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아들들(Sons, 2024)> : 영화가 우리에게 선사할 수 있는 벌이란
부모의 마음은 똑같이 부모가 돼 봐야 안다는 말이 있죠. 또 혹자는 아니다, 진짜 부모의 마음은 죽을때까지 아모른직다 라고 하기도 하고요. 과연 어떨까요?
아들들(Sons, 2024)
감독: 구스타브 몰러
출연: 시세 바벳 크누센, 세바스티안 불 외
모든 영화 이미지 출처 영화 <아들들>
오늘의 영화는 지난 4일 개봉한 <아들들>입니다. 어느 어머니와 아들에 관한 이야기죠. 놀랍게도 이 어머니와 아들이 부자관계는 아닙니다. 오히려 철천지 원수 사이죠. 이 영화는 사실 누구에게나 추천할만한 영화라고 보긴 어려운데요 각 영화를 대표할 정서와 분위기를 하나씩만 꼽아볼까요? <범죄도시> 시리즈는 통쾌함, <웡카>는 달콤함, 또 어떤 영화는 애절함, 따뜻함....
그렇다면 <아들들>은요? 이 영화를 대표하는 정서는 <답답함>입니다. 이 영화는 연출도 답답하고, 서사도 답답하고, 심지어 결말조차 답답합니다. 이 영화를 고구마로 비유하면 보통 밤고구마로는 택도 없을 거예요. 그런데도 이 영화는 잘 만든 영화냐? Yes.
의도적으로 모든 것을 답답하게 만든 극사실주의 영화
영화가 시작됩니다. 몇 초 전까지 스크린에는 최신 기술로 삐까번쩍하게 만든 광고들이 나오고 있었죠. 제가 화면 쪽에 지식이 없어서 잘 모릅니다만 요새 광고치고 16:9 비율보다 더 가로비를 좁혀 제작하는 게 있을까요? 한창 시원한 화면으로 때깔좋게 광고가 나오던 화면이 갑자기 좌우로 좁아집니다. 영화가 시작합니다.
실제 영화 화면 비율은 이거보다 좁았습니다.
<아들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4:3 내지는 3:2로 보일만한 화면비율을 유지합니다. 화면의 좌우를 잘라버리고, 오직 주인공 "에바"를 비롯한 중심인물들만을 조명하죠. 사실 영화의 화면 시점 대부분은 오로지 에바 만을 비추고, 에바 외의 인물을 비출 때도 에바의 시선에서 보이는 화면을 묘사합니다. 명확하게 에바에 집중하라는 감독의 의도죠. 하지만 화면을 굳이 잘라버리기까지 한 것은, 중심인물인 에바가 비좁은 상황에 갇혀있음을 의미합니다.
영화의 배경이 교도소임을 감안해도, 에바가 철창 뒤에 있는 장면이 굉장히 많이 나옵니다. 감옥에 갇힌 건 죄수들만이 아니죠. 교도관인 에바 역시 자신의 상황에 갇혀버린 가엾은 인물입니다.
서사도 답답합니다. 교도관 에바가 근무하는 교도소로 이감되어 온, 에바의 아들을 죽인 범인 '미켈(세바스티안 불)'. 보통 액션 영화라면 여기서 이 범인에게 통쾌하게 복수하기 위한 에바의 대작전! 이 벌어지겠지만, 아쉽게도 에바의 복수는 한없이 현실적이고 사소하고 어찌 보면 별 것 아니기까지 합니다. 미켈의 담배를 숨기고 내어주지 않는다던가, 미켈의 밥에 침을 뱉는다던가, 미켈에게 성적인 수치심을 주기 위해 미켈의 몸수색을 직접 한다던가, 밤에 화장실을 보내주지 않는다던가. 게다가 이런 소소한 복수를 진행하는 와중에 미켈에게 배설물 폭탄을 맞는다던가, 사정을 모르는 상사에게 조치가 지나치다는 주의를 받는 등 손해는 또 손해대로 보죠.
아, 답답합니다. 기껏 상황을 조작해 시원하게 미켈을 패 줬더니 이를 알아챈 미켈에게 오히려 협박을 당하기까지 하는 불쌍한 에바. 이 영화는 우리의 기대를 철저히 배반합니다. 심지어 미켈은 살인범임과 동시에 자신의 어머니로부터는 사랑받는 아들이기까지 했습니다. 영화 내내 고구마는 우리 속에 얹혀만 갑니다. 영화 분위기 상 팝콘 없이 관람했는데, 뭔가를 먹으면서 봤다면 틀림 없이 체했을 거예요.
