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얼빈>을 보고 (스포O)
<파괴된 사나이>로 상업영화 데뷔하여 <간첩>, <내부자들>, <남산의 부장들>을 연출한 우민호 감독의 신작 <하얼빈>을 봤습니다. 김훈 작가의 동명의 책이 있지만 제목과 소재만 같을 뿐 원작 소설은 아니니까 참고 바랍니다.
<하얼빈>은 뚜렷한 연출 특징을 가지고 있어서 초반부터 바로 캐치하실 수 있습니다. 감정을 강요하기 보다 보여주려는 상황을 명확히 전달하고 쇼트의 호흡을 길게 가져가고 있습니다. 슬로우모션을 사용하면서 어떤 인물이나 인물의 감정에 집중하고 강요하기 보다 더욱 상황 자체를 보여주는데 집중합니다. 초반부에 40일 전후의 시간을 오가며 전투씬과 대화씬을 통해 ‘안중근’이라는 인물이 테러리스트가 아니라 애국자, 위인이며 오히려 휴머니즘 같은 신념을 가지고 있음을 명확하게 제시합니다. 그럴 때 컷을 분할하거나 인물에 근접하는 쇼트를 활용하기 보다 풀샷으로 상황을 담는 것입니다. 클라이맥스에서는 부감으로 상황 자체의 경위에 집중하기도 하죠.
늙은 늑대를 처단하겠다는 안중근의 결심이 다져지는 지점에서 처음으로 릴리 프랭키 배우가 연기한 이토 히로부미를 소개하며 상징적인 안타프로고니스트를 등장시키는 데 성공합니다. 이토 히로부미는 악역임에도 단순하게 이분법적으로 평평하게 묘사하지 않고 반대편의 논리를 가지고 있는 인물로 그려집니다. 다만, 비중의 차이가 크고 중점의 차이가 있다보니 김훈 작가의 <하얼빈>처럼 균일하게 서로의 신념을 다루거나 비교하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깊게까지 다루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명확하게 역사와 이 작품 속에서 상징적인 안타프로고니스트이고 안중근 의사의 업적과 뗄 수 없는데 그런 점이 이 작품에도 반영되어 두 인물은 초반부 서로 각자의 대사 끝에 등장해 무게를 더하는 등장법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하나 눈에 띄는 특징으로는 빛을 최소화하고 어둠 등을 극적으로 강조하는 등 콘트라스트를 극화시킨다는 겁니다. 무르나우 감독 등이 주도한 독일 표현주의 영화가 연상될 정도로요. 아닌 게 아니라 독일 표현주의 영화는 제 1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의 사회적 상황과 맞물려 영향을 받아 형성된 만큼 이 작품 또한 극 중 상황과 그것을 표현하는 형식이 일치합니다. 전체적으로도 그렇지만 만주 장면을 봤을 때 특히나 흑백영화로 연출했어도 무척이나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과거 회상에 쓰인 흑백장면들을 보면 더욱 그러하죠. 이런 연출이 최근에는 로버트 에거스 감독의 영화말고는 보기 드물며 아울러 상업영화, 한국영화에서는 실험적이라고 생각이 들 정도였는데 그 각오가 대단했다고 생각됩니다.
사실 영화가 대사가 많고 무대가 한정적이고 영화 문법이 십분 활용됐다기 보기는 어렵습니다. 각본의 성격 자체가 연극적이라 매체가 연극 무대에 더 어울려보이기도 했습니다. 비극으로 풀어 인물의 고뇌를 깊게 다루는데 집중하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이 작품에 세 차례 등장한 두만강 씬은 안중근이라는 인물의 감정을 문학적인 대사와 함께 시각적으로 인상깊게 묘사하기도 했습니다. 이렇듯 영화의 형식 자체가 명확하게 정해진 상태에서 나머지가 진행되다보니 몇몇 삐걱대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호화로운 출연진을 자랑하지만 연기 연출에 있어서도 낮은 음정을 주로 사용하고 표현이 제한되어 있으며 정적이고 비장미 아래 모두 통일된 연기를 하다보니 그게 어색한 배우가 몇몇 보이게 됩니다. 이건 배우 개개인의 역량보다는 연기 연출에 있어서 일정 부분 실패된 지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더불어 시대상의 공기나 안중근의 신념을 영화의 화법이나 형식으로 유지하다가도 드문드문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조우진 배우가 연기한 김상혁 역이 고문당하는 장면이나 김상혁이라는 캐릭터가 박훈 배우가 연기한 모리 다쓰오가 최후에 살해당하는 장면 등 논리적으로나 감정적으로는 충분히 납득이 가지만 기존에 유지해오던 방법론적나 톤앤매너로나 불일치해서 이질감이 듭니다. 그러니까 그 해 배경인 겨울만큼이나 혹독하게 시렸던 극 중 상황을 차갑고 어둡고 푸르게 억눌렀던 영화를 순간적으로 뜨겁게 폭발하는데 거기서 이제껏 해온 것과 달리 감정을 자극하고 강조해서 오히려 전체적으로 부조화를 이루게 되는 겁니다. 또 주인공으로는 안중근을 내세웠지만 그러한 대상으로는 김상혁이라는 인물을 내세웠다는 겁니다. 심지어는 결말부도 김상혁이라는 인물이 가져갑니다. 물론 안중근 의사에 대한 정보가 한정적이라 팩션으로 풀어내야 했을 테고 독립운동가의 인간적인 고뇌를 드러내기 위해 김상혁이라는 인물을 택해야했겠지만요. 다만, 그러다보니 <하얼빈>이라는 작품 전체가 현빈 배우가 맡은 안중근보다 김상혁이라는 인물이 더 인상에 남습니다. 조우진 배우의 연기가 워낙 좋기도 하고요.
같은 소재를 삼은 윤제균 감독의 <영웅>과는 명확하게 화법이 다를 뿐더러 <하얼빈>을 연출한 우민호 감독의 대표작인 <내부자들>과도 화법이 상당하게 대비됩니다. 우민호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는 <남산의 부장들>보다도 더 건조하고 어두워졌다고 보면 관람 전 참고하시기에 좋을 것 같습니다.
- 별점 : ★★★☆
추천인 5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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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의 안중근장군에 대한 진정성이
영화보는 내내 느껴지더라구요
마지막 대사는 어쩜 현시대 대한 메세지이기도 했구요
매번 좋은 리뷰 감탄하며 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