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크모드
  • 목록
  • 아래로
  • 위로
  • 댓글 4
  • 쓰기
  • 검색

[스포][리뷰][존 오브 인터레스트] 소리와 대비를 통해 정교히 묘사한 시대의 참상

클랜시 클랜시
3897 5 4

[존 오브 인터레스트]를 봤습니다.

 

61268541631.jpg

 

2차 대전 당시, 아우슈비츠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실화에 기반을 둔, 실존인물의 묘사가 중심인 작품이었군요.

 

주인공 격인 '루돌프 회스'에 대한 부분은 관람 후에 찾아봤는데,

이 사람인 건 모르고 관련된 일화만 여기저기서 주워들었던 기억이 나더군요.

이번 기회에 관련된 내용을 정리하는 기회도 되었고... 

이런 기회마다 들춰보는 존 키건의 '2차세계대전'도 괜히 다시 꺼내보게 되었습니다.

 

 

영화는 왜 작년에 극찬을 받았고 각종 수상목록에 올라갔었는지 알겠더군요.

형식적인 실험과 섬세한 연출 뛰어난 연기와 미장센 등등....

학생으로 치자면 올 A 성적표 같은 작품이었습니다.

 

영화 초반 체감적으론 1분 넘게 이어지는 듯한 암전은 잠시나마 '영사사고인가?' 생각이 들게 했어요

얼핏 과감하고 불친절해 보이는 장치는 사실 매우 친절한 프롤로그였더군요.

영상도 중요하지만 이 작품을 제대로 보려면 여러분의 귀도 활짝 열어야 해요라고 말하는 것처럼요.

 

러닝타임 내내 배경음으로 멀리서 들려오는 소음들은 프레임 안에 직접 보여주지 않는 참상을 상기시킵니다.

사운드 외에도 영화는 아우스비츄라는 끔찍한 공간에서 벌어졌던 참상의 편린을 

간접적으로 계속해서 노출시키며 관객에게 상기시켜요.

식솔들에게 무심히 던지는 고급 속옷 뭉터기, 

강물을 따라 떠내려오는 부유물, 아이가 밤에 꺼내보는 금니, 

베드타임 스토리로 읽어주는 책 '헨젤과 그레텔'의 이야기 등등

 

'여러분, 이거 직장에서의 정치싸움으로 스트레스 받으면서도 가정에선 다정한 아버지가 되려 노력하는 남자 이야기가 아니라는 거 다 아시죠?'라고 쿡쿡 찔러주는 거겠죠.

 

 

루돌프의 사택과 아우슈비츠 사이엔 거대한 벽이 가로막고 있습니다.

이쪽과 저쪽, 분리된 공간은 상반되는 이미지와 색으로 표현됩니다.

사택은 녹색과 물, 수용소는 적색과 불이죠.

 

암전 이후 나오는 첫 장면은 밝은 볕을 쐬며 풀밭에 앉은 가족과 너머에서 물놀이 하는 아이들입니다.

사택 후원은 정성들여 조성한 정원과 텃밭이 있고 가장 안쪽엔 작은 수영장이 있죠.

물놀이 하느라 젖은 아이들의 몸에서 떨어진 물기가 복도를 적시고

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물놀이에서 돌아온 아이들은 어떤 이유로 욕조에서 벅벅 씻기기도 합니다.

그 안의 사람들이 계속 무언가 마시는 장면을 보여주는 것도 의도가 있겠지요.

 

벽 너머에선 사람들의 비명과 총소리가 아련히 들려오는데 밤이 되면 굴뚝위로 불길이 솟아요

그곳에서 가져온 모피코트 안에서 루돌프의 아내가 찾은 것은 붉은 립스틱입니다.

벽처럼 둘러쳐진 녹색 수풀 너머 수용자를 채근하는 병사의 말이 짓밟는 것은 붉은 사과이고

일터에서 돌아온 루돌프의 장화를 물로 씻자 나오는 것은 그곳의 흔적인 붉은 피입니다.

실재로 영화의 중반에 화면이 온통 붉게 채워진 순간도 있지요.

 

 

영화의 제목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직역하면 관심구역이지만 '이득(interest)이 나는 곳'이란 의미로

전쟁 중에도 수익을 꾸준히 창출한 아우슈비츠를 지칭하는 말이기라고도 합니다.

수용자들의 노동력을 착취한 것도 있지만 영화에서 간간히 보여준 것처럼 나치는 

그곳에 잡혀온 사람들의 모든 것 (귀중품, 옷, 심지어 금니까지)을 뽑아먹었으니까요.

