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링 디어] (스포일러) 정성일 평론가 라이브러리톡 정리
-경고: 각 장면에 대한 디테일한 설명과 스포일러가 있으니 영화를 관람하지 않은 분은 읽지 마십시오.
-미성년자들이 읽기엔 부적절할 수 있는 내용들이 있습니다. 해당 연령대는 읽기를 삼가십시오.
2018년 7월 19일, CGV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에서 열린 <킬링 디어> 정성일 평론가 라이브러리톡입니다.
개인사정으로 당분간 작업을 못할 것 같아서 핵심적인 내용인 킴에 대한 설명과 극의 중후반부에 대한 이야기만을 집중적으로 편집했습니다. 참고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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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크시작 1시간 28분 무렵)
1. 마틴은 스티븐이 비어있는 아버지의 자리에 오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마틴의 첫 번째 소망이었습니다. 마틴은 다짜고짜 저주를 내린 게 아닙니다. 먼저 첫 번째 소망을 스티븐에게 제안했습니다. 그리고 그걸 스티븐에게 거절당합니다. 스티븐은 마틴의 초청을 핑계를 대서 거절합니다. 그 과정에서 스티븐은 결정적인 말실수를 합니다. 우리는 이걸 무심코 지나갔지만 다시 뒤에 환기하게 됩니다. 그 말실수가 뭡니까? “나는 우리 가족을 사랑해. 내 아들과 딸을 사랑해.” 마틴은 그 가족을 치워버리면 스티븐과 어머니를 다시 연결시킬 수 있는 기회를 얻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가족을 치워버리는 방법.
2. 그러므로 스티븐의 대답을 통하여 마틴의 두 번째 소망이 생겨납니다. 마틴은 킴을 오토바이로 집에 대려다 준 다음 집을 유심히 바라봅니다. 그 장면을 잊을 수가 없죠. 킴의 “마틴이 데려다 줬어요.” 후에 컷이 딱 바뀌면, 갔을 거라고 생각했던 마틴이 집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때 마틴은 하우스(House)를 바라본 게 아닙니다. 마틴은 홈(Home)을 바라본 겁니다. 홈에 저주를 내리는 순간. 저주를 내리기 위해서는 그 대상 앞에 가야 될 겁니다. 그래서 딸을 데려다 준 다음, 그 집 앞에서 저주를 내리고 있는 것일 겁니다. 그게 저주인 걸 어떻게 확신합니까? 라고 당장 여러분들이 반문하시겠죠. 대답할 수 있습니다. 바로 다음 컷에서 밥이 못 일어납니다. 몇 쇼트를 건너가지도 않아요. 장면 딱 바뀌면 “밥 학교가야지”, “아직 안 일어났는데?” 이놈 혼내줘야지 하고 딱 올라갔는데 “다리를 못 쓰겠어요” 합니다. 말하자면 즉각적인 리액션. 그게 정말 저주 없이 갑자기 왜 일어났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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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다음 장면이 훨씬 의미심장합니다. 만약에 이 장면을 봤다면 이제 (여러분은)영화 해설에 나서셔도 됩니다. 밥은 병원에 입원했는데 다음 장면에서 마틴이 킴을 뒤에 태우고 오토바이로 달려갑니다. 갑자기 킴을 클로즈업으로 탁 들어가서 보여줍니다. 꽤 오래 보여줍니다. 그때 볼 거라곤 딱 한 가지밖에 없습니다. 킴의 글썽거리는 눈. 그러면 즉시 질문해야 되죠. 왜 글썽거리는가. 무엇이 킴을 슬프게 만들었습니까. 눈물을 흘리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죠. 더 이상한 건 그러고 킴이 도착했습니다. 어머니 안나가 화초에 물을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 너무 이상하게 찍어가지고 ‘어, 이거 뭐야?’라고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는데, 이게 바로 요르고스 란티모스가 드라마를 진행하는 방식입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화단에 물을 주고 있는 안나에게 킴이 뭐라고 합니까? 