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mmersby (1993) 리처드 기어의 대표작 서부극. 스포일러 있음.
리처드 기어는 "사관과 신사" "breathless" "아메리칸 지골로" 등 섹스심벌로 단번에 스타덤에 올랐었다. 기자가 당시 리처드 기어에게 당신이 왜 그렇게 인기가 있다고 생각하냐고 묻자, 기자 앞에서 자기 자지를 쥐더니 "이거 아니겠어요?"하고 웃었다는 일화가 있다.
하지만, 리처드 기어는 섹스심벌로 뜨기 전에 이미 명배우였다. 천국의 나날들이라는 걸작에서 홈리스 연기로 명연기를 보여준 바 있다. 섹스심벌로 안 떴어도, 그는 조만간 명배우로 스타가 되었을 것이다. 사실 섹스심벌로 뜨는 바람에 영화가 그쪽으로 들어와서 필모그라피에 손해를 본 감이 있다.
이 영화 섬머스비는 대배우 조디 포스터와 호흡을 맞춰 찍은 서부극이다. 조디 포스터도 당시 이미 대배우인데, 이 영화에서 주연은 리차드 기어이고 그녀는 리처드 기어를 서포트한다. 리처드 기어가 얼마나 당시 대스타였는지 짐작이 간다. 리처드 기어는 이 서부극에서 유창한 호흡의 명연기를 한다. 대배우 조디 포스터 연기가 빛을 잃을 정도의 명연기다. 리처드 기어에게 이 정도는 그냥 손쉬운 거다.
프랑스영화 마틴 기어의 귀향을 미국에서 리메이크한 것이다.
잭 섬머스비는 테네시 어느 마을의 지주이다. 마을 땅을 거의 다 갖고 있다. 성질도 더럽다. 마을사람들에게 인심을 잃었다. 아내 로렐에게도 가혹하게 군 나쁜 남편이다. 그러다가 그는 남북전쟁에 나간다. 전쟁이 끝나도 6년이나 소식이 없다. 다들 그가 죽은 줄 안다. 뭐 죽어도 슬퍼할 사람 없다. 아내 로렐은 남편이 없는 대농장을 혼자 돌보느라고 죽을 고생을 한다. 남편이 죽은 줄 알고 오린이라고 하는 마을남자와 사실상 결혼 전제로 사귄다. 오린은 미래 아내를 위해 아내의 대농장에서 노동을 하느라고 고생이다. 그러다가, 6년만에 잭 섬머스비가 돌아온다.
마을사람들은 모두 어리둥절하다. 잭 섬머스비가 맞나? 6년이 작은 시간이 아니다. 맞는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다. 잭 섬머스비는 과거 마을에서 있었던 일을 다 기억해낸다. 본인이 아니고서야 이 정도로 정확히 디테일을 기억해낼 수 있나? 마을사람들은 그제야 잭 섬머스비 본인이라고 인정한다.
잭 섬머스비는 전쟁터에서 180도 달라져서 돌아온다. 쾌활하고 마을사람들에게 격의없이 대해 호감을 산다. 아내 로렐도 잭 섬머스비에게 마음을 연다. 잭 섬머스비를 연기하는 배우가 리처드 기어다. 아내 로렐을 연기하는 배우가 조디 포스터다.
리처드 기어의 명연기는 엄청 훌륭하다. 명연기도 명연기이지만. 개인적인 매력도 대단하다. 명연기+그의 아우라다.
호랑이가 날개까지 달았다.
리처드 기어는 마을사람들을 모아놓고 의논을 한다. 남북전쟁 이후 마을은 망해서 폐허가 되었다. 대농장 주인 로렐조차도 간신히 농사지어 먹고 살 정도다. 리처드 기어는 마을사람들이 있는 돈을 다 끌어모아 담배 씨앗을 사자고 한다. 담배값이 금값이라는 것이다. 담배를 키우는 데 성공만 하면, 당장 모두들 부자가 될 수 있다. 거기에다가 자기 땅까지 마을사람들에게 헐값으로 판단다. 성공만 하면 자기 땅에다가 수익 높은 담배를 키우는 농민이 될 수 있다.
