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리뷰][존 오브 인터레스트] 소리와 대비를 통해 정교히 묘사한 시대의 참상
[존 오브 인터레스트]를 봤습니다.
2차 대전 당시, 아우슈비츠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실화에 기반을 둔, 실존인물의 묘사가 중심인 작품이었군요.
주인공 격인 '루돌프 회스'에 대한 부분은 관람 후에 찾아봤는데,
이 사람인 건 모르고 관련된 일화만 여기저기서 주워들었던 기억이 나더군요.
이번 기회에 관련된 내용을 정리하는 기회도 되었고...
이런 기회마다 들춰보는 존 키건의 '2차세계대전'도 괜히 다시 꺼내보게 되었습니다.
영화는 왜 작년에 극찬을 받았고 각종 수상목록에 올라갔었는지 알겠더군요.
형식적인 실험과 섬세한 연출 뛰어난 연기와 미장센 등등....
학생으로 치자면 올 A 성적표 같은 작품이었습니다.
영화 초반 체감적으론 1분 넘게 이어지는 듯한 암전은 잠시나마 '영사사고인가?' 생각이 들게 했어요
얼핏 과감하고 불친절해 보이는 장치는 사실 매우 친절한 프롤로그였더군요.
영상도 중요하지만 이 작품을 제대로 보려면 여러분의 귀도 활짝 열어야 해요라고 말하는 것처럼요.
러닝타임 내내 배경음으로 멀리서 들려오는 소음들은 프레임 안에 직접 보여주지 않는 참상을 상기시킵니다.
사운드 외에도 영화는 아우스비츄라는 끔찍한 공간에서 벌어졌던 참상의 편린을
간접적으로 계속해서 노출시키며 관객에게 상기시켜요.
식솔들에게 무심히 던지는 고급 속옷 뭉터기,
강물을 따라 떠내려오는 부유물, 아이가 밤에 꺼내보는 금니,
베드타임 스토리로 읽어주는 책 '헨젤과 그레텔'의 이야기 등등
'여러분, 이거 직장에서의 정치싸움으로 스트레스 받으면서도 가정에선 다정한 아버지가 되려 노력하는 남자 이야기가 아니라는 거 다 아시죠?'라고 쿡쿡 찔러주는 거겠죠.
루돌프의 사택과 아우슈비츠 사이엔 거대한 벽이 가로막고 있습니다.
이쪽과 저쪽, 분리된 공간은 상반되는 이미지와 색으로 표현됩니다.
사택은 녹색과 물, 수용소는 적색과 불이죠.
암전 이후 나오는 첫 장면은 밝은 볕을 쐬며 풀밭에 앉은 가족과 너머에서 물놀이 하는 아이들입니다.
사택 후원은 정성들여 조성한 정원과 텃밭이 있고 가장 안쪽엔 작은 수영장이 있죠.
물놀이 하느라 젖은 아이들의 몸에서 떨어진 물기가 복도를 적시고
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물놀이에서 돌아온 아이들은 어떤 이유로 욕조에서 벅벅 씻기기도 합니다.
그 안의 사람들이 계속 무언가 마시는 장면을 보여주는 것도 의도가 있겠지요.
벽 너머에선 사람들의 비명과 총소리가 아련히 들려오는데 밤이 되면 굴뚝위로 불길이 솟아요
그곳에서 가져온 모피코트 안에서 루돌프의 아내가 찾은 것은 붉은 립스틱입니다.
벽처럼 둘러쳐진 녹색 수풀 너머 수용자를 채근하는 병사의 말이 짓밟는 것은 붉은 사과이고
일터에서 돌아온 루돌프의 장화를 물로 씻자 나오는 것은 그곳의 흔적인 붉은 피입니다.
실재로 영화의 중반에 화면이 온통 붉게 채워진 순간도 있지요.
영화의 제목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직역하면 관심구역이지만 '이득(interest)이 나는 곳'이란 의미로
전쟁 중에도 수익을 꾸준히 창출한 아우슈비츠를 지칭하는 말이기라고도 합니다.
수용자들의 노동력을 착취한 것도 있지만 영화에서 간간히 보여준 것처럼 나치는
그곳에 잡혀온 사람들의 모든 것 (귀중품, 옷, 심지어 금니까지)을 뽑아먹었으니까요.
사택의 아름다운 풍경과 잘 조성된 정원은 모두 벽 너머로부터 온 것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녹색과 물의 이미지로 대변되는 사택에 피어난 꽃을 비춰주는 후반부의 몽타쥬 컷에선
유난히 붉은 꽃들만 가득합니다.
하지만 루돌프의 가족들이 벽 너머로부터 오로지 '인터레스트'만 얻는 것은 아닙니다.
직접적으로 묘사된 물놀이 장면에서 떠내려오는 부유물부터
연신 기침을 해대는 사람들,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거나 몽유병에 시달리는 딸들
이유 없는 이상행동을 보이는 아들들, 빽빽 울어대기만 하는 막내
그 아이를 돌보는 유모 역의 식솔 역시 밤마다 술을 들이켜고
동일한 시간, 창문 너머 붉은 밤의 풍경에 표정이 굳는 장모는 결국 말도 없이 돌아갑니다.
그리고 관객들처럼 지속적으로 그들의 잠재의식을 자극했을 '소리'도요.
소리와 관련해선 후반부 이례적으로 삽입된 장면에서 반전이 일어납니다.
바로 갑자기 현대에 박물관이 된 아우슈비츠의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이죠.
이전까진 벽 너머에 유대인들이 있던 수용소에서 소음처럼 지속적으로 소리들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현대 장면에선 유대인들의 흔적인 구두와 옷가지, 유품들이 전시된 유리벽이 사택의 벽 역할을 합니다.
벽 바깥쪽은 청소를 하기 위한 소음들로 가득합니다. 하지만 벽의 안쪽, 유대인의 공간은 이제 무거운 침묵 뿐입니다.
이후에 곧바로 다시 이어지는 엔딩은 뻔하지만 매우 적절해 보였습니다.
아우슈비츠 소장이자 수백만을 죽인 장본인 루돌프는 적막한 공간에서
마치 미래의 소음을 듣기라도 한 것처럼 머뭇거리다 다시 계단을 내려갑니다.
층을 내려갈때마다 조금씩 어두워지더니 마지막엔 불이 꺼져 완전히 어두워진 아래로
그의 모습은 천천히 묻혀가고 이윽고 시작과 같은 암전과 불길한 '소리'가 들려옵니다.
루돌프의 최후를 암시하는 것도 같고,
평범한 악의 역사가 여전히 이어지고 있음을 경고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
롯시 아카를 받았는데, 이런 작품의 아카를 내준 것도 독특한데 심지어 렌티큘러?
어쨌든 좋습니다. 예, 좋아요.
++
영화 끝나고 나오면서 보니까 출입문에 '암전 장면'과 관련한 안내가 붙어 있더군요.
추천인 5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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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대충 보고 넘겼던 감독의 전작도 이번 기회로 다시 찾아보게 될 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