거짓말 합니다. 마틴이 데려다 줬는데 클레어네 집에서 놀다 왔어요라고 거짓말합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 진짜 이상한 이야기를 합니다. “엄마 괜찮아요?” 무슨 말입니까 이게. 지금 병원에 있는 건 밥인데 저 말은 무슨 말입니까? 저 말은 누구라도 멈춰 세우는 말이죠. 자, 이때 이 장면을 아무리 들여다봐도 답이 없습니다. 컷이 딱 바뀌면 다시 병원으로 돌아옵니다. 스티븐이 안나와 병실에 들어왔는데 밥 옆에 마틴이 있습니다. 그러더니 마틴은 금방 나가면서 위에 식당에서 기다린다고 얘기하죠. 거기서 만나서 얘기하죠. “4단계를 거칠 거예요. 사지마비, 거식증, 안구출혈, 다음 죽습니다. 차례로 죽을 거예요. 당신만 빼고.” 이 얘기를 하는 순간, 정말 소름끼치는 건 뭡니까? 이 얘기를 스티븐보다 먼저 킴에게 한 겁니다. 그러니까 눈물을 글썽일 수밖에 없는 겁니다. 왜? 자기 가족들이 차례로 죽어갈 거니까. 그런데 킴이 얼마나 사악한 인간인지를 보여줍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사악한 인간은 킴입니다. 이미 밥은 사지마비가 시작되었습니다. 스티븐은 괜찮을 것이고, 그렇다면 두 번째는 둘 중에 하나입니다. 엄마 안나이거나 자기거나. 킴의 “엄마 괜찮아요?”는 뭡니까. ‘당신이 문제가 생겨야 하는데...그렇지 않으면 내가 문제가 될 텐데...내 사지가 마비될텐데’란 질문을 안나가 모르는 상태에서 지금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묻고 들어갔습니다. 말하자면 이건 소름끼치는 대사입니다. 다시 한 번 얘기하겠습니다. 눈물을 흘렸던 장면에서 (여러분은)무조건 멈춰야 합니다. 영화를 보던 관객들이 ‘어, 이거뭐야?’ 그 다음대사 너무 이상해. 이걸 그저 무심코 지나가면 우리는 킴의 성격을 설명하지 못하게 됩니다. 얘가 뒷부분에 갑자기 사악한 인간이 된 것처럼 보입니다. 영화 뒷부분에 믿을 수 없게 사악하죠. 그러나 이 사악함은 사실 킴이라는 아이의 본성이었던 겁니다. 이런 애가 맨 마지막에 어떻게 됩니까? 빨간 케첩을 막 뿌리고 (감자튀김)을 집어먹더니 ‘풋’하고 웃듯이 마틴을 보고 식당을 나가죠. 자, 이 맞받아치는 쇼트까지를 보고나면, 우리는 이 생각을 해야 됩니다. 어쩌면 이 영화에서 신화의 이야기가 그렇다시피, 가장 가련하고 비극적인 인물은 마틴일 수 있습니다. 그걸 증명하는 게 오늘 저의 역할입니다.
4. 자, 부친을 살해하는 이야기. 아버지를 만나서 칼로 찔러 죽이고 어머니와 섹스를 했었던 외디푸스가 가장 사악한 인간이 아니라 가장 불쌍한 인간이었습니다. 가장 비극적인 인간이었죠. 이게 그리스 신화가 오늘날 우리들에게 불러일으키는 어떤 놀라운 아이러니의 감흥이지요. 가장 사악한 인간이 알고 보면 가장 가련한 인간이라는 것. 이걸 여러분들이 함께 껴안고 보아주시기 바랍니다. 말하자면 이미 게임이, 아까 이야기했었던 고전적인 게임이 이제 시작된 겁니다......(중략).......마틴이 스티븐에게 이야기합니다. “제 가족을 죽였을 때 선생님 가족도 죽여야 균형이 맞겠죠.” 자 여기에서 최고 바보는, (물론 여기 그런 분은 안계시겠지만) ‘그런데 마틴에게는 그런 힘이 어떻게 생긴 거야?’ 라고 질문하면 그분과는 제가 더 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 그건 요르고스 란티모스에게 가서 물어보든지....(중략)....이 말을 했었을 때 여러분이 <킬링 디어>를 향해서 즉각적으로 물어봐야 되는 건, 마틴의 진정한 목표는 무엇일까? 입니다. 균형을 맞춘다고? 그런데 지금 마틴은 절대적인 힘을 부여받았습니다. 그러면 그냥 한 명 죽이면 되지, 왜 이렇게 복잡한 게임을 하는 겁니까? 지금 벌어지고 있는 게임은 외피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리스 신화에서 이 게임이 우리를 흥미롭게 만드는 건 뭡니까? 그 게임의 내용이 아닙니다. 그 게임의 진정한 목표에 진실이 있는 겁니다. 말하자면 진실을 통해서 그리스 비극들은 철학과 만날 수 있었던 겁니다. 지금 마틴이 하려던 것은 이 과정에서 스티븐의 가족이 내부적으로 붕괴하는 것일 겁니다. 붕괴의 과정, 그 과정에서 의심, 분노, 무엇보다도 살아남으려는 과정에서 누군가 죽기를 바래야 하는 그 마음, 혹은 선택의 결정. 이 영화의 후반부는 과정의 영화로 옮겨갑니다.
