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ild robot (2024) 아주 흥미로운 애니메이션. 스포일러 있음.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천공의 성 라퓨타를 몇 장면 카피까지 해서 오마쥬를 하였다. 

주제면에서는 천공의 성 라퓨타와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를 섞은 것 같다. 

하지만, 거기에서 끝나지 않고 자기만의 독창적인 것을 풍부하게 넣었다. 

인간적인 로봇의 외양과 이것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모습은 천공의 성 라퓨타를 카피한 것이다. 

초록풀이 돋아난 로봇의 모습, 정원을 가꾸는 로봇 등도 모두.

하지만, 이 애니메이션만의 독창적인 세계가 눈부시게 펼쳐진다. 

이 애니메이션은 스토리나 사건 중심이 아니다. 상황 중심이다. 

마치 시이튼의 동물기를 읽는 것처럼, 동물들의 생태를 관찰하는 기분이 든다. 그들이 얼마나 눈부시게 움직이고,

얼마나 자연 속에서 자신들의 생태를 유지하며 생을 영위해 나가는지 - 그것이 애니메이션을 움직여 나간다. 

이 애니메이션이 스토리 중심이었다면, 이 애니메이션은 엉망이 되었으리라. 

로봇이 어쩌다 고립된 야생의 섬으로 떨어진다. 그것이 다다. 여기에서 두시간 동안 스토리를 잇고 또 이어서 만들어 나가려면,

별의 별 무리수를 다 두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애니메이션은 관조적이다. 

로봇은 야생의 섬을 덮고 있는 동물이며 나무 풀들을 바라본다. 이 바라봄이 이 애니메이션을 이룬다. 

자연을 계속 바라보다가 거기 동화된다.

곰이 얼마나 사납고 우람하고 위압적인지, 비버가 얼마나 부지런하게 끈질기게 

자기 생태계를 창조해 나가는지, 여우가 얼마나 교활하게 그러나 사실은 친근하게 로봇에게 와 닿는지, 

먼 여행을 떠나려는 철새 기러기가 얼마나 부지런히 긴 비행을 준비하는지 - 로봇은 관찰한다. 

그들 생태의 적확한 묘사 그리고 거기에서 눈부신 생명의 힘을 찾아내는 것이 이 애니메이션의 모든것이다.

아주 흥미롭다.

"자연을 보호하자"? 이런 메세지는 케케묵었다. 사람들에게 감동을 안 준다. 

눈부신 동물들의 생태를 그냥 보여주면, 메세지는 그 안에 살아숨쉰다. 이 애니메이션에서 한 것이 이것이다. 

그리고, 마치 수채화로 그린 듯 수작업의 질감이 느껴지도록 컴퓨터그래픽을 사용한 것도 인상적이었다. 

반들반들한 플래스틱 표면처럼 느껴지는 인위적인 컴퓨터그래픽 애니메이션의 표현방법을 나는 싫어한다. 

땀구멍 하나 흐트러짐 하나 없는 플래스틱 덩어리같은 인물의 표현에서 매력을 느끼기란 힘들다. 

이 애니메이션은 충분히 수작업적인 요소를 컴퓨터그래픽으로 구현하였다. 이것도 마음에 든다.

하지만, 문제점도 있다. 

로봇이 처음에는 인간적인 것보다는 알고리즘에 의해 운영되는 인공지능 같았다. 그것은 학습을 하고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방법을 찾지만, 인간의 그것과는 다르다. 애니메이션 처음에는 이것이 강조된다. 

하지만, 애니메이션 후반에는 로봇이 너무 인간적인 것이 된다. 우정, 사랑, 공감, 희생정신 - 이런 것을 로봇이 갖게 된다는 것은 너무 억지같다. 로봇이 이런 인간적인 감정을 갖고 자기 희생을 한다는 식으로 나가니까, 억지감동을 자아내려고 무리수를 두는 것 같다. 이것은 그동안 애니메이션에서 하도 나와서 그냥 클리셰처럼 느껴질 정도다. 이것때문에 이 애니메이션은, 공장에서 찍어낸 기성품같은 느낌을 조금 줄 수도 있었다. 

그리고, 모든 동물들이 모여 서로 죽이는 것 없이 평화롭게 살 수 있는 유엔본부 비슷한 공간을 로봇이 만들고

이 섬에 평화가 만들어졌다는 식의 영웅사관(?)도 좀 애니메이션의 재미를 반감시킨다. 그냥 착실하게 

동물들의 생태에 집중하는 접근방법을 끝까지 천착했다면 어땠을까? 동물들과 자연에 대해 생생하게 관찰 묘사했던 처음과는 달리, 이 애니메이션은 점점 더 동물들과 자연을 인간적인 것으로 만든다. 그러니까, 생생하고 빛나던 것들이 구닥다리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시이튼의 동물기에서, 주인공 동물은 모두 비참하게 죽는다. 이것은 인간의 눈에나 비참한 것이지,

자연의 관점에서 보면 자연스러운 소멸이다. 사실 동물의 생태에 집중하는 이 애니메이션에서 피할 수 없는 결말이 아닐까 생각한다. 

마지막도 억지 감동을 주려고 무리수를 둔 것 같다. 넣지 말았어야 할 군더더기다. 

하지만, 단점은 극히 작다. 장점이 훨씬 크다. 이 애니메이션을 걸작이라고 누가 말해도 나는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