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성년' 김윤석 감독 인터뷰
인터뷰 일시와 장소 : 2019년 4월 5일 삼청동 모카페
인터뷰어 : 김종철 다크맨), 이용철(ibuti)
정리: golgo
영화가 무척 좋았다. 보기 전부터 좋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지만.
정말인가? 감사하다.
예상했던 것보다 영화가 무척 섬세해서 놀랐다.
이 나이 먹고 섬세하다는 얘기를 요즘 많이 듣는다. (다들 웃음)
연기자로서 센 역할을 주로 하는 편이지만 <천하장사 마돈나>(2006)나 <완득이>(2011) 같은 출연작도 있어서 그런 면모가 나올 거라고 얼마큼 예상은 했다.
(섬세할 거라는) 가능성은 열어뒀던 거네. 아예 상상도 못했다는 분도 있더라. (웃음)
최고의 자리에 있는 배우이지만, 감독 데뷔를 하게 되면 아무래도 새롭게 평가받게 되기 마련이다. 중요한 첫 영화로서 <미성년>이라는 작품을 선택한 이유가 있다면?
구혜선 씨를 비롯해서 저와 가까운 하정우 배우나 유지태, 박중훈 씨 등 연기자로서 감독을 했던 분들이 나보다 먼저 길을 닦아주셔서 부담감은 덜했다.
내가 연기한 캐릭터들 때문에 보통의 관객들은 놀랍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나는 오랫동안 연극을 해왔고, 영화도 드라마와 캐릭터로만 승부하는 것들을 대체로 좋아한다. 또 그런 작품들의 생명력이 오래 간다. 나중에 다시 보면 늘 새로운 디테일들이 발견된다. 그리고 내 능력상 아직까지는 카메라 기술 같은 걸 잘 알지 못하고 장르적인 영화를 찍기에는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첫 작품으로서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드라마와 배우의 연기력으로 승부하려 했다.
마침 2014년 12월 젊은 연극인들의 창작 희곡 발표회 때 <미성년>의 원류가 되는 작품을 발견했다. 당시 무대 세트도 없이 열악한 상태에서 배우들이 대사를 외워서 시연하는 정도였지만 굉장히 독특했다. 배우들이 고등학교 교복을 입고 나와서 “너네 엄마가 우리 아빠를 꼬셨어. 불륜 중인 거 알아? / 그걸 어떻게 모르냐? 배가 불러 오는데”라고 대사 치는데 다들 빵 터졌다. 소재는 식상한 것이었지만, 아이들 시각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니 너무나 신선했다. 연극은 50분 분량으로 미완성본이었고 아이들 캐릭터의 비중이 70% 정도로 컸다. 그걸 영화 시나리오로 만들면서 어른들의 비중을 늘렸다.
사람을 중요하게 담은 영화
<미성년>의 흥미로운 점은 불륜을 다루면서도 그 사건을 중심으로 하기보다는 거기에 얽힌 4명의 인물들의 감정에 초점을 맞춘다. 사건보다 캐릭터의 감정에 집중한 이유는?
사건은 풀어봤자 거기서 거기다. 바람피우다 걸려서 잘못했다 빌고 찢어지는 식이라 별로 특별한 게 없지만, 사건에 처한 사람들 각자의 심리가 <미성년>에서 내가 내세울 수 있는 무기라고 생각했다.
가장 신경 쓴 부분은, 본론으로 빨리 들어가기 위해 장면을 압축하는 것이었다. 설명하는 대사를 넣다보면 영화가 시작되고 30분 정도까지 그냥 흘러가기만 할 뿐 본 게임은 시작도 안 되는 경우가 많다. 사건보다 사건에 처한 사람들 각자의 입장으로 관객들에게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
그동안 오랫동안 연출 준비를 해온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언론 매체 시사회 후 간담회 때 무척 조마조마한 모습이었던 게 의외였다. 배우로서는 이미 여러 차례 평가를 받아서 익숙할 텐데 말이다.
나 스스로 그 당시에 스트레스를 엄청 받는구나, 라고 느꼈다. 온몸에서 수분이 다 빠져나간 느낌이랄까. 내 옆에 옆에 앉았던 신인배우들이 질문을 받고 대답할 때 더듬더듬하는 것에도 내 신경이 곤두설 정도였다. 나도 내가 그렇게까지 긴장할 줄은 몰랐다.