5. 이 영화에서 우리가 보는 건, 누가 죽느냐? Who? 이런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왜? 요르고스 란티모스는 의도적으로 어떤 인물도 정이 안 붙게 찍어놨습니다. 그 까닭은 영화에서 과정을 보라는 뜻입니다. 밥에게 거식증이 시작되었을 때, 킴은 마틴과 함께 있었습니다. 더 정확하게는 킴은 소파에서 마틴에게 안겨있었습니다. 그런 다음 마틴 앞에서 킴은 옷을 벗은 다음, 안나가 침대에서 했던 것과 똑같은 제스쳐를 취합니다. 이때 우리는 둘 중에서 혼란스럽게 됩니다. 가장 외설적 버전과 가장 상식적 버전에서 망설이게 됩니다. 똑같은 자세를 취했을 때에 이건 킴이 자기 부모가 섹스하는 것을 봤다는 뜻입니다. 그렇지 않고서 자기 어머니의 흉내를 어떻게 내겠습니까?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광경 중에 하나가 뭡니까? 자기 부모가 섹스하는 걸 보는 겁니다. 어떤 경우에도 그건 피하고 싶은 광경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꾸 상식적 버전으로 도망치고 싶어집니다. ‘틀림 없이 킴도 헨리 푸셀리(Henry Fuseli)의 그림(’악몽’ The Nightmare)을 봤을 거야. 그래서 그 그림과 똑같은 제스쳐를 취할 거야.’ 요르고스 란티모스는 둘 중 어느 쪽인지 불투명하게 남겨뒀습니다. ‘당신이 외설적 상상을 한다면 킴이 부모가 섹스한 걸 본 것으로 쫓아갈 것이고, 당신이 상식적 버전을 선호한다면 헨리 푸셀리의 그림을 본 것으로 쫓아갈 거야.’ 로 우리에게 양쪽을 다 열어놓습니다.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여러분이 어느 쪽을 쫓아갈지는 각자의 선택입니다. 그건 비평이 요구할 권리가 없습니다. 다시 한 번 이런 대목에서 비평가로서 요르고스 란티모스가 ‘얄밉다’(토크에서 여러 번 반복)는 말을 하고 싶어집니다. 얄밉도록 현명하게 만들어놓았죠. 만일 레퍼런스가 없이 어떤 특이한 제스쳐를 취했다고 합시다. 딱 하나의 경우밖에 없다면(부모의 섹스 목격) 여러분들 이 영화가 어떻겠습니까? 즉각적으로 역겹다고 이 영화와 관계를 끝낼 수 있는 길, 막다른 골목에 갈 수 밖에 없는 겁니다. 그런데 란티모스는 레퍼런스를 밀어 넣으면서 ‘선택 해봐. 너의 외설적 상상과 상식적 상상을.’ 이건 굉장히 지적이고 교묘하고 얄미운 선택이죠. 이 씬에서 킴은 마틴과 섹스하기 위해서 거의 안간힘을 씁니다. 이걸 이해하기 위해서 절대적으로 우리 뭘 이해해야 합니까? 킴의 눈물, 엄마 안나에게 했었던 질문.....말하자면 킴은 마틴과 섹스하고 싶은 게 아닙니다. 킴은 마틴과 섹스를 해서라도 죽음을 피하고 싶은 겁니다. 그래서 두 번째 선택을 엄마 안나에게 떠넘기고, 이 저주를 집행하고 있는 건 마틴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에 킴은 이 자리에서 그걸 피하고 싶어서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겁니다. 이때 마틴이 질문합니다. “너 생리중이니?” 아니라고 대답하자 마틴은 섹스 할 생각이 없다는 듯이 그냥 가버립니다. 자리를 떠날 때 마틴의 이 질문역시 양쪽을 다 열어놓습니다. 말하자면 대답으로서 ‘아니’ 라고 대답했었을 때 마틴은 ‘네가 임신하길 원치 않아. 그러니 이 자리를 떠나고 싶어’ 인지 ‘너 지금 심리적으로 이상한 상태니?’ 인지 애매하게 만들어놓고 그냥 자리를 떠나갑니다. 다시 한번 얘기합니다. 이 영화는 심리상태를 불투명하게 남겨놓고 양쪽의 선택을 다 열어놨기 때문에, 이 영화에서 한 가지 길을 선택한 사람들은 자신의 믿음을 추종하도록 만들어놨습니다......(중략)......저는 이러한 방식을 영화학교에서 교재로 쓰고 싶을 정도입니다. 어쩌면 이것을 너무나 교묘하게 잘 쓰고 있어서 그해 칸 영화제(2017년)에서 박찬욱 감독을 포함하여 심사위원들이 각본상을 줬을지 모릅니다. 이 영화는 그해 칸 영화제에서 각본상을 받았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그 상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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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병원 앞에 앉아 있는 스티븐에게 안나가 질문합니다. “마틴을 언제부터 만났어?” 이 때 이 질문은 명백하게 느껴볼 수 있습니다. 안나는 지금 스티븐이 마틴과 동성애관계냐고 물어보고 있는 겁니다. 스티븐은 거기에서 이상하게도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습니다. 그런 다음 수술하기 전에 술을 마셨냐고 물어봅니다. 이건 스티븐과 안나의 이 상황에 대한 태도의 차이입니다. 스티븐은 마틴네 집을 찾아가 난동을 부리지만, 안나가 그렇게 물어보는 건 말하자면 그녀는 이 저주에 대해서 ‘우리 지금 벌 받고 있는 거야?’라는 태도가 있습니다. 똑같은 저주에 대해서 스티븐과 안나는 다른 방식으로 이 저주를 수용하고 있습니다. 이 수용의 태도의 차이를 생각해봐야 될 겁니다. 마틴의 이 저주, 혹은 기적을 행하는 것이 사실이라는 걸 보여주는 장면은....