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복' 간단 리뷰
1. 모든 대학교 학과가 마찬가지겠지만, 철학과에 입학하면 우선 세계철학사부터 배운다. 고대 그리스철학부터 근현대 미학까지 열심히 배우다가 이후에 각 과목별로 세세하게 배운다. 철학과가 주로 배우는 걸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옛날 인문학자들은 뭐라고 떠들어댔나" 정도다. '사(史)'라는 게 다 그렇다. 이를 달달 외우는데 머물면 철학은 이보다 더 재미없는 게 있나 싶을 정도로 재미없는 학문이 된다. 철학은 정말 재미가 없다. 그러나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서 "옛날 사람이 철학했던 것처럼 나도 철학할 순 없을까"라는 고민을 하면 철학은 조금 신선해진다. '철학적 사고'에 대해 완전히 알진 못하지만 일단 '모든 것에 의문을 갖기'에서 시작하는 건 기억한다.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 없이 만물을 의심하고 질문하면서 새로운 사고는 완성된다. '서복'은 그런 영화다.
2. '서복'에 대해 기대한 것을 먼저 적어보자. 정보기관 출신의 민기현(공유)이 어떤 이유로 복제인간 서복(박보검)과 쫓기는 신세가 된다. 두 사람은 정보기관과 거대기업의 위협에 맞서 서로를 지키며 우정을 쌓아간다. 이 과정에서 긴박감 넘치는 카체이싱이나 격투액션 정도를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서복'은 보기 좋게 이를 배신하고 선문답을 주고 받는다. 우선 서복은 죽지 않는 존재다. 복제인간으로 태어나서 실험실 안에서만 평생을 살았다. 당연히 세상의 모든 것이 궁금하고 삶과 죽음에 대해서도 궁금하다. 그에게 세상의 익숙한 질서는 모두 의문으로 귀결된다. 예를 들어 "죽는 게 두려운가요? 그렇다면 살아있는 건 행복했나요?"라고 묻는 식이다. 영화에서 충분히 선문답 같은 대화가 오고 갈 순 있다. 다만 이 물음들이 꽤 강렬해서 이야기가 잠시 희석되기까지 한다. 이건 바람직한 결과는 아니다.
3. 나름 철학과 출신에 선문답 주고 받는 걸 좋아하는 내 입장에서는 '서복'의 이런 전개가 재밌다. 쓸 것도 많고 이야기할 것도 많다. 그러나 이런 선문답에 160억원을 태워도 되는건지 우려가 된다. CJ ENM은 정치와 인간의 도리에 대해 묵직하게 묻는 영화 '남한산성'에 155억원을 태웠다. 내부 관계자들이야 "이건 된다"고 생각했겠지만 결과는 함께 개봉한 '범죄도시'의 승리였다. '남한산성'을 영화로 만들려면 많은 제작비가 든다. 그러나 상업영화로써 극장에 걸었을 때 그만큼 회수할 수 있을지는 되물어야 한다. '서복'은 같은 실수를 범한다. 심지어 '남한산성'처럼 무거운 분위기지만 처절한 전투씬을 만들지도 못한다. '서복'의 클라이막스는 충분히 강렬하지만 여기에 이르기까지 철학적 문답을 거쳐야 한다.
4. 나는 '서복'이 감독의 의도와 다르게 편집됐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기자간담회에서 공유의 말처럼 첫 등장 장면의 일부가 편집됐다. 분명 그런 장면이 더 있을거라는 생각이 든다. 클라이막스에서 기현과 서복의 대화에는 꽤 많은 생략이 느껴진다. 무엇보다 이야기에 장르적 관습이 꽤 강한 만큼 여러 시도를 했을거라 생각한다. 영화 '서복'은 그런 시도들 가운데 철학적 문답을 중심으로 편집됐다. (모든 영화가 마찬가지지만) 다른 방향으로 편집한다면 충분히 다른 '서복'이 나올 수 있다. 언젠가 이 영화에도 디렉터스컷이 나올지 궁금하다. '내부자들'처럼 잔뜩 늘린 확장판을 꼭 보고 싶다. 다른 이유보다 공유와 박보검의 연기를 또 보고 싶다.