매력적인 리처드 기어가 말빨까지 갖추니 사람들은 당장 찬성한다. 리처드 기어는 마을사람들의 재산 전부를 긁어모아 담배씨앗을 산다고 사라져 버린다. 그는 과연 돌아올까?
감독의 연출도 상당히 안정적이다. 건조하고 담백한 것이 아니라, 리처드 기어의 명연기와 매력을 감정적으로 잡아낸다. 슬프지 슬프지 하고 떠든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리처드 기어의 매력과 조디 포스터의 곤혹 그리고 리처드 기어가 자기 아들을 만나 벌어지는 따스한 사건 등을 아주 아기자기하게 감정적으로 잡아낸다는 것이다. 원작 프랑스영화 마틴 기어의 귀향과는 전혀 다르다. 마틴 기어의 귀향은 무슨 스릴러나 추리물같은 영화다. 리메이크작인 섬머스비는 그런 영화와는 정반대다. 차갑다거나 건조한 것이 아니라, 아주 따스하고 행복하고 감정적이다.
섬머스비가 흑인에게 자기 땅을 팔겠다고 하는 장면도 가슴 뭉클하다. 노예해방은 되었지만 사실은 아직 흑인노예나 마찬가지 취급을 받고 있다. 그런데, 마을 최고지주가 땅을 팔겠다고 했으니...... 그는 감격한다. 나중에 KKK단이 땅을 내놓으라며 때려죽이려고 하자, 죽었으면 죽었지 땅은 안 내놓는다.
영화 중반 섬머스비가 마을사람들과 함께 담배를 경작하는 장면도 아주 길게 보여준다. 담배 경작하는 것이
화초 키우는 것과는 다르다. 담배가 자꾸 병충해로 말라 죽는다. 어떻게 해야 병충해를 막을 수 있는 것인지 갖은 수를 다 써도 알 수 없다. 리처드 기어는 죽을 각오로 밭에 붙어 산다. 그전까지는 좀 나태하고 사람 좋은 마을이었던 곳이, 이제는 함께 머리를 맞대고 담배농사를 성공시키려 애쓰는 곳이 된다. 다 리처드 기어 때문이다.
담배농사도 성공하고, 마을사람들은 모두 자기 땅을 갖고, 리처드 기어는 엄청난 돈을 벌고 - 모두가 해피 엔딩이다.
그런데, 리처드 기어가 체포된다. 잭 섬머스비는 쓰레기로 어느 마을에서 도박을 하다가 상대방을 쏘아죽였다는 것이다. 리처드 기어는 살인죄로 체포되어 사형을 기다리는 신세가 된다. 갑자기 법정물이 된다.
뭐 쟝르가 휙 휙 바뀌어도 연출은 무지 안정적으로 효과적으로 이것들을 이어준다. 리처드 기어는 사실 잭 섬머스비가 아니었다. 사기꾼 탈영병이다. 그는 마을마다 다니면서 담배씨앗을 사겠다며 돈을 챙겨 도주했었다. 이 마을에서 진심으로 담배농사를 한 것은, 그가 조디 포스터와 사랑에 빠졌기 때문이었다. 조디 포스터도 대충 짐작은 했었다. 하지만, 조디 포스터가 리처드 기어가 남편이 맞는 것처럼 했던 이유도, 그녀가 리처드 기어를 사랑했기 때문이었다.
조디 포스터는 리처드 기어를 살리기 위해 그가 남편이 아니라고 증언한다.
리처드 기어는 죽을 줄 알면서도, 자기가 잭 섬머스비 맞다고 우긴다.
여기서 살아나면 뭐하는가? 존경받고 사랑받는 잭 섬머스비에서 하루 아침에 사기꾼 탈영병이 되어 버린다. 그 다음에 이어갈 것도 쓰레기 인생이다.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
그리고, 자기가 사기꾼이 되면, 자기가 땅을 팔아주었던 그 마을사람들은 뭐가 되는가? 다들 자기땅을 잃을 것이다. 그리고, 소작농으로 떨어질 것이다. 모두 하루 아침에 망한다. 자기 하나가 잭 섬버스비로 죽으면 다 행복하다.
