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더 폴: 디렉터스 컷(The Fall), 2024 재개봉> : 영화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모든 이미지 출처: 영화 <더 폴>
영화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영화는 정말 훌륭한 오락수단이죠. 우리는 마석도의 타격 한 방에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고, 감동적인 뮤지컬 넘버에 눈물을 흘리며,
기막힌 코미디에 자지러짐으로써 다른 세계에 잠시 흠뻑 빠져 있다 오곤 합니다.
그런데 혹시 영화가 현실에도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요?
영화는, 잘 만들어진 이야기는 우리에게 어디까지 해 줄 수 있을까요?
더 폴(The Fall, 2006) / 재개봉
감독 타셈 싱
출연 리 페이서, 카틴카 언터루 등
'로이(리 페이스)'는 스턴트맨으로, 영화 촬영 중 낙상으로 큰 부상을 입고 병원에 장기 입원해 있습니다.
'알렉산드리아(카틴카 언터루)'는 아버지를 잃었고, 오렌지를 따던 중 사다리에서 떨어져 팔에 부상을 입어 장기 입원 중인 어린 꼬마죠.
두 사람이 병원(작중 상황 상 교회 부속 병원으로 보입니다)에서 우연히 만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게 <더 폴>의 중심 줄거립니다.
<더 폴>의 두 주인공, 로이와 알렉산드리아는 둘 다 추락(fall)으로 인한 결핍을 안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로이는 촬영 중 낙상으로 부상당해 커리어와 사랑하는 사람을 모두 잃었고,
알렉산드리아는 표면상으로는 밝아 보이지만 아빠를 잃을 당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어린애였단 사실에 트라우마를 안고 있죠.
로이가 알렉산드리아에게 해 주는 이야기는 처음엔 그저 알렉산드리아를 꼬드겨 극단적 선택을 할 약을 구해오게 하려는 미끼였지만,
결말부에 와서는 그 의미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알렉산드리아는 중반부부터 이미 아빠와 이야기 속 검은 무법자를 동일시하기 시작했습니다.
즉 알렉산드리아에게 있어 이야기 속 검은 무법자는 반드시 해피엔딩을 맞이해야 하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검은 무법자는 모두 알다시피 로이이기도 하죠?
알렉산드리아가 이야기 속 꼬마 무법자로 등장해 이야기 속 다섯 전사들을 돕기 시작한 때가 언제였는지 기억하시나요?
바로 사제와 공주에게 버림받아 다섯 명의 전사들이 죽기 일보직전일 때입니다.
제 생각이 맞다면, 로이는 이미 거기서 다섯 전사들을 죽이고 이야기를 마칠 생각이었을 겁니다.
그게 로이 자신의 이야기이자 현실이기도 하니까요.
그러나 거기서 꼬마 무법자가 끼어들어 이야기는 계속 이어지게 됩니다.
알렉산드리아가 로이의 삶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음을 의미하겠죠?
결말부,
현실의 로이가 매번 자살에 실패하고, 좋지 않은 소식들이 계속 찾아오면서 로이의 멘탈이 흔들려갑니다.
와중에 결국 로이의 심부름을 하다 발을 헛디딘 알렉산드리아가 크게 다치기까지 하죠.
로이의 멘탈이 불안정해지면서, 처음에 멋진 활극으로 시작했던 이야기(=영화)는 점점 비극으로 향해 갑니다. 이야기 속 주인공의 상황은 악화되고, 동료들은 하나 둘씩 죽음을 맞이하죠.
알렉산드리아는 괴로워합니다. 왜 다 죽이는 거죠?
로이는 자신의 마음이라고 대꾸합니다.
알렉산드리아가 울면서 대답합니다. 이건 내 이야기이기도 해요.
정확히 이 부분입니다. 로이는 이제 이 이야기를 새드엔딩으로 끝낼 수 없습니다.
이 이야기, 즉 삶이 이제 로이만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죠.
로이의 삶이 마침내 알렉산드리아의 삶과 깊은 관계를 가지게 되었다는 뜻이자,
로이가 죽음을 선택할 수 없게 되었다는 뜻이 됩니다.
이야기는 결국 해피엔딩으로 끝납니다.
로이 본인의 순수한 의지도 아니고, 로이의 상황이 현실적으로 나아진 것은 아무 것도 없죠.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죠. 알렉산드리아가 있는 한 로이의 이야기, 즉 로이의 삶은 새드 엔딩으로 끝나지 않으리라는 것을요.
이 영화는 구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야기를 통해 로이는 알렉산드리아로부터 삶의 의지를 얻게 되죠.
아니, 다시. 이 영화는 쌍방 구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알렉산드리아는 아버지를 구하지 못했지만 로이를 구했습니다. 이야기로요.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알렉산드리아는 아무 것도 하지 못했던 어린아이에서 벗어났습니다.
이제 알렉산드리아는 멋진 어른으로 성장할 것입니다.
다시.
<더 폴>의 많은 후기에서, 이 영화가 스턴트맨들에 대한 헌사라는 의견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동의합니다.
다만 저는 좀 더 <더 폴>의 가치를 넓게 보고 싶은데요.
이 영화는 이야기, 즉 영화의 가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현실에서 할 수 없는 것들을 영화로서 경험할 수 있고,
현실을 헤치고 나아갈 힘을 영화를 통해 얻을 수 있으며,
그 공감대로서 삶과 삶을 연결할 수 있다는 것이죠.
<더 폴>은 그 동안 가려져 있던 스턴트맨에 대한 헌사를 통해 영화의 가치 자체를 논하는 작품이자, 영화 그 자체에 대한 헌사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스턴트맨을, 혹은 그 영화 자체를 따뜻하게 바라보고 애정하는 알렉산드리아가 어딘가에 분명 있음을,
이 스크린 너머 영화를 보고 울고 웃는 당신일 수 있음을 전하는 모든 영화인 그 자체에 대한 헌사이죠.
<더 폴>, 너무 아쉬운 영화입니다. 왜 아쉽냐구요? 이 영화를 2006년에 보지 못해서(물론 그땐 봐도 뭐가 뭔지 전혀 몰랐겠지만)
이 영화가 2025년산 영화가 아니어서요.
올해 처음 나온 영화라면 각종 시상식을 휩쓰는 것을 제가 직접 보지 않았을까요?
...
오늘 <더 폴: 디렉터스 컷>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아름답기 그지없는 영화 미술과 영화 속 깔려있는 기독교적 정신 등, 제가 다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이 영화는 정말 두고두고 한참을 얘기해도 모자랄 것 같네요.
좋은 영화는 좋은 대화와 논쟁을 만듭니다. 그런 좋은 영화를 재개봉으로라도 발견할 수 있어서 아주 기쁩니다!
블로그에 더 많은 리뷰가 있습니다 :)
https://blog.naver.com/bobby_is_hobbying/223723629507
바비그린
추천인 4
댓글 11
댓글 쓰기정치,종교 관련 언급 절대 금지입니다
상대방의 의견에 반박, 비아냥, 조롱 금지입니다
영화는 개인의 취향이니, 상대방의 취향을 존중하세요
자세한 익무 규칙은 여길 클릭하세요
자극받아서 저도 더 폴 리뷰 만들어보겠습니다 ㅎㅎ
이번주 금욜에 GV로 보고 리뷰 적어야지 했는데
계속 미루고 있네요 ㅠ
저도 이번 재개봉에 보고 참 좋았습니다
좋은 글 넘 잘 읽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no cg 촬영에 대한 시도가 더 귀중해졌고, 이야기도 재평가 받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