면서 편견이 조금 없어졌던 것 같아요.
무엇보다 중간에 춤과 노래가 나오는 시퀀스들이 자연스러웠고 조금 오글거릴 수 있는 이야기의 간극을 왔다 갔다 하면서 보편적으로 잘 만들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세 얼간이》는 감정 표현이 정말 직설적이잖아요. 이런 표현도 불편하지는 않구나 하고 느꼈던 것 같아요.
감독 라즈쿠마르 히라니
《세 얼간이》의 감독은 라즈쿠마르 히라니라는 감독인데 이 감독은 지금까지 딱 네 편의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2003년에 《문나 형님 의대에 가다(Munnabhai M.B.B.S)》라는 영화가 있는데
C: 《두사부일체》의 의사버전이라고 보시면 돼요
주인공들은 《두사부일체》의 주인공들인데 영화가 추구하는 것들은 《패치아담스》라고 해야겠죠. 지금은 고인이 된 로빈 윌리암스가 나온 영화인데 정식 의사가 아니고 인턴인 로빈 윌리암스가 의사 가운을 입고 의사 노릇을 하면서 환자를 대하죠. 히라니 감독의 《문나 형님 의대에 가다》라는 영화는 조폭인 문나가 아들이 조폭인지 모르는 아버지를 위해 학위도 없으면서 가짜 의사 행세를 하고 다닙니다. 그런데 문나는 이 병원에서 인도의 의료 현실을 목격하게 됩니다. 그렇게 문나가 병원에서 자신이 겪은 부조리에 대해 대항하게 된다는 게 이 영화의 내용입니다.
이처럼 히라니 감독은 데뷔 때부터 인도 사회의 시스템에서 오는 부조리를 꼬집는 영화들을 만들어 온 것이죠. 그렇게 해서 작년에는 《피케이》라는 영화를 만들었는데 이 영화는 《세 얼간이》의 아미르 칸이 주연을 맡았습니다. 외계인인 아미르 칸이 지구에 왔는데 지구인들은 ‘종교’라는 걸 믿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지구인이 빼앗은 자기 우주선 리모컨을 찾는데 지구인들은 그런 곤궁들을 ‘신이 도와줄 수 있다’고 말하는 겁니다. 외계인에게는 신이라는 존재가 없는데 지구에서는 신에게 할렐루야 나무아미타불하고 기도를 하면 다 해준대서 지구는 그런 시스템이 있구나 해서 신에게 기도를 올렸는데 들어주지 않는 거죠.
Pu: 인도에는 많은 신이 있습니다. 《세 얼간이》의 라주도 보면 신을 많이 믿고 있고 있죠. 인도영화는 (사회의) 이런 비판적인 모습을 많이 나타내거든요. 그래서 관객들로 하여금 자의식을 깨우치게 하는데 《피케이》같은 경우는 인도에 신이 많이 존재하다보니까 그런 것에 대해 이야기 했던 영화이고 《세 얼간이》의 경우는 인도도 교육열이 심하고 인도의 친구들이 저에게 물어봤던 이야기가 ‘너도 학교에서 아이들을 때리니?’라는 이야기를 많이 했었거든요
Pa: 애들을 때린다고요?
Pu: 인도는 우리의 상상 이상으로 아이들의 훈육방식이 우리의 옛날 모습과 같거든요. 그러다보니 아빠가 아이를 때릴 때도 귀싸대기를 갈깁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공공장소에서 울지를 않아요. 어린 아이들도요. 그런데 학교 선생님들도 엄청나게 (아이들을) 때리거든요. 그러다보니 인도영화를 보다보면 학교를 소재로 한 영화라든가 아니면 부모가 아이들을 때리는 장면을 보면 정말 가혹할 정도로 아이들을 때리거든요.
그런 모습이 보이긴 하더라고요. 요즘 인도영화에서는 그런 모습이 많이 안 보이기는 하는데
《어느 의대생의 죽음》 중
C: 작년 EBS 국제 다큐멘터리 영화제에 상영된 《어느 의대생의 죽음》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있었습니다. 인도의 의대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인데 의대에 들어갈 정도면 신분상으로 문제도 없고 머리도 똑똑한 사람들인데 매년 의대에서 자살자가 100명 가까이 나온다고 합니다. 감독이 이런 다큐멘터리를 찍게 된 계기가 감독 동생이 의대에 입학을 했는데 자살시도를 한 적이 있어요. 그래서 왜 그렇게 되었는가를 실제 의대에 들어가서 촬영을 했는데 이런 가관도 없었다는 거죠. 상급 대학생이 하급 대학생을 폭행하고 가혹행위를 하는 모습이 적나라하게 나오더라고요.
《세 얼간이》에서도 그런 모습이 나오는데 그런 가혹한 신고식을 우리나라에서도 하잖아요. 대학교 익명 게시판에 선배들이 험담하고 가혹행위를 한 것을 고발하는 게시물이 올라오면 게시물 좀 내려달라는 요구가 너무 당연하게 올라오잖아요.
Pu: 인도영화에서 《세 얼간이》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공감할만한 소재를 가지고 있다는 건데 교육적인 어떤 모습과 입시위주의 모습, 서열화라든지 가족적인 정서도 우리와 비슷하거든요. 그러니까 부모들이 자식이 부모 대신 어떤 것을 이뤄주기를 바라는 모습도 우리와 비슷하고요. 사실 인도영화도 좋은 작품이 매우 많은데도 그 중 《세 얼간이》가 우리나라에 소개되고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거죠. 사실 《세 얼간이》를 통해 인도영화에 맛들인 분들도 많거든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봤을 때 거부반응 같은 게 그렇게 크지 않아요. 춤과 노래 같은 것도 자연스러워요. 어떤 영화들은 저런 (춤과 노래 같은)게 왜 들어가나 싶을 정도로 거부감이 드는 작품이 많은데 이 영화는 매우 자연스럽고 이런 부분들이 대중들에게 인기를 얻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알이즈웰’ 맛살라 시퀀스를 보면서 들었던 생각이 비루 학장의 말로는 ‘내가 28위에 있던 학교를 1위로 올렸어’라고 자랑을 하고 있지만 그런 1위인 공대에서 물을 쓰는데 물이 안 나오고 탁구를 치는데 탁구대가 무너지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이렇게 전국에서 1위를 하는 대학이라지만 학생 복지를 위한 시설은 형편이 없다는 거죠.
Pa: 어떻게 보면 자학개그 비슷한 거네요.
C: ‘알이즈웰’만 보면 재밌게 보이잖아요. 《어느 의대생의 죽음》을 보면 똑같더라고요.