심지어 우리도 믿기 힘들죠. 근데 이게 사실이라는 건 다음 장면에서 누워있는 킴에게 온 마틴의 전화로 알 수 있습니다. 누워있는 킴에게 전화로 창문밖에 있으니 창가로 와서 날 영접하라는 듯이, 나를 영접하는 동안에 니가 걷게 해주겠다고 허락해주는 듯이, 창문가로 오라고 얘기합니다. 물론 그 얘기는 듣지 못하지만 킴의 대답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합니까? 놀랍게도 킴은 일어나서 창가로 걸어갑니다. 자기도 걷고 싶어 한 밥은 침대에서 추락하듯이 쓰러졌는데 킴은 걸어가서 어디에 있냐고 두리번거립니다. 그러니 이걸 본 우리도 이제는 안 믿을 도리가 없습니다. 요르고스 란티모스는 우리를 맨 마지막에 믿게 합니다. 영화에는 이런 것에 대해서 믿게 만들 때, 말하자면 서로 다른 방식의 차례를 밟아 나갑니다. 보는 쪽을 먼저 믿게 한 다음, 영화 속 등장인물을 믿게 하거나, 등장인물을 믿게 한 다음 맨 마지막에 보는 쪽을 믿게 만들기도 합니다. 혹은 다 함께 믿게 만들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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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그 광경을 보고 난 다음에야 안나는 마틴을 찾아갑니다. 마틴은 안나의 방문을 허락합니다. 마틴은 스티븐의 방문을 거절했습니다. 하지만 안나의 방문은 허락합니다. 자, 이 장면에서 주의 깊은 관객이라면 되게 이상한 방식으로 진행된다는 걸 느꼈을 겁니다. 왜 이상합니까? 지금 시간은 아침 8시 10분. 마틴의 어머니는 일을 나가는 사람이 아닙니다(실직자) 그런데 낯선 사람, 처음 보는 (나이 든)여자가 와서, 다른 사람도 아닌 ‘니콜 키드먼’이 와서(일동 웃음) 16살 소년을 만나고 있는데, 마틴의 어머니는 어디로 간 겁니까? 스파게티를 다 먹으며 얘기를 할 때까지 우리는 그 모습을 보지 못합니다. 자, 안나는 매우 이기적으로 질문합니다. 킴과 또 다른 방식으로. 이 장면은 우리를 다시 한 번 얼어붙게 만들죠. “그 사람이 잘못을 저질렀는데 왜 내가 대가를 치러야 돼?” 이게 남편을 전제로 한 얘기입니다. 자 이때 마틴은 스파게티에 대한 장황한 설명을 늘어놓고(마치 쿠엔틴 타란티노처럼) 맨 마지막에 멈칫하게 만듭니다. 마틴의 마지막 대사가 뭡니까? “그러니까 이게 정의에 가까워요.” 여러분들, 적어도 이 자리에 앉아계신 분들이라면 이 대사 하나만 갖고 토론해보고 싶어집니다. 왜? 이때까지 이 저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했습니까? 우리는 지금 여기까지 쫓아오면서 마틴이 복수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정의를 실현한다고 말했습니다. 복수는 정념의 세계이지만, 정의는 도덕의 세계입니다. 복수로 쫓아왔던 우리들에게 갑자기 정의로 맞받아 쳤습니다. 정념의 세계와 도덕의 세계는 완전히 다릅니다. 더 중요한 건, 그리스 신화로 쫓아왔던 이 얘기 앞에서 이건 정의의 문제라고 얘기 할 때, ‘정의’는 그리스 신화의 개념이 아닙니다. 정의가 하나의 개념으로 등장한 건 근대 시민사회 이후입니다. justice라는 건 근대적인 개념입니다. 말하자면 이 대답은 우리들에게 요르고스 란티모스가 당신들과 토론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뜻입니다. 이건 단지 복수얘기가 아니라 ‘나는 지금 신화와 시민사회 사이에서 이 이야기의 긴장을 토론해보고 싶어.’ 이 간극은 얼마나 멀리 있는 겁니까. 이 장면은 저는 굉장하다고 생각합니다. 갑자기 여기에서 이 영화는 우리의 질문을 다른 차원으로 이동시킵니다. 대답을 듣자마자 우리는 즉각적으로 마틴에게 반문해보고 싶어집니다. ‘마틴은 지금 어떤 정의를 실현하고 싶어하는 것인가?’ 두 번째 질문이 더 중요합니다. ‘이것이 정의인가?’
8. 요르고스 란티모스는 영화를 만들면서 기괴한 이야기, 비틀린 이야기, 깜짝 놀라게 만드는 이야기에 멈추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그걸 통과해 들어가서 우리에게 정면으로 근본적인 질문을 하고 싶어 합니다.......(중략)......이 영화는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차원으로 멈추지 않고, 이 영화에 대해서 진정으로 ‘싫어’라고 말하려면, ‘감독의 정의의 개념은 이러이러해서 틀렸기 때문에 이 영화에 동의할 수 없어’ 까지 밀고 나아가는 사람만이 그 말을 할 자격이 생기는 겁니다. 그런 순간이 되게 힘들죠. 영화자체를 훨씬 뛰어넘는 순간이니깐. 그런 다음 안나는 진실이 알고 싶어서 메튜에게 자위를 해주면서까지 듣고 싶어 합니다. 우리는 스티븐에게 똑같이 이 말을 돌려줄 수 있습니다. 정식화 시킬 수 있습니다. 안나는 진실을 알고 싶어서, *괄호열고 매튜에게 자위를 시켜줬습니다. 괄호 닫고. 스티븐은 진실이 듣고 싶어서, 괄호 열고 밥에게 자위에 관한 고백을 했습니다. 괄호 닫고. 진실을 알고 싶다는 것. 이때 요점은 뭡니까? 이 세계의 우연의 질서가 지금 엉망진창이 되어 가고 있다는 뜻입니다. 지금 이야기가 카오스 안으로 들어서고 있는 중입니다.
