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ief encounter (1945) 데이비스 린감독 실리아 존슨 주연 멜로영화 걸작. 스포일러 있음.
아라비아의 로렌스, 닥터 지바고 등의 감독으로 알려져 있는
데이빗 린감독은 원래 영국에 있을 때 저예산의 견고한 걸작들을 만드는 감독이었다. 그리고 어마무시한 촬영감독이었다. 이 영화 brief encounter 는 그의 걸작이다.
저예산 영화다. 그리고, 실리아 존슨이 거의 모든 장면을 끌고 간다. 원우먼쇼에 가깝다. 놀라운 연기를 해낸다.
실리아 존슨은 유부녀다. 자상하고 사려 깊은 남편도 있고, 무럭무럭 자라는 사랑스런 아이들도 있다.
그녀는 행복하다.
실리아 존슨 자신이 건강하고 사려깊고 야무진 사람이다.
약간 시니칼하고 신랄하고 유머러스하고 도덕적인 데가 있다.
원숙하고 충동에 따라 행동할 가능성은 0%에 수렴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상한 운명의 거듭됨에 따라 불륜에 빠지게 된다.
아마 자기 자신도 자기가 불륜을 저지를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운명의 중첩이라는 말이 이 영화를 묘사하는 데 딱 어울린다.
실리아 존슨은 자기 일과에 따라 쇼핑을 하고 커피샵에 들렀다가 눈에 티가 들어간다. 알렉이라는 의사가 마침 그 자리에 있었는데, 실리아 존슨의 눈에 들어간 티를 끄집어내 준다. 실리아 존슨은 감사 인사를 하고 둘은 헤어진다. 딱 그것이 다다. 이런 아주 작은 만남이 거듭된다. 그리고 톱니바퀴처럼 아주 조금씩 조금씩 둘 사이에 사랑이 싹트게 된다.
너무 느릿느릿 정교하게 이야기가 진행되어서 정열적으로 확 불 붙는 사랑을 기대하는 사람들은 실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주 마음에 드는 명장면들이 몇개 있다.
실리아 존슨은 평상시의 야무지고 단단한 표정으로 알렉과 이야기를 한다. 알렉은 자기가 관심 있는 예방의학에 대해 열정적으로 이야기한다. 그는 의사로서 자기가 이루고 싶은 꿈을 열정적으로 이야기하는데, 실리아 존슨은
가볍게 맞장구치며 들어준다. 그러다가 순간 그녀의 얼굴이 놀라움에 떤다.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알렉에게 말한다. "당신은......정말 소년같군요." 실리아 존슨의 굳은 껍질이 깨지며 그녀가 진심으로 알렉에게 사랑을 느끼는 순간이다. 실리아 존슨의 아름답고 섬세한 명연기도 대단하고, 데이빗 린감독이 이 장면을 엄청난 섬세함과 아름다움을 가지고 포착해내는 것도 대단하다. 뭐, 호들갑 떨며 키스하고 껴안고 그런 것 필요 없다. 실리아 존슨과 트레버 하워드가 가만히 앉아서, 그녀의 표정연기 플러스 네마디 대사를 하는데도 굉장히 로맨틱한 장면이 탄생했다.
실리아 존슨은 단정하고 야무지고 원숙한 여자다. 불륜같은 것을 저지르다간 깨져 버리고 만다.
하지만, 중첩된 brief encounter 들에 의해 자신도 모르게 불륜을 저지르고 만다.
그녀는 행복하고 황홀한 만큼이나 괴롭고 자괴감이 든다.
머리를 쥐어뜯으며 괴로워하고 자책하고 하다가도, 목요일이 되면 행복에 차서 알렉을 만나러 뛰어나간다.
알렉과의 사랑이 깊어갈수록 괴로움도 더 커져서 결국 그와 이별을 결심하게 된다.
알렉은 실리아 존슨과 헤어지고 싶지 않았지만, 그녀가 너무나 괴로워하기에 어쩔 수 없이 헤어지기로 동의한다.
실리아 존슨은 방금 자기가 헤어져달라고 알렉에게 애원했으면서, 괴로워하며 알렉에게 묻는다.
이것이 마지막이냐고. 그러자 알렉은 "I will not call it the end. It is the beginning of the end."라고 대답한다.
이 대사를 속삭이는 트레버 하워드의 어조가 너무 간절하게 들린다.
굉장한 명대사다. 머리 쥐어뜯고 울부짖고 그런 거 필요 없다. 명배우 둘이 앉아서 가만가만 속삭이면서
이런 명대사에 감정을 넣어 연기하면 굉장히 로맨틱하고 서글픈 장면이 만들어진다.
