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의 없는 전쟁 (1973) 걸작이라기엔 조금 못미치는......아니라고 하기에도 좀 아쉬운......스포일러 있음.
그 유명한 인의 없는 전쟁이다.
유명한 전직야쿠자가 오랜 기간에 걸쳐 자기 자서전을 썼는데, 이 안에 유명한 야쿠자사건들이
생생하게 인사이더의 입장에서 들어있다고 한다. 알고 보니 찌질하기 그지 없는 사람들이
어처구니 없는 이유로 일으킨 사건들이다. 당시 중요한 위치에 있었던 사람이 주변일을 기록한 것이라
생생하고 자연스럽다.
우리나라 갱영화에 비하면 두 수는 위다. 얼마나 자연스럽고 상세한가 하면,
"야쿠자가 밥 먹고 담배 피우다가 친구를 만나 수다를 떠는데, 보스가 누구누구를 죽이라고 해서
택시를 타고 가서 망치로 한대 쳤는데, 안 죽고 도망가서 쫓아가다가......" 이런 수준이다.
일기를 적은 수준이다.
뭐 살벌하고 잔인한 야쿠자 - 액션영화에 등장하는 그 드라마화된 야쿠자가 아니다.
화가 난다고 손가락을 잘랐는데, 손가락이 마당에 튀어서, 여러 야쿠자들이 마당에서
잘린 손가락을 찾으러 허둥대는데, 닭장 속을 보니, 닭이 쪼아먹고 있었다 하는 에피소드가
이 영화에 등장하는 야쿠자를 대변한다.
돈만 밝히는 야쿠자 보스는, 사납고 어디로 튈 지 모르는 부하들을 조종하기 위해,
부하 앞에서 눈물을 흘리기를 잘 했다. 그리고 쪼잔하게 자기만 돈을 챙기고 부하들에게는 돈을
안 나누어 주었다. 부하들이 따지자, "아버지에게 돈 이야기를 하는 아들이 어디 있느냐?"하면서 오히려
화를 내고 도망가 버렸다. -> 이것이 이 영화에 그려진 야쿠자 보스다.
욕망, 욕심, 변덕, 찌질함 등으로 뭉쳐진 야쿠자들이
자기 본성대로 찌질하게 살다가 별 것 아닌 이유로 죽고 죽인다는 것이 이 영화의 내용이다.
이것이 놀랍도록 생생하고 피부에 닿게 느껴진다. 인간의 본성을 이정도로 생생하게 그려낼 수 있다는 것은
분명 걸작이다. 별 것 아닌 이유로 개같이 더러운 길바닥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은 모습은 처절함과 동시에
찌질하고 의미없음을 잘 보여준다. 처절하고 영웅적인 죽음은 고사하고 남성적인 화끈한 죽음도 아니다.
찌질한 이유로 찌질하게 죽는 것들이다. 주인공이 그 중 한명이었기에, 이렇게까지 자연스럽고 상세하게
그려냈을 것이다.
영화가 엄청 강렬하고, 땀냄새 피냄새가 역겨울 정도로 확 풍기는 영화다.
또 한가지 훌륭한 점은, 당시 사회상을 잘 그려냈다는 것이다.
전후 미군에 의해 지배되던 사회에서 일본인들은 죽은 듯 지낸다. 대낮에 사람 많은 길거리에서
미군들이 지나가던 여자를 강간해도 누구도 뭐라 못한다. 경찰은 오히려 미군편을 든다.
좌판 하나 놓고 장사하는 수준의 극빈층 상인들에게서 삥을 뜯는 사람들이 야쿠자들이다.
사회가 가난하니까, 그들도 가난하다. 그런데, 서로 자기가 삥을 뜯겠다고 싸운다.
본보기를 보인다고 팔을 일본도로 자르고 그런다.
히로노는 이런 일본의 상황에 분개해서 사고를 치다가 야쿠자의 길로 빠져든다.
당시의 사회상을 아주 잘 압축해서 그리고, 그 안에서 야쿠자가 성장해 가는 과정을 인사이더의 입장에서
아주 잘 묘사하였다. 가난하게 살던 야쿠자들이 발전하는 사회와 함께 서서히 부를 축적하고,
더 큰 욕망을 좇아 서로 죽고 죽이는 과정이
"사회적으로" 묘사되었다. 일본사회의 격동기 그리고
야쿠자세계의 격동기를 여과없이 그려낸 작품이다. 레미제라블 타입의 대하드라마다. 영화 속 공간이 큰
대하드라마라는 이야기다.
히로노는 야쿠자계의 거물로 자리잡는다. 싸움을 잘 해서가 아니다. 깡이 있는 사람이 최고다.
인상쓰고 강한 척하던 야쿠자들도, 자기가 희생해야 할 상황이 오면, 눈물 질질 짜는 흉내 내며 도망간다.
터프한 야쿠자도 누가 총을 들이대면 살려달라고 빈다.
하지만, 히로노는 눈 딱 감고 자기가 궂은 일들을 한다. 히로노가 자서전을 쓴 사람이자, 이 영화의 주인공이다.
야쿠자계의 거물이기에, 이 사람 저 사람 만난다. 모두 욕망의 덩어리에다가, 남을 죽이고서라도 자기 욕망을
채우려는 욕심쟁이들이다. 그러면서도, 자기 손끝에 가시 하나 박히는 정도의 고통도 못참는다.
하지만, 단점도 있다. 많은 개성적인 사람들을, 다채롭고 상세하게 묘사하다가 보니 시간이 없다.
여백을 잘라내고 잘라내서, 다이제스트를 보는 것같은 느낌이 든다.
못 만들었다는 것이 아니다. 넣을 것은 다 넣고, 보여줄 것은 훌륭하게 다 보여준다.
하지만, 영화 두서너편은 될 내용을 압축해서 한 영화에 집어넣은 것이 문제다. 아주 훌륭하게 압축하였지만,
그래도 빽빽한 것은 빽빽한 것이다. 줄거리를 다 알지 못하면, 따라가기 어려울 정도다. 이것 때문에 점수를 좀 깎인다.
그리고, 실록이기 때문에, 기승전결같은 전개가 없다. 영화가 하나로 잘 정리된 것이라기보다,
이 사건 그 다음 저 사건을 병렬식으로 따라간다는 점도 좀 점수를 깎는다. (비록 사건 하나 하나는 모두 재미있고 흥미롭지만.)
사람들이 상상하는 야쿠자인 - 남성적이고 의리와 명분을 중시하고 카리스마 있는 그의 친구는
돈만 밝히고 찌질한 야쿠자들을 경멸하고, 자기가 자기 파를 세우려 한다.
그러다가, 찌질한 야쿠자들에게 죽임을 당한다. 야쿠자들은 자기들이 살해하고도,
그를 위해 돈을 잔뜩 들여 성대한 추모식을 한다. 자기 과시다.
모든 사정을 다 아는 히로노는 거기 쳐들어가 총으로 장레식장을 박살낸다.
그리고, 야쿠자계를 떠난다. 환멸과 경멸에 찬 표정으로.
아마 전세계 갱영화들은, "나도 한번 저렇게 만들어 보았으면......"하는 소망을 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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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일본의, 특히 저 시대 문화는 답답한 점이 많아서..
일본에서 다시 만들기 힘든... 밑바닥 사람들의 땀내가 그대로 담긴 시리즈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