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커 맨>(1973) 리뷰
난 아리 애스터 감독의 열혈한 팬이고 <유전>(2018), <미드소마>(2019) 이 두 편은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좋아한다. 두 영화 스타일이 달라 비교하기도 어렵고 나 또한 두 영화를 다른 식으로 각각 좋아한다. 단 두 작품으로. 이 정도의 단기간에. 자신의 이름을 호러 영화판에 이렇게 깊게 각인시킨 경우가 있는지 모르겠다. 참고로 <미드소마>는 감독판으로 봐야 제맛이다. 그래야 대니와 크리스티안의 감정선 아구가 딱 드러 맞고 피날레 장면에서 더 거세게 불타오르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물론 세 시간이라는 러닝타임 지옥을 경험해야 한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천국일지도.
<미드소마>가 로빈 하디 감독이 연출한 <위커 맨>(1973)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아리 애스터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위커 맨>의 분위기로 유도한 다음 방향을 홱 꺾어 무언가 다르고 충격적인 것을 보여주려 했던 것이 아리 애스터 감독의 의도다. 궁금했다. 1973년작 공포영화. 그에게 어떤 영감을 주었을까?
열두 살 어린 소녀의 실종사건을 조사하기 위해서 경찰관 하위는 스코틀랜드의 한 섬으로 파견된다. 강렬한 기독교적 믿음을 가진 하위는 이 섬 공동체 주민들의 오래된 종교적인 믿음, 문화를 목격하고 충격을 받게 된다. 그들은 들판에서 공개적으로 성관계를 하고 학교에서는 선생은 아이들에게 남근에 대해 가르치며 목이 아프면 두꺼비를 입에 넣는다. 하위는 단순 실종 사건이 아님을 의심하고 사건을 더 파고들지만 위험에 처하게 된다.
<위커 맨>은 그 자체로 재미있다. 피날레도 아주 훌륭하다. <미드소마>와 비슷한 분위기와 결을 갖추고 있지만 다른 점은 뮤지컬적인 요소가 있다는 것이다. 노래 속 가사와 멜로디가 이 마을 사람들의 보편적 윤리에 반하는 사상, 믿음, 행동, 의식 등에 대한 반감을 둔감하게 만들고 나아가 무언가 홀린 듯 넋 놓고 보게 만든다. 단체로 한 사람 바보 만드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기독교인 경찰관 하위는 강력한 종교적 믿음으로 끝까지 버티고 맞서 싸우려 발버둥 친다. 믿음 대 믿음의 대결.
그러나 애초에 하위가 이길 수 없는 싸움이다. 아무리 그가 논리적이어도 설득할 수 없다. 고립된 곳에서 수십 년간 이어지며 견고해진 믿음에 빈틈이 없다. 하위의 눈엔 정신 나간 이교도로 보이겠지만 섬마을 사람들에게는 하위가 이교도다. 그는 점점 자신도 모르게 정신적으로 지배당하고 공포에 잠식 당한다. 단호했던 하위의 표정은 굳어가지만, 마을 사람들은 피날레까지 인상 한번 찌푸리지 않는다. 오히려 웃고 있다. 자신이 광기에 미쳐있다는 것을 모르는 집단의 행복함을 지켜보는 것. 이것이 이 영화의 가장 큰 공포다.
이단이고 아님을 떠나서 인간에게는 윤리와 양심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본능적으로 옳고 그름을 파악하는 어느 정도의 판단력은 존재한다. <위커 맨>과 <미드소마>는 이러한 기준을 뒤섞어 버리고 멀쩡한 사람을 되려 네가 아주 이상한거야 라는 식으로 착각과 혼란의 환각 상태에 빠뜨리는 기술과 재미가 있다. 똑바로 정신 차리기 위해 머리를 흔들고 자신의 뺨을 때려도 정신 차려지지 않는 그 재미. 혹은 공포. 시대를 떼어놓고 보더라도 두 작품 모두 뛰어난 연출력을 보여준다. <미드소마>를 좋아한 사람이라면 <위커 맨>도 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