Pu: 제가 델리대학교를 갔었거든요. 델리 대학은 인도 최고의 대학이에요. 그런데 영화 속의 공대보다도 못해요. 주인공 피아가 약혼자가 시계를 사준 곳이 ‘코넛 플레이스’라는 곳인데요, 영화 속에서는 너무 깨끗하게 나왔는데 실제로는 너무 더러워요. 영화 속에서 나온 분위기는 깔끔하고 좋은 모습으로 미화시킨 것이고 현실은 낙후된 시설이라는 거죠.
Pa: 인도에 영어가 보편화되어 있나요?
차투르라는 캐릭터가 힌디어를 못하고 영어만 써서 그런 의문이 드셨던 건지?
Pa: 그것도 그렇고 《세 얼간이》라는 영화만 보면 인도 같지 않은 곳에서 인도영화를 찍은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사람들에게 어필이 된 건 아닌가 싶어요.
말씀 잘 하신 게, 란초를 찾기 위해 주인공들이 심라(Simla)라는 지역으로 떠나잖아요. 인도라는 나라가 덥다보니까 영국인들이 식민지로 개발한 곳이 더위를 피할 수 있는 지역이었어요. 대표적인 곳이 차로 유명한 다르질링지역이죠. 이런 식으로 영국인들은 그런 곳에서 터전을 많이 잡았고 그 지역은 영국의 건물 양식이 많이 남아있죠.
이를테면 《블랙》이라는 영화 역시 심라 지역이 배경인 영화인데 이 영화를 보면 배경이 인도 같지가 않잖아요. 말씀하신 부분이 어느 정도 일리가 있겠다는 생각이 든 게 《블랙》이라는 영화가 우리나라에서 성공할 수 있던 이유도 인도 색을 워싱을 했던 이유도 있었거든요.
Pa: 저는 《슬럼독 밀리어네어》같은 영화에서 빈민가가 나오면 약간 불편하고 퀴즈쇼로 돌아갔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거든요. 그런 막연한 불편함을 제가 느끼고 있었던 걸 영화가 끝나고 나서야 느꼈었어요. 그런 부분을 생각하면서 《세 얼간이》를 다시 보니 지금 인도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처한 현실이 안 나오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제가 이 영화를 봤을 때 거부감이 없이 받아들였단 걸 자각하니 기분이 묘하더라고요.
《세 얼간이》는 그저 판타지 영화인가?
오늘 이야기를 풀어볼 것 중 하나가 《세 얼간이》라는 영화를 저는 좋게 봤지만, 각종 포털 사이트에서 많은 추천을 받은 글 중에 이 영화를 안 좋게 본 시선을 가진 분들은 어떤 생각 때문에 이 영화를 안 좋게 봤던 건지를 분석해 보고 싶었습니다.
이를테면 어떤 분은 ‘《세 얼간이》라는 영화가 인도의 기득권층이나 어느 정도 소득이 되는 계층들의 사람들이 죽겠다고 아우성치는 배부른 영화가 아니냐. 실제로 인도 대다수 국민들은 가난에 찌들어서 교육도 제대로 못 받고 있는데 어차피 그 학교에 들어간 학생들 중에서 전국 300등 하는 애가 나 꼴찌했다고 징징대는 영화 아니냐?’ 하고 평을 쓰셨더라고요.
Pa: 금수저다?
이 평은 약간 영화의 주제를 봤을 때 핀트가 어긋난 평이라고 보고요. 또 실수를 하신 부분이 ‘라주’라는 캐릭터가 영화에 등장한 이유가 있다고 봅니다. *인도에는 각 계층마다 일정 비율을 뽑게 하는 제도가 있습니다. 라주도 아버지가 공무원이라서 낮은 카스트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만 이런 하층민 캐릭터를 등장 시킨 이유가 이런 계층의 사람도 교육을 받기 위해 노력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앞서 비판하신 분은 ‘인도는 못사는 나라’라는 데만 집중해서 비판을 하고 싶으셨던 거겠죠.
* 모슬렘, 불교신자, 낮은 카스트 등등의 사람들이 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정원을 주는 제도가 있다.
정말 그 하층민 계층의 모습을 다룬 영화를 보시고 싶으면 《스탠리의 도시락》이나 《행복까지 30일》 같은 영화를 보셔야지요.
다른 비판하신 분 중에는 파르한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는 분도 있었습니다. “야 너는 란초가 사진가 되라고 해서 사진가 되면 란초가 죽으라고 하면 죽을래?” 이런 분이셨는데 나중에 잘 풀려서 바지를 까고 ‘우리 스승님’같은 걸 하는 모습이 마음에 안 든다는 거죠. ‘같은 나이 또래에 자기가 깨면 얼마나 더 깬다고 자기는 쿨한 척 다 하는데?’ 이런 식으로 평을 하시는 분도 있더라고요.
물론 그 분 역시 《세 얼간이》가 말하고자 하는 부분을 약간 오독하는 감은 있지만 이런 이야기는 하고 싶어요. 저는 《세 얼간이》라는 영화를 옹호하는 편이지만 이 영화는 판타지다라고 정의하고 싶습니다.
왜 이 영화가 ‘판타지’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해 볼게요. 영화에는 5분의 법칙이라는 게 있다고 봅니다. 이를테면 파르한이 우리식으로 하면 ‘땅콩회항’같은 걸 하잖아요. 그런 거 잡혀 들어갈 일이죠. 하지만 그걸 역으로 생각해보면 이런 비현실적인 일을 저지를 정도로 이 인물들에게 란초가 과연 어떤 인물인지를 과장스럽게나마 보여주고 싶었던 거죠.
그리고 대척점을 이루고 있는 인물이 있죠. 차투르입니다. 《세 얼간이》에 대한 비판 중 하나가 ‘차투르의 성공은 성공이 아니냐’라는 것이었는데 사실 이 영화는 차투르가 실패했다고는 이야기를 하지 않아요. 그리고 차투르가 보여주는 성공한 모습들은 사실 세속을 사는 우리가 진짜 이루고 싶어 하는 성공이기도 합니다. 명절 때 어르신들을 만나신 분들 생각을 해 보면 그들이 만나서 하는 ‘덕담’이라는 것들은 차투르와 같은 물질적인 성공을 바라는 것들이죠. 이런 게 사실상 ‘매뉴얼’이니까요.
비루 학장 역시 그런 부류의 사람 중 하나입니다. 왜 소위 ‘성공 컨설턴트’ 같은 사람들, 쓴 소리 하면서 소위 정신이 버쩍 드는 이야기들 하잖아요. 그런 식으로 기성세대와 시스템에 적응한 사람들은 차투르가 이룬 성공이 모델이라고 이야기하죠. 영화는 이런 사람에게 ‘네가 성공한 것 같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건 그게 아닌 것 같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정말 그런 이야기를 보고 싶은 사람들은 차투르 같은 인물이 고난과 역경 그리고 경쟁자들을 이기고 어떻게 부사장이 되었을까 하는 성공스토리를 봤겠죠. 그러나 《세 얼간이》는 그 반대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겁니다.