영화에 대한 호평들을 접하고 안심이 좀 됐나?
사실 기사들을 하나도 안 보고 있다. 보여주지도 말고 알려주지도 말라고 주위에 얘기한다. (다들 웃음) 거기에 영향을 받을까봐 그런다. 연기자로서 이미 다 경험해봤으니까. 개봉이 다 끝난 뒤 마음에 여유가 생기면 하나하나 찾아볼 생각이다.
아무래도 시사회 때보다는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인터뷰들을 하면서 좋은 얘기도 듣고 해서 아직까진 다행이다, 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은 2.35:1 화면 비율로 영화를 많이 찍는 편인데, <미성년>은 1.85:1 화면비를 쓴 이유가 궁금하다. 또 영화 초반에 특이한 쇼트가 많았다. 예를 들어 엘리베이터 내부를 잡은 쇼트나 볼록 렌즈를 활용한 장면 말이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후반에 가면 사라지고 자연스러워진다.
황기석 촬영감독과 화면 비율을 어떻게 할지 논의할 때, <미성년>은 사람을 중요하게 담는 영화이니까 1.85:1로 하자고 했다. 또 긴 화면으로 하면 미술, 조명에 그만큼 더 신경을 써야 해서 예산과 관련된 문제도 있었다.
볼록 렌즈를 쓴 건 의도적이었다. 배우의 얼굴을 타이트하게 잡아서 그 인물이 무척 외로워 보이게 하고 싶었다. 촬영감독과 의도해서 몇 군데만 그렇게 찍었는데, 다만 그 사람이 추하게 보이는 느낌은 배제하려 했다.
또 극중 고등학생인 인물들이 계속적으로 움직이는 모습을 담을 때는, 핸드헬드와 스테디캠의 중간 버전이라 할 수 있는 ‘로닌2’라는 장비로 촬영했다. 아무래도 예산 문제로...
영화 시작 전에 제작사 ‘화이브라더스’의 로고가 보이길래, 유명 배우가 데뷔작을 찍더라도 제작 조달이 쉽지 않구나, 라고 생각했다. (웃음)
전혀 쉽지 않다. (고개를 절래 절래) <미성년> 시나리오를 투자사에 보냈더니 오케이 안 하더라. 나와 친한 사람도 “하지 마! 안 돼, 빠꾸야. 심사에서 무조건 떨어져”라고 할 정도였다.(웃음) 더군다나 그 당시엔 드라마 <SKY 캐슬>도 방송하기 전이었고. (다들 웃음)
심지어 어디서는 여고생들을 남학생들로 바꾸라는 얘기도 했다. “치고 박고 싸우는 액션이 있어야지. 상업 영화로서의 에너지가 안 나오는 이야기를 내밀면 어떡하나?”고 하더라. 그래서 고민이 많았다. 5년 동안 준비했지만 접을까, 내가 잘못 선택한 건가, 내가 너무 순진했나 싶더라.
그러다가 당시 쇼박스의 유정훈 대표님이 “김윤석 씨 감독 데뷔작은 우리가 맡으면 좋겠다. 시나리오 안에 미덕과 웃음이 있고, 중년 남자로서 와 닿는 부분도 있다”고 채택해줘서 기적적으로 투자가 이루어졌다.
영화의 핵심인 다섯 배우들이야 말할 것도 없고 조연들도 좋았다. 그런 배우들을 특별 출연이나 찬조 출연에 머무르게 하지 않고 나름의 역할을 주고 싶었다고 했는데, 그건 같은 연기자로서 배우들의 입장을 생각한 건가?
그렇다. 카메오로 보이게 하고 싶지 않았다. 내 첫 작품에 카메오를 등장시키고 싶지도 않았고. 이정은 배우는 그가 20대 초반일 때부터 알던 사이고, 김희원 씨나 이희준 씨에게도 출연 제안을 할 때 카메오가 아니라 중요한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그들이 흔쾌히 오케이 했는데 시나리오가 마음에 들어서였는지, 아니면 내가 무서워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웃음) 어쨌든 그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적절한 톤으로 치고 빠져나가줘서 고맙게 생각한다.
