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크모드
  • 목록
  • 아래로
  • 위로
  • 댓글 8
  • 쓰기
  • 검색

[메이의 새빨간 비밀] 간략후기

jimmani
2493 11 8

tumblr_01e7940f1d3ac37aab8dbf1616bd4225_d60f616e_1280.jpg

 

디즈니 플러스를 통해 공개된 픽사의 새 애니메이션 <메이의 새빨간 비밀>을 보았습니다.

만두라는 소재에 어머니의 사랑을 대입한 단편 '바오'로 깊은 인상을 남긴 중국계 감독 도미 시의 장편 데뷔작인 이 영화는

아마도 본인의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했을, 캐나다의 중국인 가족 안에서 딸로서 성장해가는 10대 소녀의 이야기를 그립니다.

성장기에 경험했을 격변하는 감정과 문화의 공기를 개성있게 그려내는 한편, 그 나이 때 누구나 겪었을

부모 세대와의 갈등과 이해를 흥미로운 캐릭터 설정과 결합하여 무척 사랑스러운 하이틴 무비로 완성하였습니다.

흔히 명작이라 부르는 픽사 애니메이션들과는 결이 좀 다르지만, 좀체 보지 못한 방식으로 재미와 감동을 주는 영화였습니다.

 

2002년의 캐나다 토론토를 살아가고 있는 13세 소녀 메이(로잘린 치앙)는 이제 어른으로서 주체적인 삶을 산다고 믿습니다.

단짝 친구들 미리엄, 프리아, 애비와 어울리며 관심 있는 동네 이성에 대해 이야기 나누기도 하고,

요즘 가장 핫한 아이돌 그룹인 '포타운'에 열광하며 그들의 투어 콘서트에 가는 것을 일생일대의 목표로 삼기도 하면서요.

하지만 그럼에도 메이에게는 여전히 '엄마를 실망시키지 않는 딸'이 되어야 한다는 마음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친구들과 열심히 놀다가도 가족 사원을 관리하고 있는 엄마 밍(산드라 오)을 도와 청소와 가이드 일을 거들기 마련이죠.

싱숭생숭한 메이의 감정들을 통제하려는 엄마에게 반항 한 번 못하고 속만 끓이던 메이는,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니 거대한 레서판다로 변해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아연실색합니다.

그런데 의외로 엄마와 아빠(오리온 리)의 반응은 침착한데, 이게 실은 엄마 쪽 가문의 오랜 전통(?)이라는 겁니다.

이 집안의 딸이 대대로 성장기에 이르면 주체 못할 감정에 사로잡힐 때 레서판다로 변한다는 거죠.

메이는 이 변신이 당혹스러우면서도 무척 크고 귀엽고 복실복실한 존재가 되어 친구들의 관심을 받는 게 싫지만은 않습니다.

과연 메이는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아니 돌아갈 생각이 있을까요.

 

<메이의 새빨간 비밀>은 감독의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해서인지, 그간 나온 픽사의 어느 작품들보다도

실재하는 특정 장소와 실재했던 특정 시기의 분위기가 구체적으로 담겨 있는 듯 합니다.

매 장면마다 배경으로 걸리는 도시의 랜드마크 CN타워, 극중 메이의 성장 배경인 차이나타운,

극중 아이돌 그룹 '포타운'의 투어 콘서트 장소로 실제 방탄소년단이 투어 콘서트를 열기도 했던,

현재는 '로저스 센터'로 불리고 있는 돔 구장 스카이돔까지 토론토의 주요 장소들이 실명으로 구체적으로 등장합니다.

뿐만 아니라 남매 뮤지션인 빌리 아일리시와 피니어스 오코넬이 만든 극중 '포타운'의 노래들은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 미국 보이밴드 팝의 재질을 실감나게 구현하고 있고,

다마고치와 노키아의 2G폰 등 극의 배경이 되는 2002년의 질감을 다양한 소재에 세세하게 반영합니다.