란초의 이야기는 정말 뜬금없을 수도 있어요. ‘성공을 따르지 말고 네가 좋아하는 것을 하라 그러면 성공이 뒤따라온다?’ 나는 20대에 영화 좋아해서 영화 팠는데 지금 영화와는 상관없는 일을 하고 있는데? 그런데 내가 그런 란초의 말을 지지한다? 어불성설이죠.
하지만 사람들은 속된말로 사이다를 마시고 싶어 합니다. ‘현실은 따라주지 않는데 세상은 이렇게 바뀌었으면 좋겠어요’하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우리가 힘든 사람 고민 있는 사람이 있으면 ‘힘내세요’같은 말 밖에는 못해줍니다. 우리도 똑같이 현실을 느끼니까. 하지만 《세 얼간이》라는 영화는 아예 영화니까 판타지고 픽션이지만 그래도 이런 매뉴얼적인 성공과 학생들에게 모멸감을 주면서까지 충격요법을 주는 게 정말 좋은 방식일까를 말하고 싶었던 거죠. 왜... 자극을 주면 사람들이 고쳐먹고 더 잘 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되게 많아요. 우리 사회에 있어요. 심지어는 우리 회사에도 있을 수 있어요. 아니면 우리 가족 중에도 있을 수도 있어요.
인도영화가 비판받는 이유 중엔 그런 게 있습니다. 현실과 너무 동떨어지고 관객들에게 판타지만 주입하는 것 같다고요. 그런데 저는 (이 영화의 판타지가) 나쁜 판타지라고 보진 않아요. 누군가는 세상이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10대에서 20대로 넘어가면서 그리고 20대에서 30대로 넘어가면서 조금은 반항을 했다면 나이를 먹으면 조금 타협을 하게 되고요. 《세 얼간이》의 주인공들은 20대이니 반항을 할 나이잖아요. 그런데 받아들여라 이게 현실이다라고 현실에서 수도 없이 듣는데 영화에서도 똑같이 주입을 한다고 하면 얼마나 우울하겠어요.
물론 그런 리얼리즘 영화도 필요하긴 하죠. ‘그래 세상은 이게 아니었어’ 하고 현실에 굴복하는 모습도 있겠죠. 문학 사조로 보면 *‘자연주의’라는 계통이 있는데 자연을 사랑하는 게 아니고 현실과 시스템에 주인공이 굴복하게 되는 그런 작품들 말이죠. 김동인의 ‘감자’같은 소설이 대표적이라는데 복녀라는 주인공이 나오는데 푼돈벌이 같은 거 해봐야 사정은 나아지지 않으니까 몸을 팔아서 돈 버는 게 쏠쏠하고 남는다고 생각해서 그 길을 걸었다가 ‘내가 네 애를 뱄네’ 해서 따졌다가 슥삭... 이렇게 비극적으로 끝나잖아요. 이게 현실이다 하면서. 그래서 이렇게 사람들에게 현실을 알려주는 것만이 좋은 것일까? 아니면 계속 우리가 생각했던 시스템의 모순된 점을 판타지라고는 하지만 이렇게 이야기를 해줌으로서 내가 지금은 굴복하고 있지만 나이를 먹으면 바뀌지 않을까? 아니면 내가 바꿔볼까? 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가 있다면 저는 긍정적이라고 봅니다. 이게 마냥 말도 안 되는 뻥구라라고 해서 비난할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습니다.
* 제가 말한 개념은 어떻게 보면 어폐가 있을 수도 있는데 실제로 자연주의(自然主義)는 생각보다 복잡한 개념입니다 ‘사회의 객관적 묘사와 과학적 방법(관찰과 실험)을 도입·강조하는 사조’라고 나와 있는데 리얼리즘과 혼용되기도 합니다.
Pa: 란초의 말이 멋있고 이상적으로 들리는 이유는 그런 시선으로 바라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란초는 되는 애니까’. 란초는 말하면 할 수 있는 사람인데 대부분의 사람은 말하면 할 수 있는 사회가 아니기 때문에 타협을 하고 사는 거잖아요. 이 영화를 보면서 처음에는 ‘와 멋있다’하고 느꼈는데 오늘 보면서 쟤는 자기가 말을 하면 되니까 주위 사람들에게도 비슷하게 말을 한 거죠 물론 그게 잘 되긴 했지만, 란초는 졸업식 때 도망치듯이 떠나버렸고 본인이 말은 해주기는 했지만 책임을 져 주지는 않았죠. 결과적으로 잘 풀리기는 했어도 좀 무책임했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란초 역시 결과적으로는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아줄 수 있었던 것도, 기회만 되면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인물이었기에 란초가 하는 말이 그저 교훈적으로 보이지만은 않는다는 거죠. 그래서 그런 시선으로도 충분히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자신은 능력 있고 여유 있는 사람이었기에 그런 말을 던졌을 때 멋있어 보일 수 있었다. 라구요.
영화를 예전에 보셨나요?
D: 예전에 한 번 봤습니다. 영화가 잘 풀려가니까 잘 따라가면서 봤었는데 두 번째로 보니까 조금 다른 느낌을 받았거든요. 《죽은 시인의 사회》를 보면 키팅 선생님이 ‘카르페디엠’ 같은 말을 하잖아요. 그런 것들의 해피엔딩 버전?
현실을 즐기고 지금을 즐겨라라는 것이군요. 저는 여전히 이 영화가 판타지의 연장선상이라고 보지만 이 판타지가 모든 이들에게는 허황되고 뜬금없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는 거죠.
Y: 저는 여러 가지 말씀을 들어보니 상반된 두 가지 생각이 드네요. 처음 영화를 봤을 때는 《피케이》는 종교적인 모순을 꼬집었다거나 《행복까지 30일》은 돈이나 계급에 대한 비판적인시각이 있는 영화였고 이번 영화는 교육적인 부분에 대해 꼬집는 게 많이 있는 영화라서 인도영화에 이렇게 의식이 있는 영화들이 많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다른 한 편에선 세 시간짜리 판타지를 잘 보고 나왔구나. 그리고 현실로 돌아와서 굴복하는 거죠. 그런 두 가지 생각이 드네요.
그러고 보면 이 영화는 우리를 대신해 ‘세상이 이렇게 바뀌었으면 좋겠어’라는 일종의 사이다 같은 역할을 해주는 영화죠.