불륜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작품 전체적으로 볼 때 사람에 대한 따스한 시선이 느껴진다. 중간에 “바람 한번 피워 보세요. 그게 마음대로 되나”라는 대사도 그렇고, 마지막에 소녀들이 어른들이 미우면서도 그들을 이해하려고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내 영화에 ‘용서받지 못할 자’는 등장시키고 싶지 않았다. 모든 인물에게 연민을 넣었다. 내가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건 악당을 죽이는 쾌감 같은 게 아니었다. 병원에서 영주(염정아)가 미희(김소진)를 만난 건 굉장히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만나지 않는다면 상대에 대한 분노와 증오감만 가졌을 테지만, 만남을 통해 어느 정도 긍정적인 에너지로 바꿀 수 있는 거다. 다 이해할 순 없어도 같은 인간으로서 어느 정도 연대감은 느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미성년>에서 가장 중요했다.
한편 대원(김윤석)은 방파제에서 할머니한테 돈을 뜯기고 나중에 폭주족들한테 구타를 당하는데, 그것은 나와 같은 386세대의 현실을 보여주는 거다. 윗세대와 아래 세대 사이에 끼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거다. 그것을 해결하려면 영주가 미희를 찾아간 것처럼 용기를 내서 상대방을 만나 솔직한 말을 건네는 것. 나는 그런 모습이 인간의 존엄한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일반적인 불륜 소재 드라마에선 좋은 쪽과 나쁜 쪽의 구분이 선명한데, 이 영화에서는 양쪽의 입장을 균형 있게 다룬 것이 신선했다. 그런 장면의 대사에도 상당히 고심을 한 것 같다.
일부러 균형 있게 대사를 만든다 해도 관객들이 공감하지 않으면 그 대사는 힘을 잃는다.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어야 한다. 미희는 누굴 꼬셔서 팔자를 고쳐보려던 게 아니라, 어느 순간 취한 기분에 남자를 만났다가 나중에 애까지 갖게 된 상황이다. 그런 캐릭터의 입장에서 많은 고민들을 했다. 효과적인 장면 구성과 더불어서 캐릭터를 받쳐줄 수 있는 살아있는 대사가 중요했다.
개성 있다는 이야기를 듣는 게 목표
<미성년>은 두 소녀의 성장 영화이기도 하다. 보통의 영화는 아이에서 어른으로 성숙해지는 것을 표현하는데, 이 영화는 그와는 거꾸로 반(反)성장을 보여주고 있다고 본다. 영화 속 부모 세대는 어른으로 성장한 상태이지만 그들은 홀로 서지 못하고 누군가 혹은 다른 존재에 의지해 살아간다. 불륜 관계인 대원과 미희는 각자에게 기대고, 영주는 종교에 의지하는 식이다. 그러한 부모 세대의 모습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가?
연극 활동을 하던 당시에 나보다 15살 많은 선배님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너도 15년 뒤에 이런 모습일 거라고 상상이 되냐? 난 아직도 마음은 18살이다.” 내 심정이 딱 그렇다. 나이가 50이 넘었지만 누군가 나보고 20대 때보다 더 성숙했는지 묻는다면 그렇다고 답할 자신이 없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나이를 먹고 어른이라는 외형을 갖지만, 죽는 날까지도 성숙해지려고 노력할 뿐이다. 아이들은 빨리 어른이 돼서 대학 가면 된다고 생각할 뿐이지만, 어른들은 점점 죽음에 가까워가는 처지이니까 오히려 아이들보다도 더 불안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종교에 기대거나 불륜에 빠진다. 그러면서 우리가 가장 실수하는 것이 그 상황에 무뎌지는 것이다. 자기 식으로 해석해야만 세상 살기 편해지니까. ‘내 행동이 옳아’라는 사고를 자신의 방패로 삼는다.
그런 어른들이 조금이라도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병실 장면이다. 불안감을 갖고 살아가지만 용기를 내서 성숙해지자는 거다. 그런 점에서 <미성년>은 미성년의 성장을 다룬 영화가 아니다.
(이하 질문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한편 소녀들이 성장하고자 하는 지향점은 어른들이 아니라 아기 쪽이라는 것이 흥미로웠다. 영화를 본 사람들 사이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엔딩 장면이 그것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미성년>에서 성숙의 개념을 어른으로의 성장이 아니라, 아기처럼 독립적인 존재로의 추구를 택하고 있는데, 그 이유가 궁금하다.