마을사람들은 리처드 기어가 잭 섬머스비 맞다고 모두들 말한다. 리처드 기어가 잭 섬머스비이어야 자기 땅을 지킬 수 있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그들 모두 리처드 기어를 사랑하고 존경했었다.
리처드 기어의 화려한 말빨과 매력에, 판사도 리처드 기어가 잭 섬머스비가 맞고 사형죄를 저질렀다는 판결을 내린다. 자기가 사형죄로 죽겠다고 검사 대신 논쟁을 하는 피고는 처음 보았다.
조디 포스터는 결국 포기하고, 리처드 기어의 소원을 들어주기로 한다. 그를 이해할 수 있다. 이 부분에서 아주 섬세한 연기가 필요했는데, 조디 포스터나 리처드 기어나 둘 다 아주 잘 해낸다. 차이점은, 조디 포스터는 기술적으로 이를 잘 해냈는데, 리처드 기어는 자연스럽고 매력적으로 이를 잘 해냈다. 누가 더 눈에 띄었는지는 자명하다.
조디 포스터는 나중에 레즈비안이라는 것을 밝혔는데, 이 영화에서도 중성적인 느낌이 든다. 좀 더 여성적인 배우였다면 이 장면에서 애절한 느낌이 강하게 들었을 것이다.
리처드 기어가 교수대에 올라가 아래 모인 사람들 틈에서 조디 포스터를 필사적으로 찾는 장면은 감동적이다. 그는 "아직 죽을 준비가 안 됐어요"하고 연신 소리친다. 마침내 조디 포스터를 찾자 그는 웃음을 지으며 최후를 맞는다.
영화에는 살인도 있고 교수대도 있고 엄청난 고생도 있고 사기죄도 있고 KKK단도 등장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전체적으로 따스한 톤을 유지한다. 무겁거나 잔혹한 것으로 떨어지지 않는다. 리처드 기어와 조디 포스터의 사랑, 리처드 기어와 마을사람들의 사랑같은 것이 영화 내내 중심주제다. 리처드 기어가 자발적으로 죽음을 선택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쓰레기같은 생애 처음으로 이런것들을 얻었으니, 이것을 망칠 수는 없는 것이다.
조디 포스터는 물론 연기를 아주 잘 한다. 조디 포스터의 아들역을 맡은 아역배우 연기도 특출나다. 하지만, 영화 중심에서 이 영화를 주도하는 배우는 리처드 기어다. "아, 그 배우. 지골로 아니야?"하는 말을 당시에도 듣던 배우였으니,
이미지 때문에 손해가 막심했다.
영화 마지막에서 번영한 마을을 바라보는 자리에 리처드 기어의 무덤이 있다. 이쁘게 꾸며진 무덤에 마을사람들은 꽃을 바친다. 아무도 그를 잊지 않고 여전히 사랑한다. 리처드 기어는 여기 누워서 마을이 번영해가고 마을사람들이 행복해 하는 것을 다 내려다본다. 이것이 해피엔딩인지 아닌지에 대해 나는 잘 판단할 수 없었다. 하지만, 결국 생각하는 것은, 이것이 해피엔딩 맞다는 것이다. 영화톤도 행복하고 감성적이고 따스한 것이다. 리처드 기어의 죽음조차도 따스하고 행복한 톤으로 보여준다.
건조하고 잔혹하고 담백한 영화들은 무지 많다. 하지만, 섬머스비처럼 보는 이들을 따스하게 만드는 영화가 오히려 드물다. 리처드 기어가 어떤 배우였는지 잘 보여주는 영화다. 그는 연기를 명배우급으로 잘 했다. 연기를 자연스럽게 매력적으로 해낸다는 것 - 이것은 정말 어마무시한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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