픽사 애니메이션은 상상 속 세계를 매우 디테일한 세계관으로 구축해 감동을 주기로 정평이 나 있는데,

<메이의 새빨간 비밀>은 감독이 실제로 자란 곳, 누군가가 실제로 겪었을 시절을 디테일하게 재현하며 감흥을 이끌어내는 셈입니다.

 

영화가 재현하는 것은 단지 이미지 뿐 아니라, 누구나 10대 시절에 느꼈을, 별의별 것에 다 설레고 흥분하던 '질풍노도'의 공기입니다.

지금까지 나온 픽사 애니메이션들 중에서도 <메이의 새빨간 비밀>의 연출 스타일은 특히 개성 넘치는데,

휘몰아치는 사춘기 소녀의 마음을 옮긴 듯 혼란스런 현재와 그 사이 불쑥 끼어드는 상상이 빠른 편집 템포 속에 배치되고, 

이를 통해 누구나의 10대 시절을 일렁이게 했던 변덕스런 감수성과 요란스런 문화를 발랄하게 재현합니다.

급작스레 흥분해 레서판다로 변했다가 금세 진정하고 본래 모습으로 돌아오는 메이, 그리고 그런 메이와 함께

온갖 감정에 한마음으로 몰입하는 친구들의 모습은 철없이 세상 물정 모르는 시절이구나 싶다가도 곧 흐뭇하게 바라봐집니다.

지나고 나면 '이불킥'할 기억들이고 어른이 된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모두 무상한 짓일지 모르나,

그때는 모든 것이었고 세상이 바뀔 정도의 사건이었던 시절이 우리한테도 있었음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픽사가 가장 잘 하는 특기가 또 다시 나오니, 바로 '내가 지나온 시절을 떠올리게 하기'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메이의 새빨간 비밀>이 비슷한 테마를 지닌 <인사이드 아웃>이나 <소울>만큼의 감동을 주진 않습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영화가 다루는 변덕스런 사춘기 이야기에 불쑥 의젓한 감동을 넣는 게 어색해 보이기도 합니다.

시종일관 유지되는 에너지를 바탕으로, 영화는 그 보편적인 시절을 매개로 점점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가족을 유쾌하게 그립니다.

'이제는 어엿한 어른'이라고 슬슬 주장하기 시작하는 사춘기에 갖게 되던 복잡한 양가 감정.

더 큰 세상 속의 더 큰 나를 만난다는 짜릿한 기대감과 그 미지의 세계로 발을 들이는 것에 대한 걱정이 공존하고,

보다 자유로운 내가 되고픈 열망과 이제 내가 비롯된 곳으로부터 멀어지는 걸까 하는 두려움이 부딪히던 시절이었음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돌이켜 보면 나만의 통증이 아니었을, 나의 엄마도 나의 엄마의 엄마도 떠안았을 성장통을 떠올리게 되죠.

10대로서, 딸로서, 동양계 가족의 일원으로서 대를 이어 겪었을 성장기의 갈등을 이해하고 그 속에서 내 선택을 정하는 과정을,

메이가 레서판다로서 홀로 또는 친구들과 보여줬던 그 텐션처럼 밝고 포근한 기운을 담아 보여줍니다.

이처럼 <메이의 새빨간 비밀>은 다른 훌륭한 픽사 영화들처럼 인생의 어떤 시기를 관통하는 깨달음을 주면서도,

'레서판다로의 변신'이라는 설정의 규모감을 영화적으로 한껏 키워 보여주는 클라이맥스 장면처럼

야단법석 요란하지만 똑부러지는 10대 소녀로 자랐었던 이의 활력을 메시지에도 고스란히 담아 전합니다.

 

픽사의 여러 영화들을 줄세우면 아마 우리 인생에 대한 연대기가 될텐데, <메이의 새빨간 비밀>도 아마 거기에 포함될 것입니다. 

우리가 픽사의 영화들을 사랑하는 것은 이처럼 우리 삶의 여러 시간들을 오롯이 담아냄으로써

단지 즐거운 영화를 제공하는 데 머물지 않고 우리와 삶을 공유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일 겁니다.