아이들은 엔딩에서 나름의 의식을 치르면서 “어른들이 어렸을 때 나중에 자신들이 바람피울 줄 알았을까? 우리 나이 땐 그런 생각 안 했을 것 같아” / “나는 나를 못 믿어. 어떻게 오염될지 몰라”라고 말한다.
나도 어떤 것이 바람직한 성장인지 잘 모르겠지만 그 소녀들이 우리보다는 나은 방향으로 갔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다. 결국에는 사회 시스템에 젖어서 매너리즘에 빠지기 쉽겠지만, 영화 안에서만이라도 아기의 하얀 피부처럼 새하얀 가능성을 열어주고 싶었다.
엔딩 장면은 단순히 너를 잊지 않겠다는 의미와 더불어서 다른 의도도 집어넣었다. 거기선 일부러 음악을 넣지 않았다. <추격자>에서 영민이 미진의 머리를 망치로 치는 장면처럼 음악을 띵하고 넣어서 소외효과를 넣을 수도 있었는데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극장에서 관객들은 두 소녀의 행동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다. 그것은 우리가 세대 간에 서로 마음의 문을 열지 않으면 그렇게 바라만 볼 수밖에 상황이 된다는 것을, 내 나름의 방식으로 고약한 경험을 주는 거다. 영화 속에서 아기와 교감을 나눈 사람은 그 두 소녀들뿐이다. 나머지 어른들은 아기의 얼굴조차 보지 않았고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도 않았기에 뭐라고 할 자격이 없다. 버리고 잊었기 때문에 엔딩에 나오는 상황에서도 그저 멀뚱멀뚱 볼 수밖에. 세대 간의 교감이 없다면 그렇게 단절될 수도 있다는, 신인 감독의 야심찬 패기로 봐주셨으면 한다. (웃음) 저예산 영화여서 가능했고 예산이 더 많았다면 분명 내부에서 강력한 반발이 있었을 거다. 서툴더라도 할 수 있을 때 해보자고 생각했다. (웃음) 사실 나는 영화의 완성도에 대한 욕심은 없다. 대신에 “개성 있다”라는 이야기를 듣는 게 목표다.
<미성년>에서 가장 좋았던 장면은 아이의 마지막 밤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슬프거나 비극적으로 보여주는 대신에 영화 전체에서 유일하게 판타지풍으로 찍었다. 거기서 살짝 아기의 미소 띤 모습이 마치 부처님처럼 홀로 완벽한 존재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미성년>의 핵심 주제인 듯한데, 육체적으로는 가장 미성숙한 아기가 다른 사람들에게 앞으로 살아가야할 방향을 제시해준다는 느낌이 들더라. 때문에 <미성년>은 반(反)성장의 성장 드라마라고 생각했다.
특수분장 회사 ‘제페토’에서 만든 더미 아기였다. 잘 만들었다는 소문이 나서 요즘 주문이 폭주한다더라. (웃음) 그 더미 아기는 3개를 만들었고, 그중 가장 완성도가 뛰어났던 것으로 촬영했다. 아이의 마지막 모습이어서 가장 포근한 모습으로 보여주려 했다.
그 장면을 구상하면서 든 생각인데, 앞서 영주가 고백성사를 하잖나. 섬뜩하게도 “아이가 아픈 게 하느님이 내린 천벌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제발 나의 죄의식을 가져가 달라며 투정한다. 그 뒤에 하늘에서 눈이 내린다. 카메라가 한 바퀴 돌고난 뒤에 아이의 모습을 비추는 건, 하느님이 아이를 거둬가는 것을 상징한다. “너희에게 아이가 있으면 안 되겠구나. 너희는 아이를 키울 자격이 없으니 내가 데려간다.”라는 느낌도 있다. 우리 내부에서는 아기가 우릴 위해 희생된 예수님 같은 존재라고 생각했다. (웃음)
('스포일러' 끝.)
영화 속 4명의 여성들은 결코 가까워질 수 없는 사이였지만, 하나의 사건으로 만나게 되면서 묘하게 가까워진다. 그렇게 연출을 한 의도는?
우선 원작 연극이 그런 이야기였고 그것을 다른 식으로 바꾸면서까지 영화로 만들 이유는 없었다. 캐릭터를 남자들로 바꾼다면 그게 과연 효과가 있을까? 지금의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가장 적합한 인물들로 삼은 거다.
