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부재 - 간단 후기
어떤 작품일까, 궁금해서 손꼽았던 영화입니다. <위대한 부재>!
인질 없는 인질극! 이라는 로그라인을 내걸고 134분에 달하는 러닝타임으로 토론토 일본 영화제에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했다고 하네요. 토론토 일본 영화제는... 뭐지, 했던. 여튼 토론토국제영화제 경쟁부분, 산 세비스티안 영화제에서는 최우수 남우주연상을 포함 2관왕에 올랐다고 합니다. 이건 언론에서 소개한 거.
치카우리 케이 감독.
최근 일본 예술 영화에서 <새벽의 모든>을 연출했던 미야케 쇼 감독이나 설명이 필요 없는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에 뒤이어 각광 받는 감독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영화 역시 마찬가지였는데요, 일단 본 감상을 짧게 먼저 말하면 "<드라이브 마이 카>+<더 파더>"를 <위대한 부재>라고 단순 설명해둡니다.
영화 줄거리를 긁어오면!
인질 없는 인질극을 벌인 아버지 VS 아버지란 이름의 수수께끼를 풀어야 하는 아들 “처음으로 당신에 대해 알고 싶어졌습니다” 도쿄에서 연극배우로 활동하고 있는 타카시는 어린 시절 자신과 어머니에게 큰 상처를 준 아버지, 토야마를 미워하며 연락을 끊고 지낸다. 어느 날, 아버지가 경찰에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급하게 그가 있는 규슈로 내려가지만 다시 만난 아버지는 치매 증상으로 마치 다른 사람처럼 행동하고 아버지와 재혼한 새어머니는 행방불명된 상태임을 알게 된다. 타카시는 아버지가 남긴 단서들을 토대로 흩어진 기억과 진실에 서서히 다가가는데…
리뷰로, 해설까지 해버릴까 하다가. 일단 개봉 전이라 스포 없는 선에서 간단 후기 정도로만 쓰겠습니다.
사실 영화 초반에 인질 없는 인질극, 이라는 로그라인이 자극적이어서 이게 도대체 뭘까 하는 궁금증이 컸습니다. 이건 이대로 두고. 음, 보시는 분들이 판단하시는 게 맞는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리고 보는 내내 떠올랐던 소설 작품 하나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붉은 손가락>이었습니다. 즉 위대한 부재를 조금 더 적확하게 설명하려면 영화 <드라이브 마이카>의 액자 구성과 <더 파더>의 안소니 홉킨스의 연기, 그리고 <붉은 손가락>의 서사를 합치면 되지 않을까 싶네요.
초고령화 사회.
이제 젊은이보다 늙은 사람들이 더 많고 그래서 활기보다는 좋은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일본 사회에서, 어떻게 하면 "좋은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 하는 것은 참으로 알 수 없는 물성을 가졌습니다. 정답도 없으려니와 정의도 하기 어렵습니다.
<위대한 부재>는 그러한 초고령화 사회에서 이제 자신을 잃어가는 전직 대학교수가 내린 하나의 "결정"을 두고 아들이 그것을 되짚어 가는 일종의 추적극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버지가 남긴 메모, 정상적 대화가 불가능한 아버지의 현재, 아버지를 구성했던 사랑과 이별 그리고 새 엄마 나오미, 나오미를 구성했던 주변을 추적하며 30년을 단절하고 산 아버지라는 사람의 오늘, 그 이후를 아들이 맞이하는 것으로 영화는 끝이 납니다.
더해서 감독은 에필로그와 프롤로그의 연속적인 구성을 통해 그 나름대로 관객에게 영화적 해석의 여지를 줍니다. 보는 이에게 이 여지가 좁아질 구석도 있고 해석에 있어서 넓어질 용도도 분명합니다.
보는 중간중간.
내 이야기 같아 분노하기도 하고 감정적 동요를 겪기도 했더랍니다. 영화는 그만큼 오늘을 사는 "십대 이십대"보다는 삼십대 이후에게 조금 더 큰 진폭을 가져다 줄 것으려 여겨집니다.
분명 좋은 영화였습니다. 제가 떠올린 영화만 보아도 아마 그렇다는 생각이 드실 겁니다. 물론 그에 반해 상업성이나 즉흥적 재미를 우선시하는 관객에게는 치명적인 "노잼" 영화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전개가 매우 느리고 감독이 보여준 편린의 장면이 생각하기에 따라 곱씹을 장면이라기보다 반복이라고 여겨질 수도 있거든요. 타임라인을 해체하고 이를 아들의 추적에 따라 짜맞추어 둔 터라 느린데 복잡한, 그런 감정을 가져다 줄 수 있다고 할까요. 거기다 굳이 이 장면들이 필요하나 싶은 "하고 싶은 것 다 한 듯한" 장면들도 여럿 있어서 즉물적인 재미를 원하는 분들에게는 상당한 고역이 될 영화라는 판단이 섭니다.
이런 영화의 특성 상, 가늘고 길게 상영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은 듭니다. 큰 흥행은 분명 어렵겠지만 잔잔하지만 강력한 여운을 가진 영화이기에 그러한 예술 영화를 원하는 분들에게는 분명 좋은 선택지가 될 겁니다.
저는 추천합니다.
사담 하나 덧붙이자면. 아마 이 글을 읽을 거다 싶어서.
제가 연출했던 영화에서, 젊은 연기자 몇몇은 땀을 흘려야 하는 장면인데도 메이크업을 해달라고 하더군요. 그거 틀렸다고 말해도, 듣지 않고 관철시키던 아이돌 출신 배우 그리고 그래야 한다면서 무리를 만들던 그 배우에게 이 영화를 꼭 권하고 싶었답니다. (물론 제 연출력의 '위대한 부재'라는 사실 또한 절망적으로 통감하구요.)
노배우 후지 타츠야는 자신이 기력을 잃고 누운 장면에서는 거의 이틀이나 자고 일어난 듯한 부숭한 머리에 떡진 모습이었고, 영화 속 연기를 해내는 모리야마 미라이는 대충 해도 관객이 그리 신경 쓰지 않을 텐데도 연기 속 연극배우의 역할을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정말 멋지게 해내더군요. 많이 놀랐고 많이 배웠습니다.
문득 선배 감독의 얘기가 떠올랐어요. 현장에서는 욕 좀 할 줄 알아야 한다고. 그치만 그런 시대는 이제 지났잖아요. 배우가 프로 의식을 가진다는 건, 즉 돈을 받고 캐스팅이 되었다면, 영화 속으로 들어가야 하겠죠. 그런 면에서 모리야마 미라이나 후지 타츠야의 연기는 정말 배울 것이 많았습니다. 저의 위대한 부재에 대해서도.
일본에선 드라마 출연료에 비해 영화 출연료가 형편 없어서, 영화 배우들은 돈보다 사명감 갖고 출연한다고 본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