그럼에도 여기서 이 영화의 가치가 드러납니다. 네, 이 영화는 '부조리극'입니다. 자신의 아들을 빼앗아간 범인에게, 자신이 할 수 있는 복수는 한없이 미약하고, 피해자였던 자신은 오히려 그 범인이 한 짓의 반의 반도 안 되는 복수를 하다 꼬리가 잡혀 협박당하고, 범인은 면회를 온 어머니와 하하호호 정답게 이야길 나누죠. 그리고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이는 한없이 현실적입니다.
우리는 법정에서 가슴을 쥐어뜯으며 오열하는 범죄 피해자 혹은 그 유가족의 이야기를 숱하게 접합니다. 그 분들의 마음은 어떨까요?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박살낸 저 인간이 내 눈앞에 있다면, 모든 도덕과 법 규칙을 무시할 수 있다면, 어떻게 하고 싶을까요? 내가 알고 있는 가장 잔인하고 엄청난 방법으로 복수를 하고 싶지 않을까요?
그러나 그럴 수 없습니다. 내 안의 도덕이 내리는 명령 때문에, 법적인 문제 때문에, 아니면 최소한 같은 급의 인간으로 떨어지고 싶지 않다는 혐오감 때문에라도 어려운 문제죠. <아들들>이 우리에게 내리는 답답함과 압박감은 실은 피해자들의 마음을 천만분의 일이라도 간접적으로나마 느껴보라는 형벌입니다.
복수의 굴레에서 발견한 건 결국 자기 자신의 죄책감
영화는 최후반부 우리에게 또다른 찝찝함을 남깁니다. 협박당해 미켈을 집으로 일시귀휴 시킨 에바는 사이가 좋아보이기만 했던 미켈과 어머니가 사실은 자신과 죽은 아들처럼 관계가 전혀 좋지 않았으며, 미켈의 어머니도 실상은 미켈의 폭력에 힘없이 당하는 피해자임을 보게되죠.
문제는 여기서 또 복잡해집니다. 에바는 사실 아들을 진심으로 사랑하는지에 대해 스스로 의문을 가졌죠. 아들은 사고뭉치였습니다. 그건 미켈의 엄마도 마찬가지죠. 그러나 에바와 미켈 엄마의 말에서, 실은 두 아들이 조금씩 엇나가기 시작했던 데 에바와 미켈 엄마의 소홀함 역시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는 암시가 있습니다. 물론 에바와 미켈 엄마가 소홀했던 것이 교도소까지 들락거리게 된 이 아들들의 행위를 결코 정당화할 수 없지만요.
에바는 비로소 아들을 위한 복수 속에서 자신의 죄책감을 마주합니다. 에바가 가장 괴로워하게 되는 이유는 실은 미켈로부터의 협박이 아니라 사고뭉치 아들을 치워버리고 싶어했던 자기 자신의 죄책감 때문이죠.
미켈도 마찬가집니다. 죄를 저지른 것에 대한 반성은 커녕 뻔뻔하게 에바를 협박해대던 미켈은 에바가 자신이 죽인 사람의 엄마라는 사실을 알고서 비로소 무너집니다. 에바는 결국 미켈을 거의 죽일 뻔하다가 복수를 멈췄지만, 죄를 잊고 살던 미켈은 결국 자신의 죄를 마주하게 됩니다. 그리고 에바의 손을 떠난 진정한 복수가 시작되죠.
최고의 복수는 죄책감이다.
찝찝하지만 어쩔 수 없이 현실이 그렇다.
당신은 당신의 죄책감을 마주할 준비가 되었는가.
오늘 <아들들>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오랜만에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는 작품이었네요. 올해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저도 저 자신을 돌아볼 준비가 되었는지 생각해보게 되네요. 다들 메리크리스마스!
블로그에 더 많은 영화 리뷰가 있습니다:)
https://m.blog.naver.com/bobby_is_hobbying/223704825725
바비그린
추천인 7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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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보다 보고 싶어지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