<메이의 새빨간 비밀>은 그만의 색다른 방식으로 이러한 픽사의 미덕을 계승하면서 보는 이를 흐뭇하게 합니다.

많은 픽사의 걸작들처럼 눈물 짓게 하는 거대한 감동까지 주진 않을지라도, 또 한번 우리가 살았고 느꼈을 어느 장면을

정확히 건드리며 여전히 우리의 삶과 함께 걷고 있는 픽사의 넓고 따뜻한 시야를 다시금 느끼게 하는 수작입니다.

신고공유스크랩

추천인 11


  • 아오시마

  • 젊은이를위한나라도없다
  • Nashira
    Nashira
  • 써누
    써누
  • 알폰소쿠아론
    알폰소쿠아론

댓글 8

댓글 쓰기
추천+댓글을 달면 포인트가 더 올라갑니다
정치,종교 관련 언급 절대 금지입니다
상대방의 의견에 반박, 비아냥, 조롱 금지입니다
영화는 개인의 취향이니, 상대방의 취향을 존중하세요
자세한 익무 규칙은 여길 클릭하세요
profile image 1등

극중 보이밴드가 부르는 음악들이 90년대 느낌이 그대로 묻어나와서 혹시 원래 있는 노래일까 싶기도 했는데, 빌리 아일리쉬가 작곡한 거였군요 ㄷㄷ 젊은 가수인데 재주가 좋네요 ㅎㅎㅎ

22:46
22.03.13.
jimmani 작성자
알폰소쿠아론
음악이 아주 감쪽같죠 ㅎㅎ
빌리 아일리시와 함께 음악 작업을 한 오빠 피니어스 오코넬은 밴드 멤버 중 한 명의 목소리 연기도 했더라고요.
22:51
22.03.13.
2등
........
삭제된 댓글입니다.
23:18
22.03.13.
jimmani 작성자
........
감사합니다! 극장에서 만났다면 더 좋았을텐데 말이죠ㅠ
23:31
22.03.13.
profile image 3등
이걸 극장에서 못본다니.... 디즈니 브앜!!!
픽사는 팍씨 독립하라! ㅜㅜ
23:26
22.03.13.
jimmani 작성자
Nashira
이런 콘텐츠가 있어야 디즈니 플러스에 유입이 또 되려나 싶기도 하고요ㅠ
23:32
22.03.13.
공감되는 후기입니다 너무 재밌게 잘봤습니다. 다소 평범한 얘긴데도 집중하면서 보게만드는 힘이 있더라구요😁
00:40
22.03.14.
jimmani 작성자
석갈비
감사합니다. 연출이 정말 통통 튀었죠.^^
09:01
22.03.14.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에디터 모드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하시겠습니까?