5. 박보검은 '서복'에서 굉장한 연기를 펼친다. 그렁그렁한 소년의 눈을 갖다가도 화가 잔뜩 난 맹수의 눈빛도 보여준다. 레퍼런스가 대단히 많은 캐릭터지만 박보검은 그 많은 레퍼런스를 이겨내고 자신만의 캐릭터를 만들어낸다. 공유가 연기한 기현은 익숙해보일 수 있다. 이 역시 레퍼런스가 많은 인물이다. 감독의 말에 따르면 기현은 서복을 바라보는 인물이다. 즉 관객은 기현에 이입해 서복을 바라보고 삶과 죽음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이를 위해 기현은 관객이 개입할 여지를 남겨둔다. 예를 들어 자신의 배경을 감추거나 배경설명을 더 하는 편이다. '서복' 포스터 속 공유의 모습을 보면 '용의자' 시절이 떠오른다. 그래서 더욱 그때 그 액션을 기대하게 되는 모양이다. 물론 '서복'은 그런 액션영화 아니다.
6. 영화가 크게 다루지 않는 지점이 복제인간 윤리에 관한 문제다. 이는 복제인간이라는 개념이 처음 등장할 때부터 존재해왔다. 주로 "복제인간은 인격이 있는가"(그렇다면 복제인간의 인덕에, "복제인간을 사회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등이다. 이는 인공지능(AI) 윤리까지 함께 언급하며 살펴봐야 할 내용이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신체 일부분을 얻기 위해 만든 복제인간은 인큐베이터에서 의식이 없는 채 '길러'지다가 파츠를 분리하고 버려진다. 사람이 아닌 제품으로써 인식하기 위해 의식을 부여하지 않는 것이다. 이는 마이클 베이의 '아일랜드'에서도 언급된다. 그렇다면 인간을 정의내리기 위해서는 '의식'의 유무를 따져야 하는가? 영화 속 서복이 하던 질문이 이런 식이다. 복제인간과 AI윤리에는 살펴볼 대목이 많다. 생명공학에 대한 윤리부터 딥페이크 기술 등의 윤리적 문제에 대해서도 따져야 한다. 영화는 여기에 대해 질문을 던지지만 노골적으로 답을 피한다. 할 게 따로 있는 모양이다.
7. 결론: '서복'은 선문답을 주고 받는 철학적인 영화다. 사색하고 쫓을만하지만 이 영화는 제작비가 160억원이다. 그 돈을 투자해서 만든 영화치고는 '서복'을 극장에서 봐야 할 이유가 명확하지 않다. 영화의 메시지와 상업적 목적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어쨌든 15일 공개를 앞둔 '서복'을 극장에서 봐야 한다면 '단 하나'이자 '거의 유일한' 이유는 공유와 박보검의 존잘 명연기다. 그건 큰 화면에서 볼 가치가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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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후기 재밌게 읽었습니다. 예상과 다르게 스펙타클? 한 오락영화류는 아닌가 보네요
전 리뷰를 보니 더욱더 기대됩니다 ㅎㅎ
후기 좋네요. 감독도 옛날부터 sf 아니라고 했던것같고 철학, 두려움 쭉 강조했던거보면ㅋ 저는 철학쪽 관심많고 취향인사람이라 극장에서 봐야겠어요ㅋ
배우들 연기는 예상했던 대로네요
감독의 제작의도가 생각보다 매끄럽게 안 풀렸나 봅니다
그래도 한번쯤 극장에서 볼만하긴 할것같네요
극장에서 보긴 할 것 같아요!
항상 리뷰 감사합니다
그래도 존잘 명연기 믿고 극장가서 봐야할까봐요 ㅋㅋㅋㅋㅋ
다른 영화 스케쥴에 맞춰서 여유있게 봐야겠어요ㅎㅎ
저는 기대치가 조금 더 오른것 같습니다
좋은후기 감사드려요
전문가의 필력이 느껴지내요
왠지 모르게 <공각기동대 이노센스> 후기를 보는 듯한 기분이에요.
제가 생각했던 것들을 다 적어주셨어요.
제 비루한 후기는 삭제해야 할 듯 ㅋㅋㅋㅋ
공유와 박보검의 존잘명연기 보러 극장에 갈래요 근데 필력이 대단하신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