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커] 간략후기
익무의 은혜에 힘입어 영화 <브로커>를 개봉 전 시사회로 미리 보았습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연출하는 첫 한국영화로, 화려한 캐스팅으로 먼저 화제를 모았다가
현재는 칸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으로 더 높은 관심을 받게 된 이 영화는 그러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입니다.
외국인 감독이 연출했다는 느낌이 좀처럼 들지 않는 자연스런 연기와 섬세한 연출을 보여주는 가운데
차분하면서도 집요하게 세상의 회색지대를 그리는, 텐트폴 영화 부럽지 않은 라인업을 하고 있지만서도
우리가 그동안 봐 온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색깔을 지키고 있는 영화였습니다.
세탁소를 운영하는 상현(송강호)과 교회 보육시설에서 일하는 동수(강동원)에게는 또 다른 부업(?)이 있습니다.
교회 베이비 박스로 들어온 아기에게 좋은 부모를 찾아주고 소정의 사례비를 받는 일이 그것이죠.
돈이 오가는 일이지만, 생부모에 의해 베이비 박스에 남겨진 후 보육시설에서 '고아'로 자랄지도 모르는 아기에게
행복한 가정을 찾아준다는 선의가 바탕에 깔려 있는 일이라고 그들 스스로는 굳게 믿습니다.
어느날 또 한 아기가 그들에게 찾아오는데, 얼마 뒤 아기의 엄마인 소영(아이유)이 그들을 찾아옵니다.
상현과 동수는 '버려놓고' 다시 찾아온 소영이 당황스럽고, 소영 또한 부모도 아니면서 아기 부모를 찾아주겠다는 두 사람이 황당합니다.
상현과 동수는 이왕 이렇게 된 거 아기 우성이의 부모를 찾으러 가는 길에 함께 하자고 소영에게 제안하고,
편치 않은 조합의 그들은 그렇게 오래된 봉고차에 몸을 싣고 우성이의 부모를 찾는 여정에 오릅니다.
그리고 이들의 행적에 의심을 품은 두 형사 수진(배두나)과 이형사(이주영)이 조용히 이들의 뒤를 쫓습니다.
빛과 어둠, 흑과 백을 나누지 않고 그 사이 어딘가에 있는 세상의 회색지대를 비추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시선은
섣불리 가치 판단을 하지 않고 그저 지그시 들여다 보는 자세를 줄곧 유지해 왔습니다.
그럼으로써 현실을 비판하기보다는 그 현실에서 버티어 나가는 인간에 대한 애정을 지켜 왔죠.
그의 영화들 중 특히 사회 문제가 중심에 놓인 <아무도 모른다>나 <어느 가족>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런 그의 태도는 한국으로 와서 한국영화 <브로커>를 만들면서도 영락없이 유지된 듯 합니다.
키울 수 없는 아기를 두고 가도록 만든 '베이비 박스'를 소재로 모여든 영화 속 인물들 다수가 '가치의 회색지대'에 있습니다.
아기의 행복한 미래를 위해 아기를 떠나보내려는 엄마, 버려진 아기를 좋은 부모의 품에 데려다 주는 일을 한다면서도
그걸 또 수익화하는 인물들, 편들 수도 규탄할 수도 없이 복잡한 마음으로 그들을 쫓는 경찰들까지.
영화는 누구 하나 잘잘못을 명백히 따질 수 없는 사람들이 그저 어떻게 상황을 돌파해 나가는지를 따라갈 뿐입니다.
행여 영화가 명백히 지적하는 대상이 있다면 그렇게 거부당하고 버려지는 이들을 남기고야 마는 현실이겠지만,
영화는 그런 지적을 할 에너지를 가족 너머의 공동체를 이루며 삶을 모색하는 이들을 향한 관심에 모두 쏟아붓습니다.
낳은 게 잘못이냐, 버린 게 잘못이냐, 그렇다면 낳지 말아야 하는 것이냐 같은 논박은 영화 속 인물들이 벌이는 다툼에도 등장하지만
영화에서도 답을 내리지 않고 현실에서도 편의적으로 답을 내릴 수 없는 영화 바깥의 문제이고,
영화 안에서 이야기되는 것은 삶을 부여받은 존재들이 마땅히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향한 희망일 따름입니다.
상현과 동수, 소영과 우성이, 해진이(임승수)까지 소영과 우성이를 제외하곤 혈연으로 얽힌 게 없는 이들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에서 자주 봐 온 유사 가족의 형태를 또 한번 형성하는데, 그 원동력은 '서로에 대한 관심'입니다.
저마다 거부되고 외면당한 이력이 있는 이들에게 서로는 살면서 보기 드물게, 어쩌면 처음으로
나의 존재를 긍정하고 감사해주며 '내가 더 좋은 삶을 살기를 희망해주는' 사람이 됩니다.
입모양으로 보여주고 허공에 속삭이는 식으로 수줍게 감정을 표현하길 잘하는 고레에다 감독 영화 속 인물들처럼,
이들 또한 그런 삶의 궤적으로 인한 상처 때문인지 차마 눈앞에서 말하지 못하고 어둠과 소음에 실어 감정을 전하지만,
그들은 각자의 삶이 서로에 의해 긍정되고 있음을 깨달아가며 허공에 부유하던 발을 조심스럽게 땅에 딛고 서로의 손을 잡아갑니다.
