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라고 불렀는데 제가 오빠였습니다"
* 아주 이상하고 다양한 이유들로 '크리스마스'하면 떠오르는 사람 중 한 명이 '장학우'라 크리스마스 때 관련 글을 뭐라도 적어보려 했다가 시간적인 여유가 되질 않아 결국 쓰질 못했는데... 늦었지만 영화 '매염방' 관련 이야기가 들려오고 있어 몇 자 끄적여봅니다.
그 시기를 통과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홍콩 영화계에 대해 어렴풋이 기억하거나 들어본적 있는 사람들은 80년대 홍콩 연예계 특히 가요계를 수놓았던 '알란탐-장국영-매염방' 이후에 90년대를 지배했던 일명 '사대천왕'들이 나왔다는 걸 알기에 당연히 매염방 역시도 장국영 정도의 연배라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된다. 그 사대천왕(개인적으로는 이 표현 안 좋아해서 거의 쓰진 않지만) 중 한 명이었던 장학우조차 그렇게 생각을 했을 정도니 말 다했습니다만.... 그 시절 일화가 언급이 되는 영상이 하나 있다. 그런데 이 영상 길지 않지만 멘트에서부터 노래 그리고 출처(?)까지 뜯어볼수록 흥미로운 구석이 참 많다.
1. 매염방의 마지막 콘서트... 그런데 이 영상은?
이 영상의 시작부분만 봐도 너무나 눈에 익은 매염방의 의상에서 이게 매염방이 죽음을 앞두고 혼신의 힘을 기울여 팬 앞에서 섰던 마지막 콘서트였다는 걸 알 수 있다. (2003년 11월 15일 마지막 무대를 끝으로 매염방은 12월 30일 세상을 떠난다) 장학우는 11월 6일 이 콘서트의 첫번째 공연의 게스트로 출연하여 자신의 명곡 중 하나인 '축복(祝福)'을 매염방과 함께 불렀는데 이 노래의 가사를 생각하면 매염방이나 장학우에게 있어 이만큼 적절한 선곡은 없다 싶을 정도. 워낙에 유명한 영상이기도 하고 정식으로 발매된 DVD에도 담겨 있어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데..... 문제(?)는 이 영상이 그야말로 '있었는데 없었습니다'와 같은 참 미스테리한 존재라는 거.
매염방이 무대를 내려가 휴식을 취하는 동안 자칫 가라앉기 쉬운 분위기를 띄워주며 독무로 열창을 하는 이 영상 속 장학우의 모습은 매염바아과 소속사도, 음반사도 다르고 판권 등등의 이유로 정식으로 발매된 DVD에는 담겨있지 않다. 유튜브나 중국의 동영상 사이트에서 '張學友 蔓珠莎華'를 검색하면 이 영상만이 나올 뿐이고. 중국 사이트에 올라온 댓글 반응은 대략 이렇다. "도대체 이런 영상이 어떻게 정식 DVD에는 담기지 않을 수 있냐?!' "근데 도대체 한국팬들은 어떻게 이 영상 구한 거지?" "2007년 장학우 光年 콘서트 DVD에 한국팬들 모습 잡힌 클래스가 어디 안 가는구나!"
장학우의 한국팬분이 그 날 찍은 직캠 영상인가 싶었지만 아마도 매염방 생애 마지막 콘서트의 첫번째 공연을 TVB같은 방송국에서 내보낸 영상을 녹화하여 소장한 자료를 올리지 않았을까 하는데 저렇게 korea로고가 붙은 영상만이 유일하게 존재하는 거 보면 이 영상을 송출했던 방송사나 판권을 지닌 음반사가 정식으로 올리지 않은 이상 원본 영상을 볼 길은 없었을 듯하여 언제나 아쉽다 .... 아, 정말 진정으로 원본 영상이 보고 싶은!! 영상에 박힌 닉네임을 보니 분명 장학우 홍콩 콘서트 갔을 때 만난 적이 있는 분인 거 같은데 진작 알았으면 소장하고 있는 오리지널 영상을 좀 구경시켜 달라고 부탁해볼 걸 ㅠㅠ 장학우의 잘생긴 모습을 선명한 화질로 보고 싶다! 장학우의 저 미친 열창을 고음질로 듣고 싶다!
2. "내가 오빠라니!"