댓글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공유

퍼머링크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나야, 문희] 예매권 이벤트 12 익무노예 익무노예 1일 전12:07 1228
공지 [데드데드 데몬즈 디디디디 디스트럭션: 파트1] 시사회에 초... 17 익무노예 익무노예 2일 전20:03 2135
공지 [총을 든 스님] 시사회 당첨자입니다. 4 익무노예 익무노예 2일 전19:54 1471
HOT 자레드 레토,<마스터브 오브 더 유니버스> 실사판 출연 1 Tulee Tulee 55분 전10:59 236
HOT [하얼빈] 예매량 20만장 돌파…[서울의봄] 동시기 2배 높다 2 시작 시작 1시간 전10:42 380
HOT 하이어 그라운드-20세기 스튜디오,크리스마스 코미디 영화 &... 2 Tulee Tulee 1시간 전10:39 146
HOT 애틋한 홍콩의 사랑, 애틋한 한국의 사랑 3 조윤빈 8시간 전02:57 600
HOT 24년 영화들 꼴라쥬 일러스트 2 NeoSun NeoSun 1시간 전10:38 233
HOT 블레이크 라이블리 [우리가 끝이야] 감독을 성희롱으로 고소 3 시작 시작 1시간 전10:28 434
HOT ’쥬라기월드 리버스‘ 스칼렛 요한슨 뉴스틸 1 NeoSun NeoSun 2시간 전09:48 595
HOT 12월20일자 북미박스오피스 순위 ㅡ 슈퍼소닉3 , 무파사 : ... 1 샌드맨33 3시간 전08:03 507
HOT 손석구 에스콰이어 1월호 화보 1 e260 e260 4시간 전07:33 366
HOT sbs금토드라마 사마귀 티저 1 zdmoon 8시간 전03:01 961
HOT <란마 1/2> 2기 제작결정 1 중복걸리려나 10시간 전01:28 472
HOT 성탄절이 얼마안남아 두번째괴작 1 전단메니아 전단메니아 10시간 전00:56 557
HOT 2024년 12월 21일 국내 박스오피스 5 golgo golgo 11시간 전00:01 1850
HOT 달고나 챌린지 with 토트넘 선수 2 라인하르트012 12시간 전23:05 1024
HOT <크레이븐 더 헌터> 주연 후보에 브래드 피트와 키아... 2 카란 카란 13시간 전22:40 1560
HOT 에드가 라이트의 런닝맨 2025년 11월 7일 개봉 3 기다리는자 13시간 전22:30 1651
HOT 새로운 미이라(이블데드 라이즈 감독) 6 기다리는자 13시간 전22:24 1159
HOT 존 추 감독 "조지 루카스가 위키드를 좋아했다" 1 시작 시작 13시간 전22:22 904
HOT 박규영이 올린 넷플릭스 ‘사마귀’ 촬영 비하인드샷들 NeoSun NeoSun 14시간 전21:12 2199
HOT 글래디에이터 (2024) 비난 받을 만한 영화. 스포일러 있음. 4 BillEvans 15시간 전20:04 1048
1161431
image
NeoSun NeoSun 4분 전11:50 45
1161430
image
NeoSun NeoSun 7분 전11:47 59
1161429
image
Tulee Tulee 55분 전10:59 236
1161428
image
Tulee Tulee 56분 전10:58 102
1161427
image
Tulee Tulee 56분 전10:58 75
1161426
image
시작 시작 1시간 전10:42 380
1161425
image
Tulee Tulee 1시간 전10:40 105
1161424
image
Tulee Tulee 1시간 전10:39 93
1161423
image
Tulee Tulee 1시간 전10:39 84
1161422
image
Tulee Tulee 1시간 전10:39 146
1161421
image
NeoSun NeoSun 1시간 전10:38 233
1161420
image
NeoSun NeoSun 1시간 전10:34 168
1161419
image
시작 시작 1시간 전10:32 351
1161418
image
시작 시작 1시간 전10:28 434
1161417
image
NeoSun NeoSun 1시간 전10:00 233
1161416
image
NeoSun NeoSun 2시간 전09:48 595
1161415
image
샌드맨33 3시간 전08:03 507
1161414
image
e260 e260 4시간 전07:37 437
1161413
image
e260 e260 4시간 전07:35 360
1161412
image
e260 e260 4시간 전07:35 242
1161411
image
e260 e260 4시간 전07:33 366
1161410
image
e260 e260 4시간 전07:32 424
1161409
image
e260 e260 4시간 전07:32 269
1161408
image
zdmoon 8시간 전03:01 961
1161407
image
zdmoon 8시간 전03:00 600
1161406
image
zdmoon 8시간 전02:58 638
1161405
image
조윤빈 8시간 전02:57 600
1161404
image
hera7067 hera7067 10시간 전01:28 625
1161403
image
중복걸리려나 10시간 전01:28 472
1161402
image
전단메니아 전단메니아 10시간 전00:56 557
1161401
image
전단메니아 전단메니아 11시간 전00:49 548
1161400
image
golgo golgo 11시간 전00:01 1850
1161399
image
hera7067 hera7067 12시간 전23:34 523
1161398
image
hera7067 hera7067 12시간 전23:18 279
1161397
image
hera7067 hera7067 12시간 전23:12 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