사택의 아름다운 풍경과 잘 조성된 정원은 모두 벽 너머로부터 온 것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녹색과 물의 이미지로 대변되는 사택에 피어난 꽃을 비춰주는 후반부의 몽타쥬 컷에선

유난히 붉은 꽃들만 가득합니다.

 

하지만 루돌프의 가족들이 벽 너머로부터 오로지 '인터레스트'만 얻는 것은 아닙니다.

직접적으로 묘사된 물놀이 장면에서 떠내려오는 부유물부터

연신 기침을 해대는 사람들,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거나 몽유병에 시달리는 딸들

이유 없는 이상행동을 보이는 아들들, 빽빽 울어대기만 하는 막내

그 아이를 돌보는 유모 역의 식솔 역시 밤마다 술을 들이켜고

동일한 시간, 창문 너머 붉은 밤의 풍경에 표정이 굳는 장모는 결국 말도 없이 돌아갑니다.

그리고 관객들처럼 지속적으로 그들의 잠재의식을 자극했을 '소리'도요.

 

소리와 관련해선 후반부 이례적으로 삽입된 장면에서 반전이 일어납니다.

바로 갑자기 현대에 박물관이 된 아우슈비츠의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이죠.

이전까진 벽 너머에 유대인들이 있던 수용소에서 소음처럼 지속적으로 소리들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현대 장면에선 유대인들의 흔적인 구두와 옷가지, 유품들이 전시된 유리벽이 사택의 벽 역할을 합니다.

벽 바깥쪽은 청소를 하기 위한 소음들로 가득합니다. 하지만 벽의 안쪽, 유대인의 공간은 이제 무거운 침묵 뿐입니다.

 

이후에 곧바로 다시 이어지는 엔딩은 뻔하지만 매우 적절해 보였습니다.

아우슈비츠 소장이자 수백만을 죽인 장본인 루돌프는 적막한 공간에서

마치 미래의 소음을 듣기라도 한 것처럼 머뭇거리다 다시 계단을 내려갑니다.

층을 내려갈때마다 조금씩 어두워지더니 마지막엔 불이 꺼져 완전히 어두워진 아래로

그의 모습은 천천히 묻혀가고 이윽고 시작과 같은 암전과 불길한 '소리'가 들려옵니다.

 

루돌프의 최후를 암시하는 것도 같고,

평범한 악의 역사가 여전히 이어지고 있음을 경고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

 

롯시 아카를 받았는데, 이런 작품의 아카를 내준 것도 독특한데 심지어 렌티큘러?

어쨌든 좋습니다. 예, 좋아요.

 

++

 

영화 끝나고 나오면서 보니까 출입문에 '암전 장면'과 관련한 안내가 붙어 있더군요.

신고공유스크랩

추천인 5


  • 올리브으
  • golgo
    golgo

  • 이상건

  • 필름매니아
  • Sonatine
    Sonatine

댓글 4

댓글 쓰기
추천+댓글을 달면 포인트가 더 올라갑니다
정치,종교 관련 언급 절대 금지입니다
상대방의 의견에 반박, 비아냥, 조롱 금지입니다
영화는 개인의 취향이니, 상대방의 취향을 존중하세요
자세한 익무 규칙은 여길 클릭하세요
profile image 1등
진짜 걸작이었어요..조나단 글레이저는 진정한 천재라고 생각합니다..
00:39
24.06.06.
profile image
클랜시 작성자
Sonatine
이런 소재를 이렇게 실험적으로 다루면서도 균형감을 잃지 않고 자신의 스타일도 지켜낸 거 보면 대단하긴 하더라구요.
개인적으로 대충 보고 넘겼던 감독의 전작도 이번 기회로 다시 찾아보게 될 거 같습니다.
00:42
24.06.06.
profile image 3등
장면들이 잔상처럼 잊혀지지 않고 남네요
08:40
24.06.06.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에디터 모드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하시겠습니까?

