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리에의 노래 (2023) 산만하고 흥미 없지만 아름다움. 스포일러 있음.
아름다운 영상과 잔잔하게 이미지와 감성을 부각시켜 나가는 솜씨는
거장의 경지다. 그러면서도, 너무 가볍거나 센티멘털하거나 연약하지 않다.
이것만 보아도 이 영화에 들인 시간은 아깝지 않다. "감성 멜로"가 무엇인지 단단히 보여준다.
키리에 역을 맡은 여배우의 매력이 상당하다. 전통적인 의미의 미인은 아닌데, 팜므파탈형 퇴폐미가 있다.
사람을 끌어들이는 흡인력이 있는 배우다. 허스키하면서도 고독하고 여성적인 목소리는 큰 강점이다. 목소리만으로도 큰 감정적 울림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은 배우로서 큰 무기가 아닐 수 없다.
원래 가수라고 한다.
허스키한 목소리의 "여자 김현식"같은 목소리도 아주 좋았다. 중2병적인 노래도 누구 눈치 안 보고 막 질러대는
박력이 마음에 든다.
러브 레터와 4월 이야기에서 보여주었던 감성은 아직도 여기 선명하다. 감독 이와이 슌지의 가장 큰 무기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아직 살아 있다.
사실 이것이 이 영화 "키리에의 노래" 장점의 전부가 아닐까 한다.
적은 장점들 같아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관람을 추천할 정도는 된다.
하지만 걸작이냐 하고 묻는다면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심지어는 수작이냐 하고 물어도 대답을 주저하게 한다.
대답 유보다. 그 이유는 편집 때문이다. 중요한 이야기들이 아주 많은 것은 분명한데, 잘려 나갔다.
가수 키리에와 불량소녀 잇코 간 우정이 아주 깊은 것으로 나온다. 키리에는 잇코를 위해서, 남자에게 자기 몸까지 기꺼이 내줄 정도다. 그렇다면 둘 간 무슨 많은 사연들이 틀림없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둘이 같이 나오는 장면이 얼마 되지 않는다. 편집에서 잘려나간 것이다. 나츠히코와 키리에는 서로 위안을 주고 받는 아주 긴 역사를 갖고 있다. 둘은 서로 그런 이야기를 나눈다. 하지만, 그런 대사가 나옴에도 불구하고, 둘이 함깨 등장하는 장면은
몇분이 다다. 이런 것들이 너무 많다. 이 영화를 보다가 보면, 무슨 유튜브 요약본을 보는 것 같다. 왜 등장인물들이 저리 괴로워하는지 왜 이런 일로 위안을 받는 것인지 배경사건들이 다 잘려나갔으니 이해할 도리가 없다.
사실, "잘려나간 부분을 다 본 다음에야 영화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을 듣는 영화는
좋은 영화가 아닐 것이다.
키리에의 노래에 등장하는 주요인물들은 네 명이다. 그들은 서로 깊은 인연으로 맺어져 있다.
그들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는 것이 대지진이다. 영화 구조상, 이 영화는 대지진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어야 한다.
이와이 슌지는 이런 영화 구조를 아주 좋아하는 것 같다.
대지진 다음에 그들은 치유될 수 없는 상처를 입는다.
가령 나츠히코는 자기 아이를 임신한 여자를 지진으로 잃는다. 병원장의 아들인 그는, 그녀와 아이를 속으로라도 짐으로 생각하고 버리려하지 않았을까 자책하고 또 자책한다. 그는 집을 나와서 막노동을 하며 살아간다. 키리에는
(아직 어렸만) 자기 실수로 언니가 죽자, 자기 아이덴티티를 포기하고 언니로 살아간다.
네 명의 등장인물 모두에게 대지진 이후 이런 일이 발생한다. 대지진은
네명 등장인물들을 고통에 빠뜨린다. 그들은 간절하게 치유받고 싶어한다.
제목은 키리에의 노래 부터가 이런 것을 암시한다. 키리에는 신에게 바치는 성가다. 신에게 구원을 간절히 염원하는
노래다. 대지진 후 절망과 고통에 빠진 사람들이 위안과 구원을 바라며 사회의 음지에서 떠돈다는 이야기다. 아이디어는 매우 좋지만, 이와이 슌지감독은 이런 아이디어를 견고하게 구축할 정도로 영화의 뼈대를 세우는 능혁은 부족한 듯하다. 대지진을 중심으로 이들의 이야기가 견고하게 구축되지 않은 것이 이 영화의 문제다. 대지진이 영화의 중심 등뼈로 작용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서 이야기들이 산산이 흩어진다.
영화가 너무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필요 이상으로 난잡하게 되어 있다. 이것이 무질서하게 작위적으로 보여서는 안된다. 사실 영화가 너무 난해하다고 비난받았다는데, 영화가 깊어서 난해하다는 비난을 받은 것이 아니라, 겉멋으로 이렇게 영화를 만든 때문에 난해해진 것이니, 이것도 단점이다.
영화에 선택과 집중을 했어야 했는데, 편집되어 날려간 부분을 제외하고는 모두 너무 길다. 시시콜콜 다 보여준다는 것이다. 중요부분들은 다 날려버리고, 동시에 남은 부분들은 지루하게 시시콜콜 다 보여주고 - 이것이 이 영화의 현주소다.
키리에의 노래라고 해서, 음악영화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음악은 아주 작은 비중을 차지한다. 대지진 이후 살아남은 사람들이 위안과 구원을 찾아 헤베는 이야기다. 키리에는 인간이 구원을 바라며 신에게 부르는 노래이니까. 여기서 노래라고 하는 것은 그냥 상징이다. 영화 속 버스커 키리에가 노래를 하기는 한다. 하지만, 이 노래라고 하는 것의 영화 속 비중은 앞서 말한 그 정도다.
키리에 캐릭터는 매력적이지만, 나머지 캐릭터들은 그렇지 않다. 나츠히코 캐릭터는 그냥 영화나 만화에서 너무나 많이 본 캐릭터리고 재미 없다. 나머지 캐릭터들은 얕고 색채가 부족하다. 이것도 큰 단점이다.
아무리 호의적으로 생각해 보아도, 이 영화에 큰 기대를 하기는 무리다.
동일본 대지진의 트라우마는 아직도 여전하군요.