*작성자가 잘못 타이핑한 것이 아니라 정성일 평론가가 괄호라고 언급한 걸 있는 그대로 표현했습니다.
9. 킴과 밥이 그런 다음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이 영화의 진정한 클라이막스. 이제 집을 끝장낼 차례입니다. 스티븐은 여기서 마틴을 덧셈처럼 포함시키기 위해 붙잡아 둡니다. 마틴은 세 번째로 같은 말을 반복합니다. “깨끗하게 다시 시작하는 거죠.” 스티븐이 진정으로 다시 시작하는 것은, 이제 여러분들은 받아들일 수 있을 겁니다. 지금 이 가족을 버리고 마틴, 마틴의 어머니와 다시 시작하는 겁니다. 하나의 예. 스티븐의 팔을 물어뜯은 다음 이야기하죠. “둘 중에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하냐구요? 사과를 할까요? 상처를 만져줄까요?” 이게 상식적인 대답이죠. 그런데 마틴은 “아니요, 진정한 대답은 그게 아니죠.” 하고 얼터너티브한 대답을 제시합니다. 그건 자기 팔을 물어뜯은 거죠. 그래서 균형을 맞춰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제스쳐를 보고 나면 우린 즉각적으로 반문하게 됩니다. 이 영화는 본 사람이 계속 반문하게 만들어놨습니다.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영화를 보면서 ‘어 그래 그래’하고 보는 사람은 진짜 이상한 사람입니다. 혹은 란티모스의 연출부거나. 이 장면을 보고 나면 이렇게 반문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저쪽의 아버지가 죽었으니까 이쪽에선 스티븐이 죽는 게 진정한 균형 아닙니까? 너무 간단한 셈입니다. 너무 간단한 셈을 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마틴은 정반대의 셈을 합니다. 스티븐만 남는 게임을 합니다. “셋이 다 죽을 수 있어요. 당신은 빼고.” 이것이 균형인가? 이때 우리는 답을 찾아야 합니다. 마틴의 계산, 마틴의 속셈을 읽어야 합니다. 다시한번 얘기하지만 마틴의 진정한 계산은 가족을 파괴하는 겁니다. 그 말뜻은 뭡니까? 마틴의 아버지가 죽었을 때, 그 집은 파괴된 겁니다. 그 집이 파괴되었기 때문에 이 집도 파괴되어야만 균형이 맞는 겁니다. 아버지가 죽었으니까 스티븐이 죽어야 한다는 우리는 셈을 잘못한 겁니다. 저쪽에서 아버지가 죽었을 때 이 얘기는 집이 다 부셔졌다는 얘기고 그러므로 균형을 맞추려면 이 집을 다 부셔야 된다는 얘기를 하는 중입니다.
10. 이제 스티븐의 가족 사이에서 필사적인 생존의 전술이 각자에게 벌어집니다. 요르고스 란티모스가 <킬링 디어>를 찍은 건 바로 이 30분을 찍고 싶어서일 겁니다. 우리는 이 장면들의 외설적 버전을 모두 읽어내야 됩니다. 그럴 때에만 이 30분이 굉장하다는 생각을 할 겁니다. 킴과 밥이 같이 있는 방안으로 옮겨갑니다. 킴이 어떻게 합니까? 담배피고 있습니다. 킴은 담배피던 아이가 아닙니다. 이 제스쳐는 정확히 뭡니까? 이 영화에서 담배피던 사람은 딱 한사람밖에 없습니다. *마틴. 담배를 핀다는 것, 마틴과 나는 아주 친하다는 걸 지금 밥 앞에서 퍼포먼스 하고 있습니다. 그 까닭은 뭡니까? ‘넌 죽지만, 난 마틴이 구해줄거야. 왜? 마틴이랑 친하니까. 얼마만큼 친하냐구? 서로 맞담배를 피는 사이지.’(객석 웃음).......라고 제스쳐를 취하고 있습니다. 그런 다음 심지어 대놓고 얘기합니다. “난 마틴과 살거야.” 이 행간은 뭔가요? ‘난, 마틴이 구해줄거야’라는 말을 자기 마음속에 담으면 되지, 밥을 괴롭히듯이 얘기하고 있습니다. 요점은 밥을 괴롭히는 겁니다. 우리는 어떤 말을 상대방에게 상처 입히기 위해서 할 때 그 말을 왜합니까? 상대가 부셔지기를 기대하는 겁니다. 이 게임은 누군가 한 명이 죽으면 끝납니다. 자기 동생이 죽기를 지금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자 밥이 맞받아칩니다. “다음달에 피아노가 도착한대.” 이 말은 뭡니까? 나는 다음 달까지 살 거란 뜻입니다. ‘아빠 엄마는 내가 다음 달까지 살 거란 걸 알고 있으니까 피아노를 주문했고 나는 그때까지 살 거야’ 라는 말 뒤에 이어지는 행간은 뭡니까? ‘그러니까 네(킴)가 먼저 죽을 거야.’ 지금 남매가 그렇게 무시무시한 대사를 나누고 있습니다. 서로 먼저 죽으라고 부추기고 있습니다. 참다못한 킴이 이야기합니다. “며칠 사이에 MP3를 두 개나 잃어 버렸어. 네가 죽거든 너의 MP3를 나에게 줬으면 좋겠어. 플리즈, 플리즈, 플리즈”...세 번이나 얘기합니다. <킬링 디어>는 이상한 방식으로 대사를 낭송합니다. 의도적으로 그리스 희곡을 낭송하듯이 대사를 읊조립니다. 그러니까 대사를 퍼포먼스하지 않고 대사를 낭송하는 방식으로 연기하고 있습니다. 그걸 보여주는 대표적인 장면이 이 대사. 여러분이 아마도 연극무대에서 이런 방식은 많이 접하셨을 겁니다.