그 시절 덕질 참 힘들었습니다. 장학우 공연 영상들을 보면 장학우가 관객석을 향해 참으로 많은 말을 건네는데... 문제는 광동어라 '고맙습니다' '하나 둘 셋' 이런 거 빼곤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다는 거 ㅠㅠ 북경어 그러니까 만다린어면 한 두마디라도 알아듣겠는데 이건 뭐 멘트 중에 관객들이 웃어도 물음표만 백만개 찍게 될 뿐이라 참 답답했는데 다행이 광동어 되는 중국팬들이 종종 북경어 자막을 달아주면서 눈이 번쩍! 매염방이 무대 뒤로 빠진 뒤 관객석을 향해 장학우가 던진 광동어 멘트 역시 자막이 달린 영상이 있어 해석을 해보니 나이에 얽힌 이야기가 여기서 나온거구나 무릎을 탁!! (물론 이전에 이런 비슷한 말을 분명 한 적 있겠지만) 해석을 해보면...
장학우 : 제가 데뷔할 때 당연히 전 매염방이 저보다 나이가 많을 거라 생각을 했죠. 데뷔 이전에도 그렇게 생각을 했고요. 그래서 막 데뷔를 하고 매염방을 봤을 때 '무이제(梅姐, 매누나)~'라고 불렀어요. (관중 폭소 ㅎㅎ) 그녀를 알게 된지 몇 년 후에야 알게 되었죠. 원래 제가 그녀보다 나이가 많다는 걸.
어쨌거나, 제가 매염방을 알게 된지 17년 정도가 되는데 그 때부터 지금까지 전 그녀가 참으로 멋진 사람이란 생각을 해요. 이번 콘서트엔 많은 깜짝 비밀 게스트들이 나올텐데요, 사실 전 그런 비밀 게스트는 아니예요. 왜냐하면 이런 저의 출현은 (너무나 당연하고 누구나 짐작할만큼) 필연적이니까요.
실제 장학우는 매염방보다 2살이 많다. 장학우가 사회생활(케세이퍼시픽 사무원)을 하다가 가수로 데뷔하기도 했지만 그만큼 매염방이 일찍 연예계에 데뷔한 것.
자신의 콘서트 출연은 필연적이다라는 말엔 꽤 많은 의미가 담겨져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장학우와 매염방은 동료 이상의 관계라 할 수 있는데 우선 장학우의 아내인 나미미가 매염방과 의자매이기도 해서 가족같은 막역한 그런 사이라 할 수 있고, 무엇보다 가수 출신들이 갖는 특유의 동질감이 크게 작용하지 않았을까. 매염방은 82년 2천대 1의 경쟁을 뚫고 가수로 데뷔, 장학우는 84년 1만대 1의 경쟁을 뚫고 가수로 데뷔. 참고로 장국영도 음악 콘테스트 출신이다. 이렇게 가수 출신들은 장국영이 그랬던 것처럼 배우로 아무리 성공을 해도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목표는 결국 '노래를 부르는 무대'라고 여기는 공통점이 분명 있는 거 같다. 그래서 매염방-장국영-장학우 사이가 그렇게 돈독했던 것 같기도 하고.
3. 무대를 불 태워버린 曼株沙华,
장학우 : 오늘 여러분들은 많은 비밀 게스트들을 만나게 될텐데, 오늘 게스트들은 매염방의 노래들 중 하나를 골라 부르기로 했고 지정된 동작들도 있는데 제가 고른 곡은 <만주사화(曼株沙华)>예요
매염방의 1985년 히트곡인 <만주사화>. 여기서 '매염방의 '만주사화'는 모르겠지만... '만주사화'라면 혹시??'라고 생각하는 분이 계신다면 네, 맞습니다. 야마구치 모모에의 '만주사화'의 홍콩 번악곡이죠. 80년대 홍콩 칸토팝의 히트곡의 대부분이 일본 번악곡이라고 해도 과장은 아닐정도. 장학우 역시도 1990년대 앨범부터 일본번안곡의 비중이 확 줄고 진짜 오리지날 광동어곡들이 채워졌으니까.
모모에의 <만주사화>를 들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매염방의 <만주사화>는 그 느낌부터가 다르다. 눈빛과 손짓, 노래의 질감까지 다른 느낌인데 장학우의 <만주사화>는 모모에와 매염방과는 아예 색깔과 질감부터가 다르다. 여가수들이 보통 key가 높은만큼 남자 가수들이 여가수들의 노래를 부를 땐 키를 낮춰부르는 게 보통이지만 음역대가 높고 원래 키를 높게 잡는 장학우의 경우엔 여가수들의 원키를 그대로 유지하는데다 감성이 남달라서 다른 가수들의 노래를 부를 때 주로 여가수의 곡들을 많이 부르는 편인데 그래서 저음이나 허스키한 스타일의 여가수와 듀엣을 할 땐 자신이 키를 낮출 정도다.