Pu: 이 영화가 어떻게 보면 그런 영화이기도 해요. ‘너의 인생은 네가 즐기면서 살아야 한다. 주변의 강요를 받아들이지 말고 네 삶은 네가 살아라’가 영화의 주된 내용이에요. 란초가 용기를 줘서 주변 친구들이 용기를 얻게 되는 거고 결국 그것은 아버지이자 완강한 교수였던 학장을 바꾸게도 하거든요. 그런 의미로 교육적인 영화죠. 그런데 아까 말씀하셨던 것 중에서 이 영화가 판타지라고 하셨지만 전 판타지라기보다는 우리의 현실과 인도의 현실을 단면적으로 보여주는 영화이고 결국 현실이 이렇다고는 하지만 란초가 한 말들을 통해서 우리도 용기를 얻을 수 있는 거예요. 그리고 인도는 사실상 비행기가 가더라도 돌아오게 할 수 있는 나라입니다. 불가능한 게 아니에요. 왜냐하면 최고의 공대 출신 사람이기 때문에 가능한 거예요
제가 여행을 하면서 델리 대학교 친구들을 만났었는데 델리 대에 한국어 학과가 있어서 그 친구들을 만났어요. (그 친구들이) 델리대학교 학생증을 보여주면 모든 곳을 통과할 수 있어요. 안타깝지만. 아직도 그런 게 고착화 되어있어요. 《로봇》이라는 영화를 보시면 불법 주차된 차를 두고 (경찰이) 돈을 달라고 그러잖아요. 그런 게 가능한 나라이고 나의 지위나 학력으로 모든 것이 통과가 돼요. 그것은 인도의 현실인 것이죠.
몰랐네요. 저는 그런 장면을 보고서는 우리나라의 ‘땅콩회항’같은 걸 생각했었는데
Pu: 인도는 인권 수준이 아직 높지 않아요. 모든 것이 돈과 권력과 지위로 다 가능한 나라이기 때문이죠.
Pa: 제가 하나 여쭤보고 싶은 게, 제 여자 친구는 이 영화를 정말 재미있게 봤지만 너무 불편하다는 거예요. (제가) ‘왜?’하고 물어보니 그 영화에서 그려지는 여성들의 인권이나 모습들이 아무리 현실이라고 하더라도 불편하다는 거예요.
Pu: (주인공 피아의 모습은) 인도의 여성들보다 굉장히 상위 클래스의 삶이에요
Pa: 그것보다 훨씬 더 처참한 게 현실이라고 들었는데 버스 강간 사건이라든지
C: 기사는 빙산의 일각이에요
Pa: 그런 것 때문에 (여자친구가) 불편하다고 이야기를 했고 저도 찾아보는 거죠. 그러고 나서 두 번째로 (이 영화를) 보고 좀 생각을 해 봤어요. 그렇다면 이 영화에서 나오는 모습이 빙산의 일각이고 아름답게 그려진 모습이라면 실제 그 분들의 삶은 어떤지도 궁금했어요.
C: 《진다》라는 인도판 《올드보이》라는 영화를 보면서 자료를 찾으면서 조사한 게 있는데 인도에서는 뉴스기사에도 나지 않고 그냥 지나가는 이야기 식으로 나오는 것들이 있어요. 누나라든가 아내라든가 여동생이라든가 이런 사람들이 부엌에서 타죽었다는 이야기들이 심심치 않게 나와요. 그러면서 이런 이야기는 사고사나 자살이라는 식으로 이야기가 나오는데 실제로는 남편이나 가족에게 살해를 당한 뒤에 그것을 감추기 위해 부엌에 불을 지르고 타죽었다고 하는 거죠.
그러니까 사고사로 위장을 하는 거군요.
C: 그런 것들이 기사로도 뜨지 않고요. 매우 흔하게 나오는 거예요.
Pu: 이야기를 돌려서 여성들은 교육도 못 받고 사회적인 지위가 낮아서 여성들은 처참히 무시되고 심지어는 외국인들보다도 제약이 되어 있어요. 인도에는 카스트제도도 있을뿐더러 여성들이 바깥에서 활동을 못해요. 음식점을 가도 남자들이 서빙을 하고 있고 여자들은 집 안에서만 있어야 해요.
그런데 저는 또 그런 생각이 드는 게 《세 얼간이》에는 그런 불편한 요소들이 별로 없었고 심지어는 여자 공대생들조차 있었는데
Pu: 라주의 누나가 결혼 지참금 같은 걸 내야하고... 그런 부분들이 있으니까
Pa: 주인공들 대사에도 조금 있었던 것 같아요. 자연스럽게 (여성을) 무시하는 그런 거?
Pu: 딱히 (영화에서) 드러난 부분은 없어요. 심지어 인도에선 금기시 되어서 술도 안 먹거든요. 그런데 피아는 술도 먹고 주정도 부리잖아요. 심지어는 오토바이까지 타고요. 오토바이 타는 여자는 못 봤거든요.
Pa: 그러면 차도르를 쓰고 있고 안 쓰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뭔가요?
Pu: 인도는 일단 여자들이 몸을 드러내는 것을 순결을 빼앗긴 것으로 생각해요. 그래서 최대한 몸을 가려요. 그래서 외국인 여자들이 (인도에) 여행 오면 그걸 되게 신기해해 한다는 거죠.
특히 치마입고 (인도에) 오지 말라는 이야기가 있어요. 치마를 입어도 속바지를 입든가. 즉, 다리를 드러낸다는 것은 (인도의) 남자들에겐 ‘얘 벗고 다니는구나’ 하는 인식이 되는 거죠. 《세 얼간이》의 원작자 체탄 바갓이 써써 히트를 기록했던 소설이고 영화화 되어서 큰 사랑을 받았던 《투 스테이츠》라는 작품을 보면 캠퍼스를 배경으로 한 커플이 주인공인데 거기 여주인공이 짧은 미니스커트 같은 걸 입고 왔는데 남자 주인공이 몸을 가리면서 ‘너 다른 (남자) 애들이 침 흘리고 그러면 어쩌려고 그래?’ 이런 대사가 있어요. 우리나라에선 여성분들이 자유롭게 짧은 옷도 입고 다니겠지만 인도 남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거죠.
Pu: 저는 바이러스 교수가 펜을 준 것도 어떤 상징성이 있다고 생각해요. 25년 동안 펜을 가지고 있으면서 거기에는 분명히 란초보다 뛰어난 학생도 있을 수 있었고 1등 한 학생을 줄 수도 있었어요. 하지만 란초에게 펜을 줬던 것은 단순히 란초가 공부를 잘하고 우수해서 줬다기보다는 이 아이가 나(비루 학장)에게 가르침을 준 거잖아요. 그래서 준 거거든요. 저는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가 판타지가 아니라 힘과 용기를 주는 영화 같고 사실상 우리가 아이들을 가르칠 때에도 란초같은 아이들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실상 우리나라 교육 제도도 서열화 되어있고 인도같은 경우는 여자는 무조건 의대를 보내고 남자는 공대를 보내려 하거든요
정말 그게 인도에서 사람들이 목표치로 하는 것이 맞아요.
Pu: 인도에도 (한국의) S기업과 L기업이 많이 들어와 있습니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그 기업에 대해 많이 물어보는데요, 저는 인문계 학과를 전공한 사람이라 모르겠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엔지니어라고 하면 인식이...