때로 전통적인 형태의 가족 안에서, 때로 혈연이 아닌 다른 것으로 엮인 가족 안에서 가족의 의미를 질문해 온 고레에다 감독은
<브로커>에서 생에 대한 긍정이 만들어내는 또 하나의 가족을 이야기하고, 그 가족이 발휘하는 힘을 말합니다.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시작된 삶에 태어나길 잘했다는, 살기를 잘했다는 다독임
한번만 더해진다면 누구의 삶도 허투루 흘러가진 않을 것이라 이야기하면서 말이죠.
때로 씁쓸하고 이기적이기도 한 인물들이 곧잘 보였던 고레에다 감독의 영화치고는 착한 사람들로만 이루어진 편이지만,
세상에 덜컥 들어서게 된 생명의 가치를 이야기함에 있어서 이번만은 가족의 의미를 보다 긍정적으로 말하려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한국 제작사가 만들고 한국 자본이 투입된 한국영화이지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색깔은 여전합니다.
부산에서 시작해 울산, 강릉, 서울 등 우리나라의 곳곳을 누비면서도 매혹적인 풍광에만 눈독 들이지 않고
노곤함과 친근함이 어우러져 때론 팍팍하고 때론 따사로운 현실의 공기를 포착하는 연출력이나,
쟁쟁한 배우들에게 일상의 색깔을 이질감 없이 입히는 연기 디렉팅이 그렇습니다.
(특히 한국영화인 이번 작품을 보면서 고레에다 감독이 연기 디렉팅을 정말 잘 하는 감독임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덕분에 화려한 캐스팅의 배우들이 그 모든 스타의 허물을 벗고 힘겹지만 행복한 어떤 가족의 형상을 이루는 걸 보는 게 무척 즐겁습니다.
이 영화로 칸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송강호 배우는 세상 사람좋은 모습을 언제나 지키려 노력하지만
고질적인 외로움과 두려움을 조용히 감내하는 상현을 푸근하고 애잔하게 그리며 명불허전의 연기를 보여줍니다.
오랜만에 매우 일상적인 인물로 돌아온 강동원 배우 역시 무뚝뚝한 듯 하지만 사려깊은 동수의 성품을
과장 없이 그려내며 일상 연기가 무척 잘 어울리는 배우라는 걸 다시금 상기시킵니다.
애써 무심하려 하는 와중에도 자신이 쫓는 소영의 내일에 마음이 쓰이는 수진을 능청스럽게 연기하는 배두나 배우와
선배 형사의 곁을 변함없이 지키며 눈 앞의 현상에 대한 세심한 관찰력을 보여주는 이형사 역의 이주영 배우도 호흡이 좋습니다.
그 중 가장 관객을 놀라게 할 배우는 소영을 연기한 이지은 배우인데요, 자신이 낳은 아이의 행복을 기원하지만
이를 위해 나쁜 엄마가 되어야만 하는 '어린 엄마'의 힘겨운 속내를 강렬하면서도 물흐르듯 그려냅니다.
쟁쟁한 선배 배우들 속 그가 성공적으로 전하는 복잡한 내면은 곧 우리가 영화를 보며 받을 감동과 깨달음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이 밖에도 우리가 알만한 배우들이 영화 곳곳에 등장하니 이를 찾아보며 캐스팅 리스트를 완성해 보는 재미도 있겠습니다.
<브로커>에는 '버려진 아기'라는 표현과 '지켜진 아기'라는 상반된 표현이 등장합니다.
'버려진'이라는 행위는 낳은 사람에 의해, '지켜진'이라는 행위는 낳지 않은 사람에 의해 행해진다는 게 아이러니하죠.
이처럼 영화는 가족이라는 이름의 '행복할 권리'가 혈연으로 엮였다고 무조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나의 결심으로 인해 얻어갈 수 있는 것임을 상기시키며 가족 되기의 어려움 혹은 기적을 거듭 강조합니다.
세상에 의해 내쳐졌던 사람들이 알 수 없는 인연으로 엮여 결국 진한 유대로 이어지는 과정을 느리지만 강직한 템포로 그리면서,
영화는 다른 한편으로 우리들 각자에게도 존재하는 '누구나의 가족이 될 가능성'을 이야기하고 있는 듯 했습니다.
익무 덕에 좋은 영화 잘 보았습니다.
+ 영화 보고 받은 풍성한 굿즈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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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개인의 취향이니, 상대방의 취향을 존중하세요
자세한 익무 규칙은 여길 클릭하세요
빨리개봉되서 보고싶네용ㅋㅋㅋ
역시나 좋은글이로군요
넘 잘 읽었습니다 +_+
항상 좋은~와닿는 글~~
항상 잘 읽고 갑니다!
항상 감탄하고 가요...👍
요즘은 바빠서 잘 못들어오지만 조용한 팬이에요 제가ㅎㅎ 필력이 넘 좋으셔서..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에 뭉클해졌네요.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글 잘 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