댓글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공유

퍼머링크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HOT <간니발 시즌 2> 공식 예고편 | 디즈니+ 2 넷플마니아 넷플마니아 46분 전20:54 216
HOT 마블 영화 출연 안 내킨다는 제나 오르테가 3 golgo golgo 1시간 전20:10 552
HOT 현시각 롯데시네마 월드타워 경품 현황 2 광제스님 2시간 전19:37 308
HOT 개인적으로 뽑는 B급 영화 명작선 6 스누P 2시간 전19:03 763
HOT A24 전쟁 영화 '워페어' 대호평 해외 SNS 반응 4 golgo golgo 4시간 전17:36 1464
HOT ‘오딧세이’ 세트장 - 사이클롭스 신 촬영, 뉴 아맥카메라 헬기 2 NeoSun NeoSun 4시간 전17:28 901
HOT 라이프 오브 척 - 공식 티저 예고편 [한글 자막] 2 푸돌이 푸돌이 4시간 전17:22 654
HOT 해리 포터 시리즈를 마무리하며 (약스포) 2 도삐 도삐 9시간 전11:56 689
HOT <언젠틀 오퍼레이션> 후기 2 아크맨 5시간 전16:20 638
HOT 자크 오디아르 감독이 한국 관객들에게 보내온 편지 1 넷플마니아 넷플마니아 5시간 전16:05 872
HOT 봉준호 감독 영화 레터박스 점수 순위 4 시작 시작 5시간 전16:03 1535
HOT '프리키 프라이데이' 2 예고편 <번역> 3 parkcine 5시간 전15:58 699
HOT <블랙 백> 배우들 거짓말 테스트 2 카란 카란 6시간 전15:31 677
HOT 로맨싱 스톤 (1984) 로맨스 어드벤쳐물의 정석적인 고전. ... 17 BillEvans 19시간 전02:09 1091
HOT 닐 블롬캠프,로버트 A.하인라인 SF 소설 '스타쉽 트루... 6 Tulee Tulee 13시간 전08:25 1316
HOT 제78회 칸 영화제 상영 또는 초연 예정 영화 리스트 2 NeoSun NeoSun 9시간 전12:36 1746
HOT ‘오딧세이’ 세트장 맷 데이먼 첫모습 등 3 NeoSun NeoSun 9시간 전11:59 2180
HOT 서기 <T> 중국판 패션잡지 화보 3 손별이 손별이 9시간 전11:57 912
HOT 48회 일본 아카데미 수상작 9 GI 10시간 전11:38 1683
HOT 고독한 미식가 더 무비 보고 왔습니다 3 레이더스원 10시간 전11:34 859
1169843
image
NeoSun NeoSun 8분 전21:32 60
1169842
image
golgo golgo 22분 전21:18 166
1169841
normal
넷플마니아 넷플마니아 46분 전20:54 216
1169840
normal
넷플마니아 넷플마니아 50분 전20:50 148
1169839
normal
시작 시작 1시간 전20:15 583
1169838
image
시작 시작 1시간 전20:12 605
1169837
image
golgo golgo 1시간 전20:10 552
1169836
image
넷플마니아 넷플마니아 1시간 전19:55 194
1169835
image
광제스님 2시간 전19:37 308
1169834
image
스누P 2시간 전19:03 763
1169833
image
Sonatine Sonatine 3시간 전18:25 365
1169832
image
golgo golgo 4시간 전17:36 1464
1169831
image
NeoSun NeoSun 4시간 전17:31 979
1169830
image
NeoSun NeoSun 4시간 전17:28 901
1169829
normal
푸돌이 푸돌이 4시간 전17:22 654
1169828
normal
기다리는자 4시간 전16:46 712
1169827
normal
울프맨 4시간 전16:45 563
1169826
image
아크맨 5시간 전16:20 638
1169825
normal
넷플마니아 넷플마니아 5시간 전16:16 366
1169824
normal
넷플마니아 넷플마니아 5시간 전16:15 486
1169823
image
넷플마니아 넷플마니아 5시간 전16:05 872
1169822
image
시작 시작 5시간 전16:03 1535
1169821
normal
parkcine 5시간 전15:58 699
1169820
image
카란 카란 6시간 전15:31 677
1169819
image
NeoSun NeoSun 9시간 전12:36 1746
1169818
image
카스미팬S 9시간 전12:25 504
1169817
image
NeoSun NeoSun 9시간 전11:59 2180
1169816
image
손별이 손별이 9시간 전11:57 912
1169815
image
도삐 도삐 9시간 전11:56 689
1169814
image
NeoSun NeoSun 9시간 전11:54 2025
1169813
image
호러블맨 호러블맨 9시간 전11:48 695
1169812
normal
GI 10시간 전11:38 1683
1169811
image
레이더스원 10시간 전11:34 859
1169810
normal
중복걸리려나 10시간 전11:10 679
1169809
image
NeoSun NeoSun 11시간 전10:40 14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