Pa: 공돌이
Pu: 그런데 (인도 사람들은) 엔지니어라고 하면 굉장히 자랑스러워하고 자부심을 느끼더라고요. 그것이 인도에서의 성공이고 그것은 결국 부를 축적해서 좋은 집을 사고 좋은 차를 끌게 되는 거거든요.
그게 인도만의 것은 아니고 소위 SKY라고 해서 그 대학교에 들어가려는 이유도 다 그런 거잖아요.
Pa: 선택지가 조금 더 많을 뿐이죠.
우리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좋은 대학에 들어가서 좋은 직장에 들어가서 마치 차투르처럼 성공하기 위한 그런 걸 수도 있죠.
Pu: 란초는 사실상 뛰어났거든요. 하지만 가정환경이 안 되었고 그래서 피아가 자신에게 프로포즈를 안 하냐고 했을 때 란초는 할 수 없었던 게 초테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란초라는 이름을 빌려서 왔고 자기는 졸업을 하면 약속을 했기 때문에 다시 다가설 수 없었던 거죠.
다시 낮은 신분으로 가는 거죠. 아 그러고 보니 ‘초테’라는 이름이나 ‘초투’, ‘초티’ 이런 이름은 실제 이름이 아닙니다. 우리말로 하면 ‘꼬맹이’정도 되는 명칭이죠.
Pu: 야인마, 이녀석아 이런 정도죠.
네 그렇게 ‘초테’가 이름이 아니고 노 네임(no name)이라고 보시면 돼요.
Pa: 그러니까 이름도 없이 ‘꼬맹아’ 하고 불렸다는 말씀이시죠?
그렇죠. 제가 봤을 때 란초는 부모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아이가 영특하니까 부잣집 어른이 일이나 도우면서 식솔이나 하면서 살라고 했던 게 그 집안 아들의 분신 역할을 하게 되고 그렇게 찬차드 집안의 그림자 역할을 했던 것이죠. 아마 ‘푼수크 왕두’도 자기가 지었을 겁니다. 란초가 라다크 지역으로 가서 살게 되는데 그쪽 아이들 얼굴을 보면 티벳 아이들처럼 생겼거든요. 성이나 이름을 보면 인도에서는 종교나 출신지, 카스트 등을 알 수 있다고 하는데 ‘왕두’는 어감상 티벳이나 북인도 지역의 이름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자기도 그쪽 이름을 따서 살고 있었던 거겠죠.
란초는 왜 선생님이 되었을까
저는 또 이런 이야기를 해 보고 싶었습니다. 차투르는 란초가 선생님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왜 란초가 그 많은 것 중에서 ‘선생님’이라는 진로를 택했을까요?
순간 제 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려봅니다. 아직도 잊지 못할 치졸하고 쪼잔한 선생님이 있었습니다.
C: 바이러스 같이요?
아니요 바이러스는 아니에요. 그 선생은 격이 다릅니다. 경제 선생이었는데, 들리는 이야기는 서울대를 나온 엘리트라는 이야기는 있습니다. 그때는 경제과목이 지금의 사회시간의 3대 수업(사회문화, 경제, 정치)처럼 부각되는 과목은 아니었던 때라 이 선생은 수업도 대충 하고 애들에게 자기 식의 인생론을 설파하는 겁니다. 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게 ‘여러분 탈세는 불법이지만 절세는 합법입니다’ 같은 거였어요. 이런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겁니다.
그게 무려 십여 년 전 이야기인데 아직까지도 기억이 나는 거예요. 그리고 다른 사람을 무시하기 일쑤인데 서울대에 들어간 할머니 이야기를 해 주면서 ‘그렇게 늙어가지고 서울대에 들어가면 뭐 하게?’ 이런 식의 발언을 하는 사람이었어요. 이런 식으로 싫은 소리 하고 세상에 대해 이야기 해 주면서 ‘이게 현실이야’라는 식의 말을 했어요. 그래요 어떻게 보면 비루 학장의 모습에 더 가까운 거죠. 사람에게 모멸감이나 충격요법을 주는 선생님.
이런 사례를 보면서 왜 란초가 선생님이 되었을까를 생각해보게 된 거에요. 란초는 그저 푼수크 왕두로 살면서 특허만 가지고도 충분히 살거든요. 그런데 란초는 특허가 부업이고 교육자가 본업인 거죠. 특허 수익만으로 세계를 떠돌며 여유롭게 살 수 있었는데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것은 어떤 목적이 있었을 거라고 봅니다. 선생으로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영향력, 말, 사고방식을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그 아이들은 제2, 제3의 란초가 되는 거예요. 물론 어떤 아이들은 자라서 제2, 제3의 비루 학장 아니면 제가 말했던 경제선생 같은 사람이 될 수도 있는 거죠.
사실 원작 ‘세 얼간이’는 체탄 바갓이라는 작가가 쓴 ‘5 Point Someone’이라는 작품입니다. 여기서 따왔다고는 하지만 제가 보기엔 히라니 감독이 거의 다 고쳐 놓았어요. 자기 식으로. 원작 소설에서 친구들은 란초를 찾아가지도 않고 주인공은 선생님이 되지도 않아요. 세 얼간이들의 이름 부터 다르고요. 대학 교육시스템에 대한 비판에서 끝나죠. 그런 의미에서 감독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정말 교육자라면 비루 학장 같은 사람도 있고 란초 같은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이 어떤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비루는 잘 나가는 대학교의 학장이고 논문도 많이 썼겠죠. 그의 위치와 지위 때문에 입학식 때마다 알을 떨어뜨리면서 경쟁사회를 일깨워주는 쇼를 해도 펜을 꺼내면서 가질 사람을 찾아도 차투르 같은 친구들은 그를 동경하면서 가지려고 손을 들죠. 그런 (비루 같은) 사람이 되고 싶은 사람은 많이 있을 거예요. 반면에 시골학교에서 애들을 가르치는 푼수크 왕두가 되고 싶은 사람은 많지 않을 거예요.
Y: 교육에 대한 비판의식을 가진 영화들이나 드라마를 보면 배경이 중학교나 고등학교 정도이고 ‘입시’라는 주제를 다루고 대학교를 비판하는 영화는 많이 없잖아요. 교수나 학장은 존경을 받아야 하니까요. 이런 걸 비판한다는 게 조금 신기한 것 같아요.
그렇죠. 저는 이 감독(라즈쿠마르 히라니)을 높게 평가하는 이유 중 하나가 《피케이》에서도 그랬지만 기득권을 비판하고 있다는 거죠. 어떤 분은 《세 얼간이》에서 차투르에게 인간적인 굴욕을 준다고 싫어하시는 분도 많은데요, 이걸 좋아하시는 분은 그런 모습이 아니고 기존의 시스템에 대한 비판을 해서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우리나라 코미디 프로그램들을 봅시다. 그런 프로그램에서는 약자 비하들을 많이 하잖아요. 외모 가지고 놀리고... 그런데 이 영화의 개그는 시스템이나 강자를 향해있다는 거죠. 그런 점에서 사람들이 재미있게 봤을 수도 있겠습니다.