어른들은 앞서 말한 병원 장면에서 서로를 이해하게 됐고, 주리와 윤아는 복도 싸움 장면 이후에 서로를 조금은 이해하게 됐다고 생각한다. 지지고 볶든 한판 붙어야만 어느 정도 감정을 털어낼 수 있으니까. 둘이 인큐베이터실에 들어갈 때 사이가 안 좋던 애들이 서로 손 잡는 게 아이다운 순진한 모습이다. 그런 식으로 조금씩 서로에게 다가가도록 의도했다.
연기자 동료이자 선배여서 가능했던 것
기자 간담회 때 본인의 캐릭터는 되도록 빠지고 다른 네 배우들을 내세우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나름 핵심적인 캐릭터를 연기했는데, 감독의 입장에서 본인의 연기를 평가한다면?
내 캐릭터에 관해서는 다 비웠다. (웃음) 콘티를 짜니까 대원이 나오는 장면은 전부 뒷모습, 옆모습만 나오거나 혹은 포커스 아웃이더라. 원래는 다른 배우들에게 맡기려 했다가 몇 차례 거절을 당하고 나서 가만 생각해보니, 콘티도 그 모양인데 다른 사람에게 권하면 욕먹겠다 싶더라. 그래서 결국 내가 하게 됐다.
또 대원 캐릭터가 너무 분노를 유발시키면 영화가 주고자 하는 메시지에 도움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톤 조절이 필요했는데 안타고니스트(Antagonist)보다는 무기력, 우유부단한 캐릭터로 연기했다. 불륜이라는 비호감의 소재를 다루는 영화에서 숨통을 튀게 하는 역할을 내가 해야지 누가 하겠나.
에스컬레이터 장면의 경우 처음에 촬영하고 투자사에 보여줬더니 빵 터지게 웃긴다며 좋아라 했다. 하지만 난 걱정이 됐다. 대원이 그렇게 코믹 캐릭터로 희화화되면 다른 캐릭터가 그 다음 배턴을 이어받기 힘드니까. 그래서 적당한 수준으로 편집했다. 진짜 웃기는 장면이 많았지만 눈물을 머금고 잘랐다. (웃음)
배우로서 상대 배우와 연기하다가, 감독으로서 함께 연기하는 상황이 되니 다르게 보이는 게 있었나?
일단 연출해야 할 모든 것은 이미 대본 안에 다 넣어 놨다. ‘이 대사를 넣었는데 당신이 도망갈 데가 있겠어?’라고 할 정도로. (웃음) 촬영 현장에서 시간 낭비하고 싶지 않아서 연기자가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는 사각의 링을 만들어놓은 셈이다.
한편으로 내가 연기자 동료이자 선배인 입장에서 가능한 장점이랄까. 모니터를 보면서 디렉션을 할 때 ‘이 사람이 더 연기를 잘 할 수 있는 쪽으로 내가 제안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미 겪어본 일이니까. 그런 게 보이는 게 천만다행이었다.
예를 들어 대원이 도망가고 나서 주리가 울 때, 영주가 화가 나서 굳은 표정으로 나타나는 장면이 있다. 내가 거기서 “(염)정아 씨, 한번 픽하고 웃어볼까요?”라고 제안했더니 정아 씨가 “앗! 왜 내가 그 생각을 못했지?”라고 하더라. 왜 못했냐니까 “(감정에 몰입해서) 화가 나서 못했어요”라고 했다. (웃음) 그 장면에선 기가 차서 픽하고 웃는 게 어울릴 수도 있고, 혹은 분노하는 게 더 어울릴 수도 있지만 어쨌든 다양한 장면 소스들을 확보해두는 게 좋다. 배우들에게는 “연기가 좋았지만 다르게도 해보자”며 동료에게 하듯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했다. 그런 점에서 배우들도 나를 편하게 대해줬던 것 같다.
해외에서는 연기자 출신 감독도 꽤 흔한 편이다. 대표적으로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도 있고. 혹시 롤모델로 삼고 싶은 연출가가 있다면?