장학우의 <만주사화>는 모모에보다는 키가 높고 매염방 정도의 키에 맞춘 듯하지만 그 감성 때문에 원키보다 더 높게 잡아 부르는 것 같은데 개인적인 느낌을 말하자면... 야마구치 모모에의 <만주사화>가 '시나몬 향이 짙게 나는 카푸치노'라면, 매염방의 <만주사화>는 진하게 직구를 꽂아넣는 '에스프레소 더블샷'이고 장학우는 뭐랄까 불 붙인 '에스프레소 마티니' 같달까.
장학우 팬의 입장에서 이 영상이 즐거운 건 장학우가 자신의 노래를 부를 땐 잘 쓰지 않는 동작들을 볼 수 있기 때문. 자신이 말했듯이 당시 게스트들이 노래마다 지정된 동작을 하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할테지만 사실 장학우가 여자 가수들의 노래를 부를 때 감정이 완전히 풀차지가 되면 나오는 특유의 동작들이 있는데 이 영상에 그게 보여서 미소를 짓게 된다(손 동작만으로도 이미 쓰러짐;;). 다른 가수 노래들 특히 여자 가수 노래를 부를 때 혹시 약 빨았나? 싶을 때가 있는데 이 영상 속 모습이 딱 그렇다. 3시간이 넘는 자신의 콘서트를 몇 백회를 해도 다른 게스트를 부르는 법 없는 장학우는 정작 다른 가수 콘서트에 게스트로 자주 불려다니면서 그 무대를 불태우기로 유명한데 이 게스트 무대는 자신을 불살라버리는 느낌이라 볼 때마다 이 영상을 볼 때마다 경외감마저 들게 된다.
4. 그리고 그 후....
매염방은 2003년 12월 세상을 떠나고 10년이 지난 2013년 장학우는 (이제는 홍콩인들이 적이 되어버린)증지위와 함께 매염방을 추모하는 콘서트 무대를 마련했다. 가수 뿐 아니라 양조위, 장만옥 등 홍콩의 유명 연예인들이 총 출동한 이 무대에서 <만주사화>는 임억련이 불렀고, 장학우는 <적적의혹(赤的疑惑)>을 불렀는데 임억련이 원래 어떤 노래든 찰떡같이 다 잘 부르는데 이 날 <만주사화>는 뭔가 자신의 색깔과는 맞지 않아 보여서 살짝 아쉬웠던. 그래서 차라리 이 곡을 장학우가 한 번 더 불렀으면 좋지 않았을까.
광동팝 그러니까 캔토팝의 상징같았던 장국영과 매염방이 그렇게 차례로 세상을 떠나고 세월은 흐르고 또 흘러 장학우는 올해 60이 되었다. 팬으로선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얼마 전 CLASSIC TOUR 실황을 담은 앨범과 디스크 발매 기념식에서 장학우는 은퇴는 고려하지 않고 몇 년간 더 노래를 부를 예정이며 코로나 상황을 봐서 콘서트도 다시 가질 거라는 발표를 했다.
가신님 사인 들어간 블레 한 장 여기로 좀 던져주세요!!
칸토팝이 그렇게 흥했던 시절에도 홍콩 가수들이나 칸토팝은 중화권 음악씬에 있어선 변방 취급을 당했다. 중화권에서 광동어를 쓰는 시장은 상대적으로 작았고 그래서 홍콩영화면 몰라도 홍콩 가수들은 아무리 흥해도 칸토팝 바운더리 안에서만 통할 거라는 확신을 가진 사람들이 꽤 있었다. 1990년 초중반 제작자인 대만의 이종성(임억련의 전남편이기도 한)의 발언이나 대만을 중심으로 활동해서 인기를 얻었던 왕걸이나 주화건 등의 당시 태도를 보면 중화권 음악의 주인은 결국 만다린어를 쓰고 진정한 창작물을 만드는 자신들이라는 그런 확신이랄까 오만함이 기저에 깔린 걸 느낄 수 있다. 중화권 음악시장을 보면 아주 틀린 말은 아니고 지금도 그렇게 돌아가는 상황이라고 할 수는 있지만.... 캔토팝을 넘어 만도팝까지 아우르며 그 중화권 음악의 거의 모든 기록을 홍콩 출신의 가수인 장학우가 가져갈 거라는 건 생각지도 못했을 거라는 거다. 음반 시장의 환경이 변한만큼 기록에서든 네임드에서든 무게감에서든 결국 중화권 음악의 최후 승자는 장학우의 몫이 되지 않을까.