Pu: 영화에는 아미르 칸이 나와야 하는데 아미르 칸이 중학생이나 고등학생을 하기엔 그렇고
Y: 영화를 촬영했을 때 (아미르 칸이) 몇 살이었죠?
40대였죠. 지금은 50대인데 7년 전 영화죠.
Pa: 시간대가 두 개잖아요. 그럼 배우들은 현재와 과거 중에 어떤 모습이 더 가까운 건가요? 이를테면 차투르 같은 경우는 머리가 벗어져 있잖아요.
Y: 차투르는 다른 배우죠?
아닙니다. 같은 배우입니다.
Pa: 그럼 분장을 잘 해 놓은 건가요?
비화를 하나 이야기 해드리면 차투르 역을 맡은 오미라는 배우는 영화를 찍으면서 살이 쪘는데 나이든 역할을 그 모습 그대로 가면 되겠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대로 했다고 하네요.
Y: 원래는 어린 배우인가 봐요?
그러니까 대학교 시절의 얼굴에 가깝고 파르한 같은 경우는 란초를 찾아다니는 현재에 가깝죠.
Pa: 파르한의 근황이라고 해서 근육질로 트레이닝을...
그건 란초, 아미르 칸입니다.
Pu: 그럼 란초가 교사가 아니고 다른 직업이었다면 무엇이었을까요?
저는 감독의 의사를 존중하고 그 생각에 동감하기도 합니다. 교사가 괜찮은 것 같아요
Pu: 감독의 의도였기 때문에 교사가 됐을 것 같고 교수가 될 수도 있었고 중고등학교 교사가 될 수도 있었지만 초등학교 교사가 되었다는 건 미래의 가능성이 더 있는 아이들이잖아요. 감독이 그런 생각으로 란초를 그렇게 만든 거라고 생각해요. 란초가 교사가 아니었으면 어떤 걸 했을지?
그래도 누군가에게 가르침을 주고 영향력을 줄 수 있는 그런 역할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고
Pa: 제 생각은 《세 얼간이》를 세 번이나 보면서 느낀 게 있다면, 란초의 모습을 보면 이것이 시스템에 대한 저항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저는 저항을 한다기보다는 계속해서 물음표를 던지고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왜요? 당신들은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요?’ 하면서요. 시스템을 없애고 부숴 버려야지 하는 것 보다는 ‘시스템이 왜 이렇지?’ 하고 계속해서 갸우뚱하고 물음표를 던지는 사람이잖아요. 물음표의 끝에 다다러선 “내가 이것을 부숴야 하는 사람이 아니고 내 다음 사람들에게는 이런 의문을 당연히 가지게 하고 시스템에 오롯이 굴복하지 않는 사람들을 만들어내는 위치가 되어야겠다”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교사가 되었다고 생각했어요. 란초 학교의 전경을 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학교의 모습이 아니라, 독특하고 기발한 것이 널려있는 특이한 곳이었잖아요? 우리가 학교를 떠올리면 칠판에 ‘2X1=2’ 같은 것만 잔뜩 쓰여있는게 당연했을텐데, 란초네 학교는 아니죠.
그걸 대변하는 대사가 차투르의 대사라고 생각해요. ‘A는 애플, B는 볼’이라고 하지만 (란초는) 그렇지 않은 학교를 만들어냈고 그 사회 속에서 아이들에게 이런 사회 속에서 물음표를 던질 수 있는 사람들을 키워내는 사람이 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C: 제가 생각하기엔 왕두라는 인물 자체가 자신도 질문을 던지지만 카스트 상으로는 제일 하층의 사람이잖아요. 돈도 없고 가족도 없기 때문에 하층민이긴 하지만 (스스로) 올라갔잖아요. 자신은 시스템을 역행했고 그런 사람이 더 있어야 한다고 생각 한 거죠. 자신처럼 반문하고 반항하고 잘못된 것들을 바꿔 나가는 사람이 된 것 같아요. 그래서 제 답은 굳이 초등학교 선생이 아니더라도 누군가를 가르치는 사람이 되어 있었을 거예요.
Pu: 영화에서는 사실, 교사라는 위치가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의미에서 존경받고 좋은 직업이기는 해요. 그런데 최고의 공대 출신으로서 초등학교 교사를 한다는 것 자체는 상당히 우스운 일이거든요. 차투르가 ‘겨우 초등학교 선생이 됐어’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게 비하하는 게 있었을 거예요.
우리나라는 ‘교사’ 이런 게 결혼 정보업체 순위 상위권에 있잖아요. 그런데 인도에선 봉급이 되게 적어요. 그렇기 때문에 ICE같은 명문대에 들어가서 시골 교사를 한다는 게 말도 안 되는 설정이긴 하죠. 물론 자신에게 학위가 없어서 그럴 수도 있지만요.
Pu: 영화를 보면 파르한이 1인칭 시점으로 내레이션을 하잖아요. 결국 주인공은 파르한이에요.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 했던 거죠.
Pa: 제가 봤을 때 파르한은 제가 봤을 땐 처음부터 끝까지 관찰자였거든요. 자신도 그 이야기 속의 인물이었고 기록을 하고 사건을 남기고 사진을 찍는 입장이었거든요.
Pu: 그리고 저는 고등학교를 조금 서열 있는 고등학교를 나왔고 친구들을 보면 저처럼 사범대를 가는 사람도 없었거든요. 그러다보니 영화를 보면 느껴지는 바가 컸어요. 정해진 규칙은 없거든요. 인간 누구나 내가 원하고 좋아하는 삶을 살면 그게 최고로 값진 인생이라는 생각이 드는 거죠.
친구들이 대학을 가고 좋은 직장도 가지면 그 친구들과 저는 출발부터 연봉이 달랐기 때문에 친구들은 저를 보고 ‘왜 교사를 하냐’하는 식으로 이야기를 했지만 나는 그들보다 돈은 많이 벌지는 못 하더라도 나는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좋은 기운을 받고 정해진 시간에 출근해서 정해진 시간에 퇴근을 하고 그 이후의 시간은 나를 위해 값지게 쓰고 있어요. 그래서 전 영화에 나타난 좋은 기운을 많이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어요. 결국 인생은 내가 만들어 가는 거고 내가 스스로 삶을 개척해 가는 거니까. 저도 좋은 대학의 좋은 학과에 가면 안정적으로 멋지게 살 수 있었겠지만 그런 곳에 아랑곳하지 않고 교사의 길을 걸었던 것은 분명히 나에게 좋았던 선생님의 영향도 있었고 나도 좋은 영향을 주고 싶어서 교사가 된 거였거든요.