이스트우드 감독님이 가장 유명하고 또 존경스러운 분이지만 나는 샘 멘데스 감독이 우선 떠오른다. 그분은 원래 연극 연출가로서 1990년대 예술의 전당에서 ‘오델로’ 공연을 위해 내한한 적도 있다. 그리고 얼마 뒤에 영화 <아메리칸 뷰티>를 연출해서 영화상들을 다 휩쓸더라. <미성년>을 감독하면서 샘 멘데스 감독의 작품들을 좀 참고했다. 내용적인 측면보다도 연극 연출가는 카메라 앵글을 어떻게 잡는가에 집중해서 봤다. <레볼루셔너리 로드>의 앵글은 대부분 ‘아이 레벨(Eye Level)’이더라. 객석에 앉은 관객의 시선처럼.
내가 앞으로 어떤 연출가가 될지는 몰라도 새로운 영화를 하게 된다면 여전히 평범한 사람들의 비범한 순간을 포착할 것 같다. 아무리 평범한 사람이라도 언젠가는 비범한 일을 할 때가 온다. 용기의 순간이든 극복의 순간이든, 그런 게 소중해 보인다. <미성년>도 그런 순간을 잡아보려고 애쓴 신인 감독의 패기였던 셈이다. (웃음)
계속 신인 감독이라고 강조한다. (웃음)
시행착오를 거듭한 신인 감독이랄까. (웃음)
주리와 윤아 역할 배우들의 캐스팅이 궁금하다. 어떻게 그렇게 캐릭터에 딱 맞는 배우를 찾았는지?
처음부터 무조건 오디션으로 뽑을 생각이었다. 기존의 연기 잘하는 배우들은 이전에 이미 여고생 역을 많이 맡았기 때문에 그런 잔상이 없어야 했다.
한 달 넘는 기간 동안 4차에 걸쳐 오디션을 봤는데, 나는 연극할 때 이미 오디션 심사를 많이 경험해봤다. 그럴 때마다 참여하는 이들을 보면서 “왜 저렇게 떨까? 왜 제 실력을 발휘 못할까?” 같은 배우로서 늘 가슴이 아팠다. 그 사람이 연기 잘하는 걸 아는데, 오디션에서 떨다가 탈락하는 게 안타까운 거다. 한편으로 연기는 못하면서도 오디션만 잘하는 이들도 있다. (웃음) 영화 <라라 랜드>를 보니 할리우드도 마찬가지더만. (웃음)
결국 내가 생각한 건 ‘대화’였다. 후보자가 30여 명 남았을 때 무조건 각자 한 시간 씩 대화를 나눴다. 시나리오도 전체를 다 주고 미리 읽게 했다. 뽑을 때 가장 중점적으로 본 건 서툴더라도 자기 목소리를 내느냐, 였다. 그 나이대면 연기력에 큰 차이가 없다. 대신 자기 목소리를 낼 줄 아는 사람이면 무한대로 뻗어나갈 가능성이 있다. 캐스팅 오디션이어서 앙상블도 봐야하고 외모도 서로 달라야 하고 각자 캐릭터에도 맞아야 해서 뽑힐 때까지 둘 다 고생 많았다. 무척 불안했을 거다. 최종까지 올라왔는데 답도 늦게 주고 그랬으니. (웃음)
오디션 때 배우들에게 각각의 캐릭터를 주고 진행했나?
안 줬다. 두 캐릭터를 다 연기해야 했으니 더 환장했을 테지. 캐릭터를 미리 고정하고 싶지 않아서 어쩔 수 없었다. 안 뽑힌 이들 중에 정말 좋은 배우들이 있었지만 조건에 안 맞아서 떨어진 분들에겐 미안한 마음이다. 그래도 나와 한 시간씩 대화한 덕분에 아쉬움은 없다고 하더라. <라라 랜드>에서처럼 며칠씩 고생해서 대본을 외웠는데 겨우 5분 정도 연기한 뒤 “네, 됐습니다”라는 소리를 듣는 것보다야 나으니까.