*작성자 주 : 저주가 계속 진행되자 스티븐과 안나도 안 피던 담배를 병원 밖에서 피움.
11. 그러자 밥은 질세라 가위를 꺼내서 자기 손으로, 그렇게 안하겠다고 버티던 애가 머리를 막 자른 다음 벌레처럼 기어서 아버지한테 가서,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며 자기를 반성하면서, 착한 아이로 보이기 위해서, 그래서 아버지에게 자기를 선택하지 말라고 하소연 하듯이. 심지어 얘기합니다. “저 화초에 물도 주겠어요.” 다리를 못 쓰는데 무슨 재주로....그런데 물을 주겠다고 약속합니다. 더군다나 안과의사 그만두고 심장을 다루는 외과 의사가 되겠다고 합니다. 그게 뭡니까. 어머니의 길을 버리고(엄마는 안과의사였습니다) 아버지의 길을 택하겠다고 하는 겁니다. 그러니 ‘아버지, 누나나 엄마를 선택하세요. 난 당신과 함께 살 겁니다.’ 라고 아버지에게 매달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아버지 스티븐은 얼마나 냉혹한 태도를 취합니까. 학교에 가서 두 아이가 어떤 아이냐고 물어봅니다. 그리고 두 아이의 행실이 어떠냐고 물어봅니다. 살아남은 아이와 살 때 행실이 착한 아이와 살고 싶은 겁니다. 심지어 선생님에게 물어봅니다. “둘 중 하나를 택하면 누구를 택해야 될까요?” 이건 아버지로서의 질문이 아닐 겁니다......(중략).......이 대사는 얼마나 소름끼치는 대사입니까. 그러니까 이미 버릴 마음의 준비를 한 겁니다. 어느 날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결정한 게 아니라 이미 학교에 갔었을 때 결정한 겁니다.
12. 안나는 마틴 앞에 가서 엎드려 발에 키스합니다. 이런 제스쳐는 인류역사상 한가지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에게. 이 제스쳐는 뭡니까? ‘나의 죄를 사하소서.’ 안나는 남편에게 명백히 뭐라고 했습니까? 우리가 지금 벌을 받고 있는 거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지금 벌을 내리고 있는 이 자 앞에 가서 죄를 사해달라고 하소연하고 있는 겁니다. 하지만 마틴은 예수가 아닙니다. 마틴에게는 저주를 내리는 능력은 있지만 그걸 풀어줄 능력이 없다는 걸 안나는 미처 모르고 있는 겁니다. 키스해도 아무 문제도 해결되지 않는 걸 알자 그때 깨달았을 겁니다. 그러자 필사적인 안나의 노력은 어떻게 이어집니까? 그날 밤 안나는 남편 스티븐 위에 올라가 적극적으로 섹스하려 합니다. 이 섹스는 안나가 스티븐에게 살려달라고 하소연하는 겁니다. 안나는 어떻게 섹스한 사람입니까? 거만하게 자리에 누워서 남편이 자기에게 봉사하기를 요구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그 섹스를 이미 침대에서 보았습니다. 그 안나가 남편의 위에 적극적으로 올라타서 섹스를 할 때 우리는 스티븐의 표정을 봤습니다. 안나의 마음을 읽은 겁니다. 스티븐은 전혀 즐겁지 않습니다. 왜? 지금 안나의 행위가 뭘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인지 알고 있는 겁니다. 그날 낮에 스티븐은 두 아이 중에 누구를 선택할지를 학교에 가서 물어보고 온 사람입니다. 심지어 안나가 얘기 합니다. “가장 논리적인 선택은 한 명을 죽이는 거야. 다시 한명 낳으면 되잖아? 안되면 시험관 아이라도 낳으면 되잖아.” 이 말의 핵심은 뭡니까. 단순히 냉혹한 얘기가 아니라 훨씬 그 이상 차원의 얘길 하는 겁니다. ‘누굴 죽여도 괜찮아. 나만 아니면 돼.’ 여기에서 뺄셈은 누구입니까. 안나입니다. 왜? 킴과 밥이 애를 낳을게 아니기 때문에. 애를 낳는 건 자기니까, 어떻게 계산해도 이 선택을 하면 자기는 무조건 뺄셈이니까. 이 말은 무시무시한 얘기입니다. ‘어머니’가 하는 얘기입니다.
