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 초간단 리뷰
1. '리얼'에 대해 정보가 많은 편은 아니었다. 그냥 '화제작'이 될 것 같은 마음에 궁금해서 영화를 보러 갔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그 시간에 차라리 일을 하는게 나을 뻔했다. 137분동안 사무실의 흰 벽을 바라보는게 '리얼'을 보는 것보다 가치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2. 우선 이 영화의 오프닝크레딧은 눈길을 사로잡는다. 마치 007영화의 오프닝크레딧같다. 이쯤 얘기하면 일부 영화팬들은 "오오~ 그럼 오프닝 때깔 죽이겠는데?"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137분동안 007영화 오프닝같은 영상을 봐야 한다면 어떨까?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않겠다.
3. 영화 초반 1/5 정도 지났을때 잠시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을 떠올렸다. 그 영화가 욕을 먹는 포인트와 일치하는 지점에서 짜증이 터지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나는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을 좋아한다. 100억원이 넘는 돈으로 불법(佛法)을 설파하려는 그 깡다구가 마음에 들었다(물론 그 영화로 망한 제작사들에게는 위로를). 그런데 '리얼'은 아무것도 남지 않고 공중분해 돼버리는 이야기만 있다. 만약 누군가가 '리얼'과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을 비교한다면 장선우 감독이 진심으로 화내야 할 지경이다. 그래서 나는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을 떠올리는 일을 접었다(이것은 객관적인 평가는 아니다. 나는 '성소재림'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4. 앞서 말한대로 이 영화는 화려하고 원색적인 그림으로 승부한다. 역시 누군가는 이명세 감독의 'M'이나 '형사-듀얼리스트'를 떠올릴 수 있다. 만약 그랬다간 내가 먼저 화를 낼 것 같다. 이명세 감독이 CG를 고집하지 않던 사람은 아니지만 그의 영화 속 비주얼은 철저하게 계산을 하고 만들어진 것이다. 먼지의 움직임과 색·빛의 온도감, 배우의 동선·표정, 영화가 관객에게 어떻게 보여질지 등을 계산하고 만든 영화들이다. 그래서 그의 영화는 스토리가 공중분해 됐다고 느껴지더라도 그림이 남아서 이야기를 새롭게 전달한다. 예를 들어 '형사'에서 슬픈눈(강동원)과 남순(하지원)의 1대1 대결은 연인과 숙적의 관계가 섞인 것처럼 아름답고 처연하다. 이명세의 영화에서는 모든 미장센이 언어였다.
5. 반면 '리얼'은 어느 CF에서 봤을 법한 장면들이 영화를 뒤덮는다. 간결하게 감정표현이 될만한 장면도 길게 늘어뜨린다. 계속 강조하지만 이 영화의 러닝타임은 137분이다. 이야기만 간결하게 전달하면 90분만에 퉁칠 수 있을 것 같았다. 심지어 이 영화의 화려한 비주얼은 이야기를 방해하고 있다. 씨퀀스가 언어가 돼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과 씨퀀스가 이야기를 방해하는 것은 완전 다르다. 계산을 안 했다는 의미다. 그래서 만약 이 영화의 편집을 다시 하면 40분 이상 드러내는거 일도 아닐 것 같다. 특히 그 망할 중국집 액션은 몽땅 드러내고 싶다.
6. 이 영화는 포스터에서도 드러나듯 '액션느와르'를 표방하고 있다. 근데 그 액션이라는게 "이럴수가 있나" 싶을 정도로 놀라운 액션이다. 앞서 말한 중국집 액션을 설명해보자. 극 중 조폭 장태영(김수현)이 얼마나 강력하길래 원펀치에 상대들이 다 기절을 한다. 마치 '리얼'의 액션은 박진감과 시원한 타격감을 보여주려는 의도가 아니라 김수현이 얼마나 멋있는지 보여주려는 것 같다(근데 액션이 안 멋지다). 이 원펀치 액션은 몹시 정적이고 심심하다. 아마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가 액션영화를 찍어도 이거보단 신날 것 같다.
7. 그나마 "뭔가를 하고 있는" 클라이막스의 액션장면은 마치 마블영화처럼 CG로 덮어버린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여기의 CG팀은 마블만큼 기술력이 없다('7광구'만큼의 기술력은 있는 모양이다). 여기에 갑자기 발레액션을 구사한다. 영화 내내 짜증냈을 관객들도 이쯤에서 실소가 터져 나왔을 것이다(난 좀 빵 터졌다). 어느 발레리노가 액션 연출이라도 한 모양이다. 결과적으로 이름을 알 수 없는(엔딩크레딧 확인하기도 싫어서 뛰쳐나온) 이 영화의 무술감독은 효도르 경호원 이후 최고 꿀보직이 아니었을까 예상된다.
8. 배우들은 열심히 노력한다. 1인2역(인지 3역인지 헷갈리는)을 연기한 김수현과 믿고 보는 성동일, 조우진, 이성민, 나름 온몸을 불사른 최진리. 그런데 배우들 사용법에서도 뭔가 피로감이 느껴진다. 특히 김수현을 보고 있으면 최근 김명민을 보는 것 같다. 시종일관 힘을 주고 있어서 보는 관객이 금방 지친다. 앙상블을 주고 받는 배우도 모두 마찬가지고 최진리는 경직돼있다. 개인적으로 최진리에 대해 우호적인 입장을 가진 사람이지만 이번에는 그러기 힘들 것 같다.
9. 결론: '리얼'보다 당신의 방 천장을 보는게 더 재밌음.
추신1) 역시 이 영화의 화제는 '최진리의 노출씬'인 것 같다. 러닝타임 137분 중 30초 정도 된다. 뭐 그거라도 궁금하다면 말리진 않겠다.
추신2) 스포일러를 하고 싶어도 뭔소린지 알아먹지 못해 스포를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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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한참앞서간
리얼의 후기에 언급되면 안된다고
생각함
이후기에 언급될영화는
....
없음
많은 참고가 되었습니다 ^^
정말 역대급인가보군요..... 다들 반응이...
감독도 의도를 모르게 핀트안맞게 일부러 만들었다하고
액션도 발레처럼 하고 싶었다 카고
왜 그렇게 의도했을까 싶지마는
영화보다 이 후기가 잼있는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