혹자는 <미성년>이 올해의 데뷔작이라고 하더라. 감독상은 나중에 많이 탈 기회가 있을 테니까 이번 영화로 신인 감독상을 많이 타길 바란다. (웃음)
이 영화로 신인 감독상을 받는 것보다도 더 바라는 건 배우들이 연기상을 많이 휩쓸었으면 하는 거다. (웃음)
배우들을 딱 그 캐릭터에 맞게끔 캐스팅을 하고, 연기 지도를 했다는 점에서 앞으로가 기대되는 신인 감독 같다. (웃음)
배우들과 캐릭터를 만들 때, ‘딱 이 컵이야’라고 얘기하지 않고, ‘커피를 담을 건데 우리가 어떤 컵을 만들면 좋을까?’라는 식으로 이야기했다. “영주의 입장은 어때?”라는 질문을 받으면 “당신이 영주니까 그렇게 해”라고 말했더니 살아있는 순간들이 나오더라.
신인들은 연기자로서 막 걸음마를 뗀 상태라서 처음에는 제대로 걷지도 못했지만, 내가 같은 연기자로서 마음을 열고 다가갔던 게 그 친구들 입장에선 그나마 편했던 것 같다.
익스트림무비 시사회를 통해 <미성년> 본 회원들 중에선 엔딩에 대해 이견이 있긴 해도, 대체로 영화를 좋게 보고 배우들의 연기를 호평하고 있다. 팬들에게 마지막으로 한마디 한다면?
정말 감사하다. 영화에 열정적인 관심을 가진 사람들끼리 만나는 건 좋은 일이다. 그들 중에 앞으로 배우나 감독, 혹은 작가가 될 사람도 있을 거다. 이런 얘기는 하면 어떨까 싶은데, 만나서 열띤 토론을 하고 집에 돌아가면 결국은 혼자가 된다. 창작은 그때부터 시작된다. 노트북을 열면 커서가 깜빡깜빡 거리고 있다. 어제까지 써둔 내용에서부터 깜빡거리는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3년 전에 써둔 글에서 멈춰 있을 수도 있다. 그걸 내가 건드리지 않으면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다. 영화를 열정적으로 좋아하면서 영화판에 오길 바란다면 이 점을 기억해라. 그 커서를 움직일 수 있는 건 자신뿐이라는 걸. (웃음) 너무 전문적인 이야기였나? (웃음)
엔딩에 불만인 분들은 각자의 자유니까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보고. 다만 부탁하고 싶은 건 3년 뒤에 한 번 더 보라는 거다. (다들 웃음)
익스트림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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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옹~중반부분까지 읽었는데 영화를 본 후에 읽어봐야 겠네요ㅎㅎ
인터뷰 잘봤습니다! ㅎㅎ ^^;
웃기는 장면들이 더 많았군요ㅋㅋ 눈물을 머금고 잘랐다니 아쉽네요.. DVD라도 나와서 볼 수 있길 바라봅니다ㅎㅎ 인터뷰 너무 잘 읽었어요. 개봉하면 또 보러갈게요!!
인터뷰 재밌네요 영화 좋았습니다 +_+
시사회로 영화 보고 인터뷰 읽으니까 더 반가워요! 인터뷰 잘 읽었습니다^^
빨리 개봉하고 보고 싶어요 ㅠㅠ
익무의 은혜로 시사회에서 먼저 보고 인터뷰 읽으니깐 정말 너무 좋으네요!!! 인터뷰 정말 너무 좋아요!! 감사합니다:))
오래간만에 글 쭉 정독했습니다. 웃긴 장면들.. 눈물을 머금고 편집하셨다니 너무 궁금해요. 에스컬레이터씬 정말 웃겼는뎈ㅋㅋ 감독님! 꼭 감독판 개봉해주세요!-!
인터뷰 잘 읽었습니다^^*
미성년 한번더 보고싶네요
인터뷰 잘 읽었습니다~~ 인터뷰 보니 영화에 대해 이해가 더 잘되네요^^
영화 좋았습니다
인터뷰 질문 수준이나 김감독님 답변 수준이 감탄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좋은 영화가 만들어질수밖에없는 많은 고민의 흔적을 엿볼수 있게 해주셔서 다크맨님과 김감독님께 감사 인사 드리고싶네요~!!^^
인터뷰 잘 읽었어요. 미성년 개봉하면 빨리 볼게요!
인터뷰 진솔하고 정말 좋네요. 배우들 캐스팅과 연기 디렉팅 부분도 좋고 마지막 "3년 후에 봐라"도 좋네요.
이번 미성년 정말 좋았구요 앞으로도 개성있는 영화들 기대하겠습니다. ^^
잘 읽었습니다!