압도적인 장면이 클라이맥스에서 나온다. 이런 엄청난 작품에 도대체 어떻게 압도적인 장면을 클라이맥스로 넣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있었는데, 데이빗 린감독은 역시 대가다.
실리아 존슨은 방금 자기가 알렉더러 떠나달라고 말했으면서 그가 떠나자 괴로워한다. 알렉은 요하네스버그 병원에서 와 달라는 오퍼를 받고 있었는데, 실리아 존슨 때문에 거절해 왔다. 실리아 존슨이 괴로워하는 것을 보다가, 그는 요하네스버그로 떠날 결심을 한다. 알렉이 문을 열고 나간다. 알렉이 탄 기차가 막 떠나는 순간이다.
실리아 존슨이 머리를 풀어헤치고 격렬한 표정으로 얼굴을 든다. 그러자, 화면이 시계 반대방향으로 회전하듯 돈다.
그리고, 기울어진 각도에서 (그러니까 땅이 수평이 아니고 40도쯤 기울어진 화면에서) 그녀가 문을 열고 뛰어나간다. 굉장히 불안정해 보인다. 기차가 가느라고 바람이 강하게 인다. 기차 전조등이 그녀의 얼굴을 강렬하게 비춘다.
그녀는 알렉이 떠나는 기차 앞에 몸을 던지려고 한다.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영화 내내 보아온 사람들은, 그녀의 이런 강한 충동에 놀라고 감동을 받는다. 평온하고 안정적으로 보이는 그녀 밑바닥에서, 그녀는 목숨까지 내던질 정도로 강렬한 사랑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실리아 존슨은 간신히 자기를 수습하고 집에 돌아온다. 남편에게는 무슨 이야기를 할 염치도 없고 미안해서
그냥 앉아서 과거만 회상하며 우울해한다. 그러자, 남편은 그녀 표정에서 무엇을 읽었는지 다가와서
"당신이 무슨 꿈을 꾸었는지 모르겠지만, 행복한 꿈은 아니었던 듯 하구려." -> "그 꿈을 따라 당신은 멀리 멀리 돌아 내게 왔구려." -> "내가 무슨 도와줄 일 없겠소?" -> "내게 돌아와주어서 고맙소."
이것도 명장면이다. 이 정도는 되어야 명각본이라고 할 수 있다. 실리아 존슨과 알렉의 사랑만큼이나
남편의 사랑도 감동적이다. 사실 이 영화에서 가장 유명한 대사는 바로 이 대사다.
로맨스영화의 걸작으로 널리 인정받는 작품이 바로 이 brief encounter 이다.
데이빗 린감독은 명촬영감독답게, 굉장히 rich 하고 gorgeous 한 흑백화면을 만들어낸다. 굉장히 아름다운 흑백화면들이 쉴 새 없이 나온다.
이 영화는, 톡톡 튀고 설레이고 달콤하고 격정적인 로맨스영화를 찾는 사람들을 위한 영화가 아니다.
원숙하고 사려깊은 사람들이 하는 사랑이야기다.
영화에 액션이 별로 나오지도 않는다. 섬세한 대사와 표정연기가 99%를 채운다.
로맨틱한 모험도 없다. 일상의 장소에서 일상의 행동을 하는 것이 다다.
영화가 굉장히 견고하다.
하지만, 이 영화는 아주 로맨틱한 영화다. 아주 격렬한 영화다. 놀라운 장면들이 결정적인 순간마다 포진되어 있다.
실리아 존슨의 연기는 대가급이다. 이런 대단한 영화를 한 몸으로 떠받치다니. 그리고, 영화사에 훌륭한 이름을 남겼다.
데이빗 린감독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흑백화면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 영화의 구성도 추리소설 형식이다. 맨처음 시작에서 실리아 존슨과 어떤 남자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나온다. 별 거 아닌 장면이다. 그냥 실리아 존슨과 어떤 남자가 사소한 대화를 하는 것처럼 묘사된다. 오히려 주변사람들이 더 떠든다. 그리고 나서, 영화는 과거로 돌아간다. 실리아 존슨과 알렉 간 불륜에 대해 보여준다.
그리고 영화 마지막에 아까의 장면으로 돌아온다. 관객들 눈에 이 장면이 이제 다르게 보인다. 실리아 존슨과 그 남자(알렉) 간 대사가 굉장히 애절한 것으로 묘사된다. 이 효과가 강렬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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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어 제목의 의미까지 다 옮기진 못했네요.
명작 소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