이 영화는 많은 가르침을 줘요. 《세 얼간이》 말고도 다른 인도영화 역시 많은 감동과 교훈을 줘요. 그래서 많이 보고 싶은데 보기가 어려워요. 저는 인도여행을 가면 이틀에 한 번은 인도영화를 보고 와요. 힌디어도 모르고 내용도 모르겠지만 인도영화의 매력은 그냥 보면 공감되는 부분이 너무 많아서 너무 뻔한 내용인데도 너무 재밌는 거죠.
요즘은 좀 좋은 게 메이저 영화 일부는 영어 자막을 제공하기도 하더라고요. 얼마 안 되긴 했지만.
기억나는 선생님이 있으신가요?
D: 저 같은 경우는 학원 선생님이신데 영어를 저에게 가르치셨어요. 그 분은 일반적인 영어 강의를 하는 게 아니라 영어를 읽으면서 거기에서 교훈적인 말씀을 해 주셨거든요. 인도영화도 그런 교훈적인 이야기를 해주다 보니 좋은 것 같아요.
좋은 선생님을 기억하셨군요. 저는 안 좋은 케이스가 생각났었는데. 그러다보니 5월 15일이 스승의 날이라는 걸 잊어버리고 살아요. 정말 찾아가고 싶은 선생님이 별로 없어요. 있었더라도 존재감이 없었을 수도 있어요.
Pu: 그러다보니 제 마음을 알아 줄 아이들이 분명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제 욕심일지는 모르겠지만 인도여행이나 인도 이야기를 해주면 좋아하는 아이들이 많아요. 그리고 얼마 전에 《행복까지 30일》을 보여주고 토론 수업도 했어요. 그것도 아이들에게 정말 들려 줄 이야기가 많고
저도 그 영화에 숨겨져 있는 코드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Pu: 저는 그 이야기를 가지고 아이들하고 두 시간 영화를 보고 두 시간을 수업을 진행했거든요. 인도영화에서는 인권문제도 그렇지만 가족 간의 관계도 그렇고 우리가 교과서를 보고 아는 것 보다 더 많은 것을 나눌 수 있어요.
Pa: 초등학교 1학년 때 인 것 같아요. 그러고 보니 란초와도 겹치는데, 굉장히 좋은 선생님이셨어요. 눈을 마주칠 줄 아는 선생님이셨어요. 이게 무슨 뜻이냐면 아이들이 (물건 같은 것들을) 깨부수면 난리가 나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했을 때 (그 선생님은) 저희 의견을 먼저 들어보시고 나서 혼을 내시거나 결정을 하셨던 선생님 같아요. 별 건 아니었지만 노래를 잘 하셨던 생각이 나고 그리고 말씀 중에 기억에 남는 게 “이유가 없는 일은 없다”는 거였어요.
이런 일이 있었어요. 저희가 교감 선생님께 혼났던 적이 있었는데, 교감 선생님이 키우는 화분 같은 걸 엎은 적이 있었어요. 축구를 하다가 시원하게 엎었거든요. 교감 선생님이 저희를 불러 간다고 하는데 초등학생 1학년이 뭘 알겠어요. 아 이제 퇴학당하는구나 하고 생각했단 말이에요. 그 때 선생님이 수습을 해주셨어요. 그리고 놀랐던 점은 저희는 선생님이 당연히 훈계를 하실 거라고 생각하고 학교가 끝날 때까지 계속 겁을 먹고 있었는데 그냥 넘어가셨어요.
그래서 저랑 제 친구가 (선생님께) 가서 철없이 ‘선생님 저희 언제 혼나요’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 때 저희에게 해 주신 말씀이 ‘이유 없는 일은 없다. 교감 선생님께서 너희에게 하시려던 말씀은 그냥 너희들이 지금 이해하기엔 너무 이른 것일 지도 모른다’는 뉘앙스였지만, 잘 기억은 안 나요. 그리고 엄격하고 원칙주의자인 분이셨는데 그 깐깐한 얼굴로 어설프게 웃으시면서 “세상에 이유 없는 일은 없고 선생님이 대신 혼났으니 노래나 하자”고 풍금을 치셨던 기억이 나요.
저는 초등학교 6년을 보내면서 이유 없는 일은 없다고 되뇌었던 것 같아요. 그게 생애 큰 가르침이 되었던 것 같아요.
Y: 그게 초등학교 1학년 때 이야기라고요? 그게 기억이 날 정도면 엄청 인상적이었나 봐요.
Pa: 선생님은 그런 말씀을 해 주시고 반 년 뒤에 전근 가셨거든요. 저는 그 짧은 가르침이었지만 그게 저만 예뻐하셔서 그랬던 것이 아니고 모든 아이들에게 그렇게 가르쳤던 것 같아요.
Pu: 초등학교 1학년 때가 기억에 남기가 쉽지 않은데. 눈을 맞춰주었다는 것은 선생님이 허리를 숙였다는 건데
영화 《지상의 별처럼》
그 이야기를 들으니 생각나는 영화가 있어요. 아미르 칸이 나왔던 《지상의 별처럼》이라는 영화인데요. 그 영화에서 아미르 칸은 선생님으로 나와요. 난독증에 걸린 학생을 도와주는 선생님인데 우리나라에서 그 영화를 수입한 영화사에서 여러 가지 포스터 컷을 선정했는데 그 중에 정식 포스터로 쓰인 컷의 의미가 괜찮았어요. 선생님이 몸을 굽혀서 난독증에 걸린 이샨이라는 주인공의 눈을 맞춰준 컷이었습니다. 영화사측에서 이야기하기를 그 의미는 ‘학생과 눈을 맞춰주는 선생님’이라는 의미었는데 이런 모습이 우리에게도 좋았고 이 영화의 취지에도 맞아서 그 포스터 컷을 썼다고 하더라고요.
《지상의 별처럼》은 나름 쏠쏠하게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Y: 저도 기억에 남는 선생님이 있긴 한데 핵심은 이것 같아요. 멘토를 만나야 한다. 정말 존경하고 따를 수 있고 무엇을 할 때 그 분의 뒤를 이어서 그 길을 걸을 수 있는 것이죠. 그런 분을 만나는 게 중요한데 요즘에는 그런 분들을 많이 만나지 못하니까 매스미디어에 올라오는 것들을 아이들이 많이 따라하려고 하는 거죠.
그런 건 비판적인 사고를 가지고 해야 할 텐데 말이죠. 조금 아쉽기는 해요
Y: 중학교 때 영어 선생님이 좋았어요. 영어를 공부하는데 동기를 엄청나게 많이 부여 하셨죠.
그래서 성적이 많이 올랐나요?