칸토팝이 고사 위기에 처해 홍콩 가수들도 만다린어 앨범을 내기 시작한지 오래고 여기에 중국이 홍콩의 정체성을 지우기에 본격 돌입한만큼 진정한 의미의 홍콩영화와 광동팝이 과연 앞으로 나올 수 있기나 한 것인지 우려되는 상황임은 분명하다. 앞으로 장학우의 음악적 행보는 어떻게 될까? 특이한 점은 코로나 때문에 거의 모든 연예계가 활동에 있어 제약이 있었던 영향인지는 모르겠지만, 장학우의 경우엔 짧은 홍보성 멘트나 인사에서부터 크고 작은 무대까지 중국을 상대로 한 만다린어 활동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다는 거다. 광동어를 쓰는 동료와 후배들의 무대에 서고 광동어 곡을 내는 등의 이런 활동이 올해 한시적인 것인지는 모르겠만.
마지막으로 영화 사이트 익무인만큼 233회라는 콘서트 기록을 세운 CLASSIC TOUR 앨범 발매 온라인 기자회견 때 장학우가 밝힌 영화에 대한 이야기로 이 글을 마무리하려고 하는데..... 너무 장학우스러운 발언이라 인터뷰 기사 보는 순간 혼자 낄낄대고 웃었다는 건 안 비밀입니다~
내년에는 어쩌면 새로운 영화 작업에 들어갈 수도 있을 거라 밝힌 장학우. 사실 여전히 아직까지도 영화 출연을 제의받곤 있지만 들어오는 대부분의 역할이 자신의 실제 나이보다 어려서 신중해질 수 밖에 없다고 "제가 30~40대면 10대를 연기해도 그렇게 문제는 없겠죠. 그런데 지금 60살이 된 마당에 30대를 연기하는 건 이건 진짜 좀.... 나, 늙었다고!" (아니, 왜요~ 난 충분히 잘 하실 거 같은 생각은 드는데?!)
러스트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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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매염방 개봉하길 기다리고 있는데, 꼭 개봉했으면 좋겠네요.
영화의 만듦새와는 별개로 그냥 매염방이라서 보고싶네요...
제가 며칠 익무에 못들어왔을 때 또 귀한 글 남겨주셨군요. 저는 매염방 본인을 뵌게 2003년 장국영 기일을 맞춰 완차이 컨벤션 센터에서 열렸던 추모 콘서트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ㅠㅠ 귀한 양조위, 장학우 모두 나와 노래했던 그날이
내년이면 20년이네요ㅠㅠ // 장학우 2007년 콘서트 DVD 한국 자매님들 대거 출연... 저도 좀 나와요. 하하하... 그 콘서트 투어 딱 이틀갔는데, 그 중 하루가 촬영일이었던ㅋㅋㅋ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었습니다. 이번 경전 콘서트 블루레이도 구매하셨겠죠? CD 까지 싹 다 지르고 행복한 연말 연초를 보내고 있습니다. 이런 저런 사정으로 장학우 팬분들이 블로그를 많이 접으셨고, 홈페이지도 없어서, (비록 말하고 가져간 건 아닌것 같지만) 귀한 자료가 유튜브에 남아있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홍콩이 이미 예전의 홍콩은 아니지만, 장학우 오빠, 양조위 오빠는 영원한 홍콩의 오빠들로 남아계실거라 믿습니다. 홍콩의 딸 매염방 영화의 대한민국 개봉을 바라면서요.
저는 영화 감상 접은지도 오래고 해서 블레 플레이어 따윈 두고 살지 않았는데 블레로만 영상을 낼 줄은... 가신님, 너무 나빠요 ㅠㅠ 어쨌거나 소장용으로 구하긴 해야겠죠? ㅎㅎ 그래도 올해 초부터 학우님이 이런 저런 근황들을 보여주셔서 감사해요. 베이징 올림픽 기념 영상에 뭔 홍콩 연예인들로 가득 채운건지.. ㅋ
와.. 장학우가 벌써 환갑이군요.
배우들 나이들었단 얘기 들으면 가끔 충격 받습니다.
매염방 전기 영화 국내에서도 개봉할지 모르겠는데, 손꼽아 기다리실 것 같아요.
지금의 중국과 과거의 홍콩 생각하면 여러 가지로 착잡해지는데... 암튼 글 잘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