13. 세 사람을 쏘아 죽이는 게 이 영화의 가장 잔인한 순간이 아니라 이 30분이야말로 정말 밑바닥까지 가보는 겁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제일 끔찍한 건 킴입니다. 그리고 킴이 가장 끔찍한 인간이라는 걸 보여주는 건, 요르고스 란티모스가 뛰어나게 편집했습니다. 이 편집장면이 굉장합니다. 부모 앞에 앉아서 킴이 뭐라고 합니까? “저는 동생을 위해 희생할 준비가 되었어요. 부모님을 위해서 뭐든 할 수 있어요. 제가 희생할 수 있어요.” 라고 얘기를 합니다. 킴이 마음을 바꾼 거야? 라고 생각하면 커트가 딱 바뀌고 킴이 바닥을 기어서 집을 막 떠나고 있습니다. 맨 처음에는 이 얘기를 한 다음에 집을 떠난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 장면은 *플래시 포워드였습니다. 이제까지 한 번도 쓰지 않은 방식으로 앞뒤를 뒤집어서 편집을 한 겁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바꾼 게 아니라 이것의 올바른 순서는 먼저 도망친 겁니다. 여기서 도망치면 저주를 벗어날 수 있을거다는 생각. 막 도망쳤던 킴을 사실상 아버지와 어머니가 붙잡은 겁니다. 찾아온 게 아니라 붙잡아 온 겁니다. 그러자 부모님 앞에서 자기가 착한 아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내가 희생하겠다라는 걸 막 과장하듯이 지금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 뒤바뀐 순서. 그러니까 플래시 포워드는 이 영화에서 가장 잔인한 편집 중에 하나입니다. 그리고나서 킴은 안나에게 말합니다. “병원에서 버릇없이 군거 미안해요. 진심이 아니었어요.” 라고 얘기하는데 이미 도망치려고 했던 킴을 본 다음입니다. 안나는 거짓말이란 걸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말을 더 들을 생각도 없이 그냥 가만히 있으라고 얘기합니다. 그러자 킴이 덧붙여 한 얘기가 뭡니까? “그런데 엄마는 왜 아직도 괜찮아요?” 이 무시무시한 말. 듣자마자 안나가 바로 뺨을 때리죠. 더 이상 여기엔 엄마와 딸의 문제가 아닙니다. 서바이벌의 문제입니다. 어머니였다면 그 말을 들었을 때 얘가 가련해보였겠죠. 살고 싶어 안간힘을 쓰는 게. 그러나 이 말의 행간, ‘나는 이렇게 죽어가고 있는데 당신은 왜 안죽어요? 진짜 이상해.’ 라는 반문에 대해, 살고 싶은 욕망에 안나가 와서 뺨을 때립니다.
*작성자 주
flash-forward : 이야기 도중에 미래의 한 장면을 삽입하는 표현 기법이나 그 장면
14. 스티븐은 그날 밤 마지막 결정을 합니다. 그때 안나는 마지막 순간에 얼마나 애처롭게 굽니까? 그 애처로운 말이 뭡니까? “당신이 좋아하는 검은 드레스를 입겠어요.” 이건 살려달라는 안간힘이죠. ‘나만은 쏘지 말아주세요. 나는 당신이랑 계속 섹스할 수 있어. 나 당신을 계속 즐겁게 해줄 수 있는 사람이야. 그러니 밥과 킴 둘 중에 하나를 죽여줘.’ 라는 제스쳐입니다. 그리고 내려가서 마지막 결정을 내리게 됩니다. 결국 밥이 선택됩니다. 이 장면에서 우리는 세 가지 질문을 하게 됩니다. 왜 다함께 고통을 나누면서 죽을 생각을 하지 않는가? 두 번째 반문, 왜 스티븐은 여기서 계산되지 않은 한 가지 선택을 하지 않는가? 왜 끝까지 단 한순간도 자살할 생각을 하지 않는가? 스티븐이 누군가를 죽이면 끝날 때, 자기를 죽이면 끝납니다. 그러나 아내, 딸, 아들, 셋 중에 하나를 죽인다는 생각만 계속했지, 단 1초도 자기가 죽는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세 번째, 누군가를 죽이고 난 다음에는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에 대해서 단 한 번도 서로 얘기를 나눈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는 바로 죽여버립니다. 혹은 밥이 ‘선택’됩니다. 우리가 본 이 장면엔 적어도 어떤 정의도 없고, 어떤 선택도, 어떤 희생도 없습니다.