Y: 성적이 많이 올랐고요. 예쁘셔서... (웃음)
그 밖의 이야기들
Pu: 조이가 드론을 개발하던데 영화를 처음 봤을 당시에는 몰랐는데 인도가 기술을 앞서 나가는 것 같더라고요
아마 조이가 살았더라면 드론의 선두주자가 되었을 겁니다. 라즈쿠마르 히라니 감독이 이 기술을 영화에서 선보였을 때는 자신도 이 기술이 상용화 될 줄 몰랐겠죠. 영화가 만들어진지 7년이 지난 지금 보니 감회가 새롭네요.
Pa: 인도영화중에 짤방을 돌아다니는 영화가 있는데요. 아미르 칸이 나온 다른 영화인데 'ㅅㅅ는 밖에서 하면 안 되는 가요?' 하는 대사가 있는 영화였는데...
《피케이》라는 영화입니다. 어떤 남자가 콘돔을 떨어뜨리는데 아미르 칸이 지구인의 사회를 모르니 그 주인더러 ‘받아가세요’라고 했는데 남사스러워 해서 거절하는 장면이었어요.
Pa: 결혼하면 ‘공개적으로 그걸 한다고 광고를 하고 다니는 거 아니냐’는 대사가 기억나더라고요.
《피케이》도 재미있고 오늘 진행한 《세 얼간이》의 감독이 만든 영화입니다. 추천합니다.
Pa: 칸(Khan)이라는 성씨가 되게 많은 것 같던데요.
칸이라는 이름은 모슬렘 계열의 성씨라서 그렇습니다. 참고로 아미르 칸은 실제 성이 칸이 아닌데요. 이슬람쪽 성씨 중에 이라크 독재자였던 (사담) 후세인처럼 중동 지역에서 많이 나타나는 성씨입니다.
Y: 그럼 샤룩 칸은 칸인가요?
네 샤룩 칸이나 살만 칸, 이르판 칸은 모두 칸 씨이죠. 인도에선 실제 본명을 쓰지 않는 배우들도 많은데 이유는 이름이 길어서 그런 경우가 있는데 이를테면 남인도 배우들은 이름이 긴 경우가 많습니다. 4음절인 경우도 많고요.
C: 라즈니칸트가 그 계열 아닌가요?
그렇죠. 음악가 A.R. 라흐만은 A.R.이 또 얼마나 길겠어요. 더구나 그것조차 본명이 아니에요.
Pu: 인도영화 배우를 만난 적이 있나요?
부산국제영화제때 보는 경우가 전부이고 작년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이었던 《카쉬미르의 소녀》의 감독하고 30분 정도 대화했던 적이 있습니다. 안 되는 발영어로요.
* 아미르 칸을 언급하면서 아미르 칸이 실제 칸 씨가 아니라는 말을 전해드렸는데 아미르 칸의 풀 네임은 Mohammed Aamir Hussain Khan입니다. 아버지는 타히르 후세인(Tahir Hussain)이라는 영화감독이었고 자녀들은 모두 칸 성씨로 개명했습니다.
* 라즈니칸트의 경우 이름이 길어서도 있지만 배우로서의 캐릭터를 구축하기 위해 개명을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참고로 본명은 시바지 라오 개크와드(Shivaji Rao Gaekwad)입니다. 정말 개명이 불가피 했겠네요.
D: 인도에서 의사라는 직업이 차지하는 위치가 어느 정도인가요? 여자들에게 추천한다고 해서.
지위가 상당히 높습니다. 남자이고 여자이고 의사라는 직종은 모두에게 높은 위치의 직종이거든요.
C: 계급제도도 뒤집을 수 있는 직위라고 보시면 됩니다.
Pa: 개천에서 용 날 수 있는 직업이라는 말씀이시죠?
C: 최하층민이라도 브라만과 맞먹을 수 있는 직업이라는 것이죠.
Pa: 계급은 바뀌지 않겠지만 사람들의 인식이 바뀐다는 말씀이시죠?
C: 삶의 지위가 바뀌는 거죠.
Pa: 그래서 라주가 그렇게 성공하려고 했던 거군요. 드라마 ‘빅뱅 이론’의 라제쉬 쿠트라팔리는 어느 정도인건 가요?
C: 인도 유학생이잖아요. 공부를 너무 잘 해서 외국대학교에서 쓰거나 아니면 집안이 너무 좋거나 둘 중 하나이죠.
아직 정식 개봉은 아닌 상태에서 특별 상영이 있던 가운데 맛살라톡을 진행할 수 있었는데요. 아마 다음 기회가 있으면 오늘과는 다른 형식의 톡으로 진행 될 것 같습니다.
참여해주신 여러분께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raSpberRy
추천인 12
댓글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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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피케이》 맛살라 톡 당시에 《인터스텔라》오프닝에 나오던 드론 이야기를 했는데
왠지 《세 얼간이》의 판공초 호수에 대한 기시감이... ㅋㅋㅋ
수정 했습니다.
우와! ㅎㅎㅎ 영화를 아직 안봤는데
보고나서 정독해야겠어요
리들러님을 위해 영화가 빨리 개봉되어야 할텐데 ㅋㅋ
감사합니다 ^^
'맛살라톡'에 대해 인도나 인도영화에 대해 아는 게 많아야 하나 걱정하시는 분도 많으신데
보편적인 감성과 인도 자체의 특수한 문화를 함께 담아내려는 게 목적입니다.
다음 영화는 어떤 작품이 될지 모르겠지만 재밌는 시간 만드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
박수 박수 박수 박수 박수 박수 박수 박수 박수 박수...
오랜만에 파도님한테 박수 받았드아~
ㅋㅋㅋㅋㅋㅋㅋ
저도 인터스텔라 생각 났었어요 ㅋㅋㅋ
어헛! 놀란 팬이 들으시면 어쩌시려고~!!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엄청나게 유익했구요
팡적님이 잘 해주셔서 재밌었습니다.
유익한 시간이었어요
PangJuck님 시점에서 읽었습니다 ㅋㅋ
우와 정리 감사합니다 ^^ !
네 감사합니다. ^^
너무 좋은 내용이 많아서... 맛살라 톡 리뷰는 정독과 재독이 필수입니다, 항상 감사하게 읽고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맛살라톡은 무조건 추천 또 추천이라고 배웠습니다...
웃는 추천 밝은 추천 좋아요 좋아요 정말 좋아요~
정말 대단하십니다
이렇게 글로 올라오니
참여하기 더욱 부담스러워지는 느낌이 드네요 ㅜㅜ
저~언혀 그렇지 않습니다
전문적인 지식 없어도 즐거운 토크 만들어 보겠습니다
아.. 맞다 드론...
생각해보니 진짜 발상 대단한 친구였는데.. 일찍 자살하다니 새삼 안타깝네요.
정리 하시느라 무지 고생하셨을 거 같습니다. 수고 많으셨네요.^^
중간에 "기억나는 선생님이 있으신가요?" 다음에 사진이 깨졌는데 확인 해보시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