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얼빈 (2024) 범작. 스포일러 있음.
나는 20대의 안중근의사를 보고 싶다.
그가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했을 때 고작 29세였다. 젊은이였다. 현빈같은 40대가 아니라.
원숙하고 세상 이치에 밝은 그런 사람이 아니라,
순결한 젊음과 열정으로 가득한 젊은이를 보고 싶다는 말이다.
무슨 득도한 현자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현빈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영웅의 스테레오타입이다.
그런 스테레오타입 영웅 말고, 오늘날 젊은이를 투영한 그런 젊은 안중근을 보고 싶다.
그리고, 안중근은 그냥 독립운동가가 아니라 사상가다.
동양영구평화론이라는 사상에 입각해서 일본제국주의가 동양영구평화론에 저해가 되어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했다고
알고 있다.
그것이 이 영화에서 살지 않았다.
왜 안중근이 일본군 포로들을 놓아주었던가? 따스한 마음의 소유자라서? 아니다. 나는 이것이 안중근의사의
사상과 관련이 있다고 본다. 이 영화에서는, 안중근의사를 "따뜻한 마음을 가진 고결한 사람"같은 식으로
단순처리해 버렸다. 안중근의사가 순국할 때까지 관심을 쏟은 것이 자신의 사상을 남기는 것이었다. 나는 이 영화에서 사상가 안중근을 보고 싶었다. 이 영화는 가장 중요한 점에서 공허한 것 같다.
결론 내리면, 이 영화에서 그린 안중근은 깊이가 전혀 없으며 실제 안중근과도 별로 닮지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안중근의사가 하얼빈으로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러 가는 과정이 굉장히 공허하다.
재미없고 새로울 것 없는 클리셰로 이 과정들을 채워넣었다.
마적떼는 왜 나오고 러시안룰렛은 무엇인가? 영화가 방방 뜬다. 무엇으로 채워넣어야 할 지 잘 모르겠어서 이것저것 쑤셔넣은 것이 티가 난다. 영화가 되게 재미 없다.
안중근의사가 살려준 일본군장교가, 자기보다 고결한 안중근의사에게 열등감을 느끼는 빌런이 되어서
안중근의사를 추적한다는 설정도 좀 빈티난다. 안중근의사를 돋보이게 하는 메인 빌런을 꼭 넣어야 했을까?
국뽕에 가득찬 대사도 닭살 돋는다.
이토 히로부미: 이 나라는 이상하단 말이야. 어리석은 왕과 무능한 신하들이 있는데도, 국난을 겪으면 민중들이 굉장한 힘을 발휘해. 임진왜란 때도 민중이 나서서 일본이 졌단 말이야. 나는 그것이 꺼림칙해.
일본인 비서: 하지만 오늘날에는 이순신이 조선에 없지 않습니까? 우리 일본을 막을 영웅은 조선에 지금 없습니다.
감독: (안중근이 여기 있다!)
요즘엔 이런 대사 듣고 관객들이 울컥하지 않는다.
화면 때깔 하나 빼고 볼 것이 없다. 영화가 좀 방방 뜬다.
그리고, 영화음악도 좀 진부하다. 오케스트라가 아주 진부한 영웅적인 음악을 연주한다. 짠~~짠~~짠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이래서야 너무 영화가 진부해 보인다.
가령 안중근일행이 눈보라치는 계곡을 달릴 때, 현대음악을 배경음악으로 썼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의 처음에 나오는 그 우우우 하는 현대음악 말이다.
눈보라 치는 계곡의 스산함과 잘 어울려서 안중근일행의 존재감에 큰 보탬이 되었을 것이다.
이제 80년대 영화음악에서 벗어나, 생활음과 기계음을 이용한 현대음악을 영화에 좀 이용해 보자.
창작의 고민이 안 느껴지는 영화였다. 어딘지 공허하고 재미도 없었다. 그냥 실제 인물 실제 사건만 그려도 훌륭한 영웅 훌륭한 스토리가 나오는데, 어설프게 스파이무비, 마적떼 나오는 서부영화같은 요소를 왜 넣었는지 모르겠다.
** 안중근의사의 배신한 동지가 나오는데, 이 사람은 a fistful of dynamite 라는 세르지오 레오네감독의 서부영화
등장인물과 생김새도 그렇고 캐릭터나 설정이 아주 비슷해 보인다. 이 사람도 주인공이 배신을 용서해주고 두번째 기회를 준다. 그는 적과 함께 자폭함으로써 자기 명예를 회복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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