15. 맨 마지막 장면. 레스토랑에 스티븐, 안나, 킴이 식사를 하고 있습니다. 이 장면에 세 사람이 함께 식사를 하는 이유는 단 한가지입니다. 그건 자신들을 마틴에게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세 사람이 같이 올 이유가 없죠. 말하자면 자신들을 전시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 다음 이 세 명이 떠나는 자세, 그리고 킴의 태도에 대해선 이미 설명했습니다. 여기에서 저의 결론을 얘기하겠습니다. 요점은 무엇인가? 이 장면에서 이 말을 잘 음미해주십시오. 이들이 맨 마지막에 선택한 것은 하나를 버려서, ‘하나’를 선택한 겁니다. 이건 합리주의도 아니고, 공리주의도 아닙니다. 약간 더 밀고 나아가고 싶습니다. 이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아니지만 마지막 장면을 보았을 때 제가 문득 떠올린 건 철학자 알랭 바디우가 썼던 표현입니다. ‘뺄셈(빼기)의 폭력’ 이걸 얘기하면서 바디우가 그런 말을 했습니다. '바로 그게 미국식 민주주의다.' 지금 이건 민주주의를 공격하고 있는 겁니다. 민주주의란 하나를 빼서 하나를 지키는 겁니다. 이때 킴이 비웃듯이 걸어 나갈 때에 이 제스쳐는 정확하게 뭡니까? 마틴의 복수는 실패한 겁니다. 이 가족은 붕괴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를 버려서 ‘하나’를 구했습니다. 요르고스 란티모스는 여기에서 우리에게 소름끼치게 보여주는 게 있습니다. 이게 미국인들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라는 겁니다. 바디우가 얘기했었던 미국식 민주주의. 약간 과장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겠죠? 아뇨, 답변할 수 있습니다. 이 영화 (사실상) 어디에서 시작했습니까? 아메리칸 라이프의 레스토랑. 어디서 끝났습니까? 아메리칸 라이프의 레스토랑. 이때 감독은 유럽에서는 <송곳니>를 찍을 수 있었고 <더 랍스터>를 찍을 수 있었는데 미국에선 그게 왜 안될까요. 왜 <킬링 디어>가 될까요? 여긴 미국이니까. 이 영화는 고대 그리스 비극이 왜 미국에서는 성립하지 않는지, 아니 성립하는 게 불가능한지를 찍고 있습니다. 그 성립의 불가능성은 미국인들의 해결방식 때문에.....라고 지금 <킬링 디어>는 도널드 트럼프 시대의 세계 정치를 공격하면서 밀고 나아가고 있습니다.
16. 저는 이 영화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야심적이고, 스스로 현재의 그리스 정치속에서 좌파라고 이야기하는, 그리고 반 아메리카니즘을 종종 이야기하는 요르고스 란티모스가 폭탄, 화염병을 던지는 기분으로 미국에 가서 이 영화를 찍었다는 생각을 갖게 만듭니다. 어쩌면 전적인 우연인지, 캐스팅의 묘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저는 <킬링 디어>의 캐스팅이 참 기묘하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영화에서 스티븐 역할을 맡은 콜린 파렐, 알다시피 아일랜드 출생입니다. 아내인 니콜 키드만, 호주사람입니다. 마틴역으로 나온 배리 케오간(물론 여러분들 <덩케르크>에서 보셨죠), 아일랜드 사람입니다. 딸 역할로 나온 래피 캐시디, 영국배우입니다. 미국배우는 딱 한사람, 밥 역할로 나온 서니 설직입니다.(일동 웃음) 이 영화에서 죽는 건 아들, 밥만이 총에 맞아 죽습니다. 그저 저는 이게 우연의 일치이길 바랄 뿐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캐스팅했습니다.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다음 영화가 빠르면 올해 베니스에 올지도 모릅니다. 점점 더 제작 속도가 빨라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단지 제작 속도만 빨라지는 게 아니라 점점 더 무서워질 겁니다. 저는 이 사람의 다음영화가 궁금합니다. 감사합니다.
-END
텐더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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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리 감사합니다! 덕분에 잘 읽었습니다 : )
상세한 정리 감사합니다ㅠㅠ 읽어내지 못해서 의아하게 여겼던 행간들을 덕분에 속시원하게 이해했어요ㅠ 감사합니다!
정리가 안 된 것들이 정리가 좀 되네요. 감사합니다.
정리 감사합니다.
정리 감사합니다.
와... 대박이네요. 정리 감사합니다! 잘 읽었어요.
우와 이런 해석이라니 무한감동입니다.
정리본 공유해주신 텐더로인님에게도 감사드립니다!!
저도 마지막에 마틴이 진걸로 봤어요.
와 진짜 너무 감사하게 잘 봤습니다. 킬디 5차를 찍었음에도 더 보고 싶어지는 작품이네요. 정성일 평론가님 말씀 너무 담백하게 잘 하시는 거 같아요. 정리 정말 감사합니다!!
고생하셨네요^^
정리 감사합니다
대박 정리 감사합니다 아는만큼 보인다더니 읽어보니 너무 이상했던 부분부분은 약간 이해할 것 같네요
서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장면이 이 영화의 재미(?)였던 것 같습니다. 미국식 민주주의에대한 의견은 매우 흥미롭네요.
마틴과 스티븐의 관계를 안나가 오해했듯이 에로틱하게 풀어냈던 부분도 흥미로웠습니다.
아 그리고 알리시아 실버스톤을 오랜만에 보니 반갑더군요... 세월의 흐름을 느꼈지만......
정성일 평론가님 해설 정말 재미있고 핵심을 찌르네요. 정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 엔딩 레스토랑 해석은 굉장히 의외의 해석이네요....전혀 그렇게 느끼지 못했는데 이런식의 해석도 가능한건지,,정성일 평론가님의 주관적인 평인지,,아직도 모호하긴 한데,,설득당할수 있는 해석,,,정리 감사합니다,,영화를 보는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뒤늦게 보게 되었는데
정리글 감사합니다.
이 글 보니 다시 보고 싶어지네요.
와 대단한 정리네요 감탄하고 갑니다!
와 정리너무 잘되어있네요.. 감사합니다! 잘읽었네요~
와! 자세하게 정리해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보고 온 뒤에 다시 읽으러 오겠습니다~
뒤늦게 영화를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잘 읽겠습니다.
초중반, 엔딩 부분에서 생각 못한 부분들을 많이 짚어주시네요. 킴은 흑화한게 아니다.. 정리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