인터뷰 너무 좋아요. 중간에 감독님 인생관에 대한 이야기가 마음에 들어요. 저도 성장하는 어른이 되고 싶네요 ㅎㅎ
인터뷰를 읽어보니 영화가 잘 나올수밖에 없군요. 앞으로의 작품도 기대가 되는 감독님이시네요!
사실은 인터뷰보기전에는 영화에 대해 관심이 크게 없었는데 읽다보니 감독으로서의 고뇌가 느껴져서 좋았네요 영화 보러가야겟어요ㅎㅎ
인터뷰말미 너무좋네요. 마치 김윤석님과 일대일 토론한것같은 인터뷰 감사합니다
아...엔딩 우유와 같이 먹은 것 때문에 그런건가요..
음....저도 그랬어요
한참 20대 초반에 두살 위 라는 형이 교통사고로 죽었는데 화장 한 뒤에 같이 늙어가자 의미로 했었어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이야기죠
오히려 전 살짝 놀랬죠
인터뷰 초반을 읽고나서의 소감은 영화를 보고나서 다시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어제 운좋게 츄잉챗 회차로 봤는데 영화가 괜찮았어요.
영화를 보고나서 전체를 보니깐 인터뷰에서 말한 내용도 이해가 가고 좋더군요.
아까 낮에 읽었는데 인터뷰 너무 좋더라구요. 개봉전이라 영화관련 스포담긴 부분은 피해서 읽었다는ㅎㅎ 마지막 멘트도 너무 좋아요. 커서를 움직일 수 있는 건 자신뿐! 영화 기대됩니다.
인터뷰 잘읽었습니다. 중간까지 읽고 영화 본다음에 다시 보려고요
역시 인터뷰 내용이 너무 좋네요 잘읽었습니다.
김윤석 감독님의 차기작도 기대됩니다. 그때도 익무와 독점인터뷰를!!
전 엔딩 장면 해본적이 있어선지 이해가 가더라구요.맛만 본 정도였지만..
배우 김윤석과는 이미지가 많이 다르시네요.
스포 부분 빼고 다 읽었습니다! 좋은 인터뷰 감사드립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너무나도 기대됩니다.
좋은 인터뷰 정말 잘 읽었습니다! 궁금한 점이 많았는데, 이번 익무 인터뷰로 대부분 풀렸네요ㅎㅎ 두 번 보고 세 번 보고, 계속 보면서 결말을 다양한 각도에서 이해해 보려고 해요. 김윤석 감독님의 차기작도 조심스럽게 기대해 봅니다~ㅎㅎㅎ
기대되는 영화 ㅎ
인터뷰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혹시 개봉하고 볼까봐 스포일러부분은 건너뛰고 읽었는데 앞부분만 읽어도 많은 고민을 하셨겠구나 싶었습니다. 나중에 다시 한번 읽으러 와야겠네요 ㅎㅎ
인터뷰 잘 읽었습니다^^
영화보고나서 인터뷰 다시 또 읽어봐야겠네요.
익뮤 인터뷰 진행한거보니 영화가 잘나왔나보네요 +_+
온몸에 수분이 빠져나가는 느낌ᆢ 정말자기 자식을 내놓는 느낌인지라 그스트레스가 어마어마할거같아요 글 잘읽었습니다
신인상 받으셨으면 좋겠네요 ^^
훌륭한 인터뷰입니다 감사합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인터뷰를 읽으니 더 와닿네요 ㅎㅎ
좋은 인터뷰 감사합니다~
작품의 성장배경과 캐스팅 비하인드 궁금했는데
이 인터뷰를 보고 나니 속 시원하게 풀리네요~!
좋은인터뷰 감사해용 ㅠㅠ 여억시 뮨석씨ㅠㅠㅠ
이 인터뷰 보고 싶었는데 영화를 못봐서 제목만 보고 꾹 참고 있다가 드디어 영화를 보고 읽었습니다.
앞으로 작품들이 정말 기대가 되네요.
잘 읽었습니다 ㅎ 김윤석감독님은 연극베이스의 경험과 통찰로 평범한 사람이 비범해지는 그 순간을 조명하시는 그 부분을 이야기하시고 싶으신 감독님 이셨군요!!! 감독님 응원합니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건승하세욥!!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