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멀홀랜드 드라이브
난해하기로 악명높은 소문과 달리 역시 데이비드 린치구나하며 흥미롭게 보았습니다.
불친절하긴해도 그의 세계관이 펼쳐지는 그만의 영화작가주의적 일관성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면서 자신만의 독특한 서사와 전개 및 표현의 연출이 다른 영화들에선 결코 볼 수 없는 새로운 형식으로써 무척 의미있고 또 나름의 재미도 있게 다가오더군요.(하지만 반복관람하고싶진 않은;;)
그의 이전작들에서 펼쳐내는 그만의 영화적 논법에 익숙해있는 분이라면 별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있습니다.
다른 비평가들이나 기존의 여타 해석들은 지나치게 어렵게 꼬아버리거가 보여지는 이상의 다른 해석들을 부여해 억지로 짜맞추느라 나무 하나 하나에 휘둘린 나머지 세부적 표현방식들에 연연하여 막상 숲이라는 전체 큰그림을 못보는 듯 싶었습니다.
본 입장에서 영화 전체를 그게 다 어떤 이야긴지에 대해 전부 말할 수 있지만 그러기엔 일개 일반인으로 필력도 딸려서 기본 줄거리는 여배우 지망생과 그녀를 둘러싼 미스테리한 관계들을 통해 인간 생애와 운명의 염세적이고 비극적인 무척 현실적인 존재론을(이런 면에서 이 작품을 초현실이나 환각의 관점으로 보는 건 잘못일 수도) 감독 자신의 방식으로 투사시킨 은유의 이야기였습니다.
꿈과 현실이 혼동되거나 교차된 환각과 악몽에 빠진 정체불명의 이해불가한 프로이트식 무의식의 섹슈얼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거지요.
다분히 개념적으로 조직된 표현과 그 의식 위에 인간 인생과 세계의 삶적 굴곡들을 서사 구조로 해서 합치시킨 감독 고유의 작품관은 이미 그의 데뷔작 이레이져헤드에서부터 가감없이 드러났었던 그만의 기괴한 세계관이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정성일 평론가의 멀홀랜드 드라이브를 일컬어 21세기 새로운 영화의 시작 어쩌고하는 수사는 좀 과장된 면이 있고 이미 그의 1977년 데뷔작부터 너무나 일관되게 고수돼온 그만의 고유한 창조성이 도리어 무안해지는 듯하며 자칫 잘못 도식적인 시대적 분류로 박제돼버릴 수도 있을 겁니다.
영화의 내용은 그래서 다른 영화들이 빠지는 장르적 테두리라는 그 한계에 결코 부합되지 않을 수 있었고 오히려 그 기존 장르성을 주무르며 완전히 벗어나 다시 자기 세계로 재창조해낼 수 있었던 거지요.
멀홀랜드 드라이브는 삶과 꿈, 질서와 혼돈, 우연과 필연, 행운과 불운, 현실과 분열, 진실과 착각, 욕망과 의지, 망상과 이상, 인생과 운명, 가족과 개인, 생명과 죽음의 서로 대치되거나 혹은 하나로 어우러지거나 아니면 지배 당하고 휩쓸리다 종내 길을 잃어 파멸해버리는 그 보편의 상관관계를 여배우 지망생과 그녀의 관계 및 그 변화를 통해 펼쳐냅니다.
그것들이 다채롭게 얽히며 논리적으로 구성되는 격자 구조의 서사가 기준 없이 어떤 건 꿈이고 어떤 건 현실이며 여배우 지망생 베티와 기억상실증의 리타가 서로 다른 역할로 바꿔지거나 각자 정신 속이거나 하면서 표면적인 유추에 따라 비논리적인 이분법으로 재단하는 것은 오히려 작품을 만든이의 의도 그대로 보지 못하게 만드는 지나친 형식성이 될지도 모릅니다.
멀홀랜드 드라이브는 염세주의라 할만큼 어떤 희망도 전망도 일절 없이 너무나 가혹하게 사실적이기만 하여서 결말은 그런 쓰디쓴 인간 생애의 실체로 끝맺지만 모든 위선적인 치장의 기름기를 쫙 뺀 메마른 존재의 황량함과 그 절규가 도리어 보는 이로 하여금 영화를 통해 자신이 마주한 생의 진실을 가감없이 절감하게 만듭니다.
보통 전기물 장르가 한 인간의 인생사를 감화되게 만드는데 그런 면에서 멀홀랜드 드라이브만큼 아마 인간 그 자체의 존재에 과한 전기는 이외에 없을 것입니다.
그것도 어떤 특별한 경우나 사례의 드라마로써가 아닌 너무나 끔찍할만큼 현실적이고 보편적인 실재로써.
정성일 평론가는 이 작품을 들어 영화역사에서 이 영화는 카프카의 '변신'이 이후 문학역사의 혁신을 가져온 위상과 같다라 하였는데 충분히 동의되는 바이고 한가지 더 부언하고 싶은 점은 그것이 그의 데뷔작부터 이미 거의 다 진행되고 있었다라는 것이죠.
감독은 영화라는 거짓의 꿈은 그저 가상세계 약물같은 즐길거리 구경거리 위안거리만이 아닌 인간 자신과 사는 세계의 진상 그 진실을 고통스럽고 불편하더라도 구현해내고 발설해야하는 의무를 져야하는 것이며 그래야만이 영화는 일개 상품이길 넘어 비로소 고유의 의미와 표현의 자유를 가진 작가적 창작이 될 수 있는 것이라 믿었음에 틀림없을 겁니다.
정말이지 종잡을 수 없는 이야기인데...^^;
장면 하나하나는 강렬했습니다.
무대에서 가수가 부르던 Crying 스페인어 버전은 자주 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